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50화 (46/239)

50화. 12 – 3

그게 가장 이해가 안 된다. 마녀라니. 대체 무슨 의도인 거지?

“마녀요?”

줄리아 역시 그게 무슨 소리냐는 표정이었다. 마녀라니, 너무 많은 의미를 담은 말이라 대체 무슨 의도였는지 알 수가 없다.

실제로 마녀라는 존재가 있기는 했다. 지금도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보통 한적한 곳에서 약초를 달이며 사는 늙은 약초사를 마녀라고 부른다.

물론 그들을 지칭하는 마녀라는 단어가 제대로 된 말은 아니다. 보통은 그런 약초사들이 사람들에게 나쁜 짓을 한다고 생각했고, 적의를 담아 마녀라고 불렀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은 그게 누명이라는 것을 사람들이 안다. 적어도 도시에서는 말이지.

“그 남자를 저주하기라도 했어요?”

줄리아가 농담처럼 말했다. 내가 누군가를 저주할 수 있다면 좋겠다. 그럼 케스로를 저주할 수 있을 테니까.

아니면….

나는 나를 짜증 나게 했던 사람들을 떠올리려다가 고개를 저었다. 솔직히 말하면 케스로도 저주하고 싶을 정도는 아니다. 나는 그가 벌을 받길 바라는 거지 끔찍한 일을 당하길 바라는 게 아니니까.

“모르겠어. 그냥 이상한 사람이니까 자기 멋대로 이상한 생각을 하고 그런 걸 수도 있고.”

나는 찻잔을 들어 올리며 말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나와 케스로의 접점은 그날, 에스턴 저택에서 부딪쳤을 때가 처음이었다.

혹시나 해 어머니와 올리버에게도 확인해 봤지만 두 사람 다, 고든 케스로라는 사람을 몰랐다.

“어, 줄리아가 와 있는 줄은 몰랐는데.”

때마침, 외출했던 올리버가 응접실로 들어오다가 우리를 발견하고 말했다. 조정 연습을 하고 클럽에서 저녁까지 먹고 온다더니?

나와 줄리아가 그를 맞이하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나자 올리버가 그만두라는 듯 손을 저으며 말했다.

“오랜만이네, 줄리아. 아버지는 잘 계시지?”

“네. 아주 잘 계세요.”

금세 줄리아의 얼굴이 달아올랐지만 나는 모르는 척해 주었다. 줄리아는 올리버를 좋아한다. 그리고 내가 십 대 때 어울린 친구들도 대부분 올리버를 좋아했다.

대체 뭐가 좋다는 건지 모르겠네. 나는 줄리아의 호감이 한때 부는 바람 같은 거라는 걸 알면서도 속으로 투덜거렸다.

올리버가 남들보다 좀 잘생겼다는 건 안다. 이건 모르기가 어렵지. 어릴 때부터 다들 올리버를 보면 잘생겼다고 칭찬했으니까.

하지만 올리버가 가진 건 외모뿐이다. 성격은 완전 한심하고 짜증 나는 데다가 까탈스러운 남자라는 걸 사람들이 알아야 할 텐데.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었어?”

대체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올리버는 이 층으로 올라가지 않고 남은 소파에 앉으며 물었다. 어우, 진짜.

올라가라고 눈치를 주려고 했지만, 그보다 먼저 줄리아가 말했다.

“그 남자요. 고든 케스로라는 사람. 왜 그런 짓을 했는지 이야기하고 있었어요.”

“아.”

올리버의 얼굴이 굳었다. 저런다니까. 어머니와 올리버는 내가 케스로에 관해 물어볼 때마다 저런 표정으로 말을 돌리곤 했다.

하지만 오늘은 줄리아가 있어서 마음이 바뀐 모양이다. 그는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에스턴 경과 몇 번 어울린 적이 있다더군.”

“에스턴 경이 아는 사람이었던 거야?”

“잘은 아니고.”

에스턴 경과 사이가 안 좋았던 건가? 여러 가지 가설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올리버는 차를 내오느냐고 묻는 하인에게 고개를 끄덕이더니 말을 이었다.

“에스턴 경이 질이 안 좋은 곳에 다닌다는 말은 들었거든.”

