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60화 (56/239)

60화. 13 – 6

야, 이 자식아. 하마터면 욕이 튀어나올 뻔했다. 사과하라고. 엘리엇의 허리를 툭 쳤지만, 그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어닝 역시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엘리엇을 쳐다보다가 내게 물었다.

“지금 저게 사과야?”

그걸 왜 나한테 물어보니? 너네 둘이 싸워 놓고. 아니, 어닝이 일방적으로 맞았지, 참.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엘리엇에게 물었다.

“끝이에요?”

“이 정도면 충분한 사과가 된 것 같은데요.”

맙소사다, 정말. 나는 다시 한숨을 내쉬었다.

“유제니!”

어닝이 억울하다는 듯 내게 눈을 부라렸다. 어딜 눈을 부라려? 내가 한마디 하려는 순간, 엘리엇이 말했다.

“네 집안이 그렇게 가르치던가? 레이디에게 그따위로 굴라고?”

사과하라니까 또 싸울 것 같다. 나는 재빨리 엘리엇의 팔을 잡아당겼다. 그리고 단호하게 말했다.

“둘 다 그만 가는 게 좋겠어.”

“난 사과 못 받았거든?”

“사과로 때려 줄 수는 있지.”

엘리엇의 말에 겁을 집어먹었는지 어닝은 재빨리 떠나 버렸다. 아, 진짜.

나는 어쩌다 이렇게 됐는지 몰라서 한숨을 내쉬었다. 이러다 땅 꺼지는 거 아닌지 몰라.

“괜찮습니까?”

둘만 남자 엘리엇이 물었다. 나는 그를 올려다보다가 말했다.

“난 분명 둘 다 가 달라고 했는데요.”

어닝도 쫓아내고 싶지만 엘리엇도 달갑지는 않다. 하지만 엘리엇은 날 무시하고 어닝을 때린 것처럼 내 말을 무시한 채 나를 빤히 쳐다봤다.

그리고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때리는 것까지는 괜찮은가 보군.”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나는 인상을 쓰며 말했다.

“당연히 안 되죠. 어닝에게 사과하라고 했잖아요.”

엘리엇은 이제 무표정에 가까운 얼굴로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그는 나를 물끄러미 쳐다보다가 말했다.

“한 대만 때린 게 충분한 사과인 것 같은데요.”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는 거야. 다시 목구멍까지 욕이 치밀어 올랐지만, 그가 화를 낸 이유가 나 때문이라는 것을 떠올리고 참았다.

그래, 솔직히 말하면 고맙다. 하지만 동시에 고맙지 않았다.

나는 비스컨 가문의 아가씨로, 레이디 비스컨으로 자랐다. 어닝 정도는 내가 상대할 수 있다. 그는 아무리 난폭하게 굴어도 감히 내게 손을 대지 못한다. 또한, 나는 그에게 사과를 받아 내고야 말 것이다.

나와 상관없는 사람의 도움을 받지 않고 내 힘으로.

엘리엇의 도움은 고마우나, 그는 내 독립심과 내 권한을 침범했다. 그건 내게 어닝의 난폭한 행동만큼이나 무례한 행위였다.

나는 엘리엇에게서 한 걸음 물러나며 말했다.

“고맙다는 말을 기대하는 거라면 그러지 않는 편이 좋을 거예요.”

엘리엇은 입을 열었지만, 곧 다물고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다시 입을 열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당신이 나를 미워하지 않는 것만으로 충분합니다.”

“당신을 미워할 리는 없죠.”

어쨌든 엘리엇은 나를 위해 나서 줬다. 그게 선을 넘는 행위였다 해도 나를 생각해 준 마음은 고맙다.

나는 잠시 망설이다가 말을 이었다.

“날 걱정해 준 건 고마워요. 하지만 어닝은 내 약혼자고 여긴 우리 집이에요. 그러니 다시는 나서지 말아 줘요.”

필요하다면 우리 집 하인을 부르면 된다. 손님이 아니라.

