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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산파 역대급 천재-242화 (242/288)

242화

무의 이름(15)

강아현이 무언가 불길함을 느꼈다.

화산에 넘실거리는 이 흉측한 마기 때문일까?

-쾅!!

마인의 공격이 한층 강맹하게 그녀를 위협했다.

고작 일 격을 막아냈음에도 몸이 삐걱거린다. 조금 전 천마와 싸울 때 무리를 했던 탓일까? 아니면 마기로 오염된 화산의 대지가 그녀를 거부하는 탓일까.

옥녀진결의 흐름이 원활하지 않았다.

“감히!!”

아니, 하지만 그것이 아니다.

마인의 공격들은 강맹했으나 버텨내지 못할 것도 없다. 경지를 넘어선 고수인 청허진인이 그들을 돕고 있다. 물론 심대한 내상을 입었기에 초월적인 위용을 보여주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애당초 보는 시야가 다르다. 백의 힘을 사역하던 사람이 스물의 힘으로 싸우는 것과 애당초 스물밖에 못 쓰는 이가 스물의 힘으로 싸우는 것은 다를 수밖에 없다.

허면 저기서 싸우고 있는 운호의 싸움이 불안한 것일까?

-콰과과과광!!!

한차례 빛이 번뜩할 때마다 주변의 풍광이 달라진다. 아니, 모르겠다. 그쪽을 볼 때마다 인간의 인지를 넘어선 광경이 그녀의 머릿속을 새하얗게 불태운다. 분명 목격했으나 아무것도 목격하지 못한 것 같다.

그리고 그녀는 그와 비슷한 것을 목격한 적이 있었다.

-콰과광!!!

또 한차례 거대한 충격음이 울려퍼졌다.

그것은 사건과 동시에 쏟아진 충격음이 아니었다. 사건이 있고 한참 후에 생겨난 충격음이다.

향기가 느껴졌다.

희미한 꽃향기.

종화의 이야기가 떠올랐다.

너는 여기까지야.

이제 너는 그저 짐이 될 뿐이니까.

절정이다.

범인들의 눈으로 보자면 그녀 역시 초인의 범주에 속한다. 하지만 저 싸움은 그것을 아득히 넘어섰다. 아무렇지 않게 튕겨 나온 공격의 파편 하나가 건물을 무너트린다.

흐릿하게 종화의 형상이 보였다.

그리고 사라진다.

그래, 그녀의 말이 옳다.

아마 저기에 가봤자 나는 그저 방해만 될 뿐이겠지. 사람은 누구나 자기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야 한다. 나의 전장은 이곳이다. 나의 부모, 동문, 그리고 내가 사랑하는 이의 사제를 지키는 것은 분명 가치 있는 일이다.

하지만 어째서일까?

파검 좌부원의 손녀이자 남궁철의 아내인 조헌화가 했던 이야기가 귓가에 멤돈다.

“할머니 말에 따르자면 졸지에 남편이 바람나서 도망갔는데, 그 대상이 하늘이라 화도 못낼 것 같고. 그냥 생과부가 된 것 같다고 하시더라.”

하지만 그 상념은 그리 길게 이어질 수 없었다.

-쾅!!!

“어린 계집이 오만하기 짝이 없구나. 감히 이 몸과 싸우면서 딴생각을 해?”

마인의 공격이 강하게 그녀를 덮쳐왔다.

***

편마가 광소를 터트렸다.

“아미타의 화신이여. 고작 이 정도냐? 부족하다. 본좌의 목숨을 앗아가기에 너무 부족하다!!”

과연 어두운 빛이라는 것이 가능한 것일까?

지금 편마의 몸을 본다면 그 질문에 대한 답은 확실해진다.

가능하다.

편마의 몸이 흩어지고 있었다.

마치 우화등선을 하는 신선들처럼. 하지만 종화는 본능적으로 저것이 그와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연료다.

지금 편마는 자신의 육체를 연료로 승화시키고 있는 것이다.

종화의 몸이 검과 하나가 됐다.

사람의 몸이란 본디 마음이 흐르는 대로 움직이는 것이었으니, 그녀의 검 역시 그와 같았다.

운호가 편마의 공격을 대부분 다 감당했다.

마치 천 개의 손이 달렸다는 관음처럼 편마에게서 펼쳐지는 그 터무니 없이 많은 공격들이 밖으로 흘러나가지 못했다.

그리고 그 가운데 몇몇. 새어 나오는 공격들을 처리하는 것은 종화의 몫이었다.

푸른 빛의 서늘한 기운이 하나의 선으로 압축됐다.

산지바라는 마인이 그것을 움켜쥐었다.

