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8화
화산검(13)
“준효 형님? 준경 형님은 어쩌고 형님께서?”
“그 인간 앓아누웠네.”
“네? 앓아눕다뇨? 어떻게?”
남궁철이 깜짝 놀랐다.
모용준경이 누구던가. 최근 쉰셋의 나이에 경지에 오른 모용세가의 자랑 아닌가. 헌데 초절정 고수가 앓아 눕다니······. 아!? 남궁철이 무언가를 깨달았다.
“그냥 그렇게 알아두시게.”
그래, 오늘 새벽 남천관일 단상목이 남기고 떠났던 그 의미심장한 말을 고려한다면 불가능한 일도 아니었다.
“아무래도 준경 형님께서 간밤에 찬 이슬을 맞으셨나 봅니다.”
“쯧······.”
모용준효가 가볍게 혀를 차고 등을 돌렸다.
지난 밤, 엉망진창이 되어 돌아온 그의 형을 생각하면 속에서 천불이 끓어오른다. 아니, 대체 무슨 생각으로 그렇게 마음대로 달려 나가서, 심지어 그렇게 나갔으면 멀쩡히 돌아오기라도 하든지, 그렇게 잔뜩 쥐어 터지고 돌아온단 말인가.
남궁철은 새벽에 남천관일 단상목이 남기고 간 이야기를 이제는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 천무십칠성이나 되는 양반이 고작 비무에서 한 번 패배했다고 천외천이니 하는 이야기까지 남겼을 리가 만무하다.
아마도 합공. 어젯밤에 운호가 초절정 고수 둘의 합공을 가볍게 받아낸 것이 아닐까? 아직 이립도 되지 않은 아이에게 합공까지 했음에도 당해내지 못했으니 두 사람 모두 그런 반응을 보이는 것도 이해가 된다.
“그보다 지금 만날 그 신검(神劍) 증무 도사가 자네의 의동생이라던데. 사이는 좀 어떤가?”
“운호라면 아주 각별한 사이지요.”
“자네 혼자 생각은 아니고?”
“형님이랑 준경형님 사이보다 더 좋을 겁니다.”
“나와 형님의 관계 보다 더 좋은 정도라니. 그렇다면 딱히 좋은 사이는 아니라는 소리같군.”
“또, 또 이러신다.”
“아무튼 만약 정말로 각별한 사이라면 증무 도사의 성정이 어떤지도 잘 알겠군.”
남궁철이 고개를 끄덕였다.
“절대 허언을 하는 녀석은 아닙니다. 그 일신의 무공과 명성 등을 생각하면 그럴 이유는 더더욱 없고요. 게다가······.”
“게다가?”
“이건 제 생각입니다만, 아마 단노사님께서 말씀하신 그 극광오신. 그 가운데 하나가 운호일겁니다.”
“뭐? 푸, 푸하하하하하. 자네 못 본 사이에 농이 많이 늘었군. 극광오신이라니.”
“농이야 이전부터 원래 잘 쳤습니다만 아쉽게도 이건 농이 아닙니다. 애당초 그런 것이 아니었다면 지금 우리가 이렇게 운호를 찾아갈 이유도 없지요.”
“그거야 자네와 남궁 가주님이 워낙에 강하게 주장을 하셔서 그런 것 아닌가. 나야 어차피 화산파에 찾아와야 했으니 겸사겸사 따라 가는 것이고. 게다가······.”
모용준효가 말을 이어갔다.
“극광오신이라면 말하기 좋아하는 무지렁이들이 더 이상 말하기 싫다고 손사레를 치는 단노사의 손을 보고 마음대로 지껄이는 헛소리 아닌가. 천하에 천무십칠성조차 스스로 패배를 인정할만한 알려지지 않은 천외천의 고수가 다섯이나 있다니. 어디 그게 말이나 될법한 소리인가?”
“그게 왜 말이 안 됩니까? 게다가 제가 생각할 때 극광오신의 구성원은 다섯 전부 천하인 이라면 누구나 인정할만한 고수일 겁니다.”
“천하인 모두가 인정할만한 고수 가운데 천무십칠성조차 한 수 아래로 볼만한 고수가 있다? 그것도 천무십칠성이 아닌 이들 가운데서? 그래서 자네 생각에는 대체 그게 누군가?”
“대제사장.”
대화를 나누는 와중에도 부지런히 움직이던 모용준효의 두 다리가 멈춰 섰다.
“······. 그래, 그자라면 그럴 수 있겠지.”
