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6화 (6/239)

6화. 2 – 2

멍청한 귀족이 드래곤의 알을 건드렸다. 그 알이 깨질 뻔했을 때 나타난 게 엘리엇이었다.

그는 알이 깨지지 않도록 보호했고 분노한 다아리브혼 앞에서 거래를 제안했다. 자신이 알을 지켰으니 알을 건드린 발시안 귀족의 문제는 그걸로 덮어 달라고.

“그래서 다아리브혼이 눈감아 주기로 했다는 건가.”

그렇다. 엘리엇의 대답에 루퍼트는 “끙” 하고 신음을 내뱉으며 눈을 감았다. 등허리에 식은땀이 흐를 이야기다. 그가 모르는 사이에 발시안의 귀족이 드래곤의 알을 건드렸고 그게 깨질 뻔했다는 건.

“그 멍청한 놈이 누군가? 발시안의 귀족이라 했지?”

국왕의 분노는 다음으로 겁도 없이 드래곤의 알을 건드린 귀족에게로 향했다. 번즈의 이야기대로라면 나라를 위험하게 만든 그 귀족을 가만둘 수 없다.

“페하.”

다시 나선 건 거마로트 공작이었다. 드래곤의 알을 건드린 멍청이가 그의 아들이 확실한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확인하고 난 다음엔 늦다.

그는 일단 번즈를 자신의 편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판단했다.

“그건 차차 알게 될 겁니다. 그보다는 나라를 구한 영웅에게 어떤 상이 걸맞은지 이야기하는 게 좋지 않겠습니까?”

공작의 말에 엘리엇은 속으로 웃었다. 눈치챈 모양이군.

“그렇군.”

공작의 말에 한숨을 내쉰 국왕은 왕궁 내에 번즈의 방을 준비하라고 지시했다. 번즈의 말이 맞는다면 그는 나라를 구했다. 그러니 마땅히 상을 줘야 한다.

물론, 번즈의 말이 사실인지 확인부터 해야겠지만.

그는 이미 나라의 미래를 봤다는 사기꾼을 만났다. 그만 나가 보라는 국왕의 말에 시종은 엘리엇을 데리고 집무실 밖으로 나갔다.

“엘리엇 번즈.”

저먼은 재빨리 엘리엇의 뒤를 따라 나가 그를 불렀다. 저먼까지 세 명이 나가자 집무실 문이 닫혔다. 천천히 몸을 돌린 엘리엇은 저먼이 자신을 따라 나온 것을 보고 그럴 줄 알았다는 듯 말했다.

“날 아나 보군.”

“알지, 알고말고.”

저먼은 그렇게 말하고 엘리엇을 훑어보았다. 원래대로라면 그가 알 이유도, 알 필요도 없는 작자다. 작위를 물려받지는 못하지만, 자작의 셋째인 그와 달리 번즈는 평민이니까.

하지만 그가 꾼 꿈에 의하면 번즈는 평범한 평민이 아니었다. 저먼은 자신보다 머리 하나는 더 큰 키와 말라붙은 피에도 조각상 같은 엘리엇의 외모를 잠시 쳐다보다가 물었다.

“어떻게 알고 갔지?”

느닷없는 저먼의 질문에도 엘리엇은 당황하지 않았다. 그는 물끄러미 저먼을 바라보다가 덤덤하게 물었다.

“뭐가?”

“드래곤의 둥지 말이야. 거기를 어떻게 알고 갔냐고. 그리고, 그리고 거마로트 백작이 거기 있는 건 어떻게 알았고?”

저먼의 질문에 엘리엇의 입가에 미소가 떠올랐다. 그는 고개를 기울이고 이상하다는 듯 물었다.

“나는 그 둥지에 있는 게 거마로트 백작이라고 말한 적이 없는데?”

“나, 나는 알아! 나는, 나는 예언자니까!”

“흠.”

저먼의 주장에 엘리엇은 흥미롭다는 표정으로 그를 쳐다봤다. 그리고 허리에 손을 얹으며 물었다.

“자네가 예언자라면 예언 한번 해 보게. 내가 어떻게 될지.”

엘리엇의 도발에 저먼은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당연하다. 그가 본 미래와 달라져 버렸기 때문이다.

그가 본 미래에서는 다아리브혼의 분노로 왕족 대부분이 사망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전염병이 돌아 많은 사람이 사망했고 전혀 예상하지 못한 여자가 왕족이라는 게 밝혀져 그녀가 어린 왕자를 대신해서 수렴청정을 하게 된다.