차를 내오라고 하다니, 아무래도 오래 있을 모양인가 보네. 나는 올리버를 내쫓는 것을 포기하고 소파 등받이에 몸을 기댔다.

다행히 줄리아는 이 상황이 매우 행복한 모양이었다. 그래, 너라도 행복하니 다행이다.

“질이 안 좋은 곳이 뭐예요?”

줄리아의 질문에 올리버가 곤란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러게, 말조심을 했어야지. 나는 도와주지 않겠다는 표정으로 훗 하고 웃었고 올리버는 내게 코를 찡그리더니 줄리아에게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생각 없는 남자들이 한심한 짓을 하는 곳이지.”

잘 대답하네. 그렇게 완곡하게 말하는 편이 좋을 거다. 에스컬레 경의 면담을 받고 싶지 않다면 말이지.

줄리아는 올리버의 설명에 짚이는 곳이 있었던 모양이다. 그녀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아, 알아요. 카드 게임 같은 걸 하는 데를 말하는 거죠?”

“아니, 카드 게임 자체는 문제가 아니지. 정도만 지키면 말이야.”

다들 카드 게임 정도는 한다. 약간의 돈을 걸기도 하고. 판이 커지면 좀 더 거는 경우도 있다고 들었다. 그때 생긴 빚은 다음 게임을 하기 전까지 갚는 게 예의고.

가끔, 갚기 어려울 정도의 빚을 져서 게임을 피하는 한심한 귀족의 이야기가 들리기도 한다. 하지만 올리버가 말하는 건 그런 게 아니겠지.

그는 하인에게 찻잔을 받아 들더니 한숨을 내쉬며 소파에 몸을 기댔다. 그리고 나와 줄리아를 번갈아 쳐다보며 말했다.

“좀 위험한 도박을 하는 놈들이 있어. 그런 놈들은 카드 게임은 안 해. 아니, 하긴 하는데 그건 미끼에 불과하지.”

카드 게임으로 흥을 돋운 다음 다른 게임으로 끌어들인다고 한다. 닭싸움이나 개싸움으로 도박을 하는 경우도 있고, 때때로 사람과 사람이 직접 싸우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에스턴 경은 거기에서 케스로와 만난 적이 있고.

“설마 에스턴 경이 케스로에게 빚을 진 거야?”

“그건 아니래. 이건 그냥, 케스로와 에스턴 경의 연결 고리일 뿐이고 원한 관계는 아직 조사 중이라더군.”

허, 그렇구나. 나는 차를 홀짝이며 내가 모르는 음지 문화가 얼마나 있을지 생각했다. 그러다가 문득, 올리버가 도박에 대해 너무 잘 알고 있다는 사실에 고개를 번쩍 들었다.

“그런데, 올리버. 이런 것들을 어떻게 이렇게 잘 아는 거야?”

“아, 내 친구 중에 프랭키라는 녀석이 있는데 이 녀석이….”

거기까지 말하던 올리버가 멈칫했다. 그러더니 나를 쳐다보고 못마땅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아, 좀 더 말하면 알 수 있었는데. 나는 안타깝다는 표정을 지었고 그는 차를 홀짝이며 말을 바꿨다.

“친구에게 들었지, 귀여운 동생아. 오라버니가 그런 곳에 다닐 사람으로 보이느냐?”

안 다녔으면 좋겠다. 어머니를 위해서. 나는 찻잔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오라버니의 명예를 위해 그 질문에는 대답하지 않겠어.”

바로 옆에서 줄리아가 웃음을 터트렸다. 나는 하인을 불러 차를 더 가져다 달라고 말했다. 세 명이 마시니 주전자의 차가 금세 동난다.

그사이, 올리버는 주제를 돌리기 위해 줄리아에게 물었다.

“그나저나 네 친구는 어떻게 지내?”

“친구요?”

“전에 찾아온 애 말야. 예쁜 애.”

“올리버.”

나는 올리버가 로렌을 지칭하는 말을 듣고 놀라서 재빨리 그를 불렀다. 사람을 그 외모적 특성으로 지칭하는 건 무례한 행동이다.

다행히 줄리아는 개의치 않는 눈치였다. 이럴 때면 내가 배운 예의범절이 너무 빡빡했던 건지, 아카데미에서 너무 느슨하게 가르치는 건지 모르겠다니까.

