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화산파 역대급 천재-267화 (267/288)

267화

결착(1)

“쳇, 죽어버렸군.”

두 쪽으로 갈라진 녀석이야 당연히 즉사였다. 하지만 나머지 한 녀석은 손속에 사정을 뒀는데 사정을 너무 뒀던 모양이다. 자살할 힘이 남아있었다니······.

“그나저나······. 복장을 보아하니 강호의 무인인 듯싶은데. 어찌하여 여기서 마인들과 드잡이질을 하고 있는가. 분명 이곳은 대장군부에서 통제하는 지역이라 주변에 일러두었거늘.”

“큰 키에 대부. 그리고 그 호랑이 가죽까지······. 광서의 재림공명(再臨公明) 궁익이 바로 그대구려.”

“내가 궁가인 건 광서에 사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고. 중요한 것은 노인장이 누구냐 하는 것인데······. 감히 천하의 거지 가운데서 나에게 평대를 할만한 이는 걸왕 소진평밖에 생각나는 이가 없다만 그렇다고 하기에는 그대의 몰골이 영 내가 듣던 것과는 다르구나.”

“나이를 먹으면 쇠하는 것은 자연의 이치이니 어쩔 수 없는 노릇 아니겠소. 그보다 내 살려줘서 고맙다는 말을 먼저 하는 것을 잊었구려. 궁 장군. 고맙소.”

궁익이 고개를 저었다.

“걸왕 그대를 살리려고 한 일도 아닌데 고마울 것 없다. 그보다 어찌하여 여기서 마인들과 드잡이질이었는지를 말하라.”

“마인들을 추적중이었소. 그러다가 이 모양 이꼴이 됐지만.”

“마인들을 추적? 그게 무슨 소리냐? 설마 대월국에서부터 마인들을 추적해왔다는 말이냐?”

“대월국? 아아, 아직 소식을 듣지 못했구려. 마교의 대제사장을 비롯한 정예들이 화산파를 급습했소.”

궁익의 눈썹이 크게 치켜 올라갔다.

“뭐라고? 마교의 수괴가 화산파를 쳤다고? 그래서 결과는?”

“화산파의 권신과 장문. 그리고 다수의 정예 무사들이 죽거나 상처 입었지만, 다행히 그곳에 여러 초절정 고수들이 모여있던 덕분에 멸문은 막았다고 합니다.”

광서대장군부는 대월국에서 매우 큰 피해를 입었다.

마교는 만약 평야에서 정면으로 맞붙었다고 해도 만만치 않은 피해를 감수해야 할만한 전력이었다. 하물며 그들은 그만한 전력으로 유격전을 펼쳤다. 마치 대월국의 사람인 것처럼 위장하고 있다가 기습해오는 그들을 막기 위하여 그들은 참으로 여러 가지로 애를 썼다.

하지만 마교는 대월국의 깊숙한 곳까지 침투해있었고 대월국의 국민과 마교도를 구분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결국 마지막에 가서는 일단 의심스러우면 목을 날리고 보는 바람에 대월국과의 관계까지 참으로 험악하게 변하고야 말았다.

헌데 정작 그 시간 동안 마교의 수괴는 화산에 가 있었다고?

“우리가 조공(助攻)이었다 이건가?”

으드득.

궁익이 이를 갈았다.

“그래서 그대는 지금까지 마교의 수괴를 추적한 건가?”

“아마도······.”

“알았다. 허면 이제 이후는 우리 대장군부에서 알아서 할 터이니 걸왕 그대는 돌아가도록 해라. 보아하니 그대는 지금 누군가를 추격할 때가 아니라 침상에 누워야 할 때인 듯하다.”

어차피 여기까지였다.

냄새는 끊어졌고 그의 목숨 역시 그리 길게 남지 않았다. 남은 것은 이 정보를 무림맹에 알리는 것. 그리고 그만한 공로라면 적어도 그의 사후 몇십년 정도는 개방의 안위를 보장받을 수 있으리라.

‘그 정도 시간이면······.’

그가 정립한 무공을 익힌 새로운 세대가 개방의 중심으로 자리잡기에 충분하리라.

화산의 모든 서적을 처음부터 다시 모두 다 뒤져보았다.

그리고 혹시나 놓친 것이 있을까 하여 거기서 또 한 번 더.

몽원경을 통하여 보통 사람에게 주어진 것보다 훨씬 긴 시간이 주어졌으며 또한, 범인을 압도하는 오성을 가진 운호였지만 이미 한 번 다 독파한 책을 다시 읽는데에는 무려 칠주야가 훌쩍 넘는 시간이 필요했다.

