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55화 (51/239)

55화. 13 – 1

“조정 경기?”

“응. 초대받은 사람도 배를 가져갈 수 있어?”

번즈 백작과 만나고 온 다음 날, 나는 오랜만에 얼굴을 비친 올리버에게 조정 경기에 관해 물었다. 조정 경기 겸 물놀이라 꽤 크게 열린다. 국왕 전하도 관람하러 오실 수 있다고 해서 선수들은 다들 맹연습 중이라고 들었다.

그 말은, 올리버를 집 안에서 보는 일이 줄어들었다는 뜻이고.

“초대받은 사람? 누구 초대하게? 렌시드 가에는 배가 없을 텐데?”

올리버의 질문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렌시드 자작가가 부유하긴 하지만 배는 없다. 자작 부부가 물놀이에 관심이 없다고 들었다.

렌시드 자작가도 배를 소유하는 게 부담스러운 게 아닐까 하고 생각했는데 그건 아니라고 했다. 어머니와 올리버 둘 다 한 말이니 확실하겠지.

“번즈 백작을 초대하게.”

“번즈 백작? 그가 조정에 관심이 있는 줄은 몰랐는데.”

관심이 있다고 하면 당장 조정 클럽에 가입시킬 기세다. 그렇게 재미있을까. 나는 엘리엇에게 시간을 주기 위해 재빨리 말했다.

“아니, 조정이 아니라 물놀이가 궁금한가 봐. 초대받을 수 있냐고 묻더라고.”

“번즈 백작이면 당연히 초대해야지.”

다행히 올리버도 나와 같은 생각인 모양이다. 나는 흔쾌히 엘리엇을 초대해야 한다는 오라버니의 말에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초대했지. 그런데 자기도 배를 가져갈 수 있냐고 묻더라고.”

“어, 뭐, 될걸? 되겠지만….”

가능한가 보다. 그런데 올리버의 반응이 이상했다. 그는 뭔가를 생각하는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하고 있었다.

“되는데 왜? 자격이 필요해?”

“귀족이어야 하지만, 그건 이미 가지고 있으니 상관없지. 문제는 그 배 말인데.”

배가 왜? 내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자 올리버가 말했다.

“번즈 백작에게 배가 있다는 말은 못 들었거든.”

그건 나도 못 들었다. 마차랑 비슷한 거 아닌가? 있으면 좋지만, 꼭 있는지 없는지를 소문내야 할 건 아니잖아?

하지만 올리버의 말은 달랐다. 그는 엘리엇에게 배가 있다는 말을 못 들은 게 뭐가 중요하냐는 내 질문에 혀를 차며 말했다.

“관람용 배면 꽤 클 텐데? 당연히 소문이 나야지.”

그건 그러네. 나는 고개를 갸웃했다. 엘리엇이 배를 잘못 생각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솔직히 상관없긴 하다.

큰 배가 없는 사람 중에는 작은 배를 띄우고 거기서 가까운 사람 몇 명만 앉아 물놀이를 하기도 하니까. 하지만 올리버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말했다.

“작은 배면 난 괜찮다고 전해 줘.”

배를 가진 친구가 있어서 그쪽으로 타겠단다. 나는 어깨를 으쓱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제 슬슬 편지를 써야겠다. 요즘 편지가 늘어서 답장을 하는 데 시간이 좀 많이 걸렸다.

“아가씨.”

막 서재로 들어가려는데 집사가 급한 표정으로 나를 불렀다. 뭐지? 나는 문손잡이를 잡은 채 그를 돌아보았다.

“저그만 양의 집에 화재가 났답니다. 알아두셔야 할 것 같아서요.”

저그만 양? 머릿속에 곧바로 그게 누군지 생각나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금세 레이첼을 떠올렸다. 레이첼 저그만!

나는 깜짝 놀라서 집사에게 다가가며 물었다.

“화재라고요?”

내가 덤빌 것처럼 굴었나 보다. 놀라서 한 걸음 뒤로 물러난 빅스는 표정을 관리하고 말했다.

“금방 발견해서 다친 사람은 없답니다.”

그 말은 레이첼이 무사하다는 말이다. 그리고 레이첼을 보호해 주던 사람도.

