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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산파 역대급 천재-281화 (281/288)
  • 281화

    결착(15)

    -늙은이가 허세가 심하구나!! 장성의 경계는 삼엄하다!! 어찌 대군을 이끌고 내려올 수 있을까!!

    “누가 대군을 이끌고 내려왔다 하였느냐. 그저 본좌와 제자 여섯이면 충분한 것을.”

    -멍청한 소리!! 너희들의 빈 자리를 북병이 놓칠 것 같더냐!! 그들은 절대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다!! 또한 황실 역시도 결코 좌시하지 않을 것이다!!

    “흘흘흘, 그래, 그래. 물론 팽야천이 이끄는 북병은 제법 매섭지. 하지만 글쎄······. 그들이 움직일까?”

    -헛소리!!

    그래, 황실의 사탕발림이 거짓이고, 기습적으로 팽야천이 움직이는 북병이 쳐들어올지도 모른다. 하지만 설사 그들이 움직인다고 해도 이것은 원제국의 미래를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살리답이 속으로 말을 삼켰다.

    집단이 강해지는 방법은 무엇인가.

    원제국의 마지막 불꽃인 살리답은 그것을 제국의 패망에서 찾았다.

    내부적으로는 부정과 부패를 척결하고, 외부적으로는 전력을 투사하지 않는다.

    그렇게 무려 팔십 년.

    물론 중간중간 거대한 전투들이 있었다.

    태조 홍무제와 성조 영락제의 총 다섯 번에 걸친 원정. 그 전투로 인하여 대체 얼마나 많은 이들이 죽어 나갔던가.

    하지만 그런 고난 속에서도 살리답은 제자들을 키워냈으며 정병을 양성하여 국가를 안정시켰다. 비록 그들이 쫓겨난 초원에는 중원과 같은 풍족함은 없었으나 세계제국을 자랑했던 원제국의 저력은 쉽게 사그라지지 않았다.

    수만에서 시작하여 최종적으로 완성시킨 열둘의 초절정 고수.

    그것은 북원의 인구수가 제국의 십분지 일도 채 되지 않음을 생각하면 실로 터무니 없는 성과였다.

    그 모든 것을 이룩해낸 살리답 본인이 늙어 죽어간다.

    뭐, 괜찮았을지도 모른다. 만약 열두 명의 제자 가운데 누군가 하나라도 살리답의 자리를 대신할만큼 성장했었다면 말이다.

    하지만 그들은 그렇지 못했다.

    아무도, 그 누구도 살리답 자신을 대신할 수 없었다. 그렇기에 무려 여섯을 데리고 이 먼 곳까지 내려올 수밖에 없었다.

    지금 중요한 것은 대제사장이 말하는 불로의 비법이다.

    올해로 127세.

    살리답은 자신의 수명이 이미 다했음을 느꼈다. 하늘에 닿은 무공으로 억지로 잡아놓은 그 목숨을 연장시켜야했다. 그리고 그것은 단순히 오래 살고자 하는 노인의 욕망이 아니었다. 그것은 대원제국의 미래를 위해 꼭 필요한 일이다.

    살리답은 스스로에게 그렇게 되뇌며 창을 휘둘러 운호의 검을 밀어냈다.

    어느새 사라진 아수라가 저 멀리서 날뛰기 시작했다.

    그는 운호에게는 너무 쉬운 상대였으나 그를 따라온 초절정의 고수들에게는 절대 쉽지 않은 상대였다.

    종화의 종남검이 크게 진동했다.

    수백 년간 이어온 그 퀘퀘묵은 전통의 검은 탄성이 매우 부족하였다. 그 덕분에 그 충격이 검을 쥔 종화의 손에 그대로 전해졌다.

    그녀의 얼굴이 크게 일그러졌다.

    하지만 그럼에도 검을 쥔 손은 마치 천년 고목의 뿌리처럼 단단하게 검병을 놓치지 않았다. 이 정도 충격은 이미 익숙했다. 조왕 주고수가 휘두르던 무형이라는 이름의 빛나는 검강 역시 위력 면에서는 아수라가 휘두르는 저 거대한 마기에 뒤지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그녀의 상대는 아수라만이 아니었다. 광비검 병조량의 검강이 아수라의 공격에 크게 밀려나는 종화를 위협했다.

    “어딜 감히!!”

    어느새 나타난 혁리광이 그 공격을 대신 받아냈다.

    도륜을 상대하는 모용준경이 까드득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그의 할아버지에게는 상대가 되지 않았던 핏빛의 괴물이었으나 모용 준경에게는 버거운 상대였다. 날카롭게 칼을 휘둘러 경박한 노인을 밀어낸 종자명이 어느새 도륜의 등 뒤에서 나타나 그 거대한 등짝에 얇은 자상을 만들었다.

    아무 말도 할 수 없는 종자명의 시선이 한층 더 붉게 타올랐다.

    도륜에게서 그의 모든 것을 앗아갔던 괴물을 떠올린 탓이다.

    싸움이 이어졌다.

