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화산파 역대급 천재-284화 (284/288)

284화

결착(18)

한 무리를 이끄는 최고 지휘관이 홀로 적에게 돌격을 해온다? 상상하기 힘들다.

심지어 그 최고 지휘관이 일국의 왕이라면? 그것은 더더욱 상상하기 힘든 일이 된다.

하지만 영무결은 그 상상하기 힘든 일을 아무렇지 않게 해냈다.

그들이 이틀거리라고 계산했던 것은 당연히 양민을 기준으로 한 것이 아니었다. 일류 고수가 두 마리의 준마를 이끌고 쉼 없이 달렸을 때를 기준으로 한 이틀이다. 그것은 거의 이천 리에 가까운 험한 산길이었다.

헌데 구곡황하진이 펼쳐지고 고작 반나절.

아니 반나절도 채 걸리지 않았다. 무려 이천 리다. 그 먼 거리에서 이러한 징조를 읽어낸 것부터도 놀랍다. 하지만 분명 한 집단의 수장된 자로써 아무 말 없이 자리를 비우지도 않았을 터였다. 그 감각과 신속한 의사결정. 게다가 대체 여기까지를 얼마나 짧은 시간에 주파했는지도 가늠하기 힘들다.

그야말로 괴물이다.

“게다가 이 세상 유일무이한 천마로써 이렇게 재미난 짓을 벌였는데 어찌 내가 빠질 수 있을까.”

굴불신마의 피부에 악의로 가득한 마기의 흐름이 생생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그는 그 악의가 참으로 기꺼웠다. 그 악의 가득한 마기야말로 굴불신마가 다루는 힘의 근원이었으니까. 그리하여 그 더럽고 어두운 악의조차 그 앞에서는 순한 양과 같았으니 만약 이러한 기운이 없었더라면 아무리 굴불신마라 해도 이천 리나 되는 거리를 이렇게 단번에 주파하지는 못했으리라.

하지만 아쉬운 점은 아무리 그라고 해도 이 넓은 대지를 흐르는 도도한 마기의 흐름 자체를 어찌 할 수는 없다는 점이었다.

심지어 그 흐름의 중심에 가까워진 지금은 바로 손에 닿을 것 같은 마기조차 그의 의지대로 움직이지 않았으니 그렇게 흐르는 마기가 바로 저기 어딘가로 모여들었고 그렇게 모여든 기운이 또 다시 어딘가로 흘러갔다.

그리고 그 거대한 힘의 격류 가운데 스스로를 아수라라 칭하는 저 자가 있었다.

그가 힘의 파편을 취하고 있다고 해야 할까? 아니면 찌꺼기를 취하고 있다고 해야 할까. 아니, 어쩌면 거름망이라는 표현이 더 적합할지도 모르겠다.

“굴불신마!! 감히!! 내 앞에서 만마의 종주를 자처하느냐.”

“감히? 네까짓 게 뭐라고 감히라는 말을 붙인단 말이더냐. 내가 만마의 종주인 것은 누구 앞에 서건 너무나도 당연한 것을.”

“실로 우습구나!!”

아수라의 시선이 운호와 살리답의 싸움을 스쳤다.

그리고 굴불신마 역시 그것을 놓치지 않았다. 그 싸움은 분명 운호 쪽이 압도적으로 유리한 상황이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 표정에는 초조함이 보이지 않았다.

‘뭐지?’

하지만 고민할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

“그래, 좋다. 굴불신마!! 네가 진정 만마의 종주라면 어디 이것도 한번 감당해보아라.”

아수라의 몸이 마치 마른 흙이 물을 빨아들이는 것처럼 주변의 마기를 끌어당겼다. 그야말로 무진장에 가까운 힘. 스스로를 천마 마라 파피야스의 화신이라 자처하는 굴불신마로서도 쉽지 않은 규모의 힘이었다.

운호의 검이 침착하게 변했다.

그리고 그와 반대로 살리답의 움직임은 다급해졌다.

입장이 뒤바뀐 탓이었다.

지금까지 살리답은 시간만 끌면 결국 자신들이 승리할 것이라 믿었다. 그리고 그것은 사실이기도 했다. 하지만 굴불신마의 등장이 모든 것을 바꿔놓았다.

마음이 급해졌다.

그리고 그런 와중에 운호의 공세는 박차를 가할 생각을 하지 않았으니 어차피 시간이 흐른다면 그 승리가 자신에게 굳혀질 것을 익히 알기 때문이었다.

살리답이 시큰거리는 뼈마디에 진기를 가득 채웠다.