그리고 엘리엇 번즈는.

몰락해 가는 발시안을 침입하는 외세로부터 국경을 지킨 공로로 백작이 된다.

같은 거라면 꿈에서도 번즈는 영웅이었고 지금도 영웅이라는 점이다.

“거짓말이었나 보군.”

저먼이 아무 말도 하지 못하자 엘리엇은 그의 앞에서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

“귀, 귀족이 되겠지.”

결국, 저먼은 참지 못하고 말했다. 꿈에서 엘리엇 번즈는 번즈 백작이었다. 코웃음 치던 엘리엇의 얼굴이 싸늘해졌다.

그는 무표정한 얼굴로 저먼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그건 예언이 아니야. 제대로 된 예언이라면 내가 어느 영지를 얻게 될지까지는 맞혀야지.”

“그건, 그건…….”

꿈에서 번즈는 시넨트라의 백작이었다. 시넨트라를 가진 후작과 후계자들이 사망했기 때문에 영지가 왕궁으로 반환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꿈에서 번즈가 시넨트라의 백작이 된 건 대략 오륙 년이 지난 후다. 다아리브혼의 분노와 전염병이 지나간 다음.

모든 것이 너무 빨라졌다. 저먼은 자신의 꿈이 더 이상 이뤄지지 않을 것임을 깨달았다. 그게 그를 분노하게 했다.

“너도 꿈을 꿨지? 그렇지?”

저먼이 갑자기 소리치는 바람에 두 사람이 대화를 나눌 수 있도록 잠시 떨어져 있던 시종이 무슨 일인가 하고 돌아보았다.

도와야 하나? 그는 잠시 망설였지만 고함을 지르는 저먼과 달리 고함을 듣는 엘리엇이 미동도 없었기 때문에 일단 기다려 보기로 했다.

“무슨 말인지 모르겠군.”

“시치미 떼지 마! 꿈을 꿨잖아! 그러니까 둥지를 찾은 거야! 그렇지!”

화난 저먼의 외침은 집무실 안까지 들렸다. 국왕과 거마로트 공작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불경한 소리를 예언이랍시고 했지만, 저먼 자작의 얼굴을 봐서 넘어가려 했다. 집안에서 그에게 주의 정도는 주겠지. 저먼 자작은 아무 쓸모 없는 셋째를 어딘가로 보내 버릴 테고.

그 정도로 넘어가 줄 생각이었다. 그런데 저 멍청한 녀석이 국왕의 집무실 앞에서 저렇게 고함을 지르고 있는 것이다.

“여기가 어디라고…….”

화난 거마로트 공작의 중얼거림에 에스컬레 경과 기사들이 나섰다. 그들이 집무실 문을 열고 나갔을 때 저먼은 엘리엇에게 덤비고 있었다.

“너도 봤지! 너도 본 거야!”

미친 사람처럼 날뛰는 저먼이 엘리엇에게 덤비는 게 보였다. 깜짝 놀라는 기사들 앞에서 엘리엇은 가볍게 몸을 돌리는 것만으로 저먼을 피하는 것도.

뿐만 아니라 엘리엇은 자신이 피한 저먼의 다리를 슬쩍 걸기까지 했다. 우당탕하고 저먼이 넘어지는 것을 보고 에스컬레 경은 가볍게 혀를 찼다.

“저, 저 녀석도 예언자야! 나처럼 미래를 봤다고!”

집무실에서 나온 기사들을 본 저먼이 얼굴을 시뻘겋게 물들인 채 소리쳤다. 기사들은 당황해서 엘리엇을 쳐다봤지만, 그는 저먼이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저먼 경이 미친 모양이군. 에스컬레 경은 한숨을 내쉬며 바닥에 주저앉아 있는 저먼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그를 일으켜 세우며 말했다.

“그만 가게. 전하께서 자네와 자네 집안에게 벌을 내리기 전에.”

“진짜야! 난 진짜로 미래를 봤다고!”

“발시안이 몰락하는 미래 말이지?”

에스컬레 경을 따라온 기사가 비웃으며 말했다. 처음부터 말도 안 되는 예언이라고 생각했다. 크리사면 몰라도 다아리브혼은 처음 대륙에 나타났을 때 빼고는 모습을 보인 적이 없다.

