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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산파 역대급 천재-286화 (286/288)
  • 286화

    결착(20)

    이미 양신을 완성한 운호의 눈은 진기를 전혀 활용하지 않더라도 짙은 어둠을 꿰뚫어 볼 수 있었다. 하지만 그 동굴은 입구를 기준으로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마치 그곳만이 전혀 다른 세계인 것 같은 기이함이다.

    -불길하구나.

    굳이 파검의 말이 아니라도 느낄 수 있었다.

    어찌 모를까. 저 불길하기 짝이 없는 힘의 파동을.

    -들어갈 생각이냐?

    “글쎄요······.”

    운호의 시야가 점점 좁아졌다.

    그리고 그 좁아지는 시야만큼 세밀함은 올라갔다. 하지만 그런 운호의 감각에도 저 불길한 동굴에서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고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농밀한 어둠을 흡수하고 있음에도 그 끝은 그저 무저갱과 같은 공허였으니 누가 어둠을 빛의 부재라고 했던가. 저것은 빛의 부재가 아닌 어둠 그 자체였으며 아수라가 휘두르던 그 어둠 따위는 어린애들 장난이라고 불러도 괜찮을 무언가였다.

    운호가 가볍게 호흡했다.

    그리고 파검을 곧추세웠다.

    그리고 안개처럼 찐득하게 유형화된 마기 사이에서 홀로 화산처럼 바로 섰다.

    운호의 몸이 자색으로 서서히 물들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것조차 넘어서 자색빛의 서기가 사방으로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운호의 검이 닿는 공간.

    십만 대산의 가장 깊은 곳에 화산이 나타났다. 오직 운호의 주변에서 마기들이 흩어지고 화산의 신성하고 청량한 기운이 감돈다.

    운호가 검을 내리 그었다.

    굉음의 이치가 공간을 갈랐다. 몽원경에서 스스로 금강역사의 화신을 자처하던 활불의 육체조차 갈랐던 일격이었다. 산조차 허물 일격이라는 말에 가장 어울리는 막대한 경력이 뿜어졌다.

    “역시······.”

    호신강기? 아니, 아니다. 이것을 어찌 강기라고 부를 수 있을가. 그저 검붉은 마기가 단단히 뭉쳐 운호의 검격에 깍여 나갔다. 실로 무진장에 가까운 마기였다. 대체 얼마나 많은 것들이 저 마기를 만들기 위해 소모된 것일까.

    운호가 한 걸음을 나아가며 다시 한 번 검을 휘둘렀다.

    한 번으로 되지 않는다면 두 번으로 두 번으로도 되지 않는다면 세 번, 네 번으로.

    저 어두운 마기가 무진장하다고 하지만 이미 도가의 전설이라 불리던 양신(陽神)을 이뤘다. 비록 그 출력에는 한계가 있었으나 그 출력 이내에서 회복만큼은 무한에 가깝다. 물론 십만대산이라는 마기로 가득한 주변의 환경은 매우 열악했다. 허나 운호의 깨달음이 이미 천리(天理)에 이르렀으니 하늘의 인력을 각오한다면 고작 이러한 환경따위 그에게는 아무런 장애물이 될 수 없었다.

    -콰과과과광!!

    그야말로 압도적인 파괴.

    여전히 어딘가에서 밀려드는 마기의 양은 막대했으나 운호가 깍아내리는 양은 그 이상이었으니 어느새 주변에 안개처럼 자욱하던 마기가 조금씩 옅어졌다.

    그리고 마침내.

    -꽈드득

    무언가 쪼개지는 소리와 함께 어둠 그 자체였던, 아무것도 보이지 않던 동굴이 처음으로 자신의 내부를 드러냈다.

    좁은 입구 뒤로 넓게 펼쳐진 거대한 공동이 보였다.

    뭐라 말을 해야할까? 전체적으로 붉은빛깔을 띈 공동 사이로 하얀색의 선들이 그려져있는 그 형태는 마치 사람의 흉통을 둘러싼 갈비뼈를 닮았다. 그리고 그 정 가운데. 그곳에는 운호가 찾던 얼굴이 사이한 기운을 품고 가부좌를 튼 채 앉아 있었다.

    문답무용.

    출발하기 전 화산의 장문인인 현무에게는 최대한 노력 해보겠다고 말을 하였으나 지금의 상황은 도저히 그것을 염두에 둘 상황이 아니었다.

    납매, 매농, 자운, 굉음, 난풍, 무형, 건곤. 그리고 반야명현.

    여덟 개의 검술이 하나로 어우러졌다. 그리고 그로부터 하나의 꽃봉오리가 여덟 개의 화려한 잎을 피웠으니 천상의 향기가 그 검에서 풍겨나왔다.

    그리고 정확히 그 순간.

    가부좌를 틀고 앉아있던 이준형이 눈을 번쩍 떴다.

    그것을 뭐라 말해야 할까?

