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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산파 역대급 천재-244화 (244/288)
  • 244화

    무의 이름(17)

    청무진인의 팽팽하던 피부가 순식간에 생기를 잃어갔다. 검버섯이 피어올랐고 윤기가 사라졌으며 이윽고 자글자글한 주름까지 생겨났다.

    그러나 운호의 몸은 여전히 수십 개로 보였다.

    그리고 그가 펼쳐내는 화산은 여전히 아름다웠고 그 화산에서 나는 꽃내음은 너무나도 향긋했다. 그 향긋한 향기를 맡으며 청무는 생각했다.

    어쩌면 저런 화산도 좋겠구나.

    하지만 그는 도저히 그와 같은 화산을 그려낼 수 없었다. 그렇기에 그저 하던 그대로 팔을 내뻗었다.

    도(道)는 멀었다. 문(門)은 없었다.

    그저 늙어가는 도인의 인생만이 그 무(武)에 담겨 있었다.

    대관절 초월이란 무엇인가.

    자하기공의 가르침에 따라 충실하게 무공을 펼쳐낼수록 지상의 인연이 그를 단단하게 옭아맸다. 늙어가던 피부가 생기를 되찾는다. 시대를 초월한 괴물이 창안한 가장 완벽한 그릇의 창조법에는 그러한 힘이 있었다.

    나는 어찌하여 여기서 주먹을 휘두르는가.

    답은 간단했다.

    그저 그래야 하기 때문이다.

    ‘정말?’

    그 마음속의 미혹이 고개를 들었다. 혹시 이것은 평생을 염원해온 신선의 길을 떠나려는 어린 제자를 방해하고 싶은 치졸한 마음이 아닌가? 진짜 대도를 걷는 아이 앞에서 그 길은 방문의 좌도라 폄훼하며, 대도는 이것이라 잘난척했던 부끄러움을 감추기 위함이 아닌가?

    허나 청무진인은 스스로의 마음을 가득 채운 그 의혹에 답하지 않았다. 그는 그저 평생을 수련해온 그대로 다시 자세를 잡고 주먹을 내질렀다. 그리하여 살아있는 사제가 창안한, 죽은 사제들을 위한 무공이 화산 제일의 권사 손에서 펼쳐졌다.

    자운장(紫雲掌)

    불망우공(不忘雨空)

    늙지 않던 몸이 늙어간다. 스스로를 세상의 구원자라 칭한 사기꾼이 빗어낸 가장 완벽한 그릇이 깨져나간다.

    그리고 그 앞에 편마라 불렸던, 하지만 이제는 그저 힘의 격류만이 남아있는 검붉은 빛의 마기 덩어리가 포효했다. 그것에게 남은 것은 이제 그 막대한 힘의 방출뿐. 이 자리에서. 아니, 이 세계에서 편마라는 인간을 기억하는 것은 오직 지상보다 천상에 더 가까운 운호뿐이었다.

    늙음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죽음을 향한 필연적인 발걸음이다.

    하지만 자하기공은 그것을 가장 완벽하게 차단하는 무공이었고, 청무진인은 자하기공의 유일한 완성자였다. 그렇기에 그는 진정한 의미에서 노화를 몰랐었다.

    아흔 살에 가까운 노인이 그에 어울리는 육체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몸이 무거워졌다. 그러나 진기는 여전히 충만했다.

    감각이 무뎌진다. 그럼에도 역시 진기는 여전히 충만했다.

    사고가 둔화된다. 그렇지만 진기는 조금도 다르지 않게 움직였다.

    다시 한번 마음이 그에게 속삭였다.

    ‘정말?’

    아니, 이것은 속삭임이 아니었다. 육신이 쇠하여 약해진 만큼 그 마음의 소리는 더욱 커져 마치 외침처럼 그를 강타했다.

    평생 도를 얻기를 갈망하며 초월을 목표로 주먹을 휘둘렀다.

    하지만 그 결과가 고작 이것인가? 이렇게 아무런 의미 없이 초월을 눈앞에 둔 제자를 지상으로 끌어내리고 그리고 늙어 사멸한다고?

    대체 그게 무슨 가치가 있는 것인가. 살아만 있다면 기회는 다시 올 수 있다. 소년은 도를 얻어 떠나고, 노인은 남아 다시 수련을 하면 되지 않겠는가.

    그 외침 앞에서 청무진인은 주먹을 쥐었다.

    처음 일 권을 휘둘렀을 때의 마음을 선명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마음 그대로 팔십 년을 휘둘러온 그 주먹을 앞으로 내밀었다.

    노인의 젊음이 분해되어 그 주먹을 따라 흘러나왔다.

    -콰과과과광!!!

    본래 편마 병조량이라 불리웠던 오직 검붉은 빛의 마기로 가득한 세상 속에서 산지바라 불리던 푸른 번개가 번쩍였다. 무슨 이유인지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그를 제약하던 천상의 빛이 그 기세를 죽였고 그것을 대신하는 것은 저 불완전하기 짝이 없는 늙은 인간이었다.