항간에는 다아리브혼이 죽은 게 아니냐는 소문이 있었을 정도다. 덕분에 죽은 드래곤의 둥지에서 보물을 찾겠다는 보물 사냥꾼들도 생겨났지만.

“그래! 다아리브혼이 살아 있잖아! 이 녀석이 그 증거야!”

저먼은 기사에게 벌컥 소리쳤다. 그의 예언은 틀리지 않았다. 다아리브혼이 발시안을 공격하지 않았다는 것만 다를 뿐이지 다아리브혼은 살아 있지 않은가. 하지만 기사들의 생각은 달랐다.

저먼을 비웃은 기사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 저먼에게 다가가 그의 한쪽 팔을 움켜잡았다.

그리고 그를 복도 반대편으로 끌고 가며 말했다.

“정신 차리게, 저먼 경. 자네가 맞춘 건 다아리브혼이 살아 있다는 것뿐이잖나. 그건 내 아들도 알고 있네.”

물론 기사의 아들은 안다기보다는 믿는 거지만.

기사의 말에 저먼은 목에 뭔가가 걸린 표정을 지었다. 아니다. 그는 진짜로 봤다. 자신의 인생을. 다아리브혼의 공격과 전염병으로 불바다가 된 영지를.

아버지와 두 형의 사망으로 생각지도 않던 자작이 되었지만 그리 즐겁지 않은 인생이었다. 그는 그걸 바꾸고 싶었을 뿐이다. 물론 거기서 약간의 이득을 얻는 건 당연했고.

“진짜로 미쳐 버린 모양이군.”

기사들에게 끌려가는 저먼을 보며 에스컬레 경은 엘리엇에게 말했다. 번즈는 속을 알 수 없는 표정으로 저먼을 쳐다보고 있었다.

“저먼 자작이 속상하겠어.”

에스컬레 경은 그렇게 말하고 여전히 아무 말도 없는 번즈의 어깨를 툭 쳤다. 그렇지 않냐는 태도에 엘리엇의 시선이 에스컬레 경을 향했다.

“글쎄.”

엘리엇은 한쪽 입술을 비틀어 웃었다. 과연 그럴까.

“저자에게 형이 있었던 거로 기억하는데.”

엘리엇의 말에 에스컬레 경이 어떻게 알았냐는 표정을 지었다.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저먼 자작의 셋째지. 위로 형이 둘 있고.”

심지어 큰 형에게는 자식도 있다. 즉, 저먼 자작은 후사 문제로 걱정이 전혀 없다는 말이다.

하지만 동시에 저먼 자작에게 재산도 작위도 물려줄 수 없는 자식이 둘이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엘리엇은 냉소적으로 말했다.

“저먼 자작이 좋아할 수도 있지.”

냉소적인 말에 에스컬레 경의 미간에 주름이 생겼다. 하지만 그 역시 엘리엇의 말이 맞을 수도 있다는 것을 알았다.

작위를 물려주지 못하는 자식들은 결국은 부모의 걱정거리가 된다. 특히나 저먼 자작처럼 부유하지 않은 귀족이라면 더더욱.

“궁금한 게 있는데.”

다시 시종이 번즈의 방을 안내하기 시작했다. 에스컬레 경은 엘리엇을 지켜 준다는 핑계로 그와 나란히 걸으며 입을 열었다.

“드래곤의 둥지는 어떻게 찾았나?”

저먼의 말이 아니었어도 궁금했다. 드래곤의 둥지는 깊숙이 숨겨져 있고, 보호돼 있다. 그걸 어떻게 찾은 걸까.

물론 에스컬레 경은 번즈도 예언자라는 저먼의 말을 믿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어떻게 찾았고 어떻게 들어간 걸까.

다들 그게 궁금할 것이다. 엘리엇은 천천히 말했다.

“어느 젊은 귀족이 드래곤의 둥지를 들어가려고 용병을 모은다는 소문을 들었지.”

그 젊은 귀족을 따라갔다는 말이다. 생각보다 훨씬 간단한 대답에 에스컬레 경은 맥이 빠졌다. 그는 헛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다들 괜히 복잡하게 생각하고 있었군, 그래. 그런 방법이 있었는데 말이야.”

엘리엇의 얼굴에 비딱한 미소가 떠올랐다. 그게 가장 그럴싸한 이야기다. 그가 미래를 봤다거나 하는 말도 안 되는 이야기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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