하지만 그렇게 긴 시간을 들였음에도 결론은 하나였다.

-둘 중 하나겠구나. 당시 천중일검의 실력이 지금 너보다 훨씬 미약하여 수준 미만의 검을 팔대 검술로 올려 두었거나, 혹은 화산이 아닌 외부의 무언가로 검술을 창안했거나.

“지금까지의 경향을 봤을 때 일곱 번째, 혹은 여덟 번째의 검술이 수준 미만일 것 같지는 않습니다. 게다가 목운평 조사님이 몽원경에 계실 때 하셨던 말씀을 생각해봐도······. 아마도 지금 여기에 남아 있는 자료가 아닌 무언가 다른 것을 기반으로 하신 게 아닐까 싶군요. 당시의 자료가 유실되기에 백사십 년은 충분히 긴 세월이니까요.”

-뭐, 그럴지도. 하지만 그래도 별로 걱정할 필요는 없을 것 같구나. 애당초 그 건곤검이라고 했던가? 그것만 하더라도 거의 무적에 가깝지 않더냐.

“글쎄요······. 장점이 뚜렷한 만큼 단점도 워낙에 뚜렷한 검법인지라······.”

주변으로 약 일 장.

검이 닿는 범위 이내의 모든 것들을 꿰뚫어 본다. 그것은 운호가 가지고 태어난 검종지보라 불리던 재능. 아니 이능을 검술로써 완성 시킨 것이었다.

반경 수백 장, 아니 수백 리를 감지하는 초월적인 감각은 오직 일장 이내로 제약함으로써 제한적인 전지(全知)를 획득하고 그것을 기반으로 전능(全能)에 가까운 힘을 행사한다.

운호는 어쩌면 검종지보라는 말이 내려온 것도 모두 이 검술 때문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한데 운호 네 녀석이야 원래 그 검법을 사용하기 전부터 괴물 같았으니 그렇다 치더라도 다른 이들이 이 검술을 익힐 수나 있을까? 아니, 익히더라도 과연 너만 한 위력을 낼 수 있을까?

“감지하는 범위를 더 좁히고 처리할 정보의 양을 더 크게 제한한다면 비슷한 효과는 낼 수 있을 겁니다. 초식의 구성도 아마 그런 식으로 가져가야 할 것 같고요.”

지금까지 운호가 검술을 익혔던 과정은 차근차근 초식을 익혀 창안자가 의도한 궁극에 다다르는 과정이었다. 하지만 지금의 건곤검은 그 반대다. 운호 스스로 깨달은 검술이었으니 그 결과를 두고 그 결과에 도달하기까지의 과정을 설계해야 한다.

-이쯤 되니 이제 대종사(大宗師)라는 칭호가 부끄럽지 않구나.

“그건 이쯤 되도 여전히 부끄럽습니다. 게다가 본질적으로는 매농검을 해체하던 것과 크게 다를 것도 없습니다. 그저 그 기초가 되는 것이 없어 조금 더 수고스러운 정도죠.”

화산의 팔대 검술.

사실 생각해보면 운호 역시 익힌 검술이 여덟 개이기는 했다. 그중 하나가 화산의 검술이 아닌 남해 보타암의 반야검이기는 했지만 말이다. 하지만 어떻게 생각해보면 목운평 역시 화산에만 있었던 것도 아니고 얼마든지 외부에서 새로운 무공을 접할 수 있었을 것이다. 어쩌면 나머지 하나의 검법은 화산의 것이 아닌 그가 강호를 떠돌며 얻은 깨우침을 망라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신검!! 오늘은 다를 거요.”

“오셨습니까.”

한참 자운검의 초식을 머릿속으로 정리하던 중 혁리광과 모용경이 찾아왔다.

그날 운호가 건곤검으로 그들에게 완벽한 패배를 선물한 이후 다섯 초절정 고수들이 모두 함께 오는 일은 없었다. 오히려 이렇게 둘이나 셋. 가끔 홀로 운호에게 찾아왔는데 이전의 그것이 ‘네가 우리보다 강하다고는 하지만 입신경이니 신화경이니 하는 천외천의 경지는 아니다.’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한 도전이었다면 지금은 말 그대로 한 수 위의 고수에게 가르침을 청하는 것에 더 가까웠다.

다섯 명의 초절정 고수가 자기들끼리 교류하고, 그것을 한 수 위의 고수에게 점검받는다. 실력이 정체되려야 정체될 수가 없는 환경이었다.

