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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산파 역대급 천재-264화 (264/288)
  • 264화

    화산검(19)

    무려 다섯.

    초절정 고수 다섯의 합공이었다. 바로 며칠 전 굴불신마 영무결의 경우와 같았다. 그리고 그 공격 앞에서 굴불신마가 보여주었던 마과공덕불시인(魔誇功德佛是認)이라는 초식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했었다. 다섯 초절정 고수의 공격을 강제로 한 순간, 한 공간에 압축시켰고 그것을 자신의 힘으로 박살내버렸다.

    하지만 운호는 조금 달랐다.

    화산을 닮은 웅장하고 화려한 일검이 그들의 공격을 받아냈다. 단단한 산봉우리가 그 공격을 수비했다. 그리고 그 봉우리가 하나씩 뻗어내는 팔이 그들을 압박한다.

    -쾅!!!! 쾅!!! 콰과과과광!!!

    일 검, 일 검의 충돌에서 발생하는 어마어마한 충격파가 주위를 휩쓸었다.

    꽃나무 하나 없는 화산이 어찌하여 화산(華山)인가.

    산세다. 비록 꽃나무 하나 찾아보기 힘든 돌산이었으나 그리 이름 붙은 것은 그 산세 자체가 한 송이 꽃을 닮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운호의 화산검은 화산을 닮았고, 그것은 또한 한 송이 꽃을 닮았다.

    그리고 그렇게 한 송이 꽃망울이 터져 나오는 것과 같은 운호의 화산검에는 이전과 조금 다른 무언가가 섞여 있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자색의 신령한 기운.

    자하기공의 상징과 같은 그것이 운호의 검극을 따라 언뜻언뜻 엿보였다.

    다섯의 초절정 고수들이 가진 바 절기를 있는 힘껏 펼쳐냈다.

    하지만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누구도 저 거대한 산맥을 완전히 뚫을 수 없었다.

    혁리광도 모용준경도 종화도 종자명도 그리고 주고수의 무형검강조차도.

    이미 한 차례 굴불신마와 맞붙어본 세 사람은 생각했다.

    그래도 이 정도면 해볼만 한 것 같은데? 조금만 더 몰아붙이면?

    종자명은 아무런 생각이 없었다. 그저 천살의 기운에 자신의 몸을 맡길 뿐이다.

    그리고 주고수는 그 아득한 격차에 바드득 이를 갈았다.

    “두베!!!”

    흡사 절규와도 같은 외침.

    조왕 주고수의 신검이 내뿜는 빛이 한층 더 격렬해졌다. 빛의 폭풍우? 아니, 어쩌면 저 하늘의 뇌신이 그 작은 검에 강림한 것과 같은 압도적인 힘이었다.

    운호가 가볍게 검을 휘둘렀다.

    그 검을 따라서 자색의 상서로운 기운이 뚜렷한 흔적을 남겼고, 그 뚜렷한 흔적 속에서 은은한 향기가 피어올랐다.

    그것은 인세에 존재할 수 없는 천상의 향기로 그렇기에 실존하지 않았으며 그저 운호와 검을 맞대는 다섯 초고수의 감각 속에만 존재하였다.

    “······?”

    혈안의 검마가 그 두 눈을 크게 떴다.

    그날 이후 그에게 남은 감각은 오직 붉게 물든 시각뿐이었으니 이것은 그가 무려 육 년 만에 처음 맡는 향기였다.

    핏빛의 강기가 흔들렸다.

    그리하여 순식간에 균형이 무너져내린다. 초고수들 간에 전력을 다한 겨룸에서 그것은 실로 치명적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운호의 검은 다섯의 초고수를 난자하지 않았다. 다섯의 초절정 고수를 상대하는 와중에도 그만한 여력이 남아있었던 것일까? 아니면 운호가 펼쳐내는 무공의 특성인 것일까?

    코앞으로 다가온 운호의 검 앞에서 마침내 혁리광을 비롯한 그들은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지금 눈앞의 어린 신검의 무공은 이전 날에 만났던 신마의 그것에 필적한다고.

    늙은 거지가 달렸다.

    자신의 목숨이 아닌 다른 이들의 목숨을 걸고.

    눈가에 흐르는 것이 땀방울일까, 아니면 눈물일까.

    확실한 것은 입가에 축축하게 맺힌 것은 게거품이라는 사실이었다. 비록 지금 영락했다고는 하지만 한때 초절정 그 가운데서도 최고 수준의 경지에 이르렀던 고수가 입에 게거품을 물만큼 달려야 하는 상황이라니.

    그것은 실로 터무니 없는 모습이었다. 과연 마공은 마공이다. 시체나 다름없던 이가 한순간에 초월의 경지에 발을 딛다니.

