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2화 (28/239)

32화. 8 – 4

로렌이 꾼 꿈에서 줄리아는 젊은 나이에 사망한다.

분노한 드래곤 때문에 많은 왕족이 사망하고 이웃 나라가 침략한다. 그리고 전염병이 창궐한 다음의 이야기다.

줄리아는 명예롭게 사망했다고 들었다. 들었다고 하는 이유는 그녀가 이미 줄리아와 연락하지 않은 지 오래되었기 때문이다. 아마도 줄리아는 로렌이 연락하면 반갑게 맞아 줬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꿈속에서 로렌은 정부로 사는 자신의 현실이 겁나서 아카데미 시절 알던 사람에게 전혀 연락할 수가 없었다.

줄리아는 에스컬레 경의 부하 중 하나와 결혼했다고 들었다. 그녀의 남편은 전쟁터에서 명예롭게 전사했고 줄리아 역시 전염병에 걸린 사람을 돕다가 사망했다고 들었다.

안타깝지만 명예로운 죽음이었다. 혹자들은 죽음에 명예가 어디 있냐고 하겠지만 꿈속에서 자신의 인생이 비참하다고 생각한 로렌에게는 그렇게 느껴졌다.

“내가 아버지 부하랑 결혼한다고?”

줄리아는 로렌의 말에 놀라서 물었다. 정말?

그녀는 평생 자신이 귀족과 결혼할 거라고 생각하긴 했다. 왜 아니겠는가. 그녀의 아버지가 에스컬레 경인데. 돈은 많지만, 영향력이 적은 귀족과 결혼하겠지.

하지만 아버지의 부하는 생각도 안 했다. 에스컬레 경은 자신의 딸에게 아무 남자나 접근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고 그의 부하 역시 아무 남자에 속했기 때문이다.

“그게 가장 놀라운 거야?”

로렌은 줄리아의 반응에 저도 모르게 물었다. 그녀라면 언제, 몇 살에 죽는지 물어볼 거다. 그리고 절대 환자들 근처에 있지 않으려 하겠지.

하지만 줄리아는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네 말대로라면 다아리브혼이 화가 나서 우리나라를 공격하는 게 먼저잖아? 그런데 그런 일은 안 일어났지.”

그렇다면 전쟁 역시 일어나지 않을 거다. 발시안은 이웃 나라에서 노릴 정도로 약해지지 않을 테니까.

전염병은 모르겠다. 하지만 드래곤은 발시안을 습격하지 않았고 전쟁 역시 터지지 않을 테니 전염병으로 죽는다는 것도 좀 멀어지지 않았을까.

줄리아의 말에 로렌은 멍하니 친구를 쳐다봤다. 신기했다. 줄리아의 긍정적인 마음이. 그녀는 꿈을 꾼 다음 날 하늘이 무너진 것만 같았다. 그날부터 지금까지 자신이 꾼 꿈에 매몰되어 있었다.

“그럼 하나만 들어. 레이디 비스컨 말이야.”

“유제니?”

별걱정을 다한다. 줄리아는 친구가 꿈을 참 구체적으로 꿨다고 생각했다. 그러면서 동시에 말이 안 된다고 생각했다.

드래곤의 공격을 받고 전쟁이 나고 전염병까지 퍼진다고? 드래곤의 공격으로 왕족이 대부분 죽었는데 전쟁은 어떻게 견뎌 낸단 말인가.

줄리아가 보기에 로렌의 꿈은 말이 되지 않았다. 하지만 꿈이라는 게 원래 그렇지 않은가. 말이 되지 않는데 꿈을 꾸는 도중에는 자연스러운 거.

“너무 믿지 마.”

“왜? 유제니도 네 꿈에 나와?”

그건 좀 신기하다. 로렌은 유제니와 만난 적이 한 번도 없었으니까. 물론 줄리아가 이야기하긴 했다. 사촌 언니지만 진짜 언니 같다고. 약간 깐깐하지만, 마음이 잘 맞는다고도 했다.

로렌은 그녀가 꿈에서 들은 이야기를 어디까지 이야기해도 될지 몰라 망설였다. 솔직히 말하면 그것 때문에 꿈을 그냥 꿈이라고 생각한 적도 있었다. 말이 안 되는 부분이라.

“그냥, 꿈에서도 나랑 만난 적은 없어. 그런데 별명이…….”