잠깐, 엘리엇이 레이첼에게 사람을 보냈나? 내가 요청한 게 어제였으니 빠르면 보냈을 거고, 늦었으면 아직 안 보냈을 거다.

나는 확실히 하기 위해 집사에게 물었다.

“레이첼을 경호하는 사람은요? 같이 있대요?”

그것까지는 몰랐는지 빅스의 얼굴에 곤란한 표정이 떠올랐다. 그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데이지가 나갔다가 소식을 들은 모양입니다. 좀 더 자세히 알아볼까요?”

누가 알려 준 게 아니라 우연히 밖에 나갔던 사람이 화재 소식을 들었다는 말이다. 화재가 난 사람의 이름을 들은 집사가 내게 전해 준 거고.

나는 그에게 고맙다고 인사한 뒤 외출 준비를 부탁했다. 화재가 났다니, 가 봐야겠다.

누군가가 자신의 목숨을 노린다던 레이첼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리고 걱정하지 말라던 엘리엇의 얼굴도.

“세상에.”

나와 함께 레이첼의 집으로 향한 앤의 입에서 신음이 흘러나왔다. 금방 발견했다는 것 치고는 화재 현장은 끔찍했다. 창문 하나가 검게 그을려 있었다.

나는 금방 발견해서 다친 사람은 없다던 빅스의 말을 떠올리며 마음을 다잡았다. 다친 사람은 없다고 했다.

“여기 사는 사람, 어떻게 됐는지 아세요?”

내가 멍하니 서 있는 사이, 앤이 주변에 있는 사람들에게 다가가 레이첼의 안부를 확인하기 시작했다. 인상이 험악한 남자와 여자가 앤을 보는 둥 마는 둥 하며 말했다.

“내가 어떻게 알아.”

남자의 말에 앤이 겁을 먹었는지 뒤로 물러났다. 나는 그녀의 곁으로 다가가며 물었다.

“두 분, 여기 살아요?”

남자와 여자의 시선이 나를 향했다. 둘 다 나를 한 번 훑어보더니 무시했다.

오, 이런 무시는 오랜만인데. 적어도 내가 성인이 된 뒤로는 받아 본 적이 없다. 나는 그들에게 얻을 수 있는 게 없다고 판단하고 문으로 다가갔다. 레이첼이 안에 없었으면 좋겠는데.

그녀가 무사한지 만나 보고 싶지만 어디로 갔는지 모르겠다. 내가 앤과 함께 건물로 들어가려 하자 입구에서 서성이던 남자와 여자가 나를 막아섰다.

“들어가면 안 됩니다.”

드디어 두 사람은 내 존재를 깨달은 것처럼 말했다. 아니면 이 건물에 들어가는 모든 사람을 막고 있거나. 나는 고개를 옆으로 기울이며 물었다.

“왜요?”

내가 왜라고 물어볼 줄은 몰랐던 모양이다. 두 사람은 당황한 표정으로 서로를 쳐다봤고 곧, 여자가 입을 열었다.

“사고 현장이거든요. 안이 화재로 더러워요.”

“그런데요?”

불이 난 건 들어가 보지 않아도 알 수 있다. 창문이 검게 그을려 있으니까. 사고 현장이라 해도 이들은 치안관이나 소방관이 아니다. 즉, 나를 막을 권리가 없다는 뜻이다.

두 사람은 내가 더럽다는 말에 물러날 거라 생각했던 모양이다. 확실히 아무나 들어오지 못하게 막으라는 명령을 들었는지 그들은 내 앞에 팔을 내밀고 서서 나를 막고 있었다.

“여기 사는 친구를 만나러 왔어요. 좀 비켜 주겠어요?”

나는 다시 한번 말했다. 이 두 사람이 건물 주인이 아닌 이상, 내가 이 건물을 드나드는 걸 막을 수는 없을 것 같은데.

그러자 이번에는 남자가 말했다.

“안 됩니다. 아무도 들어가지 못하게 하라는 명령을 받았습니다.”

“그 명령을 내린 사람이 누군지 매우 궁금하군요.”

수사관의 지시라면 따르겠지만 수사관일 리가 없다. 수사관이 그런 지시를 내렸다면 지시를 수행하는 사람들은 용병처럼 생긴 남녀가 아니라 제복을 입은 치안관들이었겠지.