일단 크게 한번 창을 휘둘러 지금의 위기를 벗어나고 이 자리를 피함이 상책이다. 그리하여 여섯 제자들에게 합류를 한다면 상황을 반전시킬 수 있음이니 지금은 허장성세로라도 상대방을 일단 한 걸음 물러나게 함이 옳았다.

옛 산하를 되찾고 천자를 뵈러 가겠다. (待從頭 收拾舊山河 朝天闕).

살리답의 웅심이 드러나는 비장의 절초가 펼쳐졌다.

정면에서 맞붙기에는 심히 부담되는 일격. 지금 운호가 보여주는 태도가 지극히 소극적임을 생각한다면 여기서 일단 한 발 물러섬이 일반적이리라

역천신모(瀝泉神矛)가 비상했다.

하지만 운호의 선택은 그의 생각과는 달랐다.

물론 그렇다고 해도 그 절대적인 위력은 결코 작지 않았다. 하지만 이미 한차례 견식한 초식이었다. 심지어 그 위력도 이전만 못하다.

이미 신수 청랑의 갈기털이 절반 이상 뜯겨나갔으니 승천하는 용과 같았던 그 비장의 일초는 이제 목을 들어 상대를 위협하는 독사의 그것에 불과하였다.

운호의 눈이 빛났다.

본래라면 파탄 없이 무결할 초식 사이로 빈틈이 보였으니, 그것은 듬성듬성 비어 있는 청랑의 갈기털 사이였다. 운호가 휘두른 파검이 그 실낱과 같은 틈새로 날카롭게 파고들었다.

그리하여 파검이 창두를 스쳐 창대를 타고 내려갔다.

-티잉!!

그 공격에 화들짝 놀란 살리답이 손목을 튕겨 창대에 진동을 만들어냈다. 창대를 타고 내려가던 파검을 튕겨내려 함이었다.

그에 맞서 운호가 손에서 검을 놓았다.

이기어검의 일초였다.

그와 동시에 운호의 몸이 반바퀴 크게 돌아 살리답의 몸 바깥쪽으로 파고 들었다.

살리답의 왼쪽 옆구리를 노리는 일격.

살리답이 대경실색하여 정신없이 운호의 공격을 막아냈다.

하지만

-서걱

이기어검의 초식은 튕겨냈지만 몸속을 파고든 채 정신없이 휘둘러 오는 운호의 검결지는 피해낼 수 없었다. 다행히 오른손을 내밀어 몸통이 갈라지는 것은 막았으나 약지와 소지가 잘려 나가는 것은 막을 수 없었다.

서둘리 진기로 출혈을 막았으나 그 전력은 크게 약화된 상황.

기회를 잡은 운호의 공격이 멈추지 않았다.

-챙챙챙챙챙

운호의 의지를 따르는 파검이 미친 듯한 기세로 살리답을 몰아 붙인다. 그리고 그 틈 사이사이로 검결지를 쥔 운호의 손이 그를 찔러왔다.

파탄나지 않는 면면부절을 그 장기로 삼던 살리답의 무공이 점점 한계를 향해 치달았다.

여전히 그 진기에는 끊어짐이 없었으나 그 육체는 더 이상 움직일 수 없노라 비명을 내질렀다.

그리고 그리하여 마침내

운호의 검이 북원제국. 마지막 수호신의 목을 갈랐다.

깊게 난 상처를 따라 핏물이 울컥울컥 솟구쳤다. 살리답의 양손이 자신의 목을 움켜쥐었다. 그의 두 눈은 도저히 지금 이 상황을 믿을 수 없다고 소리치고 있었다.

하지만 현실은 냉엄하였으니 초절정 고수를 넘어 화경의 경지에 들어선 고수라 해도 목이 절반이나 잘려 나간 이상 불사 계통의 마공이나 역근 계통의 외공을 익히지 않은 다음에야 살아날 방도는 없었다.

물론 설사 그런 무공을 익혔다고 해도 목을 반이나 갈라놓고 그가 다시 살아나는 것을 지켜볼 바보는 없었으니 아무런 의미는 없었겠지만.

-푸욱

파검이 살리답의 심장을 갈랐다.

향년 백이십삼 세.

태조 홍무제와 성조 영락제에게 패배의 굴욕을 안겨주었던 대원제국의 마지막 수호신이 목숨을 잃었다.

아수라의 입장에서는 그야말로 절체절명의 위기 상황.

하지만 그는 오히려 득의양양하게 소리쳤다.

“되었다!!”

천하에서 가장 많은 업을 쌓은 이는 과연 누구인가.

두말할 것도 없다.

그것은 활불이다.