심검(心劍)

아니다.

저것을 심검이라 한다면 그것은 심검에 대한 모독이다. 저것은 마치 초절정에 오르지 못한 이들이 그저 넘쳐나는 기운으로 검강을 흉내내는 것처럼, 아직 진짜 심검을 모르는 이가 그저 무지막지한 기운으로 강기를 긁어모아 검의 형상으로 빚어낸 것 뿐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그 위력만큼은 결코 무시할 수 없었다.

양적인 변화가 누적되면 특정 시점에서 그 성질은 결국 질적 변화로 이어지기 마련이다. 산지바가 펼쳐내는 저 빛의 검이 바로 그 경계 지점에 위치 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그것은 적어도 운호가 세 번의 박자를 사용해야 할만한 성질의 것이었다. 편마를 지나 저 먼 곳으로 달려가는 병조량을 치려던 운호가 등을 돌려 그 공격을 막아냈다.

-운호야!!

파검이 소리쳤다.

그 공격에 대한 경고가 아니었다. 그것은 점점 가벼워지는 운호를 깨우기 위한 외침이었다.

“확실히 천마라는 이름이 어울리긴 하네요.”

백운진인의 몸을 하고 있던 대제사장과 싸울 때만큼은 아니었다. 하지만 지금도 운호의 정신은 지상의 법칙을 서서히 벗어나고 있었다. 그리하여 그는 보지 않아도 보이고, 듣지 않아도 들리고, 맡지 않아도 맡아지고, 맛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으며, 닿지 않아도 느낄 수 있었다.

사람의 마음이 보였다. 세상을 구성하는 모든 정보들이 머릿속에서 자신의 목소리를 재잘거렸다. 보이지 않는 것은 오직 저 검붉고 검푸른 빛의 덩어리들 뿐이다. 아니, 굳이 따지자면 저것들 역시 이해의 영역에 존재했다. 다만 저것들은 떠드는 소리가 너무 컸다. 또한 너무 많았다.

부족한 것은 그저 처리할 수 있는 용량이다.

그저 한 번에 바라볼 수 있는 크기다.

조금만 더 위로 올라갈까?

지상이 잡아끄는 중력이 점점 더 사라진다.

그 사라지는 중력 만큼 운호의 몸은 더 자유로워졌다.

그 검이 더 정밀해진다.

더 정밀하지만 역설적이게도 구애받지 않았다.

그저 한없이 자유롭다.

그래, 자유야 말로 무형검의 진정한 극한이다.

모든 것이 될 가능성을 품고 있으니 그것이 무한이고, 또 무형이다.

편마가 자신의 몸을 불살랐다.

흩어진다.

더 많이, 더 빠르게.

그의 얼굴에 검버섯이 사라졌다.

그의 얼굴에 주름이 사라졌다.

반로환동?

아니, 아니다. 결코 그런 것이 아니다.

지금 편마가 불사르는 것은 그의 육체만이 아니었다.

영혼백육.

백이 타오른다.

그가 살아온 인생 자체가 연료로 소모된다.

그의 기억이 사라진다. 그저 무공을 펼쳐내기 위해 가장 필수적인 무언가를 제외한 나머지 것들이 휘발된다.

혼이 타오른다.

이 세계에 새겨진 그의 인식표가 지워진다. 그렇기에 그를 기억하는 이들이 사라진다. 그가 이 세계에 존재했다는 기록이 지워진다. 저 드높은 차원의 영과 연결된 통로가 끊어진다. 그를 통하여 무한히 순환해야 할 영혼의 기록이 말소된다.

그렇기에 마공이다.

극에 다다른 마공이기에 만들어낼 수 있는 이적이다.

터무니없는 양의 힘이 방출됐다.

그야말로 산을 무너트릴 힘이다.

운호가 잠시 망설였다. 여기서 약간 힘을 풀고 저 마교의 대제사장을 격살할까? 만약 그리 한다면 피해는 자하기공을 익혀 거동이 힘든 화산 제자들의 전멸. 그리고 나머지 제자들 절반 가량의 사망이다. 하지만 그것이 산술적으로 더 이득 아닐까? 무려 이 모든 사태의 근원을 처단하는 일인데?

-백운호오오!!!!

파검이 그의 마음에 소리쳤다.

잠깐의 망설임 사이 편마가 내던진 수많은 힘의 파편들이 운호의 범위 밖으로 쏟아졌다. 그리고 그 쏟아지는 파편들이 운호의 마음을 자극했다.

남궁혜.

그래, 그녀는 그리 죽었다.

