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화산파 역대급 천재-275화 (275/288)

275화

결착(9)

대륙은 넓다.

저 북쪽 끝 모용 세가에서 남쪽 끝 십만대산까지는 직선 거리로만 일만 리. 험한 산을 돌고 깊은 강을 피해 길을 찾아 걸어온다면 그 거리가 무려 일만오천 리에 달한다. 범인의 경우 그만한 거리를 이동하려면 적어도 서너 달은 잡아야 한다. 심지어 무림인이라고 해도 일만오천 리의 거리는 쉽지 않다.

하지만 이번 경우는 조금 달랐다. 참여 인원 개개인이 최소가 일류. 게다가 모든 무인들에게 두 마리씩 준마가 지급됐다. 이번 원정이 끝날 때까지의 일시적인 지급이라고 해도 원정 도중 상하거나 죽는 말들. 그리고 그 기간의 금융 비용을 생각하면 그것만으로도 천문학적인 금액이다.

그리고 그 천문학적인 금액을 소모한 결과 모용 세가에서 출발한 무인들이 광서성까지 도착하는데 걸린 시간은 고작 보름. 말을 두 마리를 교대로 타고, 중간중간 경공까지 활용하며 이동한 결과였다.

또한, 다른 지역에서 출발한 무인들 역시 크게 다르지 않았다.

물론 한상은 중원 전체를 통틀어 손에 꼽을 만큼 부유한 상단이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수준의 자금 동원력이다.

-젠장······. 결국 가격이 오를 채권이었는데······. 내가 조금만 더 늦게 죽었어도······. 구파 일방이 아니라 구파 이방이 됐을 텐데!!

“우화등선 하셔 놓고 그걸 죽었다고 하시면······. 게다가 그랬으면 그때 거기 있던 사람들이 전부 죽었겠죠.”

파검도 한 번 구매했다가 집안을 파산으로 밀어 넣었던 무림맹 발 전쟁 채권들이 부리나케 팔려나갔다.

“조왕 전하. 감사합니다.”

“감사는 무슨. 북방의 위협만 아니었더라도 황군이 나서야 당연했을 일을 그저 금덩어리 조금으로 도운 것뿐인데. 게다가 어차피 이기기만 하면 채권의 가치는 더 높아질 것 아닌가.”

한상을 제외한 천하 사대 상단 가운데 나머지 셋은 황실의 비호를 받는다. 당연하다. 그 세 상단의 실질적인 주인이 황실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세 상단의 실질적인 주인이 모두 같은가를 묻는다면 꼭 그렇다고 말하기는 힘들다. 황실은 거대한 집단이다. 세 개의 상단은 각각 황제. 그리고 내명부. 그리고 황족들에게 나뉘어있다. 그리고 조왕은 당대 황실수호검의 정명한 주인이자 황족을 대표하는 고수로 상단에 가장 큰 지분을 가지고 있었다.

즉 지금 무림맹의 이러한 무한정한 자금 사용에는 한상 뿐만이 아니라 황실의 지원을 받는 휘상의 거대한 투자가 있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남궁강은 새삼 운호가 이번 원정에 얼마나 거대한 몫을 하고 있는지를 실감했다. 당장 서북쪽에서 곤륜, 공동과 함께 내려오고 있는 서평왕부의 합류 역시 운호의 공이 아니던가.

물론 아무것도 모르는 이들은 이번 원정에 참여한 화산파의 규모에 대하여 이러쿵저러쿵 입방아를 찧고 있었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본산에서 하나도 합류하지 않겠다니. 솔직히 너무한 거 아닌가? 최소한의 성의가 있는 법인데.”

“그래도 신검이 모두를 인솔하지 않던가.”

“흥, 그래봐야 초절정 고수 하나 아닌가.”

“사람들 말로는 초절정을 넘어선 뭐 화경의 경지라고 하던데?”

“세상에 자네는 그런 말을 믿나? 뭐, 설사 그런 경지가 있다손 치더라도 이제 고작 이립도 되지 않은 어린 녀석인 것을.”

그의 아들인 남궁철은 어디서 그런 이야기가 들릴 때마다 쌍지팡이를 짚고 나서려 했지만 남궁강은 그런 아들을 말렸다.

낭중지추라.

주머니에 든 송곳은 결국 주머니를 뚫고 나오기 마련이다. 심지어 운호는 그냥 송곳 수준도 아니지 않던가. 본래 사람의 생각은 말로는 바꾸기 힘들다. 지금 이러쿵 저러쿵 떠드는 이들도 결국 그의 무공을 직접 견식 한다면 달라질 수밖에 없다.

“결국 우리의 역할은 각 문파의 초절정 고수들을 최대한 소모 시키지 않은 채 마교의 대주교 앞에 데려다 두는 것이다.”