무려 오백 년에 가깝게 누적된 기억이다. 또한 그 삶 역시 하나하나 모두 범상치 않았으니 세상에 대체 누가 있어 그 거대한 업을 따라갈 수 있을까.

허면 그 다음은 누구일까?

그것 역시 명확했다.

천하에 활불에 버금가는 업을 쌓은 이는 오직 하나뿐이었으니 바로 지금 운호의 검에 고혼이 된 살리답이 그 주인공이다.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전쟁을 거쳤으며, 얼마나 많은 생이 그의 손에 사멸했고 또한 얼마나 많은 생이 그의 손에 구원을 얻었던가.

그는 그 시대 최고의 영웅이었던 태조 영락제의 대적자였으며, 승리자로 남은 성조 영락제의 대적자였고 유일한 세계제국인 원제국의 마지막 수호신이었다.

그가 쌓아 올린 막대한 백이.

그 사멸해가는 육신이 품고 있는 거대한 진기가.

인간을 초월해나가는 선명한 혼이

찐득한 마기로 가득한 십만 대산에 그대로 붙잡혔다.

십만대산이 품고 있는 이 시커먼 진법의 핵심은 영과 혼을 공명하여 육체와 백을 먼지로 돌리고 천상에 오르는 신선의 우화등선에서조차 그 육과 백을 훔쳐 오는 공능을 가지고 있었다.

아무리 시대의 영웅이라고 한들 누군가의 손에 살해당한 비루한 몸뚱이가 어찌 그 공능을 막을 수 있을까.

진법의 중심핵과 가장 가까운 곳이기 때문이었을까?

저 먼 곳에서 사망했던 박진문의 몸뚱이와는 다르게 살리답의 육체는 마치 시간을 수천 배쯤 빠르게 돌린 것처럼 썩어 사그라졌다.

그리하여 그곳에서부터 어마어마한 힘의 흐름이 생겨났다.

그리하여 진법의 중심핵이 회전했다.

살리답의 흔적이 그곳으로 빠르게 흘러 들어왔다.

진법의 중심핵은 묵빛으로 번들거리는 아주 작은 돌덩이였다.

구곡황하진.

그리고 봉신의 법.

봉신방연의에나 나올법한 신화적인 위력을 현세에 구현하고 있는 진법의 핵심이다. 범상한 물건일 리 없었다.

그래, 그것은 스스로를 존자라 자칭하는 티샤 마이트레야의 스승이었고 이 시대, 역사가 기록하는 마지막 신이라 볼 수 있는 티샤 마이트레야의 자취였으니. 그것이야말로 현재불이라 불리우는 석가모니불의 진신 사리였다.

신의 흔적 앞에는 살리답이라는 일세의 영웅의 모든 것조차 그 앞에는 한낱 인간의 흔적에 불과하였다. 거대한 마기와 그 마기에 스며있는 기억의 찌꺼기들이 스스로를 아수라라 칭하는 이에게 흘러갔다.

아수라의 외침, 그리고 그 거대한 힘의 격류에서 이상함을 느끼지 못한다면 바보일 것이다.

굴불신마가 가진바 힘을 모조리 끌어냈다.

천마의 공덕이 지대함을 부처조차도 인정하였으니, 그 지대함을 어찌 말로 다 설명할 수 있을까.

천마신공(天魔神功)

마과공덕불시인(魔誇功德佛是認).

다섯이나 되는 초절정 고수를 일수에 패퇴시켰던 천마신공의 절기가 펼쳐졌다.

마기로 가득한 공간이 일그러졌다.

그리고 구곡황하진의 중심핵으로 흘러들어가는 막대한 힘의 흐름과 중심핵에서 다시 아수라에게 뿜어져 나오는 힘의 흐름 역시 일그러졌다.

아수라가 광소했다.

“이미 늦었다!!”

살리답의 기억이 흘러들어왔다.

그리하여 살리답이 쌓아 올린 무공들이 그의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그를 구성하던 온갖 찌꺼기가 아수라의 일부가 되었으니 어느새 바닥을 구르던 역천신모가 아수라의 손에 들어왔다.

가장 선명한 기억을 따라 명제국과 마지막까지 항전하였던 북원의 마지막 무공이 펼쳐졌다.

어마어마한 힘의 충돌.

어찌나 거대한 힘의 충돌이었는지 단순히 그 충돌의 여파를 피하기 위하여 종화를 비롯한 네 명의 초절정 고수, 그리고 도륜과 병조량을 비롯한 세 명의 천급 마인들은 사력을 다해야 했다.

“아니, 아직 늦지 않았다.”

그리고 그 사이에서 운호가 검을 휘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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