별명이? 줄리아는 호기심에 눈을 동그랗게 뜨고 로렌을 쳐다봤다. 로렌은 꿈에서 유제니에 관한 이야기를 꽤 많이 들었다. 그녀에게는 많은 별명이 있었고 무엇 하나 그리 좋은 것이 없었다.

그중 가장 유명했던 건.

“마녀였어.”

“줄리아!”

그 순간, 문밖에서 유제니가 줄리아를 불렀다.

유제니가 술집에 들어선 순간, 술집이 조용해졌다. 이 자리에 그녀가 어울리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심지어 몇몇 사람은 그녀를 뚫어져라 쳐다보기까지 했다.

이렇게 무례한 사람들과 장소는 처음이지만 유제니는 귀족답게 행동했다. 그녀를 빤히 쳐다보는 사람들을 모른 척하고 가게 주인으로 보이는 남자에게 가서 줄리아와 로렌의 행방을 물어본 것이다.

“여기에 내 동생들이 와 있다고 들었는데.”

컵을 닦던 남자는 유제니의 질문에 말없이 눈짓으로 이 층을 가리켰다. 이런 동네에 이렇게 좋은 옷을 입은 젊은 여자가 셋이나 나타나면 사람들의 시선을 끌기 마련이다.

그는 노파심에 작은 목소리로 충고했다.

“보호자를 데리고 오지 그랬소.”

데려왔다. 유제니가 그렇게 말하기 전에 남자 둘이 붙었다.

“동생들?”

“아까 마차 타고 온 여자애들 말하는 거지?”

저런. 술집 주인은 곤란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또 소란이 일어나면 골치 아프다. 그때, 그의 앞에 서서 질문을 던진 여자가 고개를 휙 돌리며 물었다.

“알아?”

태도가 좀 달라졌다. 아주 약간이었지만 달랐다. 표정이나 말투도 그에게 물어볼 때와는 달랐다. 주인은 여자가 어떻게 하는지 잠시 기다리기로 했다.

“아, 알지. 내가 저기, 저 가게 근처에서 봤거든.”

마차 안에서 로렌에게 말을 건 남자가 유제니의 팔을 잡으며 말했다. 당장이라도 그녀를 술집 밖으로 데리고 나가려는 태도였다.

“어느 가게?”

유제니는 자연스럽게 남자의 손을 뿌리치며 물었다. 응? 자신의 손을 떨쳐 낸 유제니의 태도에 남자가 ‘어라?’ 하는 표정을 지었지만, 여전히 유제니의 표정은 부드러웠다.

“저기, 꽃가게.”

경계하는 건 아닌 모양인데. 남자와 한패인 또 다른 남자가 그렇게 생각하며 끼어들었다. 그러자 유제니가 고개를 기울이며 물었다.

“그럴 리가 없는데.”

“아니, 봤다니까.”

“잘못 본 거 아냐?”

“당신 동생이라며? 동생을 봤다니까?”

“내 동생은 이 가게 이 층에 있거든. 잘못 본 거 같은데.”

그렇지? 유제니는 남자들이 물러날 기회를 주기 위해 씩 웃어 보였다.

이 남자들이 그녀에게 무슨 짓을 하려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녀를 술집 밖으로 끌고 나가려 하는 건 알겠다. 하지만 소란을 피우고 싶지 않으니 그녀를 속이려 하는 거겠지.

적당히 눈치를 줘서 소란을 피우느니 이쯤에서 물러난다면 둘 다 괜찮은 결말일 것이다.

하지만 그건 적어도 상식이라는 걸 가지고 있는 자들에게나 통하는 이야기고 미성년자인 여자애들도 팔아치우려 하는 놈들에게 상식이라는 게 있을 리가 없다.

남자들은 유제니를 끌고 가기 위해 그녀의 팔을 잡았다. 그러자 유제니가 재빨리 남자의 발을 콱 밟아 버렸다.

“악!”

남자는 비명을 지르며 주저앉았다. 한패인 다른 남자와 술집 주인이 이게 무슨 일인가 하고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사이에 유제니는 재빨리 남자들에게서 한 걸음 물러났다. 그리고 곧바로 이 층 계단으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너, 너 이년!”

진짜로 저 아가씨는 혼자 와서는 안 됐다. 주인은 그렇게 생각하며 남자들을 막으려 했다. 하지만 다음 순간, 남자들의 등 뒤로 검은 그림자가 나타났다.

“어?”

들어오는 소리도 못 들었다. 다들 유제니와 남자들을 쳐다보느라 그의 존재를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주인이 흠칫 놀라는 사이 엘리엇이 남자들에게 손을 뻗으며 말했다.

