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화산파 역대급 천재-250화 (250/288)

250화

화산검(5)

운호는 평소처럼 자하기공의 수련을 끝내고 장호와 아현이의 검술을 지도했다.

‘뭘까······.’

화산파에서 강진의 위치는 실로 대단했다.

옥녀봉 홍매당주의 남편이자 홍매당의 수석연단사다. 하지만 그렇다고 엄밀히 말해 그가 화산의 제자인가 하면 그건 또 아니다. 물론 홍매당주의 남편으로 속가제자에 준하는 대우을 받고 있긴 하지만 어디까지나 그는 화산에 고용된 고용인일 뿐이었다.

그러나 그럼에도 그는 화산에서 가장 필수 불가결한 존재 중 하나였는데, 그도 그럴 것이 소림의 공국 신승과 함께 강호 최고의 연단사로 불린 것이 벌써 이십 년 전 일로 지금에 와서는 그가 천하제일의 연단사임을 부정하는 이는 하남성 사람 말고는 없다고 봐도 무방했다.

게다가 그 화려한 외모와 터무니없는 천재성. 비록 그 분야가 무공은 아니었지만 주변 사람들의 존중을 받기에 충분한 요소들이었다. 당장 작고한 청무진인만 하더라도 그보다 족히 두 배분은 낮은 강진을 그 방면의 대종사로 예우했다.

그리고 그것은 운호 역시 마찬가지였다. 단순히 사부와 같은 배분, 그리고 아현이의 아버지이기 때문이 아니었다. 그는 종종 강진에게서 믿을 수 없는 천재성의 편린을 엿보곤 했다. 조금 건방진 이야기였지만, 운호는 이해력이라는 부분에 있어서 누구도 따르기 힘든 재능을 보여줬는데 그것은 단지 무공만이 아닌 삶의 거의 모든 부분에서 그러했다.

하지만 그런 운호조차도 강진이 만드는 약은 물론이거니와, 그의 사고방식, 혹은 그의 이야기를 이해하는 데 한참 애를 먹곤 했다.

그렇기에 운호는 조금 후에 있을 만남이 제법 기대가 됐다.

과연 무엇일까? 운호가 생각할 때 지금 그의 몸은 약으로 어찌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굳이 가능성을 따져보자면 지금까지 강호에 존재했던 모든 신단 가운데 가장 특이하다고 볼 수 있는 혼원단 정도? 하지만 그것도 지금 운호의 상황을 완전히 해결하기에는 역부족이다.

하지만 강진이라면 또 어떤 해답을 가지고 왔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기대감을 갖고 문밖을 나서려는 운호의 앞에 화려한 장포를 걸친 누군가가 모습을 드러냈다.

“증무 도사. 이거이거 참으로 우연이로군. 이렇게 길에서 딱 마주치다니 말이야.”

조왕 주고수.

사태가 모두 끝났고, 아무도 잡는 이가 없음에도 황실로 귀환하기는커녕 뻔뻔하게 화산에 남아 반찬의 부실함을 탓하고 있는 사내가 바로 그 주인공이었다.

“전하, 오래간만입니다. 헌데 우연이라고 하기에는 이곳은 너무 빈도의 거처에서 가까운 것 같군요. 혹시 저에게 무슨 볼일이라도 있으신지요.”

“거, 사람 각박하기는. 우리 함께 사선을 넘은 전우 아닌가. 별 볼일이 없더라도 이렇게 가끔 얼굴 보고 환담도 나누고 그러는 게지. 게다가 이번 사태도 완벽하게 정리된 것도 아니지 않은가. 그러니 더더욱 우리의 무공을 더욱 절차탁마하여 다가올 위기에 대비해야지.”

그가 화산에 남아 매일 검이나 휘두르며 반찬 투정이나 하는 삶을 살고 있음에도 화산의 도사 가운데 아무도 그에게 황실로 귀환을 청하지 못하는 이유는 간단했다. 결국 이 모든 사태가 아직 완벽히 해결되지 않았고 진정한 해결을 위해서는 저 남방의 대장군부를 움직이는 것은 필수요 중앙의 도움까지 얻을 수 있다면 금상첨화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안 그래도 내가 폐하께 서신을 보내뒀으니 조만간 뭔가 이야기가 나올 것이다.”

관의 행사란 참으로 번거로워서 정식의 절차를 밟아가면 그것이 상부에 닿기까지 얼마나 오랜 시간이 걸릴지 장담할 수 없었다. 본래라면 사안의 중대함이 중대함인 만큼 화산의 장문인이 여기저기 뿌려둔 인맥을 통하여 쉽게 해결할 수 있는 일들이었겠으나, 아쉽게도 장문인인 굉허자가 사망했고 아직 화산 내부의 일도 제대로 수습이 되지 않은 상황이다.