마교의 대제사장이라면 모용세가를 상징하던 무의 화신인 무신(武神) 모용경을 참살한 악적이다. 그것도 단순한 일대일의 승부가 아니었다. 그 자리에 있던 초절정의 고수 숫자만 무려 여덟. 그 가운데 생존자는 오직 둘. 그나마도 하나는 재기불능의 상처를 입었다.
“그리고 대제사장이 그러한 고수라면 자연히 그와 맞먹는 이름값을 가진 두 고수. 서장의 활불과 달단의 살리답 역시 그와 비슷한 경지라고 봐도 무방하지 않겠습니까.”
“그 말은 그야말로 어불성설이지. 그들 셋이 나란히 중원 최악의 적으로 꼽히는 것이 어디 그들의 무공을 기준으로 한 것인가? 서방과 북방 그리고 남방에서 각기 우리를 위협하는 가장 큰 세력의 수장, 혹은 그들을 대표하는 고수이기 때문 아닌가.”
“네, 맞습니다. 하지만 강호의 소문이라는 것은 그저 뜬소문 같지만, 오래 된 소문에는 대부분 그만한 이유가 있기 마련이지요. 당장 활불만 하더라도 초절정의 고수 몇을 홀로 상대했다는 기록이 남아있지 않습니까. 게다가 살리답 역시 대원제국의 마지막 총화를 한 몸에 긁어모은 자로 영락황제께서 아직 연왕이던 시절 오십 초를 채 버티지 못했다는 일화가 있습니다.”
“흥, 관부의 기록을 어찌 다 신뢰할까. 게다가 당대 활불의 경우 얼마 전 황실의 고수 하나, 그리고 청해대장군부의 고수 하나와 자네의 의동생인 신검. 셋의 협공에 불귀의 객이 되지 않았던가. 그 무공이 자네 말처럼 천무십칠성을 압도하는 그 극광오신급이었다면 그것은 어찌 설명할 수 있겠는가? 아, 혹시 신검이 약관에 이미 천무십칠성을 압도하는 그 극광오신의 일좌였기 때문인가?”
마지막에 들어간 약간의 비꼼.
모용준효는 순간 자신의 말이 너무 심했나? 후회했다. 하지만 그것은 남궁철을 몰라도 너무 모르는 생각이었다.
“네.”
“응? 네라니?”
“그렇다고요. 물론 당시에는 지금처럼 천무십칠성을 완전히 압도할만한 실력은 아니었겠죠. 하지만 제 동생은 본래 비범한 구석이 있는지라, 당시에도 초절정 고수 둘 정도의 도움이면 그런 고수를 상대할 만큼은 실력이 됐을 겁니다. 게다가 이번 화산파 사태만 하더라도!!”
“우화등선하던 파검 대협이 그러셨다지 않았던가. 이십 년이라고. 헌데 이제 고작 구 년도 채 지나지 않았네. 그 말은 대주교의 상처가 다 낫지 않았다는 뜻이지. 게다가 그 자리에는 권신 청무진인도 계셨어.”
“그건 어디까지나 추측이지요. 보고서에 따르자면 분명 운호 그 녀석이······.”
“그 보고서 자체가 화산에서 내민 것 아닌가. 말이 되지 않는 부분도 가득한데 유독 그 부분만을 믿을 이유는 없지.”
사실 남궁철의 추측에는 그 나름대로는 타당한 이유가 있었다.
운호는 그 싸움 직후 얼마 되지 않아 천무십칠성의 일좌인 검왕 남궁벽과의 비무에서 승리를 거둔 바가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남궁철이 여기서 ‘그 녀석이 그 싸움 직후에 우리 할아버지를 아주 멋지게 두들겨 패서 다시 무림맹으로 돌려보냈습니다.’ 라고 말을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에휴, 이렇게 서서 저희끼리 이야기를 주고받느니 그냥 직접 운호를 만나보시죠.”
“그래, 그러지.”
두 사람이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두 사람 모두 긴 시간 입을 열지 않았다. 그리고 저 멀리 산 중턱에 운호의 모옥이 어렴풋이 보이기 시작할 즈음. 먼저 침묵을 깬 것은 모용준효였다.
“그런데 말일세.”
“뭐, 혹여나 오해할까봐 미리 말해두지만, 그 극광오신이라는 거 나는 믿지 않는다네.”
“네네, 알겠습니다.”
“하지만 그래도 이건 좀 궁금해지는구만.”
“뭐가요?”
“극광오신이라면 다섯 일터. 중원을 위협하는 새외의 삼대 고수. 그리고 자네의 의동생이라는 신검 증무 도사. 허면 나머지 하나는 누구라고 생각하는가?”
“글쎄요······.”
“서평왕 전하입니다.”
“응? 운호야 갑자기 그게 무슨 소리냐?”
