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8화 (8/239)

8화. 2 – 4

세상엔 미친 짓을 하는 사람이 꽤 있다. 몇몇 사람은 동의하지 않을 테지만 내게는 그 미친 짓 중에 결혼했거나 결혼할 상대자가 있는 사람에게 구혼하는 것도 포함된다.

그리고 가문의 인장 반지를 가문 밖의 사람에게 선물하는 것도 미친 짓에 해당하고.

그렇다면 엘리엇 번즈는 두 번 미친 사람이라는 뜻이다. 사람이 두 번 미칠 수도 있는지는 아직 생각하지 말자. 나는 대체 그가 인장 반지를 어디에서 손에 넣었을지 생각하며 마차에서 내렸다.

“레이디 비스컨!”

흰장미회의 회장인 리사 그런트 양은 나를 보자 반갑다는 듯 끌어안았다. 나는 그녀의 어깨를 마주 끌어안으며 어떻게 지냈는지 간단하게 인사를 나누었다.

“날이 더워서 차가운 차를 준비했어요. 입맛에 맞을지 모르겠네요.”

어머니께서 들으셨다면 기가 막힌다는 표정으로 언어도단이라고 하셨겠지. 하지만 차가운 차는 젊은 사람들에게는 가볍게 인기를 끌고 있다. 부를 과시하기에도 좋거든.

나는 그런트 양이 준비한 내 자리로 향하며 이미 도착한 사람들에게 인사를 건넸다. 오늘은 비정기 모임이라 그런지 전체 인원의 반이 좀 안 되게 앉아 있었다.

문득 레이디 데번이 생각났다. 그러고 보니 잊고 있었다. 오라버니가 그랬지. 레이디 데번이 정신을 놓아 버렸다고.

혹시나 싶어 다과실을 살펴보니 레이디 데번은 없었다. 참석하지 않은 걸까. 그렇게 생각하는데 그런트 양이 내 표정을 보더니 웃으며 물었다.

“레이디 비스컨도 소문을 들었군요?”

“네?”

창피해라. 소문에나 관심을 기울이는 사람으로 보였을 것 같아서 얼굴이 화끈해졌다. 하지만 그녀는 신경 쓰지 않는지 비밀 이야기를 하듯 속삭였다.

“참 곤란하겠어요. 파혼당할까 봐 걱정하나 봐요.”

응? 자기가 파혼해 달라고 한 거 아니었어? 나는 그런트 양의 말을 이해할 수가 없어서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녀는 슬쩍 고개를 돌려 어딘가를 쳐다보더니 다시 내게 말했다.

“하지만 설마 파혼하겠어요? 다들 이해하던걸요.”

레이디 데번이 미친 걸 이해한다고? 나는 멍하니 그런트 양을 쳐다보다가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

“왜, 왜 그랬대요?”

“왜 그러긴요. 솔직히 많이 참았죠. 로고소 양도 언니만 아니면 이해했을 거예요.”

“잠깐만요. 로고소 양이요?”

레이디 데번이 아니라?

내 질문에 그런트 양은 ‘어라?’ 하는 표정을 짓더니 고개를 갸웃하며 말했다.

“당연히 로고소 양이죠. 커널 남작 부인이 로고소 양의 언니잖아요?”

커널 남작 부인이 왜 나오는 건지 모르겠다. 내 시선은 반사적으로 로고소 양을 찾았다. 그녀는 참석해 있었다. 주변의 다른 사람들과 대화를 하고 있었는데 어딘지 모르게 경직돼 보였다.

“커널 남작 부인이 레이디 데번과 문제가 있었어요?”

그런트 양은 다시 ‘어라?’ 하는 표정을 지었다. 잠시 그녀의 얼굴에 어떤 표정이 빠르게 스쳐 지나가더니 곧 그녀가 웃음을 터트렸다.

“세상에, 레이디 비스컨.”

내가 뭘 잘못했나? 당황하는 나를 본 그런트 양이 웃음을 멈췄다. 그녀는 재빨리 손으로 입을 가리더니 사과했다.

“미안해요. 난 당신이 아는 줄 알았지 뭐예요.”

“레이디 데번 이야기가 아닌 거죠?”

그 정도 눈치는 있다. 내 질문에 그런트 양은 그렇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더니 내 쪽으로 몸을 기울여 속삭이기 시작했다.

“레이디 데번은 파혼이 결정됐다고 들었어요. 안타까운 일이긴 하지만…….”

거기까지 말한 뒤 그녀는 지극히 귀족다운 태도로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자신이 바란 게 그거였잖아요?”

바란 게 그거였다고? 나는 놀라서 그런트 양을 쳐다봤다. 그러자 내 표정을 본 그녀가 작게 한숨을 내쉬더니 내 손을 토닥이며 말했다.