    그러다 보니 어느새 각자의 위치에서 상대와 싸움을 이어나가던 네 명의 초절정 고수가 자연스럽게 모였다.

    지난 육 개월.

    그들은 함께 절차탁마를 해왔다. 물론 그렇다고 갑자기 저 터무니없는 힘을 휘두르는 괴물을 이길 수 있다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들은 손발을 맞춰 운호를 상대한 경험이 매우 많았다. 그렇기에 합공을 통해 터무니 없는 고수를 상대하는 것이 비교적 익숙했다. 버텨낼 수 있다.

    당연하게도 적들 역시 한곳으로 모여들었다.

    하지만 때론 합공이 단순히 그들의 힘을 다 더한 것 이상의 효과를 만들어내는 것처럼 때론 합공은 그들의 힘을 다 더한 것에 터무니 없이 못 미치는 효과를 만들어내기도 한다.

    광비검 병조량이나 그 경박한 노인은 괜찮았다.

    하지만 도륜.

    이성을 잃고 날뛰는 그 핏빛의 거한에게는 합공이라는 개념이 존재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것은 터무니 없이 거대한 힘을 휘두르는 아수라 역시 마찬가지였다.

    도륜과 아수라의 합이 전혀 맞지 않았다.

    그 삐그덕 거리는 합을 보완하는데 병조량과 노인이 최선을 다했다.

    그렇게 상대방의 불협화음이 만들어낸 아슬아슬한 균형이 만들어졌다.

    그러한 상황 속에서 운호가 자신이 휘두르는 검에 약간의 힘을 더했다.

    살리답이 그것을 놓치지 않았다. 길항 상태에 있던 창에 한순간 힘을 빼고 그로 인하여 휘청이는 검을 후려쳤다.

    실착이었다.

    아군의 불리함을 참지 못하여 만들어낸 작은 실수. 물론 그 가운데도 확률 적으로 이득을 볼 것이라는 계산이 있었다.

    하지만 상대는 살리답.

    무려 두 명의 황제를 패퇴시키고 패망하던 제국을 지금의 위치까지 되살려낸 괴물 중의 괴물이었다.

    운호가 이러한 경지에 이른 이후 처음으로 본 손해. 그가 크게 뒤로 세 걸음을 물러났다.

    “쯧, 어린놈이 참으로 성급하구나. 너는 네 상대가 누구라 생각하는 것이냐.”

    살리답이 약간의 우세를 놓치지 않았다. 그의 창이 순식간에 쏟아졌다.

    그것은 아수라가 쏟아내던 그 의미 없는 마기의 남발과는 달랐다. 운호가 침착하게 그 창을 하나씩 쳐나갔다. 흘릴 것은 흘려내고 쳐낼 것은 쳐냈다. 그리하여 약간의 손해를 감수하여 더 큰 손해를 막아낸다.

    “역시!!”

    살리답이 운호의 그 수비에 감탄했다.

    수많은 허초와 실초들.

    그리고 그것을 통하여 얻어내고자 하는 궁극적인 목표를 이 아이는 순식간에 간파해낸다. 백 년을 넘게 무공을 수련해왔건만 수 싸움으로는 도저히 상대할 수 없었다.

    하지만 그래도 괜찮았다.

    어디 싸움이 상대방의 수법을 읽어낸다고 끝나는 것이던가.

    백 년이 넘는 세월 동안 무공에 매진했다.

    역사상 가장 뛰어난 영약들이 그에게 투입됐고 저 중원의 황제들과 벌였던 피 튀겼던 실전들이 그를 담금질해주었다.

    압도적 경험.

    그리고 그 세월로 완성된 무공은 쉽지 않았다. 운호와 같은 재능을 타고 나지는 못했으나 그 어마어마한 경험이 그와 흡사한 감각을 만들어냈다.

    창과 검이 어우러져 서로가 생각하는 정답을 향해 질주했다.

    그렇게 약 사십 초.

    운호가 생각했다. 쉽지 않다. 최선에 최선을 거듭한다고 해도 절대 쉽지 않다. 물론 이대로 몇 시진씩 장기전으로 끌고 간다면 어렵지 않게 이길 수는 있다. 살리답의 내공이 천인합일에 이르렀다고는 하지만 그 내공을 운용하는 몸이 늙어 바스라지기 일보 직전이었으니까.

    하지만 그것이야말로 상대방의 노림수 그대로였다.

    시간은 그들의 편이다.

    만약 저기서 그저 버티고 있는 이들이 패배한다면.

    만약 본대에 몰려간 살리답의 제자들이 전황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면.

    그렇기에 필요한 것은 속전속결이다.

    살리답이 웃었다.

    황제의 원정들 역시 그러했다. 특히 명제국의 초대 황제 실로 전쟁의 신이라는 칭호가 어울릴만한 인물이었다. 그는 전장에서 최선의 선택이 무엇인지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살리답은 패배하지 않았다.

    비결은 간단했다. 상대에게 쥐어지는 최선의 선택지가 승리가 아닌 최소한의 상처만이 남는 후퇴가 되도록 강요하는 것이다.