이건 집안일이다. 어닝은 나와 약혼한, 내 배우자가 될 사람이고. 그러니 그가 내게 무례하고 거칠게 구는 건 집 안에서 해결해야 할 일이다.

여기에 집 밖의 사람이 끼어들어서는 안 된다.

내 부탁에 엘리엇의 얼굴이 굳었다.

“그건 안 되겠습니다.”

엘리엇은 그렇게 말하더니 그제야 깨달은 것처럼 내 손을 잡았다. 어, 뭐야. 나는 깜짝 놀라서 내 손을 빼려 했다. 집 안이라 장갑을 안 꼈다.

게다가 엘리엇도 장갑을 끼지 않고 있었다. 이것도 예의에 어긋난다. 하지만 그걸 지적하기 전에 엘리엇이 내 손바닥을 펼치더니 이를 갈며 말했다.

“걸어 나가게 해서는 안 됐는데.”

오싹한 말에 나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이 남자가 정말로 어닝을 죽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그의 손에서 내 손을 빼려 하며 말했다.

“엘리엇, 내가 어닝과 약혼한 거 알죠?”

당연히 그는 알고 있다. 그가 안다는 걸 나도 안다. 이건 알려 주는 게 아니라 경고였다. 어닝을 죽이지 말라는. 그리고 내게는 약혼자가 있으니 선을 넘지 말라는, 두 가지 의미가 포함된 경고였다.

안타깝게도 엘리엇은 전혀 알아듣지 못한 모양이었다. 아니면 의도적으로 무시하고 있거나.

그는 허리를 숙여 내 손바닥에 조심스럽게 입을 맞췄다. 엄마야. 놀라서 얼어붙어 있는 사이, 엘리엇이 품에서 손수건을 꺼내 내 손바닥을 감쌌다.

그리고 내 얼굴을 들여다보며 말했다.

“의사를 부르는 게 좋겠습니다.”

그냥 꽃 가시에 긁힌 것뿐이다. 이 정도로 의사를 부를 필요는 없다. 나는 그것보다 더 중요한 대화를 하고 있었다는 것을 상기시키기 위해 인상을 쓰며 말했다.

“지금 이러는 거, 불편해요.”

엘리엇은 내 손바닥에 꼼꼼하게 손수건을 감아 준 다음에야 내 손을 놓아주었다. 그리고 고개를 기울이며 웃었다.

짜증 나게 잘생겼네.

고개를 옆으로 기울이는 것조차도 잘생겼다. 순간 화가 났다는 사실을 잊어버릴 정도로. 하지만 일순간이라도 내가 얼굴에 넘어간다는 걸 깨닫자 다시 짜증이 난다.

“당신이 약혼해서요?”

다행히 귀가 막힌 건 아닌 모양이다. 나는 대답 대신 그를 노려봤고 엘리엇은 다시 씩 웃었다.

웃기니? 나 화난 거 안 보여?

다음 순간, 엘리엇이 그림 속에서 막 빠져나온 듯한 외모로 말했다.

“약혼이 꼭 결혼으로 이어지지는 않지요.”

나 지금 꿈꾸고 있는 거 아니지? 문득, 내가 아직 침대에 누워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역시 이건 꿈이어야 한다. 아침부터 남자 둘이 우리 집에 줄줄이 찾아와서 이런 이상한 짓을 하고 갈 리가 없다.

나는 뭐라고 해야 할지 몰라 입을 뻐끔거리다가 가까스로 말했다.

“맞아요. 하지만 중요한 건, 지금 내가 약혼한 상태라는 거예요.”

솔직히 말하면 나도 어닝과의 결혼이 회의적으로 느껴지기 시작했다. 요즘 그는 너무 이상하게 굴고 있다. 필요 이상으로 공격적이고 뭔가를 숨기는 것처럼 보인다.

전에 내가 골목에 들어가는 걸 본 것과 관계가 있을까. 나는 친구와 다정하게 골목 안쪽으로 걸어가던 어닝을 떠올렸다.

하지만 파혼하기 전까지 나는 어닝과 약혼한 사이다. 엘리엇과 장갑도 끼지 않은 맨손을 겹치고 있는 건, 옳지 않다.

