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1화
화산검(6)
“그래, 뒤집힘. 애당초 나의 선조들이 공리라고 생각해왔던 그것이 잘못됐던 것이었다. 그러니까 결과물이 항상 이럴 수밖에 없었던 것이지. 가벼운 것은 위로 가고, 무거운 것은 아래로 간다. 그래, 자연계에서는 너무 당연한 이야기지. 하지만 우리가 추구하는 것이 무엇이었나. 자연계를 넘어, 저 개념으로 존재하는 선계에 도달하는 것 아니었나? 헌데 거기에 가는 방법을 자연계의 법칙으로 규정하려 했으니 틀릴 수밖에.”
강진이 신이 나서 떠들기 시작했다.
그와 지금까지 여러 가지로 이야기를 주고받았던 운호는 그 이야기들을 대충 알아들었지만 주고수는 달랐다. 지금 저 인간이 대체 무슨 이야기를 하는 것인가? 조왕이 두 눈을 끔뻑끔뻑하며 그를 한 번 바라보고, 눈동자를 힐끔 돌려 운호를 또 한 번 바라봤다.
고개를 끄덕이며 강진의 말을 이해하는 운호의 모습이 보였다.
여기서 이야기를 끊고 질문을 던지면 너무 멍청해 보이겠지?
절정에 이른 인간의 육체는 ‘완성’이 된다. 물론 그 개개인의 성향에 따라, 익힌 무공에 따라 그 ‘완성’의 종류는 조금씩 다르다. 하지만 인지능력에 커다란 상승을 보이는 점은 거의 공통적이라고 볼 수 있었다.
‘에이, 그냥 다 외워버리자.’
그리하여 주고수는 질문 대신 그들의 대화를 모조리 머릿속에 기억하는 것을 선택했다.
“단순히 위가 아니다. 아예 자연계에 존재하지 않는 곳으로 향해야 한다. 단순히 무거운 백과 육을 버리고 영이 이끄는 곳으로 혼이 따라가는 것이 아니다. 혼을 공명하여 백과 육을 허로 전환하고 그것을 통하여 얻어낸 막대한 힘으로 그 본질인 영을 향해 나아가는 것이다. 결국 랍비수 필노소범(臘畀廀 滭狫佋柉, Lapis philosophorum). 그러니까 선단은 그 목표를 더하여 변환하는 것이 아니라 분해하여 재구성하는 것에 초점을 맞춤이 옳다.”
“잠깐, 그 말씀은?”
“그래, 이천 년 전 석가모니불이 역사에 이름을 남길 위대한 초월자가 될 수 있었던 것 역시 그와 같다. 세상에 대체 누가 크게 깨달아 새로운 세상으로 나가는 것을 거부할까. 유사 이래 오직 석가여래만이 그러했다. 그의 일화를 보면 무려 사십구 주야 동안이나 그대로 열반에 들 것인가, 아니면 중생을 구제할 것인가를 고민했다는 일화가 있다. 그리고 마침내 세상에 나와 사람들에게 자신의 깨달음을 전했으니, 그 모든 것이 그의 업으로 남았다.”
여전히 조왕 주고수는 그 말들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랍비수 뭐? 게다가 여기서 갑자기 석가모니불은 또 무슨 소리인가.
운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또한 여래의 일화를 보면 그가 육체의 고행을 멈추고 마침내 유미죽을 먹고 깨끗하게 목욕을 했으니, 네 생각처럼 깨달음을 얻었음에도 지상에 머물 수 있는 것은 결국 백육의 강화에 있다는 뜻이다. 다만 차이가 있다면 여래는 깨달음을 얻기 이전부터 거기에 최선을 다하였으니 어쩌면······.”
“어쩌면?”
“원류는 석가여래의 그것이 아니었을까 싶다. 아니, 애당초 소림의 공부가 석가여래의 그것에 뿌리를 두고 있다고 하였으니, 내가도인법 자체가 그러한 것이고······. 그저 그 부분을 특별히 더 강화한 것일 수도 있고······. 애당초 불교 역시 여래 사후에 상좌부와 대중부로 나뉘었다고 했으니 이와 관련된 부분이 아니었을까?”
지금 강진이 하는 말들은 운호가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에 대한 이야기들이었다. 평소였다면 상당히 흥미를 느낄만한 이야기들이었지만 아쉽게도 지금 운호에게 필요한 부분은 그 너머에 있었다.
“사숙, 잘 알겠습니다. 그래서 말씀하셨던 자하기공을 대성하는 것에 뒤지지 않을 선물은 대체 무엇입니까.”