    기억이 없었기에 의무도 없었다.

    그저 남은 것은 넘쳐나는 기운을 모조리 폭발시키겠다는 본능뿐.

    그리하여 푸른빛의 번개가 청무진인을 덮쳤다. 그리고 그것은 빛과 같은 속도였다.

    화산을 모두 그 한 몸에 담았을 때. 청무 진인은 인간의 몸으로 지상의 법칙이 허락한 한계치의 힘을 휘둘렀었다. 아마 그 힘이 있었더라면 저 푸른 빛의 번개조차도 정지된 것과 다름이 없었으리라.

    하지만 지금 늙어가는 쇠약한 인간의 몸이 인지하는 저 푸른빛의 번개는 그 시작과 끝이 동시에 이뤄지는 결코 막아낼 수 없는 공격이었다.

    -쾅!!!

    노인의 몸이 크게 뒤로 튕겨났다.

    왼팔이 추욱 늘어졌다. 늙어 쇠약해진 뼈가 모조리 가루가 됐고, 그 거죽은 검게 타올랐으며 살은 완전히 익어 그 기능을 잃어버렸다.

    인간의 몸으로 신에 가까운 힘을 사역하던 그 당시에는 느껴보지 못했던 막대한 고통이 늙은 청무진인의 머리를 강타했다.

    그 마음의 미혹이 귓가에 피가 날 정도로 거대하게 소리쳤다.

    ‘정말.’

    하지만 그럼에도 자하기공의 진기는 여전히 도도하게 흘렀으니 늙고 다친 도사는 이를 악물고 그 무사한 오른 주먹을 움켜쥘 수 있었다.

    참으로 어리석기 짝이 없다.

    이게 대체 무엇인가. 우화등선을 앞둔 후배의 앞길을 가로막겠다 튀어나와 결국 몇 초 버티지도 못하고 이렇게 비루하게 쫒겨 났으니 결국 너의 목숨으로 해낸 것이라고는 그 몇 초뿐이다. 그야말로 자신이 양식장의 물고기인 줄 모르고 스스로를 저 북해를 지배하던 곤이라도 되는 양 뽐내던 그 인생 그대로구나.

    천상과 지상을 잇는 그 연결점에서 운호가 늙은 사조를 바라봤다.

    그는 운호를 바라보지 못했다.

    희미하게 흔들리는 기운이 참으로 연약했다.

    천하를 삼킬 것과 같은 저 막대한 기운을 막아내기에 저 노도사는 너무나도 미약했다.

    청무가 호흡했다.

    그의 인생은 양식장의 물고기에 불과했다. 그가 대도라고 믿었던 것은 적당의 수괴가 설계해둔 작당질에 불과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이 순간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자신이 평생 해온, 그 적당의 수괴가 설계해둔 작당질을 반복하는 것뿐이었다.

    ‘정말······.’

    이제는 그 마음의 미혹조차도 이 늙은 부상 입은 도사를 참으로 한심하게 바라본다. 그것은 거대하지 않았지만 참으로 또렷하여 선명하게 도사의 가슴을 파헤쳤다.

    하지만 그럼에도 도사는 호흡했다. 평생 그래왔던 그대로.

    적당의 수괴가 쳐둔 장난질에 평생을 소비했던 멍청하기 짝이 없는 인생을 직시했다.

    권신이라 불리웠던 그 과거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그럼에도 자하기공은 여전히 도도하게 흘렀다.

    알 것 같았다.

    이것은 자신과 지상을 묶는 강력한 족쇄였으니 지금 이 순간에도 그의 몸을 정상으로 돌리려 하고 그에게 다시 젊음을 주려하는 이것 자체가 거대한 제약이라는 것을.

    마침내 마음의 미혹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야 드디어 멍청하기 짝이 없는 늙은 도사가 무언가를 깨달았구나.

    그리고 그 깨달음 앞에서 청무진인은 여전히 하던 그대로 주먹을 움켜 쥐었다.

    ‘······.’

    그리하여 천둥처럼 거대하고, 칼날보다 예리한 조소가 어리석은 도사를 난도질했다.

    그럼에도 청무진인은 천천히 하던 그대로 주먹을 내질렀다.

    대도는 무문이라 하였으니 그 태생이 그렇다고 하여 어찌 도(道)가 아니겠는가.

    거창한 소음은 없었다.

    그저 늙은 도사가 내민 주먹이 마기로 물든 하늘을 꿰뚫었다.

    의지가 존재하지 않는 거대한 힘이 흩어졌다. 아니, 마기 뿐만이 아니었다. 천상과 지상을 잇는 그 거대한 빛의 기둥도 그 주먹 앞에서 크게 흔들렸다.

