소설리스트

63화 (234/239)

63화. 14 – 3

“전에 미스토 경이 잘생겼다며?”

“잘생겼잖아요.”

당연하지 않냐는 줄리아의 대답에 나는 신음을 내뱉었다. 미스토 경이 잘생겼냐면 그렇긴 하다. 나는 마지막으로 물었다.

“미스토 경과 나란히 앉으려고 했잖아?”

줄리아는 전에 음악회에서 미스토 경의 옆자리를 앉으려 했다. 믿을 수 없어 하는 내 태도에 줄리아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잘생겼으니까요.”

“맙소사, 줄리아!”

“유제니, 유제니는 너무 혜택을 받아서 잘생긴 남자가 얼마나 소중한지 모르는 거예요.”

“무슨 소리야?”

갑자기 내가 무슨 혜택을 받았다는지 모르겠네. 어리둥절해하는 내게 줄리아가 얄밉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올리버도 잘생겼잖아요. 그리고 렌시드 경도, 뭐, 그 정도면 괜찮은 축에 속하고요.”

“뭐라고?”

얘가 뭐라고 하는 거야? 말도 안 되는 소리에 입이 딱 벌어지는데 줄리아가 쐐기를 박았다.

“가장 최고는 번즈 백작님이죠. 그 사람, 유제니 옆에서만 웃는 거 알아요?”

그건 몰랐다. 그리고 지금 가장 알고 싶지 않은 정보기도 했고.

싸늘하게 굳어 버린 마차 안에서 줄리아는 실수했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엘리엇의 태도가 그렇게 달랐단 말이야? 나는 울고 싶어져서 입술을 깨물었다.

“어쩌면 제 착각인지도 모르고요.”

그제야 줄리아가 나를 달래기 시작했다. 하지만 전혀 위로되지 않는다. 엘리엇이 내 옆에서만 웃는다고?

나는 뭐라고 물어야 할지 몰라 망설이다가 입을 열었다.

“언제 그랬는데?”

“언제 그랬다기보다는….”

어려운 질문이었는지 줄리아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그녀는 우물쭈물 말했다.

“인상이 좀 어둡다고 해야 하나, 무섭다고 해야 하나. 그렇잖아요. 그런데 유제니 옆에선 안 그렇거든요.”

“그건 번즈 백작의 머리카락이 검은색이라 그렇지. 그리고 키도 크니까….”

좀 무서워 보인다. 그래도 가까운 사람이 옆에 있으면 대답도 곧 잘하고 장난을 치기도 한다. 나는 줄리아의 말이 그녀의 과장이었다는 것을 깨닫고 한숨을 내쉬었다.

깜짝 놀랐네.

“번즈 백작님 이야기는 제 실수예요.”

줄리아 역시 순순히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고 나섰다. 그녀는 한숨을 폭 내쉬더니 다시 원래 주제로 말을 돌렸다.

“어쨌든, 로렌을 보니까 생각이 많아졌어요. 걔도 지금 고민이 많을 거예요.”

그렇구나. 아직도 심장이 뛰기는 하지만 많이 진정됐다. 나는 줄리아의 이야기에 집중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고민을 많이 해 보는 게 좋지. 특히 로렌은.”

느닷없이 의상실을 하겠다고 했을 때부터 나는 그녀가 좀 더 고민했으면 하긴 했다. 하지만 줄리아는 내가 로렌을 믿는다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그녀는 놀란 표정으로 물었다.

“로렌이 실패할 줄 알았어요?”

“실패라니.”

그렇게 생각하는 건 아니다. 나는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로렌이 시도할 기회를 주고 싶었던 거지. 그걸 실패라고 생각하지도 않고.”

“하지만 그 천 사느라 유제니의 돈을 꽤 많이 썼다던데요.”

그렇긴 하다. 로렌에게 빌려준 돈을 생각하자 갑자기 차가 마시고 싶어졌다. 그 돈이면 괜찮은 드레스 한 벌은 맞출 수 있다.