“그래, 맞다. 선물. 사실 네게 필요한 것은 내가 추구하는 것과 정 반대되는 성질의 약이다. 처음 우리 사문에 내려오는 이론으로 생각했을 때는 영약의 성질을 둘로 나누어 나에게 필요한 성분만을 추출하고 남은 것이 너에게 꼭 필요한 물건이 아닐까 생각했었다. 하지만 어제 너의 그것을 보고 생각이 바뀌었지. 결국 육과 백을 허로 전환하기 위한 약물과 허로 전환되려는 육과 백을 안정시키는 약은 일맥상통할 수밖에 없다. 결국 사조님이 틀렸고 기욤 그 작자의 말이 옳았다. 랍비수 필노소범은 돌맹이를 금으로 변환하는 동시에, 금 역시 돌맹이로 변환시킨다. 젠장, 하여간 우리 조사님들은 다들 자존심만 강해서는 본인들이 틀렸을거라는 생각은 조금도 하지 않은 덕분에 대체 몇 백년을 돌아가게 만든 것인지······. 이래서야 아무래도 시간이 나면 구라파 쪽을 나도 직접 한 번 다녀올 필요가 있겠어.”
“잠깐만요. 그러니까 그 말씀은······. 결국 제 상태를 호전하기 위해서는 선단이 필요하다는 말씀 아닙니까?”
강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바로 그거다.”
운호가 한숨을 내쉬었다.
아니, 돌고 돌아 선단이라니. 벌써 십 년 전부터 이제 거의 완성단계라고 이야기하던 것이 선단이다. 심지어 연단사 일족은 무려 천팔백 년 전, 시황제 시절부터 그 선단이라는 것을 목표로 해왔다. 헌데 이제 와서 그게 뚝딱 나올 수 있을 리가.
무엇보다 지금 강진이 이야기하는 모든 것들은 바로 어제 운호의 초월을 목격한 이후 새롭게 깨달은 사실들이다. 깨달음이 곧 성취로 연결되는 무공과 달리 강진의 그것은 자신이 깨달은 것이 실제 현실에 적용되는지를 알아보기 위하여 또 다시 지난한 시간을 필요로 한다.
“네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는 잘 알겠다. 하지만 걱정하지 말아라. 안 그래도 어제 너를 그냥 그렇게 보내고 부인에게······. 아, 아니다. 이건 괜한 쓸데없는 이야기로군. 하여간 내가 내 사위가 될 사람을 그렇게 허투루 보낼 수는 없지.”
“네?”
“왜? 어째 못 들을 소리라도 들은 것 같은 표정이구나. 설마······.”
“아뇨, 아닙니다. 그저 지금 저의 상황이 언제 어떻게 될지를 모르는 터라. 사숙께서도 잘 아시잖습니까. 지금 제 상태를.”
“그렇다면 지금 네 말은 그 문제만 해결되면 다 괜찮다. 뭐 그런 이야기로구나.”
한참을 조용히 듣고 있던 주고수가 둘 사이에 불쑥 끼어들었다.
“내 대체 무슨 이야기인지 모두 이해하지는 못하겠으나, 대충 대화의 흐름을 보아하니, 지금 증무 도사에게 뭔가 귀물을 담보로 자네의 딸과 혼인할 것을 권유하는 것 같은데. 내가 이해한 것이 맞는가?”
“왕야, 이런 말씀 드리기는 죄송합니다만, 아무래도 잘못 이해하신 것 같습니다. 제 딸이 대체 무엇이 부족하여 이 아이에게 귀물을 내주고 딸과 혼인을 시키겠습니까. 그저 이 아이와 제 딸이 서로 은애하는 사이지만 자신의 목숨이 경각에 달린 터라 쉬이 혼사를 결정하지 못하는 바, 제가 그 문제를 해결해주고 서로 사랑하는 두 사람을 이어주고자 하는 것뿐입니다.”
“그······, 그런가?”
본래 주고수가 둘 사이에 끼어든 것은 어찌어찌 종화의 이야기를 끼워 넣어보고자 하는 의도였다. 하지만 물 흐르듯 매끄러운 강진의 말에 그저 말문이 턱 막혀왔다.
“네, 그렇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대로 그냥 물러난다면 황족이라고 할 수 없는 법이다. 본래 황족이란 사소한 말꼬투리만으로도 상대를 물러나게 하기 충분한 권위를 지닌 족속들이니까.
