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52화 (48/239)

52화. 12 – 5

뭘 어쩐다고? 예상도 못 한 이야기에 내 얼굴이 이상했던 모양이다. 레이첼이 재빨리 덧붙였다.

“어, 어쩌면 제 착각일 수도 있고요.”

“오, 아뇨. 당신의 말을 의심하는 게 아니에요.”

실수했다. 나는 재빨리 그녀를 위로했다. 나는 레이첼의 말을 의심한 게 아니다. 해치려 한다는 것 자체가 너무 의외였던 거지.

해치려 한다고? 어떻게? 왜? 머릿속에 여러 가지 의문이 떠올랐지만 나는 침착하게 물었다.

“왜 그렇게 생각했어요?”

누군가가 자신을 해치려 하는 것 같다면 그렇게 느낀 이유가 있을 거다. 그게 그냥 느낌이라면 레이첼의 착각이겠지.

하지만 그녀의 대답은 그냥 느낌이 아니었다. 레이첼은 붕대를 감은 자신의 손을 들어 올리며 말했다.

“누군가가 절 공격했어요.”

“강도를 당했다는 말이에요?”

“아뇨.”

레이첼은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강도가 아니라고? 하지만 공격을 당했다며? 내가 무슨 소리냐는 표정을 짓자 그녀가 다시 입을 열었다.

“절 노린 거예요.”

강도도 피해자를 노리지 않나?

하지만 레이첼의 이야기는 좀 달랐다. 그녀를 공격한 남자는 그녀를 공격하기 전에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고 한다. 마치 타겟이 맞는지 확인하는 것처럼.

즉, 특정인을 골랐다는 뜻이다.

나는 놀랍고 끔찍한 이야기에 입을 딱 벌렸다. 그러자 레이첼이 계속해서 말했다.

“그리고 얼마 전에는 누군가가 제 머리 위로 화분을 떨어트렸어요.”

“화분이요?”

길을 걸어가는데 그녀의 앞으로 화분이 떨어졌다고 한다.

“그때까지만 해도 제 착각이라고 생각했어요.”

놀라긴 했지만 좀 운이 나쁘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나도 그랬을 것 같다. 내게 갑자기 불운이 닥친다면, 그냥 운이 나쁘다고 생각하지 누가 날 해치려 한다고 생각하진 않을 것 같거든.

하지만 레이첼의 불운은 너무 잦았고 또 너무 일관적이었다. 그녀의 목숨을 노린다는 점에서.

“누군가가 절 마차 길로 밀었을 때는 좀 이상하더라고요.”

길을 가는데 누군가가 그녀를 마차 길로 밀었다고 한다. 그냥 부딪친 것과는 달랐다. 정신없이 달려오는 마차를 피한 뒤 돌아보자 길이 텅 비어 있었다는 말에 나 역시 입을 딱 벌렸다.

“마차에 부딪히지 않은 건 정말 운이 좋았던 거예요.”

그렇게 말하며 레이첼은 양팔로 자신의 몸을 감싸 안았다. 여름인데도 그녀는 추위를 느끼는 것처럼 보였다.

운이 좋았다. 나는 그렇게 말하려다가 말았다. 자신이 착각한 거라고 여길 거라는 레이첼의 말에 그렇지 않다고 말했음에도 나는 레이첼의 착각이길 바라고 있었다.

그게 낫잖아. 누군가가 그녀를 죽이려 하는 것보다 그냥 그녀의 착각인 게 훨씬 낫다.

“손은, 그때 다친 거예요?”

나는 치밀어 오르는 불안을 누르며 물었다. 이게 그냥 레이첼의 오해였으면 좋겠다. 내 불안은 그냥 그녀의 감정에 동화돼서였으면 좋겠고.

레이첼은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네, 넘어지면서요.”

정말로 누군가가 레이첼을 해치려 하는 거라면 피해가 그 정도라 정말 다행이다. 하지만 나는 아직도 머리 한쪽으로는 그녀가 착각한 것이길 바라고 있었다.

“치안관에게는 가 봤어요?”

내 질문에 레이첼은 어두운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군.

자신이 착각한 거라고 여길 거라는 말은 경험에서 기인했던 거다. 나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뭐라고 하던가요?”

