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57화 (53/239)

57화. 13 – 3

음, 그것도 어느 정도는 이해가 된다. 엘리엇은 워낙 커서 처음 보는 사람은 좀 무섭게 느껴진다.

나도 그를 처음 봤을 때 좀 무섭다고 생각했다. 엘리엇을 잘 모르면 여전히 무섭다고 느낄 수도 있겠지. 하지만 그의 부하들도 무서워할 줄은 몰랐는데.

“하지만 성격은 다정하잖아요.”

내 말에 이번에는 로지도 이상한 표정을 지었다. 나는 데이빗을 쳐다보고 그가 로지와 똑같은 표정을 짓고 있는 것을 확인했다.

오히려 앤이 내 말에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지금 번즈 대장 이야기하시는 거 맞, 큽.”

데이빗이 말하는데 로지가 그의 옆구리를 쿡 찌르더니 말했다.

“어, 음, 뭐, 어떤 분들은 그렇게 느낄 수도 있겠죠.”

어쩌면 두 사람은 엘리엇의 부하라 그런 건지도 모른다. 상사와 부하 관계라면 부하 입장에서는 어려울 수밖에 없겠지.

나는 사람 좋다고 소문난 귀족이 자기 집 하인들에게는 가혹한 것에 가깝게 행동하더란 이야기를 떠올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문득, 마차의 속도가 느려지는 게 느껴졌다. 거의 다 온 모양인데. 나는 창문 밖을 한 번 쳐다본 뒤 로지에게 물었다.

“번즈 백작님은 바쁘신가 봐요?”

“어, 네. 그분은 좀 바쁘시죠.”

로지는 그렇게 말하며 자신의 말에 동의해 달라는 듯 데이빗을 쳐다봤다. 바쁘겠지. 귀족이 된 지 얼마 안 됐으니 만나야 할 사람도 많고, 처리해야 할 일도 많을 것이다.

“두 분도 백작님과 다아리브혼의 둥지에 같이 들어갔나요?”

그때, 앤이 물었다. 그게 궁금했던 모양이다. 나도 궁금했기 때문에 나는 말없이 두 사람을 쳐다봤다. 그러자 로지가 씩 웃으며 자랑스럽게 말했다.

“그렇죠. 사실, 이제 와서니까 하는 말인데 드래곤의 둥지로 간다길래 이게 무슨 소린가 했습니다.”

“그래도 넌 둥지를 찾으러 갈 사람 모집할 때 왔잖아. 난 대장이 갑자기 드래곤 보러 간다고 해서 진짜 진지하게 고민했다.”

엘리엇을 떠나야 할지 고민했다는 데이빗의 말에 나는 웃음을 터트렸다. 하지만 농담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 로지에게 물었다.

“그럼, 다아리브혼의 둥지가 어디 있는지 같이 찾은 게 아니에요?”

로지가 그만큼 늦게 합류했냐는 질문이었는데 대답은 데이빗에게서 흘러나왔다.

“어, 그렇죠. 어느 날 갑자기, 네. 번즈 대장이 애들 모아 놓고 용 보러 갈 건데 빠질 사람은 빠져도 된다, 뭐 이렇게 말하더군요.”

어라? 이건 좀 놀랍다. 마차가 멈췄지만 나는 나갈 생각도 하지 않고 물었다.

“그럼 그동안 다아리브혼의 둥지는 누가 찾았어요? 설마 번즈 백작님이 혼자 찾은 거예요?”

“어, 그건 저희도 모릅니다.”

“우리끼리도 대체 어떻게 안 거냐고 이야기가 나왔거든요. 예전에 어디선가 들었던 게 아닐까요?”

어, 그럼 엘리엇이 다아리브혼의 둥지를 어떻게 찾았는지는 이들도 모르는 거네? 대체 어떻게 알게 된 걸까. 신기하다고 생각하는데 앤이 물었다.

“드래곤의 둥지는 어때요? 진짜 보석이 산처럼 쌓여 있던가요? 정말 드래곤하고 싸웠어요?”

“드래곤과 싸우진 않았습니다. 드래곤의 부하와는 싸웠지만요.”