“당신에게 그게 중요하다는 걸 압니다.”

엘리엇은 그렇게 말하고 눈을 감았다. 그의 상처 입은 듯한 표정을 보고 있자니 마치 내가 나쁜 사람이 된 것 같다.

다행히 금세 엘리엇이 눈을 떴다. 그의 푸른 눈동자가 눈꺼풀 뒤에서 나타나는 모습은 퍽 이상한 기분이 들게 했다.

그는 나를 물끄러미 쳐다보다가 마치 참았던 말을 내뱉듯 말했다.

“유제니, 내 모든 것을 걸고 맹세하건대 당신은 그 개, 아니, 그자와 결혼하지 않을 겁니다.”

지금 이 남자가 내 약혼자를 욕하려 한 건가? 나는 그가 감히 내 앞에서 욕을 할 뻔한 것을 지적하려다 그게 중요한 게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뭘 어쩐다고? 아니, 그가 아니고 나 말이다. 내가 어닝과 결혼하지 않을 거라고?

제일 먼저 느껴진 건 거부감이었다. 방금 전에 어닝과 파혼을 생각했음에도 나는 엘리엇의 입에서 나온 말에 거부감을 느꼈다.

네가 뭔데?

내가 어닝과 파혼하는 건 내 의지로, 내가 원해서 그리하는 거다. 감히 내 가족도 아닌 자가 내게 파혼하라 말아라 해서는 안 된다.

나는 반사적으로 말했다.

“감히.”

엘리엇은 내 분노가 기분 좋은 듯한 표정이었다. 그는 활짝 웃었다. 그게 더 내 분노를 부채질했다.

나는 반사적으로 그에게서 한 걸음 물러났다. 마음 같아서는 뺨이라도 때리고 싶지만 그러지 않는 건 그가 나를 걱정한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레이디 비스컨.”

엘리엇은 나를 정중하게 부르며 바닥에 한쪽 무릎을 꿇고 앉았다. 그렇게 했음에도 나는 그를 많이 내려다보지 않았다.

“왜인지 물어보시죠.”

높이가 달라진 덕에 위압적으로 느껴지던 게 조금 옅어졌다. 나는 엘리엇의 잘생긴 얼굴을 물끄러미 쳐다봤다.

미친 거지.

엘리엇이 아니라 내가 미친 거다. 당장 여기서 벗어나야 한다. 방금 내 약혼자를 때리고, 걸어 나가지 못하게 해야 했다고 후회하는 남자와 단둘이 있지 말아야 한다.

그가 장갑도 끼지 않은 손으로 마찬가지로 장갑을 끼지 않은 내 손을 잡게 해서는 안 됐다.

하지만 나는 묻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이 빌어먹을 호기심 때문에.

“어째서요, 번즈 백작?”

나는 불에 이끌리는 부나방처럼 물었다. 엘리엇은 내가 잘못 듣지 못하게 하려는 것처럼 단어 하나하나를 또박또박 발음했다.

“왜냐면, 레이디 비스컨. 당신은 나를 사랑하게 될 테니까요.”

뭐라고? 이 잘생긴 난봉꾼의 말에 나는 너무 놀라서 그대로 얼어붙어 버렸다. 어찌나 놀랐던지 그가 무례한 소리를 했다고 지적해야 한다는 건 물론, 무례한 자에게 으레 하듯이 재빨리 물러나야 한다는 것도 잊었을 뿐이다.

엘리엇은 마치 자신의 말에 매우 만족한 듯 미소를 지으며 몸을 일으켰다. 그는 똑바로 서서 나를 내려다보았다. 그리고 다시 한번 말했다.

“그래요, 유제니. 당신은 나를 사랑하게 될 겁니다.”

덕분에 나는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맙소사.

나는 그에게서 재빨리 물러났다. 그리고 어떻게 그런 무례한 소리를 할 수 있냐는 표정을 짓는 데까지 성공했다. 그러나 그에게 감히 그런 말을 한다고 꾸짖을 기회는 놓쳐 버리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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