사실, 이건 레이첼의 대답을 듣지 않아도 알 수 있다. 아니나 다를까 레이첼이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제가 너무 예민하게 구는 거래요.”

그렇겠지. 나는 한숨을 내뱉었다.

솔직히 말하면 내가 치안관이라 해도 그렇게 생각할 것 같다. 누군가가 레이첼의 목숨을 노린다니. 나는 다시 물었다.

“누군가가 당신이 다치길 바랄 만한 사람은 없고요?”

“없어요.”

이미 고민했는지 레이첼의 대답은 빠르고 단호했다. 나는 소파 등받이에 몸을 기대고 레이첼을 가만히 쳐다보기 시작했다.

내가 봐도 레이첼이 다치길 바라는 사람은 없을 것 같다. 그러니까 그녀의 외적인 요소가 그렇다는 말이다. 레이첼이 아주 부자라거나 작위가 있다면, 용의자를 골라내기는 쉽다.

나는 이런 이야기를 좀 들었거든. 어느 나이 많은 귀족이 갑자기 사망했는데 작위를 노린 자식이 범인인 경우라거나, 자식이 없는 고모가 사망하면 그 재산이 자신에게 올 것을 노린 범행 같은 것들.

하지만 레이첼은 그런 것들과는 상관없을 것 같다. 혹시나 해서 물었지만 역시나 레이첼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제게 재산이나 작위 같은 게 있었다면 부모님이 돌아가셨을 때 이미 받았을 거예요.”

그렇군.

괜한 질문을 했다는 생각에 마음이 불편해졌다. 그녀가 고아인 줄은 몰랐다.

하지만 레이첼은 내 표정을 보고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안다는 듯 손을 저으며 말했다.

“마음 쓰지 마세요. 아주 어릴 때였으니까요.”

그게 더 마음 쓰인다. 나는 미안하다는 표정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물었다.

“내가 어떻게 도와줬으면 하는 거예요?”

그녀의 목숨을 노리는 사람을 찾아달라는 거라면, 그건 어렵다. 레이첼은 누군가가 목숨을 노릴 만한 사람이 아니잖아. 거기서부터 길이 막혀 버린다.

다행히 레이첼이 원하는 건 그런 게 아니었던 모양이다. 그녀는 다시 붕대를 감은 자신의 손을 조심스럽게 쓰다듬기 시작했다.

“치안관에게 다시 한번 조사해 보라고 부탁해 볼까요?”

그런 거라면 할 수 있다. 비스컨 가 정도면 그런 요청은 얼마든지 할 수 있으니까. 물론 치안관들도 나와 비슷한 느낌이겠지만.

누가, 왜 레이첼을 노리는 건지, 진짜 노리는 게 맞는지도 알 수 없는 상황에서 무슨 조사를 할 수 있을까.

그때, 레이첼이 말했다.

“혹시 믿을 수 있는 용병을 소개받을 수 있을까 해서요.”

“용병이요?”

누가 자신을 노리는지 모른다고 하지 않았나? 하지만 나는 곧바로 레이첼이 뭘 원하는 건지 깨달았다. 보호를 받고 싶구나.

“일주일 정도만 믿을 수 있는 사람에게 그, 뭐랄까, 경호라고 할까요? 그런 걸 받아 보고 싶어요. 그런데….”

그런데? 내가 고개를 기울이자 레이첼의 얼굴이 붉게 물들었다. 응? 왜 저러는 거지?

당황하는 순간, 그녀가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제가 가진 돈이 그렇게 많지가 않거든요.”

무슨 말인지 알겠다. 내게 찾아오기 전에 먼저 용병 길드를 찾아가 봤겠지. 거기서 어마어마한 금액을 불렀을 거고.

원래 경호는 비싸다. 아니, 용병의 몸값 자체가 비싸다. 특히나 실력과 신원이 확실한 사람이라면 더더욱.

“호, 혹시, 레이디께서 아는 분이 있다면….”

조금이라도 저렴하게 고용할 수 있는지 소개해 달라는 말이다. 가능한가? 나는 잠시 생각했다.