로렌에게 빌려주기로 결심했을 때는 곧 어닝과 결혼할 테니 괜찮은 드레스가 필요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어닝과 파혼한다면 나는 다시 결혼 시장에 나가야 한다. 괜찮은 드레스가 적어도 몇 벌은 필요할 테지.

그렇게 생각하니 속이 쓰렸지만 내가 어닝을 다시 생각할 기회가 생긴 것처럼, 로렌에게도 자신이 피하고 싶은 미래를 피할 기회가 필요했다.

“그렇긴 한데.”

나는 창밖으로 시선을 돌려 우리가 어디까지 왔는지 확인했다. 아, 차 마시고 싶은데. 이런 돈 이야기는 익숙하지 않아서 거북했다.

비스컨 가는 부유하다고 말하긴 어렵지만 나는 불편함 없이 살았다. 그건 아마도 내가 가지고 싶은 게 그리 많지 않기 때문일 거다.

매 시즌이 되면 새 옷과 구두를 사야 하는 올리버와 어머니와 달리 나는 작년에 입은 옷을 수선하는 거로도 충분히 만족했다.

올리버는 내가 물욕이 없기 때문이라고 했지만, 딱히 그런 건 아니다. 나라고 왜 가지고 싶은 게 없겠는가. 그냥 옷과 구두가 내 관심 밖이기 때문이다.

“로렌에게 필요한 게 그거 같았거든.”

“그거요?”

줄리아의 물음에 나는 어떻게 말해야 할지 잠시 고민했다.

“누군가의 관심 말이야. 너한테 나랑 에스컬레 경이 있는 것처럼, 로렌도 관심을 쏟아 주는 누군가가 주변에 있다고 생각했으면 했어.”

그냥 로렌이 안쓰러웠다. 가족도 없고, 후견인은 그녀를 이용하려 한다는 게.

그녀를 이용하지 않고 그냥 도와주는 사람도 세상에 있다는 걸 알려 주고 싶었다. 그게 내 괜찮은 드레스 한 벌을 포기해야 하는 거라면, 아주 값싼 게 아닐까.

“잠깐.”

문득 엘리엇이 생각났다. 정확히는 그가 준 인장 반지가.

그는 우리가 서로를 잘 알지도 못했을 때 내게 인장 반지를 줬다. 그리고 내가 내 편이 아무도 없다는 생각이 들 때, 외롭고 고독할 때 그걸 떠올려 달라고 했다.

뭐지?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뭐가 잠깐이에요?”

줄리아가 왜 그러냐는 듯 물었기 때문에 나는 인상을 쓴 채 고개를 들었다. 잊고 있었다. 엘리엇이 그런 이상한 짓을 했다는 걸.

나는 줄리아에게 엘리엇이 내게 인장 반지를 줬다고 이야기하려다 입을 다물었다.

“아가씨, 도착했습니다.”

어느새 마차는 큰 건물이 있는 거리에 도착해 있었다. 어, 여긴가? 나는 주택으로 보이지 않는 건물을 확인하고 마부에게 주소가 맞는지 다시 한번 확인했다.

“네. 여기가 맞습니다. 아가씨께서 말씀하신 주소는 여기 삼 층인 것 같은데요.”

“삼 층?”

건물 전부가 아니라 삼 층이라고? 내가 어리둥절해하자 마부가 설명했다.

“이런 집은 한 층이 한 집이더군요. 아마 아가씨께서 찾아온 사람은 이 건물의 삼 층에 살고 있는 모양입니다.”

그렇게도 사는구나. 좀 신기했다. 그러고 보니 레이첼은 좁은 건물의 방 하나에 살고 있었지.

나는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마구간은 어디 있는 거죠?”

다른 집에 방문할 때면 마차는 그 집 뒷마당에 둔다. 혹시 장소가 여의치 않다면 마차는 돌려보내기도 하고.

여긴 뒷마당도 없고, 그냥 건물만 덜렁 있었다. 주변에 있는 다른 건물도 크게 다르지 않았고. 그렇다면 마구간은 어디 있는 거지?

마부는 내 질문에 뒷머리를 긁으며 말했다.