혁리광이야 그렇다고 치더라도 모용경은 본래 돌아가도 진작에 본가로 돌아갔어야 했다. 하지만 이와같은 환경을 두고 대체 가긴 어딜 가겠는가. 심지어 종화에게 이와 같은 상황을 전해들은 벽운마저도 자신이 자리를 보전하고 누워있는 것을 참으로 안타까워하며 이것이야말로 쉽게 찾아오기 힘든 기연이니 지금 최선을 다하라며 종화를 독려했을 정도다.

그리고 그런 다섯 초절정 고수들의 방문은 운호에게도 나쁘지 않았다.

비록 운호가 한 수 위의 고수라고는 하지만 그들 역시 각자의 무공으로 한계를 뛰어넘은 고수들이다. 그들을 상대하는 것은 운호에게도 퍽이나 유익한 시간이었다.

“젠장!! 이번 건 정말 자신이 있었는데.”

운호의 검이 혁리광의 목덜미에 닿았다. 모용경의 경우 진즉에 두들겨 맞고 저 멀리 튕겨나갔다.

“확실히 나쁘지 않았습니다. 아주 가끔 보여주던 그 동작들을 의식적으로 사용하실 수 있게 된 것 같군요.”

“그러면 뭐하오. 이렇게 형편없이 당했는데.”

“그거야 지금 사용합니다. 하고 사방팔방에 통보를 하고 사용하시니까 그렇지요. 초식의 수발이 완벽하게 자연스러워지면 분명 무서운 한 수가 될 겁니다.”

혁리광이 고개를 끄덕였다.

“끄응······. 증무 도사. 나는 좀 어땠소? 나아졌소이까?”

“단순히 위력에 의지하려는 경향은 확연히 줄어들었습니다. 다만 무신께서 보여주셨던 것처럼 하기에는 아직 갈 길이 먼 것 같습니다.”

“그거야 어쩔 수 없는 일이지. 그대가 본 시점을 기준으로 할아버지는 나보다 족히 사십 년은 더 수련하셨었으니까. 그저 이 방향이 바르다는 것으로 충분하오.”

회음현.

검왕 남궁벽이 고아한 자세로 자신의 애검을 닦았다.

닦으면 닦을수록 검은 반짝반짝 빛이 났지만, 그의 마음은 조금도 맑아지지 못했다.

대체 어디서부터 문제였을까?

어느 순간 정신을 차렸을 때 무림맹의 실권은 아들에게 홀라당 넘어간 이후였다. 물론 그는 여전히 무림맹의 맹주였지만 구대문파와 칠대세가 모두가 그보다 그의 아들놈을 지지하고 있었다.

물론 표면상으로 대놓고 반박이 들어온 적은 없었다. 하지만 그가 바보도 아니고 어찌 모르겠는가. 처음 경험하는 일도 아닌데 말이다.

세가주를 뺏기던 당시에도 그러했다.

실권이 그쪽으로 알음알음 넘어가는 것 같아 불안한 마음에 큰 소리를 조금 쳤을 뿐인데 어느새 구석으로 몰려 가주 자리까지 넘기고 뒷방 늙은이가 되고 말았다.

지금 그나마 다행이라면 한 번 경험한 것은 있어 맹주 자리는 안 넘기고 유지하고 있다는 점 정도일까?

신검······.

그래, 그때부터였다.

남궁 세가에서 그 어린 놈과 비겼던 그 날부터다. 물론 그는 패배하지 않았지만 주변에서 보는 시선은 조금 달랐고, 사실 천무십칠성인 자신이 그 어린놈과 싸워 비겼다는 것 자체가 문제다. 다만 그것도 그나마 다행이라면 그 어린놈이 극광오신인가 뭔가 하는 것 중 하나로 꼽히다는 점 정도다.

아니, 사실 그것도 배가 아팠다.

결국 그 어린놈이 극광오신으로 꼽힐 수 있는 것은 그 어린 나이에 자신과의 싸움에서 비겼기 때문 아니겠는가? 물론 그 이후로 여러 가지 소문이 있긴 했지만, 강호의 소문이라는 것들이 으레 그러하듯 워낙에 신빙성이 없는 소문들이라 걸러 들으면 남는 것도 없었다.

아니, 제까짓 놈이 뭐라고 초절정 고수 다섯에게 가르침을 내리고 있다니. 게다가 그 초절정이라는 녀석들도 조왕 정도를 제외하면 죄다 처음 듣는 이름들로 진짜 초절정의 경지인지도 의심스럽다.

“가볼까? 아니, 아니야. 지금 이토록 중요한 회의가 벌어지고 있는데 내가 개인의 욕심을 채우겠다고 함부로 자리를 뜰 수는 없는 노릇이지.”

맹주 없는 무림맹 회의가 이어진 지도 벌써 보름.

무림맹의 맹주는 회음현에서 오늘도 검만 닦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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