남궁강은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무한 혈사 당시 마교의 대주교가 보여줬던 그 터무니 없는 위업을. 결국 그 앞에서는 절정의 고수 또한 아무런 의미가 없는 존재다.

오직 초절정.

혹은 그 이상.

“특히 운호 그 아이와 서평왕 전하. 두 사람을 대주교 앞에 아무런 피해 없이 데려다 놓을 수 있다면 우리의 승리다.”

“네, 알겠습니다. 아버지.”

하지만 그렇다고 초절정 고수들과 운호, 그리고 굴불신마를 모두 꽁꽁 싸맨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그들은 그 자체로 비대칭 전력이다.

“소문에 따르자면 궁익 좌장군이 이끄는 남로군 팔백을 전멸시킨 것이 고작 한 명의 마인이었다고 한다. 물론 목격자가 없는 일에 소문이란 결국 그것을 행한 이의 입에서 나온 것일 수밖에 없으니 마교에서 퍼트린 헛소문일 가능성도 크다. 하지만 무한에서 목격했던 대제사장의 무위라면······. 심지어 십만대산이라는 환경까지 돕는다면 난 그것도 충분히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너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이번 토벌전을 위해서 모이는 초절정 고수의 숫자만 해도 무려 열넷입니다. 게다가 그들이 화산파에 쳐들어가서 입은 피해도 보고 받지 않으셨습니까.”

“그래, 그랬지. 하지만 명심해야한다. 그들이 화산파에 쳐들어가서 피해를 입은 것은 그곳이 화산이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마찬가지로 우리 역시 십만대산에서 그런 꼴을 당할 수도 있음이다.”

“네, 명심하겠습니다.”

두 명의 절정 고수와 일흔아홉의 일류 고수.

운호는 그들을 직접 지휘할 생각이 없었다. 물론 가능은 할 것이다. 그 역시 그리 길지는 않았지만 군문에 종사했던 경험이 있었으니까.

하지만 그의 곁에는 각지에서 모인 강호의 오합지졸을 하나의 단체로 일궈낼 수 있는 훨씬 효율적인 인재들이 존재했다.

“그러면 잘 부탁드립니다.”

“부탁은 무슨. 그냥 명령이라고 하십쇼.”

“맞습니다. 게다가 고작 백 명도 안 되는 인원인데 뭐 어렵지도 않을 겁니다. 안그렇수 형님?”

“쯧, 이 멍청한 녀석아. 서평왕부에 모이는 자원들과 이렇게 모은 자원이 어디 같겠느냐? 게다가 절정이라는 그 두 노인은 딱 봐도 너보다 실력이 위인 것 같던데 절대 호락호락하지는 않을 것이다.”

장족이라는 대적을 앞에 두고 생사를 오가는 싸움에 익숙한 서장의 무인들과 중원의 무인들은 그 성향부터 다를 수밖에 없다. 단순한 장당과 달리 요 몇 년. 남궁 세가와 한상의 일을 도우며 문파의 창립을 준비해온 왕효는 그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거야 붙어봐야 아는 일이지. 딱 봐도 뼈마디가 삭아서 기세에 비해 실력은 부족할 것 같더만.”“아무튼 전 두 분만 믿겠습니다.”

“하하, 그저 큰 배에 탔다고 생각하고 안심하셔도 됩니다.”

영 미덥지 못한 장당의 말이었지만 별다른 방법이 없었다.

묘하게 약간의 불안감이 있었다. 사실 어떻게 생각해보면 당연한 일이다. 어떻게 큰 일을 앞두고 불안이 아예 생기지 않을 수 있을까.

하지만 운호의 불안은 그와는 조금 다른 부분에 존재했다.

우리의 세력이 더 강대하다는 것을 적들도 안다. 그리고 광서대장군부의 공격으로 인해 자신들의 위치가 발각됐다는 것도 역시 알고 있다.

천년의 역사를 가진 마교다.

이천 년을 살아왔다 주장하는 괴물이다.

숨겨둔 비장의 방법이 어찌 없을 것이며, 쌓아둔 인연이 어찌 없을까.

고작 이립도 되지 않은 운호가 서평왕부의 인연을 동원한 것처럼 그들 역시 그가 모르는 무언가가 있다고 생각하는 편이 현명하리라.

그렇기에 운호는 쉴 수 없었다.

과연 나의 화산검은 완성됐는가. 자신의 숙소로 돌아온 운호가 작은 마당 위에서 검을 뽑았다.

운호의 검이 웅장한 산맥을 그렸다.

