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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산파 역대급 천재-255화 (255/288)

255화

화산검(10)

종화는 초절정의 경지에 오른 이후 꾸준히 조왕 주고수와 비무를 해왔다. 그는 분명 종화 자신보다 수준 높은 고수였다. 지금 여기서 싸움을 벌이는 이들 가운데 주고수와 손이라도 섞어 볼 수 있을 만한 이는 기껏해야 남천관일 단상목 정도.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각자의 방식으로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은 고수들의 싸움은 참으로 배울 것이 많았다.

특히 혁리광이라고 했던가? 복장만 멀쩡했다면 강아현의 아버지인 화산금정 강진에 필적할만한 미중년이었을 터인데, 거진 이십 년 전의 무림 초출들이나 입고 다녔을 법한 유행 지난 옷을 입은 저 우스꽝스러운 사내. 그리고 남천관일 단상목의 싸움은 흡사 종화 자신과 주고수의 싸움을 보는 것 같았다.

-쾅!!!

단상목의 일격은 그야말로 전광석화.

적어도 찌르기 하나에 있어서만큼은 그녀가 목격했던 몇몇 이치를 넘어선 인외의 것들을 제외한다면. 아니, 어쩌면 아슬아슬하게 그 인외의 것들 범주에 들어갈 수 있을 만한······.

‘아니, 그건 아니지.’

어쨌거나 지금 단상목이 펼쳐내는 저 일격 일격이 거의 운호가 펼쳐내는 광음검의 일 초와 흡사한 수준의 위력을 보여준다. 물론 운호의 그것과 비교하자면 훨씬 제한적이고 그 수발에 어려움이 있지만 적어도 위력만큼은 그러하다.

그리고 그런 위력의 공격 앞에서 혁리광은 지극히 부드러운 보법과 현묘한 장법으로 그것을 버텨내고 있었다. 그 양팔에는 가는 생채기들이 그득했지만, 그의 두 발은 단상목이 그어둔 선 안쪽에서 물러남이 없었다.

단상목과 혁리광의 싸움이 혁리광이 어떤 신묘한 수법으로 단상목의 공격을 버텨내는가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면 모용준경과 그 내관의 싸움은 조금 달랐다.

두 사람의 실력은 거의 박빙. 서로 보는 높이가 같았기에 그 선택 역시 흡사했다. 다른 점은 각자가 택할 수 있는 최선이 다르다는 것뿐이다.

겉으로 보기에 더 흉험한 것은 단상목과 혁리광의 싸움이었다. 당장에라도 혁리광이 피투성이가 되어 쓰러질 것 같다. 하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그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마치 주고수가 종화를 봐주는 것처럼 단상목 역시 혁리광이 크게 다치지 않는 선에서 슬쩍 슬쩍 공격을 멈춰주는 것이 보인다. 물론 전력으로 그를 상대하는 혁리광으로써는 느끼기 힘든 배려였지만.

반면 모용준경과 내관의 싸움은 실로 평탄했다. 하지만 그 속에 지극한 위험이 숨어있었다. 서로의 사정을 봐줄 수 없는 팽팽함. 그야말로 양쪽에서 인정사정없이 고무줄을 잡아당기는 형국이었다. 어느 쪽이건 먼저 힘이 빠지는 쪽이 크게 다칠 수밖에 없다.

정신없이 네 초절정 고수의 싸움을 관전하던 종화는 문득 무언가 이상하다는 것을 느꼈다. 애당초 그를 불러낸 사람이야 그렇다고 치더라도 여기에 무슨 일이 있더라도 모습을 드러낼 것 같은 사람이 보이지 않았다.

조왕 주고수.

그는 지금 대체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일까?

***

-퍼억!!

두꺼운 주먹이 그 복부를 강타했다.

“커헉!!”

“조왕, 이쯤 함이 어떠하오?”

크게 벌어진 주고수의 입에서 멀건 침이 뚝뚝 떨어졌다. 순간적으로 복부에 들어온 강력한 충격이 내장을 뒤흔들었고 그 결과 횡경막의 움직임이 멈춰섰다.

호흡의 곤란. 물론 그 시간은 그리 크지 않았다. 조왕 주고수는 그 의지로 불수의근마저 조절이 가능한 초절정의 고수였으니까.

“개소리!!”

하지만 그의 앞에 선 이에게 그 짧은 시간은 영원과도 같은 시간이었다.

-쾅!!

그 단 한 번의 발걸음에 천지간의 모든 것이 침묵했다. 동시에 조왕 주고수의 몸이 그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허공으로 반 치 가량 떠올랐다.

허나 당황하지 않았다.

주고수가 그 자신의 의지로 몸을 바로 세웠다. 비록 두 발은 단단한 땅을 밟지 않았으나 그 마음만은 평지에 선 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으니 그 휘두르는 검 역시 마땅히 그러할 터.