“부하?”

드래곤에게 부하가 있나? 내가 어리둥절해서 묻자 로지가 대답했다.

“정확히 말하면 부하는 아니에요. 드래곤의 둥지 근처에는 몬스터가 많거든요.”

그 이야기는 들은 적이 있다. 드래곤은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고 그 강력한 힘은 어떤 종족에게는 헤어날 수 없는 매력으로 느껴진다고.

그래서 드래곤이 사는 곳은 몬스터가 상상할 수 있는 것보다 더 많다고 했다. 그게 드래곤의 둥지를 들어가기 더 어려운 이유기도 했고.

“하지만 드래곤은 본 거죠? 다아리브혼은 어떻게 생겼어요? 붉은 비늘을 가졌다고도 하고 황금 비늘을 가졌다고도 하던데요.”

다시 앤이 물었다. 데이빗은 약간 과장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드래곤만 봤겠습니까? 엄청난 것도 봤죠. 세상에, 어느 멍청한 귀족이 드래곤의 알을….”

그 순간, 로지가 데이빗을 툭 쳤다. 누가 봐도 데이빗의 말을 막는 행동이었다.

“벌써 도착했네요. 제가 부축해 드리겠습니다.”

갑작스럽게 이야기를 끊은 로지는 재빨리 주제를 돌리며 몸을 일으켰다. 무슨 이야기일까. 나는 데이빗이 하다 만 이야기를 머릿속에 떠올리며 로지의 손을 잡았다.

‘어느 멍청한 귀족이 드래곤 알을’이라고 했다. 드래곤 알을 찾았다는 걸까? 드래곤의 알을 찾았다는 건 드래곤이 알을 낳았다는 말이다.

“세상에, 레이디 비스컨.”

내가 마차에서 내리는 것과 동시에 레이첼이 건물에서 뛰어나왔다.

그녀가 나온 건물은 원래 레이첼이 살았다던 화재가 난 건물과 비슷했다. 문이 건물 한가운데에 난 게 아니라 한쪽 옆에 나 있고 창문이 작고 많았다.

그리고 그 창문마다 여자들이 고개를 내민 채 우리를 구경하고 있었고.

“도와주셔서 정말 감사해요.”

“네?”

난 한 일이 없는데. 그게 무슨 소리냐고 물어보려는데 레이첼이 다시 말했다.

“저분들이요. 레이디 비스컨이 보내 주셨다면서요? 덕분에 살았어요.”

로지와 데이빗을 말하는 모양이다. 정확히 말하면 두 사람을 보낸 건 엘리엇이다. 내가 엘리엇에게 부탁한 거고.

나는 솔직하게 말했다.

“실력 있는 사람을 보내 준 사람은 번즈 백작이에요. 그러니 감사를 받아야 할 쪽도 그 사람이죠.”

레이첼의 얼굴에 미소가 떠올랐다. 그녀는 마치 비밀 이야기라도 하듯 내게 몸을 숙이고 속삭였다.

“백작님께도 감사하다고 했어요. 그런데 그분이 자신은 레이디 비스컨의 부탁이 아니었으면 안 움직였을 거라고 하시더라고요.”

엘리엇이 그렇게 말했다고? 나는 놀라야 할지, 엘리엇에게 고마워해야 할지 몰라 입을 다물었다. 레이첼은 그런 내 태도를 오해했는지 웃으며 말했다.

“아가씨를 아주 많이 생각해 주시는 것 같아요.”

레이첼은 마치 엘리엇이 내 연인이라도 되는 것처럼 말했다. 나는 그녀의 오해를 풀어 주기 위해 재빨리 입을 열었다.

“그냥 유제니라고 불러요. 그리고 번즈 백작은 친절한 사람이에요.”

그러자 레이첼의 눈이 동그래졌다. 그녀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망설이는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다가 물었다.

“그, 그래도 될까요?”

“그럼요. 안 될 게 있나요? 그리고 여기.”

레이디 비스컨이라는 호칭은 나와 그리 친하지 않은 사람들이 부르는 호칭이다. 그리고 나는 레이첼과 친해지고 싶었다.