저 북쪽의 운대봉부터 시작하여 낙안봉과 연화봉 운대봉 그리고 옥녀봉까지. 그리고 그 사이로 한 줌 부드러운 바람이 불어온다. 명현 신니가 불어넣은 부처의 자비다.

선단으로 재탄생한 그의 몸이 희미해져 간다.

그리하여 자신의 검이 그려내는 영역에서 운호는 신이 되었다. 이것이야말로 본래 펼쳐내던 화산검에 최근 깨달은 건곤검이 더해진 결과물이다.

전지하며 전능하다.

이것에 부족함이 있는가?

-후우

가볍게 숨을 내뱉은 운호가 납검했다.

-짝짝짝

그리고 어디선가 박수 소리가 들려왔다. 오직 검이 닿는 거리로 감각이 제한되는 건곤검의 부작용이다. 누군가가 접근하는 것을 미리 눈치챌 수가 없다. 하지만 애당초 사람의 장막으로 가득한 이곳에 접근했다는 것 자체가 적일 수가 없다.

운호의 시선이 그쪽을 향했다.

익숙한 얼굴이었다. 하지만 여기에서 볼만한 얼굴들이 아니었다. 대체 어떻게?

“실로 장관이로군. 이야기로 들을 때만 하더라도 완전 허튼소리인 줄 알았거늘.”

“거참, 내가 몇 번이나 말하지 않았는가. 아예 종자가 다르다고.”

“아니, 자네도 이후로 들리는 소문은 영 믿기 힘들다고 하지 않았나.”

“조 총관님? 그리고 박 내관님? 아니, 여긴 대체 어떻게. 분명 황실에서 지원은 없다고 들었는데요.”

근육질의 듬직한 체구. 몇 년이 흘렀지만, 박 내관은 외적으로는 크게 변한 것이 없어 보였다. 굳이 따지자면 코 주변에 붙인 수염 정도? 운호의 시선을 확인한 그가 짐짓 헛기침을 내뱉었다.

“어험, 그대가 보기에는 어떻소. 화경의 경지로 봐도 감쪽같지 않소이까? 내가 안 간다고 안 간다고 하는 걸 최태감이 부득불 부탁하기에 조건으로 받아온 가발(假髮)이요.”

“쯧, 고작 가짜 수염 하나에 넘어가 여기까지 내려오다니. 자네가 그러니 나까지 품격이 떨어져 보이지 않는가. 나는 이 자와 달리 황상께서 워낙 간곡히 부탁하시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내려왔다.”

“품격은 무슨. 그리고 어차피 황성에서도 완전히 뒷방 늙은이가 되어 나랑 같이 하릴 없이 시간만 보내다 내려와 놓고는.”

초절정 고수 둘의 합류라니.

실로 놀라운 소식이었다. 운호가 달려 나가 두 사람의 손을 덥썩 잡았다.

“정말 듣던 중 반가운 소식입니다. 두 분께서 도우러 와 주시다니 그야말로 천군만마를 얻은 것 같습니다.”

“같은 게 아니라. 실제로 우리 둘이면 천군만마보다 더한 전력이지.”

“거참, 사람 까칠하기는. 그러니까 금의위에서도 후배들한테 그렇게 밀려나는 거 아니요.”

혹참가포 조충은 처음 봤을 때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은검귀조 박진문의 경우 변함없는 외양과 달리 그 성정이 너무 변해 있었다. 하긴, 오 년이 훨씬 넘는 세월이다. 사람의 성품이 변한다고 해도 이상할 것은 없다.

“하지만 아쉽게도 우리는 너를 도울 수 없다.”

“네? 조 총관님 그게 무슨?”

운호의 질문에 조충 대신 박진문이 답했다.

“하하, 백 장군. 아니, 이제는 도사님이라고 불러야겠구려. 우리들은 조왕 전하가 혹시라도 처할지 모르는 위험에서 보호하기 위해 황상께서 직접 내려보낸 사람들이요. 엄밀히 말하자면 지원군이라 볼 수는 없지.”

“사실 본래는 호위도 은밀하게 하라고 명하셨지만, 이 작자가 그건 불가능할거라고 하더구나. 뭐 여기 와서 보니 그건 이 작자의 말이 맞는 것 같구나.”

“그러니까 그 말인즉 두 분은 조왕 전하의 수신호위란 말씀이십니까?”

조충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공식적으로는 그렇다.”

“네, 그러니 저희가 공식적으로 손을 쓸 수 있는 것은 오직 조왕 전하께서 위험에 처했을 때뿐입니다.”

박진문이 씨익 웃었다.

그리고 운호가 그 웃음의 의미를 완벽하게 알아들었다.

초절정 고수.

그리고 그를 호위하는 두 명의 초절정 고수.

바로 이 순간 조왕 주고수의 위치가 정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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