    “아이야. 그만 물러난다면 잡지 않겠다. 알다시피 이 싸움에서 나는 그저 용병일 뿐이다. 굳이 기를 쓰고 싸울 필요가 없다는 의미지. 본좌가 저들에게 부탁받은 것은 그저 향후 일 년 동안 마교를 돕는 일이다. 이후는 알 바 없다. 만약 네가 지금 당장 저들을 데리고 본대로 돌아간다면 비록 피해는 제법 입겠지만 그래도 후퇴는 할 수 있을 것이다. 게다가 이제 이러한 절진이 있는 것을 알았으니 다음 원정에는 그만한 대비도 할 수 있겠지.”

    운호는 답을 하지 않았다.

    살리답이 창을 크게 휘둘렀다.

    그 틈으로 운호가 검을 찔러 넣었으나 소용 없었다. 창두와 창신의 경계점에 묶인 수실이 흩날렸다.

    -타다다다다닥

    전설상의 천잠사라도 되는 것일까? 터무니 없는 인장력이다. 대체 무슨 소재로 만들어졌는지는 모르겠으나 아무리 살리답의 내공이 작용한다고 해도 운호의 검강 조차 버텨낸다.

    살리답이 비릿하게 웃었다.

    “신수 청랑의 갈기털이다. 한 가닥으로 능히 만근의 무게를 감당하지.”

    그 순간 운호가 손목을 튕겨냈다.

    날카로운 검의 움직임. 운호의 손끝을 떠난 검이 어검의 이치를 따라 살리답의 목을 위협했다. 살리답이 현란하게 몸을 움직여 그 검극을 피했다.

    그리고 그 순간 운호의 마음이 파검을 떠났다.

    검의 움직임이 미묘하게 느려졌다.

    그리고 그것으로 살리답은 많은 것을 유추할 수 있었다. 신령이 깃든 검이 홀로 움직이는 것은 흔한 일은 아니지만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그렇다면 지금 이 상황에 신령이 깃든 검이 홀로 움직일 이유는 무엇인가.

    살리답의 손에서 숨겨둔 한 수가 펼쳐졌다.

    과거 남송의 마지막 수호신이었던 악비.

    그가 사용했다고 전해지는 신창 역천신(瀝泉神).

    살리답은 망국의 마지막 기둥으로써 그 악비와 자신이 참으로 닮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악비는 실패했지만 그는 다르리라.

    악비의 황제인 송고종은 악신 진회를 신뢰하여 그를 믿지 않았으나, 북원제국의 황제인 중종 울루그 테무르 칸은 오직 그를 믿고 있다.

    소년의 머리는 어느새 희게 새어 슬픔만이 절절하다. (白了少年頭 空悲切).

    그리하여 역천신이 살리답의 그 마음에 응답하였다.

    용이 되지 못한 이무기가 깃든 창이 신수 청랑의 갈기털을 얻었으니 적어도 지금 이 순간 그 위세만큼은 승천하는 용에 뒤지지 않았다.

    파검이 섣불리 그 창에 부딪히지 못하고 높게 솟구쳤다.

    그 창 앞에 선 운호의 손에는 검이 없었다.

    하지만 마음은 달랐다.

    운호가 검을 쥐지 않은 왼손 검결지를 쭈욱 내밀었다.

    마치 그것이 한 자루 날카로운 검이라도 되는 것처럼.

    운호의 손끝으로 유형의 강기가 솟아났다.

    수강(手罡)? 아니다.

    비록 그 손은 검을 쥐지 않은 적수공권이었으나 그 마음만큼은 검과 같았으니 이것은 마땅히 마음의 검(心劍)이라 칭함이 옳았다.

    한 번, 한 번의 부딪힘마다 포탄이 터지는 것 같은 굉음이 터져 나왔다.

    살리답의 절기는 마치 춤과 같았다. 운호의 심검과 부딪히는 순간순간조차도 이미 다 초식의 흐름안에 포함된 것처럼 그 흐름은 면면부절하여 끊김이 없었다.

    과연 백이십 년을 넘게 살아온 노괴물이 비장의 절초라 자랑할만한 초식이었다.

    하지만 가히 상성이 좋지 않았다.

    적어도 초식에 관해서는 운호는 천하의 그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았다. 그가 가진 천재성이 백이십년의 경험을 압도한다. 물론 단순히 그 이유만은 아니었다. 운호는 오직 살리답과의 격검에만 정신을 집중하고 있는 반면, 살리답은 정신의 한 가닥을 하늘을 유영하는 신검에게 할당해야만했다.

    덕분에 본래라면 끊기지 않아야 하는 살리답의 초식이 파탄을 향해 달려간다.

    그리하여 그가 마지막 숨겨둔 밑천을 털어냈으니 마침내 그의 손에 꿈틀대던 역천신이라는 이무기가 한 마리 용처럼 비상하였다.

    옛 산하를 되찾고 천자를 뵈러 가겠다. (待從頭 收拾舊山河 朝天闕).

    바로 그 순간.

    하늘을 유영하던 파검이 벼락처럼 내리꽂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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