    불교의 탱화나 불상들을 보면 깨달은 이를 표현할 때 항상 머리 뒤에 빛나는 원을 그려 넣는다. 그것을 가리켜 광배(光背)라 부르는데 지금 이준형의 머리 뒤로 그와 유사한 무언가가 나타났다.

    하지만 그것은 결단코 빛이 아니었다. 정확히 그 반대. 검고 어둡고 칙칙하며 음습했다. 그러니 그것은 굳이 이름 붙이자면 암배(暗背)라 부름이 마땅하리라.

    두 눈을 뜬 이준형이 제 자리에서 일어나 양손을 내밀었다. 그것은 여유로운 동작처럼 보였으나 보이는 것 이상으로 신속하여 시간의 틈새를 파고드는 운호의 공격조차 그 동작이 끝나기 전까지 이준형에게 닿을 수 없었다.

    -두웅!!

    흡사 거대한 범종의 소리와 같은 울림이 울려 퍼졌다.

    운호가 휘두른 화산의 검은 이준형의 양손을 넘어서지 못했다.

    “운호야 인사도 제대로 하기 전에 대뜸 칼질부터 하다니 너무한 것 아니야? 우리 사이가 아무리 이렇게 됐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화산의 동문으로 몇 년을 함께 수련했는데 말이야.”

    답하지 않았다.

    조금 전의 일 검은 운호가 발할 수 있는 가장 파괴력 있는 한 수 였다. 하지만 어디 무공이라는 것이 가장 강력한 한 수로만 승부가 난다던가. 만약 그러했다면 과거 천무십칠성의 최강자는 걸왕 임이 마땅했다. 그의 항룡유회를 정면에서 막아낼 수 있는 이는 마지막, 심검을 깨달은 파검 정도밖에 없었을 터이니.

    하지만 모두가 천무십칠성의 최강자로 걸왕이 아닌 무신을 꼽은 이유는 무신은 화석신공으로 완성한 단단한 자신의 몸은 그저 무기일 뿐이고, 중요한 것은 그 무기를 휘두르는 무(武) 그 자체임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운호의 검이 움직였다.

    “하하하, 이 무공은 납매!! 납매검이로구나. 그래, 이 검술에는 아주 좋지 않은 추억이 있었지. 이제는 다 나았다지만 아직도 왼팔이 쑤셔오는 것 같다.”

    이준형의 탈을 쓴 그가 소리를 지르며 손을 떨쳤다.

    십삼 년 전. 아직 어렸던 이준형의 성취는 고작 자하기공 이단공에 불과했었다. 하지만 지금의 그는 달랐다. 그의 머리 뒤에 있던 둥근 어둠이 크게 확장됐다. 깨달음을 얻은 부처의 몸에 신광이 어리는 것처럼, 그의 몸에 어둠이 어렸다.

    자하기공 이단공에 불과했던 그가 천지를 뒤덮을 어둠을 휘감은 것처럼, 이제 막 포원공에 입문하여 납매의 법을 휘두르던 운호 역시 달라진 것은 마찬가지였다. 별빛을 휘감은 파검과 건곤의 법을 통하여 천리와 다름 없는 전지를 휘두르는 운호가 납매의 법을 따라 움직였으니 이준형이 휘감은 어둠에는 모든 것을 무(無)로 돌릴 힘이 있었지만 감히 운호의 검을 따라잡을 수 없었다.

    “그래!! 기억 난다. 그때도 그러했다. 마치 나를 놀리는 것 같은 검법이었지. 하지만 운호야. 그것 아느냐? 지금은 나도 알 것 같다. 네가 어째서 검을 이리 휘두르는지 말이다!!”

    -두근

    공동이 크게 울렸다.

    어둠을 뒤집어쓴 이준형이 환하게 웃었다. 그 검은 어둠 사이로도 타오르는 듯한 눈동자와 새하얀 치아가 선명하게 보인다.

    그저 거대한 힘을 휘두르기만 하던 양손이 엄정한 논리를 갖추고 움직이기 시작했다. 만약 납매의 법을 검이 아닌 양손으로 펼쳐낸다면 아마 이와 같지 않을까?

    별빛이 어둠을 깎아냈다.

    어둠 역시 별빛을 깎아냈다.

    공동이 다시 한번 더 크게 울렸다.

    어둠이 요동쳤다.

    처음에는 알 수 없었다.

    이 자욱한 어둠은 만마의 제왕을 자처하는 굴불신마의 감각조차 속일만큼 지독하였으니까. 하지만 저 먼 곳에서 연달아 터져나온 검격은 유형화된 마기를 깎아내려 결국 그 강렬한 존재감을 드러냈다.

    “해냈구나!!”

    적을 찾은 것이 분명하였다.

    그게 아니라면 이토록 강렬한 검격을 선보일 이유도, 그리고 흐릿하던 그의 감각이 그곳까지 미칠 이유도 없었으니까.