마음이 아팠다. 아니, 잘 모르겠다. 마음이 아팠던 것은 확실한데 지금도 마음이 아픈 것일까? 하지만 그래서는 안된다. 마음이 아파야만 한다.

그래, 사람이라면 응당 그래야 한다.

종화의 검이 마치 신이 들린 것처럼 움직였다. 실로 놀랍다. 그녀는 지금, 이 순간에도 차근차근 성장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절대적인 시간이란 어쩔 수 없는 것이라 부족했다. 그것도 몹시.

한 걸음을 더 올라갈까? 그렇다면 저 새어나간 공격들을 모조리 처리할 수 있을텐데. 운호가 잠시 고민했다.

그리고 저 천상의 빛깔과 너무나도 흡사한 색을 띤 인간이 그 새어나가는 공격들을 모조리 막아냈다. 물론 그저 비슷한 색일 뿐 전혀 같지 않다. 잘 연마되어 찬란하게 빛나는 황금과 저 땅바닥을 굴러다니는 누런 개똥처럼.

청무 진인이 크게 숨을 헐떡였다.

그의 의념이 화산을 자극한다. 하지만 역천의 기운으로 화산의 용맥을 틀어쥔 편마의 마음이 너무 단단하다. 그저 단단하게 뭉치고 뭉쳐. 터무니없는 양으로 질적 변화를 만들어내기만 했던 꼭두각시의 마음 따위가 어찌 자신의 혼과 백과 육을 태워내는 마인을 따를 수 있을까. 뭐, 굳이 꼭두각시가 아니더라도 애당초 광신도의 미친 정신 세계를 이기는 것은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어려운 일이겠지만 말이다.

병조량이 한층 더 멀어졌다.

내상을 입었음에도 그 속도가 제법 빠르다. 그의 등 뒤에 업혀있던 대제사장이 쿨럭 피를 토했다.

그의 마음이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이상하게 기분이 나쁘다.

‘아미타여, 이번에도 나의 판정승이다.’

편마의 이름이 지워진다.

그가 행했던 모든 일들이 사라진다. 그의 손자 병조량은 이제 그를 도망치게 했던 노인의 이름을 잊었다. 어린 시절 교의 미래를 책임질 재능이라며 웃던 할아버지의 인자한 미소를 잊었다.

하지만 괜찮았다. 기억을 잃어버린 것은 편마 역시 마찬가지였으니까. 자신이 누구였는지를 잊는다. 자신이 어찌하여 여기서 힘을 휘두르는지도 잊는다. 그저 기억하는 것은 평생을 쌓아올린 무(武). 그리고 이곳에서 저 초월자를 막아내야 한다는 의무뿐이었다.

그리하여 편마 병조량은 그 모든 것을 대신하여 하늘까지 몇 걸음을 남겨두지 않은 초월자를 상대할 힘을 얻었다. 아니, 단순히 상대의 수준을 넘어서 한 걸음을 더 나아갔다.

저 하늘에 올라라.

만약 그러지 않는다면 희생하라.

압도적 이해를 넘어서는 압도적 출력.

물질과 비물질. 그 모든 것들이 무(無)로 돌아갈 때 만들어지는 그 터무니없는 크기의 힘을 온전히 편마 병조량이었던 것이 휘둘렀다.

종화는 너무 약했다.

청무진인도 너무 약했다.

나머지는 말할 가치도 없었다.

분명 인간 백운호는 저들이 사라진다면 마음이 아플 것이다.

그렇다면 인간 백운호가 선택해야 할 것은 여기에서 한 걸음을 더 올라서는 것이다. 그래, 마치 무한에서 파검이 그리했던 것처럼.

-아니다!! 운호야!! 아니다!! 그 길이 아니다!! 제발!! 제바알!!!

파검이 피를 토하는 목소리로 소리쳤다.

하지만 닿지 않았다.

이미 운호가 선 자리는 고작 검에 갇힌 백(魄) 따위의 목소리가 닿기에 너무 높았다.

딱 한 걸음.

사람의 마음을 간직한 백운호였으면 선택했을 그것을 위하여.

천상에 가까이 선 그가 걸음을 내디뎠다.

그리고 그 순간 그의 귓가를 때리는 뾰족한 목소리가 있었다.

“백운호!!!!!”

너는 여기까지야.

이제 너는 그저 짐이 될 뿐이니까.

그게 뭐 어쨌단 말인가.

어디 그걸 몰라서 저 먼 서장에 엉덩이를 비비고 눌러앉았고, 어디 그걸 몰라서 보광현에서 끈덕지게 따라붙었단 말이던가?

다가오는 거대한 힘의 격류 사이에서 강아현이 그의 이름을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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