잠깐. 용병?

나를 막는 두 사람이 용병처럼 생겼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였다. 남자가 팔로 막고 있던 문이 벌컥 열리면서 익숙한 얼굴이 나왔다.

“유제니? 여기는 어떻게….”

나를 본 엘리엇이 깜짝 놀라 내게 다가오며 물었다. 그건 내가 할 말인데. 나는 엘리엇이 내게 알은척하자 재빨리 물러나는 남자와 여자를 한 번 쳐다보고 물었다.

“아무도 들어오지 못하게 하라는 명령을 내렸다더니, 그게 당신인 모양이군요.”

그제야 엘리엇은 자신의 부하들이 나를 막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은 모양이었다. 그는 부하들에게 나를 소개했다.

두 사람의 이름은 로지와 데이빗. 내 생각대로 용병이었던 모양이다. 왜 용병이었던 모양이라고 하냐면, 엘리엇은 그들을 자신의 부하라고 소개했기 때문이다.

부하라니, 무슨 일을 하는지 매우 궁금했지만 나는 호기심을 접어 두고 레이첼의 행방을 물었다.

“저그만 양이 위에 있나요?”

“아닙니다. 그녀는 제가 따로 준비한 숙소에 안전하게 있으니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그렇다면 다행이다. 그러고 보니 빅스도 다친 사람은 없다고 했지. 다시 시선이 검게 그을린 창문으로 향했다. 저렇게 검게 그을리려면 안도 화재로 엉망이어야 할 것 같은데.

“화재를 빨리 진압했다고 들었는데요.”

“여기 데이빗이 빨리 발견해서 피해는 그리 크지 않습니다. 가구는 대부분 버려야겠지만요.”

“방금 피해는 그리 크지 않다고 했잖아요.”

내 질문에 엘리엇이 나를 건물 안으로 안내했다. 좁은 계단을 따라서 올라가자 긴 복도가 나왔다. 나는 복도를 따라 작은 문이 몇 개나 있는 것을 보고 눈을 동그랗게 떴다.

어느 쪽이 레이첼의 침실이지?

“이쪽입니다.”

다행히 엘리엇이 알았다. 그는 열려 있던 문으로 나를 안내하며 설명했다.

“확실히 화재로 가구가 많이 망가지긴 했습니다. 하지만 중요한 건 피해가 없더군요.”

“중요한 거요?”

“저그만 양이 소중하게 여긴 거 말입니다. 금품과….”

엘리엇은 그렇게 말하며 작은 서랍을 열어 안에 든 약간의 돈과 액세서리를 보여 줬다. 이런 걸 막 보여 줘도 되는 건지 모르겠네.

머릿속에 그런 생각이 들었지만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엘리엇은 친절하게도 사건 처리를 하기 위해 여기까지 와 줬다. 이걸 좀 확인했다고 레이첼도 뭐라고 하진 않겠지.

“그녀의 원고입니다.”

엘리엇은 그렇게 말하며 품에서 종이 뭉치를 꺼냈다. 뭐라고? 나는 깜짝 놀라서 그를 쳐다봤다.

“침대 밑에 있더군요. 덕분에 화재에서 무사했습니다.”

나는 엘리엇의 말을 들으며 원고를 받아 들었다. 받아 들고 싶어서 받은 게 아니었다. 그가 내밀어서, 반사적으로 받았을 뿐이다.

이걸 어쩌라고 날 주는 건지 모르겠네. 얼떨떨한 기분으로 다시 엘리엇을 쳐다보자 그는 어느새 방 한쪽에 놓인 침대로 다가가고 있었다.

이 방, 이제 보니 방이 아니었다.

내 침실보다 작은 방의 한쪽엔 침대가, 한쪽엔 조리 도구가 놓여 있었다. 그리고 화재로 그을린 창문 옆에는 책상으로 보이는 가구가 있었고.

“저거, 책상이에요?”

“조심하세요.”

내가 잿더미로 변한 책상으로 다가가려 하자 엘리엇이 재빨리 내게 다가왔다. 피해가 적다는 이유를 알겠다. 그리고 가구는 전부 망가졌다는 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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