“돌아갔다가 다시 와야 할 것 같은데요. 아니면 이 근방을 돌고 있겠습니다.”

마구간이 없나 보다. 나는 품에서 동전을 꺼내 마부에게 건네며 말했다.

“차 한 잔 마시고 와요.”

시간이 그렇게 오래 걸릴 것 같지는 않다. 작가를 만나서 뭔가 대단한 이야기를 하려는 것도 아니고.

줄리아는 내가 준 동전을 받고 신나서 떠나는 마부를 보고 말했다.

“저 돈으로 맥주 마시러 갈 거라는 거 알죠?”

“내가 술을 마시라고 할 순 없잖아.”

많은 마부가 근무 중에 맥주를 마신다고 들었다. 한두 잔 정도는 눈감아 줄 수 있지만, 너무 많이 마시면 해고할 수밖에 없다.

그걸 마부도 알고 있겠지. 나는 어깨를 으쓱하고 돌아섰다.

“엄청 부자인가 봐요.”

건물 안으로 들어서자 줄리아가 속삭였다. 이런 건물을 플랫이라고 부르던가. 나는 관리자에게 내 명함을 건네고 삼 층으로 가고 싶다고 말했다.

“왜?”

내 명함을 받은 관리자는 재빨리 우리를 이상하게 생긴 문 쪽으로 안내했다. 줄리아는 우리 앞에 있는 문을 가리키며 말했다.

“엘리베이터가 있어요.”

“이게?”

요즘 짓는 새 건물에는 엘리베이터라는 걸 설치한다는 기사를 읽은 적이 있다. 계단이 아니라 위아래로 긴 통로를 뚫어서 탑승한 사람을 원하는 층에 내려 준다고 했다.

퉁 하는 작지만 묵직한 소리에 흠칫 놀라서 쳐다보니 어느새 관리자가 문을 열고 있었다. 그가 나무문을 열자 다시 철창살로 된 문이 보였다. 관리자가 철창살 문까지 열고 나서야 나는 사람이 세 명쯤 타면 꽉 찰 것 같은 공간을 확인했다.

“이걸 타는 거야?”

“네. 안전합니다.”

줄리아에게 한 질문이었는데 관리자는 자신에게 한 질문이라고 생각한 모양이다. 거기에 안전하다고 덧붙이자 오히려 더 불안하게 느껴졌다.

나는 줄리아를 쳐다봤고 그녀는 괜찮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야. 내가 조심스럽게 엘리베이터 안으로 들어가자 관리자가 말했다.

“도착하면 그 손잡이를 잡아당기시면 됩니다.”

뭘 어쩌라고? 허둥지둥 손잡이를 찾는 사이 철창살이 닫혔다.

“진짜 안전한 거지?”

그가 나무문까지 닫고 나자 나는 줄리아에게 속삭였다. 어머니가 보셨다면 어떻게 그렇게 겁도 없이 탈 수 있냐고 기절하셨을 거다.

“몇 번 타 봤어요.”

줄리아가 대답하자마자 엘리베이터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맙소사. 엘리베이터 자체가 위로 붕 뜨는 감각에 나는 비명을 지르지 않기 위해 줄리아의 손을 움켜잡아야 했다.

옆에서 줄리아가 재미있다는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는 게 보였다. 어휴, 내가 한 오십 살은 먹은 것 같다.

다시 퉁 하는 묵직한 소리와 함께 엘리베이터가 멈췄다.

손잡이. 손잡이를 잡아당기라고 했다. 나는 관리자의 말을 떠올리며 철창살 문을 열었다. 곧이어 줄리아가 나무문까지 열자 눈앞에 작은 홀이 보였다.

“이럴 거면 그냥 걸어 올라오는 편이 낫지 않을까 싶어요.”

엘리베이터에서 내린 줄리아가 어이없다는 듯 말했다. 확실히 속도가 느려서 걸어 올라오는 것보다 더 느린 것 같긴 하다.

하지만 이 신기술이 필요한 이유는 따로 있다. 나는 기사에서 읽은 것을 떠올리며 말했다.

“다리가 불편한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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