“참으로 세상 모든 일이 다 자기 마음대로 된다면 그 얼마나 좋겠소이까.”

허나 부드럽게 움직인 손바닥이 그 검면을 밀어냈다. 주고수의 마음은 평지에 선 것과 다르지 않았으나 마음이 그렇다고 하여 현실이 어찌 바뀌겠는가. 동급의 고수였다면 그 미세한 차이가 큰 영향을 줄 수 없었을지도 모르겠으나, 그는 이미 더 높은 곳에서 주고수를 내려보는 이였다.

-퍼억!!

정확하게 같은 위치.

그 큼지막한 주먹이 또 한번 주고수의 복부를 두들겼다.

튕겨나간 그의 몸이 형편없이 바닥을 뒹굴었다.

“조왕, 나를 찾아낸 것은 칭찬하고 싶으나 오늘은 내 선약이 있으니 추후에 다시 보도록 합시다.”

“개소리!!! 아직 끝나지 않았다.”

“후······. 소문은 익히 들어 잘 알고 있었소만 듣던 것보다 훨씬 더 무례하고 피곤한 사람이었구려.”

“흥!! 무례는 네 녀석이 무례한 것이지. 기껏해야 이자왕 주제에 감히 친왕에게 평대라니.”

그 순간 주고수의 팔에 솜털이 곤두섰다. 그는 초절정의 경지에 이르러 신체의 모든 부분에 완벽에 가까운 통제력을 갖췄다. 그 통제력이 얼마나 절대적인가하면 스스로 심장의 박동을 멈춰 자살을 하는 것이 가능할 정도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 그 대단한 통제력을 상실케 한 것은 분명 공포. 그것도 압도적인 공포의 감정이었다.

그 표정에 변화는 없었다. 변한 것은 그저 분위기뿐. 하지만 산천초목이 벌벌 떤다는 말이 현실에 구현된다면 아마 이런 모습일까?

“자랑할 것이라고는 그저 황제의 아들로 태어난 것밖에 없으니 기껏해야 한다는 말이 고작 그것뿐이로구나. 이자왕? 대체 누가 서평왕을 그저 그런 이자왕이라 한단 말이더냐. 중원의 서쪽이 모두 본왕의 것이다. 또한 그저 태어난 것으로 조왕이라는 칭호를 획득한 네 놈과 이 두 손으로 평왕의 자리를 획득한 나 가운데 대체 누가 더 존귀하단 말이더냐.”

다른 것은 용서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의 평생이, 그 아버지의 평생이, 그 아버지의 아버지의 평생이 만들어낸 그것을 모욕하는 것만은 용납할 수 없었다.

조왕 주고수가 자신의 검을 쥐고 소리쳤다.

“두베!!”

세상에 가르지 못하는 것이 없는 무형의 검강이 유형의 형체를 갖췄다.

그 모습에 굴불신마 영무결이 입꼬리를 들어 올렸다.

“하찮다!!”

특별한 무언가도 없었다. 그저 성큼성큼 걸었다. 그것만으로도 화산의 대지가 신음하고 대기가 요동친다.

천마(天魔).

욕계 제 육천 마왕.

감히 인간의 몸으로 그것을 자처하는 이의 힘이다.

영무결이 만승의 검을 휘둘렀다.

그것은 모든 인간의 정상에 군림하는 황제의 검이었다.

-쾅!!!

무형이라 이름 붙은 유형의 검강이 일렁거렸다.

-우우웅

황룡검이라 이름 붙은 신검 두베가 비명을 내질렀다.

일렁이는 검강이 대기를 불태웠다. 하지만 저 하늘에서 내려온 별빛은 감히 마왕의 손을 벗어나지 못했다.

“존귀한 친왕께서 보여줄 수 있는 것은 고작 이게 전부인가? 실로 하찮다.”

굴불신마 영무결이 주광색으로 백열하는 검강을 단단히 손에 쥐고 조왕 주고수의 뺨을 후려갈겼다.

-짝!!!

차라리 내력이 듬뿍 담긴 신공절학이었다면 나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 일격은 그렇지 않았기에 더할 나위 없이 모욕적이었다. 육체에 타격은 없었지만, 그 자존심에 거대한 타격이 찾아왔다.

“이 노옴!!!”

“시끄럽다.”

이어지는 손찌검.

그래, 그것은 싸움, 혹은 폭력이라는 단어보다는 손찌검이라는 단어에 더 적합했다. 대체 무슨 수법을 사용한 것인지 정확하게 보통 사람이 보통 사람의 뺨을 때리는 것과 같은 수준의 타격이 주고수의 양 뺨에 연달아 터져 나왔다.

순식간에 그의 양 뺨이 붉게 물들어 팅팅 부어올랐다.