“맙소사, 레이디 비스컨. 당신은 정말 소문에 관심이 없군요.”

그건 귀족 여성으로서 꽤 좋은 자세다. 하지만 실제로는 그리 좋은 게 아니기도 했다. 우리는 사교계의 가십에 귀를 기울이고 있어야 한다. 그래야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으니까. 그리고 그 정보는 영지를 다스리는 아버지와 남편, 남자 형제에게 도움이 된다.

나는 솔직하게 인정했다.

“그런트 양 같은 좋은 친구 덕분에 무지할 수 있었죠.”

올리버는 늘 내게 이렇게 말하곤 한다. ‘맙소사! 유제니가 알았으니 드디어 발시안 전체가 알았군!’

나는 늘 소문에서 늦은 편이다. 특히 가십 쪽으로.

다행히 그런트 양은 내 말에 미소를 짓고는 다시 내 손을 토닥이며 말했다.

“리사라고 불러요. 그래요. 레이디 데번은 파혼을 요구했다고 하더군요.”

“정신을 놓았다는 소문도 그럼…….”

“아무 이유 없이 파혼을 요구했거든요.”

그렇다면 미쳤다는 소문이 난 것도 이해가 된다. 귀족의 결혼은 집안끼리의 계약에 가깝다. 결혼 당사자지만 우리는 계약자가 아니라 계약품에 가깝고.

계약품이 계약에서 빠져나가겠다고 했으니 당연히 제정신이 아니라는 소문이 났겠지.

대체 왜 그런 걸까. 나는 레이디 데번을 생각하며 한숨을 내쉬었다. 옆에서 리사가 계속해서 말했다.

“그리고 로고소 양의 이야기는 그녀의 언니 때문이에요. 커널 남작 부인, 최근에 애인이 생겼거든요.”

애인이라. 애인이라는 말이 좀 놀랍긴 했지만 그리 드문 일은 아니다. 집안끼리의 계약인 만큼 애인을 따로 두는 부부도 있다. 나는 싫지만.

솔직히 말하면 리사의 말대로 커널 남작 부인은 이해가 됐다. 그녀의 남편인 커널 남작은 대단한 바람둥이로 내가 들은 소문만도 여러 번이다.

소문에 늦은 내가 알 정도면 커널 남작 부인도 알겠지. 그리고 사교계도 다 알 테고. 아니나 다를까 리사가 목소리를 낮춰 장난스럽게 말했다.

“지금까지 커널 남작 부인이 남편에게 예의를 지킨 것만 해도 그녀는 충분히 훌륭한 사람이지 않아요?”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우리는 마주 보고 웃은 뒤 자신의 자리에 앉았다.

비정기적인 모임으로 차나 한잔하자고 모인 거였기 때문에 오늘 모임은 가벼웠다. 차가운 차를 준비한 만큼 곁들이는 디저트는 따듯한 것으로 나왔다. 갓 구운 파이 같은 거.

한참을 떠들고 먹은 덕에 우리는 저녁 식사 시간에 가까워서야 자리에서 일어났다.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 이야기는 단연 용을 잡은 사나이, 엘리엇 번즈의 이야기였다. 그리고 마법사의 탑에서 이상한 연기가 났다는 이야기와 아카데미에 남아 있는 학생들에게 약간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이야기.

아카데미는 가난하지만, 머리가 좋은 아이들을 장학생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학비와 약간의 생활비를 제공하지만 그건 학기 중일 때의 이야기다. 방학이 되면 장학생들은 머물 곳과 약간의 돈을 벌기 위해 일을 해야 한다.

“유제니가 도와준다면 많은 도움이 될 거예요.”

이번 모임 덕에 꽤 많이 친해진 리사는 나와 팔짱을 끼고 현관으로 향하며 말했다. 장학생들을 후원해 줄 사람을 찾는 거다. 물론, 우리 집은 어렵다. 부유한 편이 아니라서.

하지만 그 아이들에게 방학 동안 일을 시키고 약간의 돈을 줄 사람들을 찾는 걸 도와줄 수는 있겠지.

“찾아볼게요.”

현관 앞에서 그렇게 말한 나는 리사를 쳐다보며 재빨리 덧붙였다.

“별로 어렵지 않은 일로요.”

위험한 일을 시키는 사람이 종종 있다고 한다. 리사는 내 말에 빙그레 웃더니 내 팔을 다독이며 말했다.

“연락 기다릴게요.”

무슨 일을 알선해 줘야 할까. 리사의 배웅을 받으며 밖으로 나온 나는 내 앞에 다가온 마차에 올라탔다. 이미 마차 안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던 앤이 고개를 들며 물었다.

“즐거우셨어요?”

“응. 앤은 어땠어?”