그녀가 쓴 원고가 아주 마음에 들었거든.

내가 품에서 원고 뭉치를 꺼내 내밀자 레이첼의 눈이 다시 커졌다. 그녀는 자신의 원고를 받아 들며 말했다.

“무사했군요!”

“침대 밑에서 찾았다고 하던데요.”

“맞아요. 누가 찾은 거예요?”

엘리엇이다. 나는 그가 친절한 사람이라는 내 말에 힘이 실린 게 기뻐서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번즈 백작이요. 소중한 걸 찾아다 준다고 했다던데요.”

“그래요?”

레이첼은 놀란 표정이었다. 왜 놀란 거지? 엘리엇에게 부탁한 게 아니었나?

“어머, 내 정신 좀 봐.”

하지만 왜 놀라냐고 묻기 전에 레이첼이 재빨리 우리를 건물 안쪽으로 안내했다. 어느새 우리를 구경하던 사람들은 안으로 들어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나는 레이첼을 따라 그녀가 안내하는 대로 높고 좁은 계단을 따라 올라갔다. 여기, 꽤 높네.

“여기 앉으세요.”

드디어 계단을 올라 긴 복도에 난 많은 문 중 하나로 들어가자 레이첼이 말했다. 아무래도 노동자 계급이 사는 집은 다 이런 구조인 모양이다.

좁고 높은 계단, 긴 복도에 난 여러 개의 문. 그 문 하나하나가 집인 거고.

그래도 이 집은 불이 난 레이첼의 원래 집보다 좀 컸다. 심지어 침실도 따로 있었고.

나는 레이첼이 권하는 대로 식탁 의자에 앉았다. 여기도 책상이 있네. 작지만 책상이 있었다. 그것도 유일하게 햇빛이 들어오는 창문 앞에.

“두 분도 앉으세요.”

“전 괜찮습니다.”

로지는 그렇게 말하고 문 앞에 섰다. 데이빗은 안 들어온 모양이다. 어쩌면 아예 안 올라왔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끔 영지에 내려갈 때 경호를 위해 용병을 고용하는데 그때 용병들도 저랬다. 꼭 한두 명은 약간 떨어진 데서 보초를 섰지.

“죄송해요. 대접할 만한 게 없네요.”

앤이 의자에 앉는 사이, 레이첼이 찬장을 뒤지며 사과했다. 있을 리가 없지. 나는 재빨리 말했다.

“괜찮아요. 그렇지 않아도 화재로 고생하시는데 뭘 얻어먹으려고 온 게 아니에요.”

그냥 원고를 돌려주려고 온 거다. 그리고 괜찮은지도 묻고 싶었다.

하지만 레이첼의 마음은 그렇지 않았는지 그녀는 기어이 컵을 꺼내 뜨거운 물에 뭔가를 담가서 가져왔다. 이게 뭘까. 궁금했지만 인사가 먼저다.

“잘 마실게요. 고마워요.”

꽃인가? 나는 차를 한 모금 마신 뒤 컵 안을 가만히 들여다보았다. 뭔가 말린 것 같다. 그리고 고개를 들자 앤과 레이첼이 내 눈치를 보고 있었다.

이런.

“맛있네요.”

둘 다, 차가 내 입맛에 맞을지 걱정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하지만 난 입맛이 예민한 사람이 아니다. 어지간한 건 다 잘 먹는 편이고.

내 인사에 레이첼이 미소를 지었다. 나는 앤이 차를 홀짝이는 것을 보고 레이첼에게 물었다.

“그 원고 말인데요. 당신이 쓴 거, 맞죠?”

그걸 레이첼이 쓴 게 아니라고 한다면, 그게 더 놀라울 것 같다. 아니나 다를까, 레이첼은 얼굴을 붉히며 물었다.

“봐, 봤어요?”

“미안해요. 허락도 없이 봐서.”

“아니, 괜찮아요.”

재미있었다. 나는 그렇게 말하려다가 망설였다. 재미있었다고 말해도 될까.

다행히 내 고민을 종식해 주듯 레이첼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어, 어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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