무림맹에 관련된 내용을 보내두긴 했으나 무림맹 역시 대월국에서 일어난 혼란과 십만대산에서 벌어진 일들로 정신없이 바쁜 상황. 자기 앞가림도 버거운 마당에 관부까지 신경을 쓰는 것은 무리다.

“감사합니다.”

“감사는 무슨. 전우끼리 너무 당연한 일인 것을. 그보다 요즘 그 어린 계집애랑만 쭉 검을 섞으면서 뭔가 약간의 깨달음을 얻은 것 같이 간질간질한 느낌이 있는데. 어떠냐? 본왕과 검을 한 번 섞어 보는 것이? 혹시 아느냐? 너도 뭔가 소득을 얻을 수 있을지?”

소득?

운호 입장에서는 지금 오히려 그런 것을 얻으면 더 큰 일인 상황이다. 운호가 쓰게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죄송합니다. 오늘은 선약이 있는 터라.”

“선약?”

“네, 강 사숙과 약속이 있습니다.”

“강 사숙이라면 화산금정 강진?”

주고수가 자신의 턱수염을 쓰다듬었다.

대부분 사람은 그가 참으로 둔하다고 생각했다. 분위기를 파악하지 못하고 주변 사람들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한다고 말이다.

착각이었다.

황실은 그야말로 속이 시커먼 인간들 천지다. 주고수는 그런 곳에서 자라왔다. 그런 그가 어찌 주변을 헤아리지 못할까. 그가 그렇게 행동하는 것은 그저 그럴 필요가 없기 때문에. 혹은 그러지 못하는 척하는 것이 진짜 현명한 처신이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지금 이 녀석을 두고 그 아현인가 하는 계집애와 종화 그 아이가 다툼을 벌이는 상황이라 그거지? 사실상 승부는 그 아현인가 하는 계집애가 다 가져간 상황이고 말이야.’

약간의 변덕.

그의 마음속에서 일주일이 넘는 기간 동안 매일 같이 검을 맞댄 젊은 처자를 위하고 싶은 마음이 슬쩍 고개를 치켜들었다.

-우우웅

그의 허리에 매달려 있는 황룡검이 울었다.

제발 가만히 있으라는 강렬한 의지를 담아서.

다시 말하지만 그는 주변의 눈치를 굳이 살필 필요가 없는 인간이었다. 그렇기에 어디까지나 뻔뻔할 수 있었다.

“그래? 그렇다면 좋구나. 안 그래도 나도 그의 명성이 사해를 울리는 터라. 한 번 보고 싶다는 생각은 했었다. 황실의 이가 그 녀석도 공국이라면 몰라도 강진이라면 자기가 반 수 정도 뒤진다고 이야기했고, 말이다. 이가 그 녀석도 어지간히 자존 광대한 놈인데 스스로 패배를 인정하다니 말이다.”

운호가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그를 바라봤다.

물론 주고수는 운호의 그런 표정 따위 아랑곳하지 않았다.

“뭐 하느냐? 어서 앞장서지 않고?”

그야말로 태어난 순간부터 모든 것을 허락받은 자만이 보여줄 수 있는 모습이었다. 여기서 아웅다웅 실랑이를 벌이는 것이 의미가 있을까?

운호는 그보다 훨씬 좋은 방법을 알고 있었다.

“그렇다면 앞장서도록 하겠습니다. 혹시 제가 전하의 속도에 맞춰서 천천히 가야 할런지요. 그렇다면 제가 미리 가서 조금 늦을 것 같다고 사숙께 말씀을 드리고 다시 오는 게 좋을 것 같아서 드리는 말씀입니다. 아무래도 이제 곧 약속한 시간이 다 돼서 말이지요.”

“뭐라고?”

조왕의 미간이 좁혀졌다.

물론 운호가 대단한 무인이라는 것은 잘 알고 있다. 그 날 보여줬던 터무니 없던 모습은 아직도 눈에 선하니까.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그 역시 초절정. 그 가운데도 손에 꼽힐만큼 강력한 무인이다. 헌데 자신의 속도에 맞춰 천천히 안내를 해야 하느냐고? 심지어 자신과 함께 가는 것보다 혼자 다녀오는 것이 더 낫겠다니.

주고수가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아니, 그럴 필요 없다. 내가 알아서 따라가마. 선약이 있다고 그랬는데 그렇게 시간을 낭비시킬 수는 없는 노릇이지.”

“네, 그러면.”

운호가 크게 호흡했다.

마치 전설상의 신선들이 펼쳤다는 축지의 법이 그러했을까?