“로렌이요?”

올리버는 로렌의 이름은 기억하지 못하는 모양이었다. 그는 내 타박에 재빨리 설명했다.

“키는 이 정도에 금발이고, 전에 의상실 한다고 했던 네 친구 말이야.”

으이구. 나는 한심하다는 표정을 지었고 줄리아는 그 애가 로렌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고개를 끄덕이며 덧붙였다.

“잘 지내요.”

“걔, 남자들한테 인기 많지?”

히죽히죽 웃으며 하는 올리버의 질문에 줄리아의 표정이 잠깐 굳었다. 이 한심한 오라버니를 빨리 자기 방으로 올려보냈어야 했는데.

나는 올리버에게 말을 걸기 위해 입을 열었다. 하지만 그보다 먼저 올리버가 말했다.

“좋다는 남자들도 많겠네?”

“잘 모르겠네요.”

이제 줄리아는 뾰로통한 표정이었다. 그럼에도 올리버는 눈치 없이 계속해서 말했다.

“인기 많을 거야. 눈에 확 띄잖아. 내 친구들도 알더라.”

“올리버.”

그만 올라가지 그래? 내가 눈치를 줬지만, 올리버는 모르는 모양이었다. 아니면 모르는 척하는 거거나.

비스컨 가에 저렇게 눈치 없는 멍청이의 피가 흐른다고 생각하고 싶지 않다.

정강이라도 걷어차야 하나. 그렇게 생각하는데 그가 말했다.

“쓸데없는 짓 말고 빨리 시집이나 가라고 해.”

“무슨 소리예요?”

로렌이 예쁘다는 말에 기분이 상한 것 같던 줄리아의 태도가 변했다. 그녀는 이번에는 올리버의 말이 기분 나쁘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걔, 예쁘잖아. 의상실이니 뭐니 하는 쓸데없는 짓 말고 얼른 괜찮은 남자 잡아서 시집가는 편이 걔한테 나은 일일 거야.”

“올리버, 그만 가는 게 좋지 않겠어?”

제발 가라, 응?

내 간곡한 바람에도 올리버의 엉덩이는 끈질기게도 소파에 붙어 있었다. 정강이가 아니라 엉덩이를 걷어차야 하나. 그렇게 생각한 순간, 줄리아가 말했다.

“그건 오라버니가 신경 쓸 문제가 아닌 것 같은데요.”

“응?”

올리버는 그제야 바뀐 줄리아의 태도를 눈치챘는지 이상한 표정을 지었다. 그녀는 화를 참는 표정으로 말했다.

“그건 로렌의 선택이고 로렌의 인생이죠. 오라버니가 더 생산성 있는 일을 포기하고 여기 앉아서 남의 인생에 이래라저래라하길 선택한 것처럼요.”

말 잘하네. 나는 손을 들었다. 그리고 올리버를 똑바로 쳐다보며 손뼉을 치기 시작했다.

짝짝짝.

올리버의 표정이 일그러졌지만 나는 뭐가 문제냐는 표정을 지었다. 창피한 줄 알아, 올리버 비스컨.

“아니, 내 말은, 그렇잖아. 걘 예쁘니까 얼른 남자 잘 잡아서….”

“올리버.”

거기까지 해라, 진짜. 내가 주의를 주는 것과 동시에 줄리아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녀는 내게 고개를 돌려 말했다.

“아버지께서 생각 없는 남자들이 한심한 짓을 하는 곳엔 가지 말라고 하셨거든요. 전 그만 가 볼게요.”

나는 줄리아를 미안하다는 표정으로 배웅해 주었다. 그리고 뭐가 문제인지 모르겠다는 표정의 올리버에게 고개를 돌렸다.

“왜 저러는 거야?”

진짜 몰라서 그래? 나는 어이가 없어서 물었다.

“방금 오라버니가 무슨 짓을 한 건지 몰라?”

“내가 뭘? 걔는 예쁘니까 그걸로 좋은 집안에 시집가는 게 걔 인생에 더 좋은 거 아냐.”

“오라버니도 잘생겼으니 더 좋은 집안에 장가가는 게 더 좋지 않겠어?”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