남궁철이 의아한 표정으로 운호를 바라봤다.
방문을 열고 들어오자마자 난대없이 갑자기 서평왕 전하라니. 이게 대체 무슨 소리인가.
“아, 엿들으려던 것은 아니고, 그냥 들려서요. 극광오신의 나머지 하나를 궁금해하시지 않았습니까.”
그들이 대화를 나눈 것은 적어도 모옥에서 십리는 떨어진 거리였다.
헌데 거기서 나눈 대화를 그냥 들려서 들었다고?
하지만 모용준효에게 그것은 그리 중요하지 않았다. 그보다 중요한 것은 운호의 말이 품고 있는 뜻이었다.
“그 말은 지금 증무도사 그대가 천무십칠성보다 한 수 위라는 것을 인정한단 뜻이요?”
“엄밀히 말하자면 그런 뜻은 아니지만······. 네, 뭐 단순하게 보자면 그렇습니다.”
“허······. 참으로 광오하군.”
운호가 고개를 저었다.
“광오한 것이 아닙니다. 게다가 사실 천무십칠성끼리도 그 실력의 격차라는 것은 제법 있지 않았습니까. 당장 저희 청무 태사조님이나 무신 모용경 대협. 그리고 파검 대협 같은 경우는······. 그 출신입화경이라고 했던가요? 그 경지에 더 가까웠다고 생각합니다.”
운호의 입에서 할아버지의 이름이 나와서일까? 모용준효의 마음속에서 극렬하게 치밀어 오르던 반발심이 조금은 수그러들었다.
무엇보다 운호에게서 느껴지는 기이한 감각.
마치 세상을 초월한 것 같은 저 탈속한 느낌은 아직 이립도 채 되지 않은 저 젊은 청년이 어쩌면 진정으로 초절정의 경지조차 초월한 무언가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허면 증무 도사 그대의 말은 정말 초절정과 뚜렷하게 구분을 지을만한 경지가 있다. 뭐 그런 이야기요?”
“네. 절정과 초절정의 벽만큼이나 제법 뚜렷하게요.”
“허면 그것을 증명할만한 무언가가 존재한다는 말이요? 초절정의 경지를 증명하는 강기처럼?”
운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렇습니다.”
“허면 그게 무엇이요?”
모용준효의 질문에 운호가 답을 하려는 찰나.
남궁철이 두 사람의 사이를 가로막았다.
“워워, 모용 형님. 아무리 형님이라도 방금 그 질문은 너무 선을 크게 넘은 것 같습니다. 상승의 경지는 비전 중의 비전. 초절정에 관련된 정보조차 한 줄에 수많은 사람의 목숨이 오가는 마당에 입신경에 관한 이야기를······.”
“크흠······. 증무 도사. 미안하오. 내 평소 궁금증이 많은 성격이라. 실례했소이다.”
“아닙니다.”
“그보다 형님은 남궁 세가의 그리고 여기 모용 대협은 모용세가의 전권을 가지고 오신 게 맞는지요.”
“그래.”
“허면 여기서 두 분과 나누는 대화가 무림맹의 의지를 대변한다고 봐도 무방하겠군요.”
“제 경우는 정확히는 제가 아닌 제 형님께 권한이 있습니다만, 형님이야 워낙에 이런 것에 관심이 없는 분인지라. 그렇게 보셔도 무방할 겁니다.”
“알겠습니다. 뭐 어차피 실무에 관한 자세한 이야기야 사숙들과 나누실 테고······. 저에게는 따로 묻고 싶은 말이 있으실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래, 화산파에서 우리에게 보내준 서신은 정말 믿기 힘든 이야기 투성이였다. 게다가 중간중간 이해할 수 없는 부분들도 상당히 있었고······. 덕분에 무림맹에서도 왈가왈부가 있었다만 그래도 그 부분들은 화산파의 내부 사정에 관한 이야기를 건너뛰다 보니 생긴 것들이라고 판단이 되더구나.”
“난 솔직히 그렇게 믿기 힘들었네만 남궁 가주님과 여기 남궁 동생이 아주 강하게 주장하셨지.”
“어쨌거나 그 서신을 통해 우리가 내린 결론은 실질적으로 마교의 대주교를 상대한 것이 운호 너라는 점이었다. 맞느냐?”
“허면 묻겠다. 만약 우리가 마교에 쳐들어간다면. 네가 혼자서 마교의 대주교를 상대할 수 있겠느냐? 만약 그게 힘들다면 어떤 지원을 받으면 그를 상대할 수 있겠느냐? 그리고 또 한 가지. 네가 생각할 때 우리의 승산은 얼마나 된다고 보느냐.”
운호가 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