    그리하여 그 순간, 사람으로 살아가고자 하던 운호의 마음을 오직 드높은 이성으로 유추하던 그에게 불합리하고 모순적인 사람의 마음이 잠시 돌아왔다. 그 마음은 실로 무거워 도저히 천상에 이를 수 없었으니, 천상에 한없이 가깝던 운호가 다시 이 땅에 내려 오기에 충분한 무게였다.

    “사조님!!”

    “권신 어르신!!”

    구 척에 근접했던 거대한 체구는 쪼그라들어 팔 척이 채 되지 못했다. 팽팽하던 피부도 없었고 그 피부 아래를 가득 채우던 탄탄한 근육도 없었다. 머리는 온통 새하얗게 셌으며 얼굴에는 검버섯이 가득했다.

    “정말이지 그러하구나.”

    화산의 권신. 청무진인 장오.

    향년 팔십구 세.

    그의 마지막 일권은 분명 지상이 이치를 아득히 벗어나 있었다.

    ***

    “내가 늦었구나······.”

    중원의 오악. 중원에서도 가장 그 기운이 성한 다섯 개의 영산 가운데 하나인 화산에 마기가 소용돌이치고 있었다. 그 처참한 광경에 천하에서 가장 더러운 노인이 눈을 질끈 감았다.

    걸왕 소진평.

    그는 무한에서의 혈사 이후 쭉 마교의 대제사장을 쫒아왔다. 제 아무리 신출귀몰하다고 해도 그만한 인간은 항상 흔적을 남길 수밖에 없었다. 또한, 당대에는 이해할 수 없었던 일들도 시간이 흐른 뒤에는 그 결과를 남기기 마련이다.

    그리고 그 속에서 소진평은 천하제일의 문파인 화산에 대하여 한가지 의문점을 갖게 됐다. 단서는 충분했다. 무한에서의 싸움을 통하여 증무진인 목운평이라는 인물이 마교의 대제사장을 막아섰다는 것을 알 수 있었으니까. 마교가 오태산에서 벌였던 뜬금 없었던 혈사는 바로 그런 이유를 품고 있었다.

    그렇다면 대체 어떻게?

    그렇게 크게 망했던 화산은 대체 어떻게 다시 부흥할 수 있었던 것일까? 그것도 무당과 소림을 넘어서는 성세를 자랑할 만큼.

    그저 만리우보 백운진인 공양소라는 걸출한 인물이 등장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넘겼던 그것에 의문이 생겨났다. 화산이 진정 마교의 원수였다면, 그렇기에 오태산에서 그러한 무리를 하면서까지 화산에게 심대한 타격을 준 것이라면, 어째서 마교는 이후 화산의 부흥을 좌시한 것일까?

    사람의 몸을 뺏는 괴물.

    두각을 드러내지 못하던 둔재에서 천하제일인으로 도약한 백운진인 공양소.

    근거가 없었기에 그저 의심이었다. 그것도 누군가에게는 차마 말할 수 없는 의심. 혹여라도 화산의 도사들이 듣는다면 조사를 모욕했다며 사생결단을 내려고 해도 이상하지 않을 모욕적인 의심이다. 그렇기에 참으로 조심스러웠다. 하지만 그 조심스러운 움직임이 이토록 후회로 다가올 줄이야.

    무한에서의 상처 이후 다 회복하지 못한 뼈마디가 시큰거렸다. 하지만 그럼에도 걸왕은 저 터무니 없는 마기의 소용돌이에도 두려움 없이 걸음을 재촉했다. 혹시 모르는 일 아니겠는가. 부상을 회복하지 못하여 이제는 초절정이라고 말하기도 부끄러운 늙어빠진 늙은이의 주먹도 도움이 될 수 있을지.

    그리고 그 때.

    늙은 거지의 눈에 무언가 이상한 것이 들어왔다.

    터무니 없는 마기를 뿌려대는 마인이 화산을 등지고 달리고 있었다.

    저기 먼 곳에서 화산의 용맥을 오염시킬만큼 압도적인 존재감을 발휘하는 마인 만큼은 아니었다. 하지만 이만하면 가히 천마라는 이름이 부끄럽지 않다.

    대체 어째서? 게다가 이상한 것은 그것만이 아니었다. 그의 등에는 화산파의 옷을 입은 젊은 제자가 업혀있었다.

    그 기이한 광경을 바라보며 걸왕은 그가 할 수 있는 가장 합리적인 추측을 했다.

    어쩌면 저 몸이 십만 대산에서 웅크리고 있을 마교의 대제사장이 원하는 새로운 몸이 아닐까? 또한 천마에 달하는 마인이 저리 허겁지겁 도망간다는 것은 화산이 그 명성에 걸맞게 훌륭하게 마인들을 막아내고 있다는 의미일 것이다.

    그렇기에 걸왕의 선택은 간단했다. 걸왕이 부상 입은 마인의 뒤에 따라붙었다.

    자신이 지나간 흔적을 또렷하게 남기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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