우리가 다과실에서 이야기하는 동안 앤도 아가씨를 따라온 하녀들과 차를 마셨을 것이다. 그런트 저택은 하인들의 대기실도 괜찮다고 들었거든.

다행히 앤도 즐거웠던 모양이다. 그녀는 주머니에서 과자를 감싼 손수건을 꺼내 보여 주며 말했다.

“과자도 챙겨 주더라고요.”

“이 과자 맛있었지.”

우리도 먹었다. 나는 앤과 과자에 뭐가 들어갔길래 이렇게 바삭바삭하고 맛있을지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앤은 이 정도로 바삭하려면 버터가 많이 들어가야 한다고 말했고 나는 과자에 버터가 들어가냐고 깜짝 놀랐다.

덕분에 우리는 마차가 멈춘 뒤에야 우리가 도착한 곳이 비스컨 저택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됐다. 먼저 문을 연 앤이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더니 마부를 향해 말했다.

“짐, 여기가 어디예요?”

다음 순간, 앤의 몸이 뻣뻣해졌다. 나는 재빨리 창문을 통해 바깥을 확인했다.

여긴 세이마리아 거리가 아니었다. 에스컨 거리인가? 자세히 보느라 눈을 찡그리고 거리를 확인하는데 앤의 짤막한 비명이 들렸다.

“악!”

“앤?”

깜짝 놀라서 가 보니 마차 밖에 웬 남자들이 있었다. 나는 마차 문 앞에 얼어붙은 채 남자들과 그들에게 붙잡힌 앤을 쳐다보고 있었다.

이게 뭐지? 무슨 일이지?

도대체 이해할 수가 없었다. 납치? 제일 먼저 생각난 건 그거였다. 하지만 납치라니, 무엇을 위해서?

우리 집이 내 몸값을 낼 수 있을까? 이 녀석들이 얼마를 요구할까? 허둥지둥 생각하는데 남자들의 뒤로 낯익은 남자가 나타났다. 그는 나를 보고 꾸민 듯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레이디 비스컨, 갑자기 모셔 와서 놀라셨을 겁니다.”

누구더라. 나는 쿵쾅거리는 심장을 달래려 애쓰며 남자의 이름을 떠올렸다. 저먼. 오티스 저먼이었다. 저먼 자작의 셋째였던가.

저먼 자작은 그리 부유하지 않다. 게다가 오티스 위로 형이 둘이나 있기 때문에 그가 자작이 될 가능성도, 자작이 된 형을 도와 가문에 남을 가능성도 적었다.

결국, 오티스는 올리버보다 몇 살이나 많은데 아직 미혼이었다.

설마 나를 납치해서 결혼하려 한다거나 하는 건 아니겠지. 가장 가능성 큰 건 그거였지만 나는 호락호락하게 당해 줄 생각이 없었다. 나는 가방을 움켜쥐며 말했다.

“놀랐다 뿐일까요. 제 하녀를 풀어 주시겠어요?”

내 요구에 오티스의 시선이 앤을 향했다. 나는 왜 그를 알아보지 못했는지 깨달았다. 마지막으로 봤을 때보다 말라 있었다. 그럼에도 눈동자만큼은 형형하게 빛이 나고 있어서 좀 무서웠다.

“거칠게 굴지 말게.”

오티스의 지시에 남자들이 앤을 놓아주었다. 나는 울음을 터트리며 내게 달려오는 앤을 안아 주며 오티스와 남자들을 노려봤다.

남자들은 하인으로 보이지 않았다. 용병인지도 모른다. 재빨리 주변을 돌아보자 이 거리가 에스컨 거리가 아닌 발록 거리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게 범죄라는 건 알고 있겠죠?”

나는 마차 문을 잡으며 말했다. 마차를 탈취했고 나와 앤을 납치했다. 당연히 범죄다. 하지만 우리를 순순히 보내 준다면 신고까지는 하지 않겠다고 말할 생각이었다.

“아, 그럼요.”

오티스는 여유 있는 태도였다. 저쪽은 남자만 여섯이고 이쪽은 여자만 둘이다. 심지어 한 명은 귀족이니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한 거겠지.

“걱정하지 마십시오, 레이디 비스컨. 당신을 다치게 할 생각은 조금도 없으니까요.”

“거기에 내 하녀도 포함되었으면 하는데요.”

나는 앤을 끌어안으며 차갑게 말했다. 저자의 목표가 내가 아니라면 앤이라는 말이다. 하지만 앤 역시 오티스의 목표가 아니었던 모양이다.

그는 킬킬대고 웃으며 말했다.

“댁의 멍청한 하녀에게도 관심 없으니 걱정하지 마십시오. 당신은 그저 얌전히 앉아 있어 주기만 하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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