    잠깐의 시간.

    어느새 폭발적으로 느껴지던 운호의 기운은 다시금 어둠 속으로 잦아들었다.

    굴불신마는 그것이 적의 수괴가 부린 수작이라 짐작하였다.

    그렇다면 지금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한 가지.

    지금까지 미뤄뒀던 진법의 핵을 까부수고 여기 있는 놈들 머리통을 죄다 날려버린 다음 조금 전 운호의 기운이 폭발했던 곳으로 달려가 마교 대제사장의 목을 잡아 뜯는 일이었다.

    그의 오른손이 아수라의 팔목을 잡아챘다. 아수라가 진득한 어둠을 발출하여 그것을 떨쳐내려 했으나 늦었다. 이미 그의 몸은 굴불신마에게 가까워졌으니 오히려 그렇게 발출한 마기의 흐름을 따라 굴불신마의 몸이 크게 한바퀴를 회전하여 아수라의 옆구리를 후려 갈겼다.

    -꽈드득!!

    아수라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지금까지 그와 싸웠던 대부분의 이들이 그러했던 것처럼.

    물론 그 기괴한 회복력은 곧장 그의 몸을 복구시켰다.

    그리고 그것이야말로 굴불신마가 바라던 그대로였다.

    “저기로구나.”

    거센 기운의 흐름을 읽어냈다.

    십만대산의 대지가 뽑아낸 막대힌 기운의 흐름이 모여드는 곳.

    그리고 이 오물덩어리에게 그 기운을 쏟아내는 곳.

    굴불신마의 몸이 진법의 핵을 향해 움직였다.

    기묘할 정도로 평평한 대지 위에 세워진 거대한 검은 바윗돌.

    터무니 없는 양의 기운이 모여들고 있었다.

    굴불신마라면 아무리 거대한 돌덩이라도 가벼운 일수만으로 가루낼 수 있었다. 하지만 그는 본능적으로 저 바위는 보통 공격으로 부술 수 없음을 직감하였다.

    공간 그 자체를 초월하는 굴불신마의 절기가 펼쳐졌다.

    “안된다!!”

    어느새 몸을 회복한 아수라가 그를 향해 달려들었다.

    하지만 굴불신마 쪽이 한발 빨랐다.

    -쿠과과과광!!

    어마어마한 반탄력.

    거대한 바위를 두들긴 굴불신마도 그를 향해 달려들던 아수라도 모두 크게 튕겨 나갔다.

    자욱한 흙먼지가 퍼져나갔다. 하지만 흙먼지 따위는 굴불신마의 시야에 하등 방해가 될 수 없었다.

    거대한 바위가 있던 자리.

    무너진 돌무덤 사이로 기묘한 무언가가 홀로 존재하였다.

    “돌멩이?”

    검은 빛을 띈 엄지손톱만한 돌멩이.

    단 한 번의 진동으로 십만대산에서 발생하는 막대한 기운을 빨아들여 그것을 칠흑의 마기로 뒤바꾸고 있는 그것은 바로 현재불(現在佛). 샤카족 성자가 남기고 떠난 진신 사리였다.

    영물이 남긴 내단을 영단이라 한다.

    그렇다면 인간의 역사에 유일하다 알려진 인신(人神)이 남긴 이것은 대체 뭐라 불러야 할 것인가.

    굴불신마가 자신도 모르게 그것에 한 걸음 성큼 다가갔다.

    -후읍

    한 번의 호흡.

    터무니없이 정순한 마기가 그의 몸을 가득 채웠다.

    신물이다.

    굴불신마는 지금까지 신검이니, 신창이니 하는 영험한 물건들을 매우 많이 목격했다. 하지만 그 모든 것들도 지금 이 석가모니의 진신사리에 비하자면 그저 잡귀가 붙은 귀물에 불과했다.

    굴불신마가 생각했다.

    만약 천하에 이 신물을 소유할 자격이 있는 이가 있다면 그것은 만마의 종주인 자신 뿐이라고.

    그의 몸이 석가모니의 사리로 향했다.

    그 순간이었다.

    !?

    터무니없는 기운의 흐름.

    조금 전 살리답이 죽었을 때만큼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에 버금가는 막대한 기운의 흐름이 석가모니의 진신사리로 쏟아졌다.

    누군가의 혼과 백 그리고 육.

    인간의 모든 것을 연료 삼아 석가모니가 남기고 간 그것이 칠흑과도 같은 마기를 뿜어냈다.

    -꽈득

    너부러져 있던 아수라.

    그의 양손이 그림자에 묻혀 있었다. 그리고 그 그림자의 끝. 굴불신마의 굴강한 두 다리가 그림자에서 솟구쳐나온 검은 손에 휘감겨 있었다.

    은검귀조 박진문의 독문무공.

    “버러지 같은 쓰레기 놈이, 참으로 질기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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