주고수의 눈가에 눈물이 맺혔다.

통증? 아니다. 자신이 당하는 이 굴욕이, 이 무력감이. 그리하여 생겨난 스스로에 대한 환멸감이 그 눈물을 만들었다.

“쯧, 손에는 보물을 쥐고 똥처럼 휘두르는 주제에 자존심만 남아서는 고작 몇 대 맞았다고 질질 짜는 꼴이 참으로 동네 계집애들만도 못하구나.”

영무결이 잠시 망설였다.

죽일까?

그래도 조카를 죽인 후레잡놈의 자식이라든가 찬탈자의 아들이라든가, 거렁뱅이의 손자 같은 말처럼 최악의 말들은 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놈 눈에 가득한 원독이라든가 성정을 봤을 때 굳이 살려준다고 감사하다는 말을 들을 것 같진 않았다.

다행히 그가 여기에 온 것을 아는 이는 운호뿐이고 이놈이 여기서 죽어 나간다고 해도 뭐 특별히······.

“전하, 그쯤 하시죠.”

그 목소리가 먼저였을까?

아니면 영무결이 하늘을 바라본 것이 먼저였을까?

영무결이 하늘을 바라보며 미간을 찌푸렸다.

“쯧, 새신랑이 첫날밤에 새신부를 소박 놓다니. 그러다 늙어 고생하는 수가 있다.”

“경험담이십니까?”

“뭐, 비슷하지.”

실로 신비로운 풍경이었다.

마치 허공에 단단한 발판이라도 있는 듯, 저 커다란 달을 등진 채 운호가 고요하게 서있었다.

“인석아, 올려다보기 목 아프다. 어서 내려오너라. 쯧, 여긴 또 어떻게 알고 찾아왔는지.”

“그렇게 사방팔방에 광고를 하시는데 어찌 모르겠습니까.”

“대충 짐작은 했다만, 용케도 도달했구나.”

-탁

하늘에 떠 있던 운호가 땅을 딛고 섰다.

“네, 어쩌다 보니.”

“허······. 고작 스물다섯에 어쩌다 보니 도달했다라······. 내심 스스로를 고금제일의 기재라고 자부하고 있었는데 이거 그 생각이 참으로 부끄러워지는구나.”

“과찬이십니다.”

“그나저나 그래서 내가 이쯤 하지 않으면 무력으로라도 막을 생각이더냐?”

-우득

영무결이 쥐고 있던 손에 힘을 더했다. 황룡검에 맺힌 검강이 우그러졌다. 조왕 주고수의 입에서 울컥 핏물이 흘러나온다.

“제가 어찌 감히 그러겠습니까. 그저 오직 달과 별만이 알만한 일을 사람도 알게 되었으니 왕야께서 그만해주십사 하는 것뿐입니다.”

“협박이냐?”

“그럴리가요. 부탁입니다. 말씀하신 것처럼 첫날부터 새신부를 소박 놓으면 남은 평생이 힘들 예정이라서요.”

“이미 여기까지 달려왔으니 남은 평생이 힘들 터인데 그게 무스······.”

영무결이 말을 다 끝내지 못한 채 눈을 크게 떴다.

“자, 잠깐만. 네 녀석 지금 설마?”

운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저 잔재주일 뿐입니다. 그나마 제대로 힘도 쓸 수 없고요.”

“허······. 이 무슨. 오늘 실로 내가 여러 번 놀라는구나. 옛날 이야기에 나오는 신선도 아니고 분신이라니.”

“엄밀히 말하자면 분신은 아닙니다. 그냥 동시에 존재하는 것뿐이죠. 왕야께서도 국지적으로는 가능하시잖습니까.”

“그거야 내 시야가 미치고 내 손발이 닿는 범위 내의 이야기지.”

“그건 저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그저 이곳 화산에 제 마음이 닿았기 때문이지요.”

“네 녀석이 화산의 산신이라도 된다는 듯한 말이로구나.”

“글쎄요.”

영무결이 움켜쥐고 있던 주고수의 검을 내팽개쳤다.

-털썩.

그 손을 따라 주고수가 힘없이 바닥에 쓰러졌다.

“워낙에 터무니없는 것을 보고 나니 모두 김이 새버렸다.”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조왕 전하도 표현이 조금 거칠어서 그렇지, 사실 심성은 좋은 분입니다.”

“흥, 사람의 눈에 보이는 것은 심성이 아니라 언행이니. 심성만 고와서 대체 뭐에 써먹을꼬.”

“그래도 그 반대보다는 낫지 않겠습니까.”

굴불신마 영무결이 운호의 말에 답하는 대신 땅을 박차고 높이 뛰어올랐다.

“그 머저리는 네가 알아서 잘 챙기도록 해라. 나는 오늘 밤에는 본래 하려던 일이 있으니 거기나 가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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