    구사일생으로 목숨을 건졌으나 그 과정은 순탄치 못했다.

    그도 모르는 사이에 뒤를 따라왔던 수많은 제자가 자신의 목숨을 초개(草芥)와 같이 던졌다.

    아니, 정말로 몰랐을까?

    알았다.

    늙고 지쳐 그 감각은 둔하기 짝이 없었다. 하지만 자신이 만들어낸 개방이. 그리고 그 제자들이 늙은 거지를 놓치지 않으리라는 것 정도는 예상하였다. 그저 자신의 감각에 느껴지지 않았으니 오지 않았겠지. 라는 말은 거짓말이다.

    평생 천하를 떠돌며 굶주리던 아이들을 거두었다.

    그리하여 시간은 흘렀고 어느새 그 아이들 가운데 늙은 녀석들은 어느새 예순이 되고 일흔이 됐다. 그리고 그들은 걸왕의 제자이자 가족이었으며 아들이었다.

    아비가 죽게 생겼는데 어찌 아들들이 따르지 않았을까.

    “사부!!”

    분노한 마신의 일격을 버텨내기에 한때 절정에 이르렀다지만 이제는 그때의 힘조차 사그라든 칠십 대 노인의 몸은 너무 약했다. 심지어 그들 가운데는 절정의 문턱조차 밟아본 적 없는 이제 죽을 날만 받아놓은 녀석들도 많았다.

    타구진(打狗陣)이라고 거창한 이름을 붙였지만, 그 실상은 실력이 안 되면 숫자로 내리누르라는 허튼소리에 불과했다. 그리고 그 아이들은 그 허튼소리를 실행에 옮겼다.

    핏물과 육편이 난무했다.

    마신(魔神). 그리 마신이다. 그는 실로 준수한 청년의 얼굴로 신과 같은 힘을 휘둘렀다. 따라오고 있을까? 어디까지 더 달려야 할까.

    두려웠다. 뒤따라오는 마신이 언제 자신의 늙은 목줄을 움켜쥘지 모른다는 사실이 두려웠다. 그로 인해 그 비루한 목숨이 사라지는 것이 두려웠으며, 그리하여 그 많은 아이들의 죽음이 헛된 죽음이 될지도 모른다는 사실이 두려웠다.

    부글부글 입가에 묻은 게거품이 흩날렸다.

    그렇게 달리고, 달리고 또 달렸다. 메마른 경맥에 한톨의 진기도 남지 않을 때까지. 그리하여 늙어 시큰거리는 뼈마디가 한계에 다다를 때까지.

    -털썩.

    그리하여 거지가 쓰러진 자리.

    여전히 녹음은 우거졌지만, 그 곳에는 한 줌의 마기도 느껴지지 않았다.

    이준형의 얼굴을 한 그가 언짢은 표정으로 자신의 몸을 털어냈다. 그 몸에 찐득하게 달라붙어 있던 육편과 핏물들이 한순간에 흩어졌다. 물론 옷에 완전히 스며든 것들은 어쩔 수 없어 정갈하던 화산의 무복은 그가 내뿜는 사이한 기세에 어울리는 검붉은 빛의 옷으로 탈바꿈됐다.

    “그 늙은이는 아무것도 알 수 없을 겁니다. 그러니 이것은 그저 개죽음일 뿐이지요. 본단까지는 아직도 한참이 남았습니다. 그러니 제깟 놈이 어찌 본단의 위치를 짐작이나 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니 어서 돌아가 몸을 추스르시지요.”

    그야말로 시산혈해(屍山血海).

    대체 얼마나 많은 거지를 때려잡은 것일까? 확실한 것은 적어도 그 자릿수가 두자릿수는 아니라는 것이었다. 그렇게 일류에서 절정까지. 백을 훌쩍 넘는 숫자의 고수들을 학살했지만, 그 몸에는 생채기 하나 보이지 않았다.

    그들이 다시 자신의 본거지를 향해 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

    “존자, 이게 대체 어찌 된 일입니까.”

    “청무가 신단을 두 개 다 복용하지 않았다.”

    “네!? 허면?”

    “다행히 그가 복용하지 않았던 신단 반쪽을 이 아이가 복용했더구나.”

    일그러진 얼굴의 괴인과 거대한 덩치의 사내가 그들을 마중 나왔다.

    “도륜은 이제 좀 움직일만한가 보구나.”

    “네, 조금 고생하기는 했습니다만 어찌어찌 다 해결했습니다. 굴불신마라고 했던가요? 참으로 무서운 무공이더군요. 설마 도륜의 몸을 이렇게까지 완벽히 파괴시킬 줄이야. 덕분에 신단 가운데 한 알을 또 사용해야 했습니다.”

    “허면 저 아이의 수명도 이제 얼마 남지 않았구나······.”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지도 모르는 것일까?