“다시 말해 봐.”

이 자식은 언제 들어온 거지? 남자들은 엘리엇을 피해 물러나려 했다. 하지만 그보다 먼저 그의 손이 남자들의 목을 움켜쥐었다.

“아냐. 말하지 마.”

그렇게 말한 엘리엇은 그대로 두 남자의 머리를 부딪쳤다. ‘퍽!’ 하는 소리와 함께 남자들의 머리가 부딪치는 소리가 났다.

그는 축 늘어진 남자들의 몸을 바닥에 던져 버린 뒤 덤덤하게 말했다.

“목소리 듣기 싫거든.”

이 층에 올라온 유제니는 좁은 복도로 빽빽하게 난 문을 보고 놀라서 멈췄다. 보통 이런 술집은 이 층을 여관으로 이용한다는 이야기를 듣기는 했다.

하지만 실제로 들어와 보는 건 처음이다. 물론 술집에 들어온 것도 마찬가지고.

“줄리아!”

줄리아가 어느 방에 있는지 모르겠다. 유제니는 복도에서 줄리아의 이름을 부르고 잠시 기다렸다. 그러자 그녀의 목소리를 들은 줄리아가 살짝 문을 열고 고개를 내밀었다.

“줄리아!”

줄리아의 얼굴을 본 유제니는 반가운 마음에 그녀를 부르며 달려갔다. 그리고 줄리아를 덥석 끌어안았다.

세상에. 놀라서 혼났다. 아직도 심장이 빠르게 뛰고 있다. 이런 술집의 이 층 여관에 숨어 있다니.

그녀는 한참을 줄리아를 끌어안고 있다가 떨어져서 말했다.

“위험하잖아. 둘이서 승합 마차를 타고 가다니.”

이럴 줄 알았다. 줄리아는 유제니에게 혼이 나면서도 그것 보라는 표정으로 로렌을 쳐다보며 웃었다. 에스컬레 경에게 말하고 왔으니 아버지께 뭐라고 말할지 생각해 보라고 말한 유제니는 로렌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한숨을 내쉬었다.

“미안해, 리즈. 내가 너무 늦었지.”

유제니가 자신도 혼낼 거라고 생각하고 있던 로렌은 느닷없는 사과에 눈을 크게 떴다. 사과를 한다고? 유제니 비스컨이?

로렌이 아는 유제니 비스컨은 누군가에게 사과를 할 사람이 아니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그녀가 꿈에서 들은 유제니 비스컨이 그랬다는 말이다.

희대의 마녀. 철의 여인. 피도 눈물도 없는 무자비한.

그녀가 꿈에서 유제니 비스컨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때면 붙는 수식어는 대략 이러했다. 더 거침없는 단어도 있었고.

“세케이 경에 대해 알아봤어. 안타깝게도 그리 좋은 사람은 아니더라.”

유제니는 그렇게 말하고 다시 한숨을 내쉬었다. 여자를 너무 좋아한다던 세케이 경은 정확히 말하면 어린 여자를 좋아한다고 했다.

젊은 여자가 아니라 어린 여자.

올리버는 완곡하게 말했지만, 유제니는 그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았다. 그리고 마스터슨 경이 자신의 사업에 세케이 경의 투자를 원한다는 이야기도.

유제니는 마스터슨 경이 투자를 받기 위해 어린 친척을 팔지 않을 거라 믿고 싶었다. 하지만 로렌은 승합 마차를 타고 도망칠 정도로 위협을 느끼고 있었고 유제니에게 도움을 청한 적이 있다.

“마스터슨 경과 이야기해 볼게.”

유제니는 그렇게 말하고 로렌을 향해 손을 내밀었다. 그러니 이제 집으로 돌아가자는 말에 로렌은 잠시 유제니를 쳐다봤다.

믿어도 될지 모르겠다. 그녀가 꿈에서 겪은 그녀의 인생에는 믿을 사람이 하나도 없었다. 친구도 없었고, 오죽하면 차를 마실 사람이 없어서 집에서 일하는 하녀와 마셨다.

심지어 그 하녀도 뒤에서 그녀의 욕을 한다는 것을 알고 내보냈지만 말이다.

“레이디 비스컨.”

곧이어 일 층의 일을 처리한 엘리엇이 이 층으로 올라와 유제니를 불렀다. 그는 복도에 서 있는 유제니와 줄리아를 보고, 방 안의 로렌을 확인하더니 유제니에게 물었다.

“이제 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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