에스컬레 경에게 부탁해서 기사단의 기사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방법도 있긴 하다. 기사라면 실력도, 신원도 확실하겠지.

하지만 레이첼은 귀족이 아니니 기사가 거절할 가능성이 컸다. 좀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기사도 귀족 집안이라 레이첼처럼 귀족도, 귀족 집안도 아닌 사람을 경호하는 걸 달가워하진 않거든.

“아.”

그때, 딱 한 명. 내가 믿을 수 있는 사람의 얼굴이 떠올랐다. 번즈 백작. 그와 함께 성의 무도회장에 나타났던 사람 중에 부탁할 만한 사람이 있을지도 모른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알아볼게요.”

* * *

“주인님, 손님이 찾아왔습니다.”

회의를 하고 있던 엘리엇은 집사의 말에 미간에 주름을 만들었다. 오늘 찾아올 사람은 없다. 그는 귀족 사회에서는 아주 가까운 사이가 아닌 한, 방문 전에 반드시 방문 허락을 구해야 한다는 것을 잘 알았다.

“여자분입니다.”

“여자분?”

그럴 리가 없지만, 여자라는 말에 엘리엇의 몸이 반응했다. 그가 아는 한, 그의 집에 방문할 여자는 단 한 명뿐이다.

“누구….”

누구냐고 물어보려던 엘리엇은 입을 다물었다. 이 집사는 그와 함께 모험을 한 부하가 아니다. 귀족 집안을 운영해 본 적이 있는 집사를 고용하느라 시골의 몰락한 귀족가에서 일하던 사람을 고용해 왔다.

“가지.”

엘리엇은 유제니가 무슨 일로 자신을 찾아왔을지 궁금해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쩌면 전에 그의 초대를 거절한 거로 미안해서 찾아왔는지도 모른다.

아니면 그냥 궁금해서 온 건지도 모르고.

어느 쪽이건 상관없다. 유제니가 찾아왔다는 사실만으로 엘리엇의 기분이 좋아졌으니까.

“번즈 백작님.”

하지만 집사가 안내한 응접실에서 기다리고 있던 여자는 유제니가 아니었다. 낯선 얼굴에 엘리엇의 기분이 급격히 나빠지기 시작했다.

그는 이게 무슨 일인지 확인하기 위해 집사를 돌아봤지만, 곧, 자신이 서두르느라 방문자의 이름도 확인하지 않았다는 것을 떠올렸다.

“갑자기 찾아왔는데 만나 주셔서 고마워요.”

방문한 여자의 인사에 집사는 재빨리 뒤로 물러났다. 그는 그냥 손님에게 안내한 것뿐인데 갑자기 주인의 기분이 언짢아 보여서 당황하던 차였다.

재빨리 도망치는 집사를 보고 엘리엇은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이번 일은 그의 잘못이다. 그러니 집사에게 화를 내서는 안 된다.

하지만 그가 관심도 없는 사람에게 시간을 빼앗겨야 한다는 건 아주 불쾌한 일이었다. 엘리엇은 여자에게 자리를 권하지도, 자신이 앉지도 않은 채 물었다.

“무슨 일이지?”

마음 같아서야 관심이 없으니 떠나라고 말하고 싶지만 이미 집에 들였으니 그럴 수도 없다. 하지만 관심 없는 게 역력한 번즈 백작의 태도에 이멜다는 당황했다.

연락도 없이 찾아와서 쫓아낼 줄 알았는데 안에 들여보내 주었다. 그래서 번즈 백작이 그녀에게 관심이 있는 줄 알았다.

자신이 실수로 집 안에 들어왔다는 걸 모르는 이멜다는 냉정하다 못해 귀찮다는 번즈 백작의 태도에 망설이다가 입을 열었다.

“저는 이멜다 커널이에요. 커널 남작 부인이죠.”

관심 없다. 엘리엇은 표정만으로 그렇게 말했다. 이멜다는 알았으니 할 말 있으면 어서 하고 나가라는 듯한 번즈 백작의 표정에 입을 다물었다.

순화해서 어서 나가라지, 번즈 백작의 표정은 그것보다 좀 더 과격했다.

“제안을 하나 하러 왔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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