    한때 무신 모용경과 박투를 벌였던 도륜은 그저 멍한 얼굴로 허공을 응시할 뿐이었다.

    “아무튼 당분간은 문을 걸어 잠그도록 해라.”

    “네, 어차피 기선단(欺仙丹)도 다 떨어졌습니다.”

    “벌써? 하긴, 광서대장군부의 눈을 속이고 대월국을 그만큼이나 헤집어놨으니 그 소모량이 만만치 않았겠지.”

    그렇게 이야기를 나누며 길을 걷던 네 명의 마인이 어느 순간 홀연하게 사라졌다.

    “종 장군 오래간만입니다.”

    운호의 인사에 종자명이 답하지 않았다. 아니 답할 수 없었다. 그리고 운호 역시 그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 날밤, 굴불신마 영무결은 자신이 알고 있는 마교에 대한 정보를 모두 전해주며 청해 대장군부의 근황 역시 함께 전달해주었다.

    .

    그 가운데는 운호의 결혼 소식에 당장에라도 달려오겠노라 소리쳤지만, 터무니없는 양의 서류를 처리해야 했던 탓에 도저히 발을 빼지 못한 영현이라든지, 경쟁자라고 할만한 형제들이 죄다 나자빠진 덕분에 자연스럽게 후계자의 지위를 굳히고 있는 영현의 아버지 영초벽의 이야기등이 있었다. 또한 황궁에 돌아갔다가 이번에는 서평왕부에 파견내관으로 부임한 박진문의 이야기도 있었으며 청해에서 생활하던 당시 이런 저런 일들로 운호와 관계를 맺었던 수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도 있었다.

    그리고 그 마지막의 마지막에서야 종자명의 이야기가 존재했다.

    “전신의 경혈이 모조리 진탕된 것은 쉽게 해결할 수 있었다. 근맥이 찢어지고 뼈가 바스라진 것도 어렵지만 어찌어찌 해결할 수 있었다. 하지만 전신의 신경이 끊어진 것은 아무리 나라고 해도······. 아무리 녀석이 초절정의 경지에 올랐다고 해도 도저히 어찌할 수 없는 일이었다. 무엇보다 그 녀석······. 살겠다는 의지가 없었다.”

    “······. 그렇군요.”

    “그래서 녀석에게 살아야 하는 목적을 줬다.”

    “네?”

    종자명의 원수는 누구인가.

    활불이다.

    하지만 마지막 순간 종자명은 자신의 손으로 그 복수를 달성했다. 물론 활불이 완전히 끝장났다는 것은 운호만이 알고 있는 사실이고, 앞으로 태어날 활불을 대대로 죽이는 것을 삶의 목적으로 삼을 수도 있다. 하지만 종자명은 바보가 아니었다. 그것은 서평왕부가 앞으로 대대손손 가져가야 할 목적이다. 자신이 없더라도 쉽게 해낼 수 있는 일이다.

    그렇기에 굴불신마는 불가능에 가까운 목적을 그에게 안겨주었다.

    어찌하여 서평왕부는 그 가족들을 구할 수 없었는가.

    마지막 순간 활불이 서평왕부의 식솔을 도륙할 수 있도록 도운 것은 누구였는가.

    정답은 마교였다.

    “놀라운 일이었다. 끊어진 신경을 모두 복구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하지만 천살은 내 예상조차 뛰어넘더구나.”

    천살의 기운이 가닥가닥 끊어진 신경을 대신했다. 물론 그것은 인간이 본래 가진 신경망처럼 예민하지 못했으며 한계점 역시 또렷했다.

    결국 종자명이 선택한 것은 몸을 움직일 수 있는 운동능력. 그리고 뇌와 가장 가까운 곳에 위치한 기관인 시력이었다.

    그리하여 지금 이 자리.

    풍류를 알고, 동시에 아내를 지독히 사랑했던 마치 어린 시절의 그가 종종 상상했던 아버지를 닮은 장군은 없었다. 남은 것은 그저 핏빛의 번들거리는 눈동자를 한 괴인 뿐이었다.

    파마(破魔).

    혈안의 검마가 자신의 검집을 붓 삼아 단단한 바닥에 두 글자의 글귀를 새겨 넣었다. 명필보다는 악필에 가까운 글씨였다. 하지만 그 글에 담긴 의지는 실로 단단했으니 운호가 그 의지에 답했다.

    “알겠습니다. 하지만 지금 당장은 불가능합니다. 저를 비롯해서 모두의 수준이 이래서야 계란으로 바위 치기에 불과하죠. 내일부터 매일 이 시간에 수련을 하도록 하겠습니다.”

    “아뇨, 그리 오래 걸리지는 않을 겁니다. 아마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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