“잠깐만. 헌데 내가 잘 이해가 안되는 부분이 있구만. 증무 도사의 나이가 아직 이립도 채 되지 않았고, 그 무공의 수준 역시 나 정도를 제외한다면 천하를 통틀어 적수를 찾아보기 힘든 경지인데 목숨이 경각에 달렸다니. 대체 누가 있어 증무 도사의 목숨을 위협할 수 있단 말이던가. 설마 초절정의 고수가 병으로 죽어가는 것은 아닐테고 말이야.”
“당연히 외부의 위협이나 병마가 아닙니다. 오히려 말씀하신 것처럼 이 아이의 경지는 천하를 통틀어 그 적수를 찾기 힘들지요. 그러니 그에게 위협이 되는 것은 오직 그 자신뿐 아니겠습니까.”
“그 자신?”
“네, 이 아이 지금 등선을 앞두고 있습니다.”
“등선이라고?”
화들짝 놀라 동그랗게 뜬 주고수의 눈동자가 운호에게 닿았다.
그 시선에 운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네, 사숙 말씀이 맞습니다.”
“잠깐······, 잠깐만. 그러니까 지금 자네들 이야기는······.”
만약 다른 이들이 이런 이야기를 진지하게 나누고 있었다면 그저 코웃음 한 번 치고 넘어갔을 것이다. 하지만 그 대화를 나누는 사람들이 천하제일에 가장 가까운 무인과 천하제일의 연단사다.
종화에 대한 생각이 순식간에 달아났다. 허면 지금 운호와 강진이 나눴던 이야기는 모두 등선에 관련된 이야기였단 말인가? 주고수는 지금 자신이 머릿속에 저장해둔 이 대화가 천하에 다시 없을 비급보다 더 귀한 내용임을 직감했다. 이건 한마디, 한마디가 기연이다. 조금이라도 더 들어둬야 한다.
“미······, 미안하네. 내가 괜히 끼어든 것 같군. 그냥 나누던 이야기들 마저 나누게나.”
조왕 주고수가 슬며시 뒤로 한 걸음을 물러났다.
“어디까지 이야기했지? 아, 그래 맞다. 운호 너는 지금 그 문제만 다 해결되면 혼사에는 아무 지장이 없다 뭐 그런 이야기겠지?”
“네, 그거야 당연히······.”
“그렇다면······. 후, 이걸 받아라.”
강진이 운호에게 무언가 동그란 물건을 내밀었다. 자색빛이 은은하게 맴도는 그것은 신의 피가 묻은 금속이라던 그 구슬과 마찬가지로 완벽하게 밀봉된 관옥 구슬이었다.
아니, 자세히 살펴보니 그 관옥구슬에 감도는 자색빛은 관옥 자체의 빛깔이 아니었다. 관옥 안을 맴도는 희미한 연기. 그 연기의 빛깔이 자색이다.
“이게?”
“선단이다.”
“네?”
지금까지 운호가 먹었던 영단과는 아예 그 모양도 형태도 달랐다. 아니, 애당초 이것이 영단이라고 부를 수는 있는 물건일까?
“정확히 말하자면 선단이라 생각했던 물건이지. 우리 일족 이천 년 비원의 집합체다. 뭐, 지금에 와서는 그저 애당초 틀려먹은 이론으로 완성시킨 틀려먹은 영약이지만. 그래도 그 녀석이라면 지금 너의 상태를 호전시키는데는 아주 큰 도움이 될 거다.”
이천년 비원의 집합체.
그 단어의 무게감이 실로 묵직했다. 이것을 정녕 이렇게 그냥 받아도 괜찮은 것일까?
“괜찮으시겠습니까?”
“괜찮다. 사실 들어간 금액도 금액이고, 아직 여러모로 연구해볼 구석이 남아있어 조금 아쉽기는 하다만, 애당초 방향이 틀렸음을 깨달았으니 그것은 그저 조금 귀한 물건일 뿐이다. 게다가 예전에 약속하지 않았더냐. 선단, 너에게도 하나를 꼭 주겠노라고.”
운호에게 선단을 내미는 그의 얼굴에는 한 톨의 미련도 남아있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새로운 연구를 이어갈 수 있다는 일말의 흥분감마저 깃들어 있었다.
“네, 그렇다면 기꺼이.”
운호가 그것을 받아들었다.
자색빛깔이 일렁이는 그것은 실로 아름다웠다.
“복용 방법은 간단하다. 구슬을 깨고 그 안에 기운을 코로 흡입하면 된다.”
연단사 일족 이천 년의 비원.
선단을 감싼 관옥 구슬이 깨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