운호의 몸이 마치 공간을 접기라도 한 것처럼 쭉쭉 움직였다. 물론 조왕 주고수 역시 명색에 초절정의 고수다. 운호의 움직임이 눈에 보이지도 않는 그런 굴욕은 없었다. 다만 도저히 따라갈 수가 없었다. 그의 몸이 일 장을 움직일 때, 운호의 몸은 삼 장, 사 장을 나아갔다. 믿기 힘든 속도. 마치 이 땅. 화산이 그의 몸을 저 먼곳으로 이동시켜주는 것 같은 느낌이 들 지경이다.

***

“왔느냐.”

고작 하루.

강진의 안색이 매우 초췌했다. 그의 곁에는 수많은 기구들이 각자의 일을 다하고 있었는데 보통 연단을 위해 사용되는 단로 외에도 경덕진에서도 오직 황실에 납품하던 장인들이 만든 최고의 자기들. 그리고 저 멀리 구라파에서 건너온 투명한 관옥으로 만들어진 기구들까지. 실로 이 방안에 있는 물건들만 다 하더라도 어지간한 장원 하나는 구입할 수 있을만큼 귀한 물건들 투성이였다.

“강 사숙. 지금 방금 문을 나서는데 조왕 전하가 오셔서는 저를 따라오겠노라 하셨습니다. 아마 반 각 정도면 당도할 것 같습니다.”

긴 설명은 필요 없었다.

조왕 주고수가, 아니 황족이 제멋대로라는 것 정도는 강진 역시 익히 잘 알고 있었으니까.

“별 상관없다. 어차피 무인이 이것을 본다고 해서 뭐 딱히 문제 될 것도 없을 테니까. 그보다 어서 이쪽으로 와보거라.”

강진이 운호의 손을 잡아 끌었다.

그곳에는 투명한 관옥으로 만들어진 사람 머리통만 한 구슬이 하나 있었다.

“이것은?”

“역시, 바로 알아보는구나.”

놀랍게도 완벽하게 밀봉된 그 구슬 안에는 작은 금속 조각 하나가 있었는데, 외부와 완벽하게 격리된 관옥 구슬에 어찌 금속이 들어가 있는지는 차치하고, 그 금속에 머무는 꿈틀거리는 특별한 기운이 운호를 놀라게 했다.

“이건 지상의 것이 아니로군요.”

허(虛).

그랬다. 놀랍게도 그 구슬 안의 금속에는 백운 진인의 몸을 하고 있던 마교의 대제사장이 우화등선과 흡사한 모습을 보여줄 때 사용하던 바로 그 힘이 꿈틀대고 있었다.

“천오백 년 된 물건이다. 나의 삼대조 조사님께서 직접 구라파에서 구해오신 귀물로 신의 피가 묻은 무기의 파편이지.”

신이라······.

그래, 어쩌면 그렇게 볼 수도 있었다. 분명 저 힘은 지상의 법칙을 벗어난 힘이었으니까.

“헌데 대체 제게 이것을 왜?”

“네가 어제 나에게 그 현상을 보여줬을 때, 나는 그것이 이와 매우 흡사하다고 느꼈다. 물론 완전히 같지는 않았지. 하지만 정말로 그러하다면······.”

가벼운 것은 위로 올라가고 무거운 것은 땅에 남는다.

이것은 연단사 일족이 성립되고, 원시적이던 연구가 체계성을 띈 이후 바뀐 적이 없는 절대적인 명제였다. 그렇기에 그들의 약은 언제나 그 가벼운 것을 더 강화하고, 무거운 것을 떨쳐내는 쪽으로 목표를 잡아 왔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실수로 나온 것이 바로 그 혼원단이었지. 가벼운 것들은 온통 다 날아가고 영약의 약성은 그저 무거운 것을 더 무겁게 만드는 것에 치우쳐버렸었지.”

“확실히 혼원단이라면 어느 정도 제 상태를 호전시킬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것도 우연히 만들어진 약이고 만드는데 천금이 들었다고······.”

-쾅!!

그 순간 방문이 열리고 얼굴에서 굵은 땀방울이 맺혀있는 조왕 주고수가 모습을 드러냈다. 반각을 예상했지만 그보다 훨씬 빨랐다.

“헉헉······, 천금. 돈이 문제라면 걱정하지 말아라. 내가 기꺼이 도와주마.”

강진이 고개를 저었다.

“아니, 아니다. 정답은 혼원단이 아니야. 우화등선은 가벼운 것은 올라가고 무거운 것은 떨어지는 그런 단순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일종의 뒤집힘이다.”

“뒤집힘이라고요?”

“뒤집힘?”

뚝뚝 떨어지려는 땀방울을 옷소매로 닦아내며 주고수가 되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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