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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산파 역대급 천재-235화 (235/288)

235화

무의 이름(8)

운호는 직감했다.

저 녀석 저거 사기꾼이다.

지금, 마치 운호 자신에게 대제사장의 무언가가 깃들었다고 헛소리하는 것 때문만이 아니다.

전지의 능?

그래, 저 아득한 천상과 연결돼본 경험이 있기에 그런 것이 가능하다는 것 정도는 인지한다. 실제로 그 당시 운호는 융통무애했으니까. 하지만 그것은 인간의 능력으로는 불가능하다.

지금까지 운호는 최단시간에 대제사장의 목을 치는 것에 집중해왔다.

어쩌면 그것으로 자신의 수가 읽힌 것은 아닐까?

효율과 합리성을 버렸다.

그리하여 그 자리에 역설적으로 더욱 거대한 거시적 효율이 자리 잡았다.

매농의 검이다.

눈앞의 이득에 혹하지 않고 거시적 국면을 바라본다. 물론 그렇다고 상대방이 그 이득을 버리는 것이 득인가 하면 또 그것도 아니다. 눈앞의 이득을 취하지 않음으로써 누적된 손해는 결국 파멸로 이어지게 되니까. 이것을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은 운호의 이해를 뛰어넘는 힘, 혹은 운호보다 더 넓은 대국을 바라보는 시야뿐이다. 그리고 그 가운데 전자는 지금의 대제사장에게는 불가능한 일이다.

그래, 어디 네가 말한 전지의 능이라는 것이 진실인지를 증명해봐라.

이 사기꾼아.

그리고 그 앞에서 대제사장이 선택한 길은 그 어느 것도 아니었다.

“운호야!! 제발 정신 차려!! 넌 이겨낼 수 있어!!”

그야말로 실소밖에 나오지 않는 상황.

하지만 누군가에게는 그 터무니없는 연기가 먹혀든 것 같았다.

“사조님······.”

“그래.”

굉허진인의 시신을 붙잡고 오열하던 청허가 고개를 끄덕였다. 손상된 신공의 영향일까? 아니면 거대한 심적 타격 때문일까? 잠깐의 시간 동안 부쩍 늘어난 주름이 눈에 띈다.

“그만!! 이게 무슨 짓이더냐. 마인들과의 싸움이 한창인 지금 동문끼리 싸움이라니!!”

“마교의 대제사장입니다!!”

“마교의 대제사장입니다!!”

운호와 준형의 목소리가 교차했다.

“대제사장? 그게 무슨 소리냐.”

“대제사장이 운호에게 몸을 갈아탔습니다.”

“대제사장이 청무 태사조님의 몸을 노리다 실패하고 준형의 몸을 차지했습니다. 지금이 기회입니다.”

“태사조님!! 아닙니다. 설사 마교의 대제사장이 청무 태사조님의 몸을 노리다 실패했다고 해도 대체 무슨 이유로 저와 같은 졸자의 몸을 노리겠습니까.”

“졸자?”

피식 웃은 운호가 가볍게 파검을 내던졌다.

은은한 별빛에 휩싸인 검이 청허의 인지를 벗어났다. 청허가 깜짝 놀라 한걸음 뒤로 물러났다. 당연히 운호가 노린 대상은 청허가 아니었다.

-쾅!!!!

대제사장이 내뿜은 타오르는 듯한 자줏빛 광채가 그것을 막아냈다.

청허의 간담이 서늘해졌다. 물론 현재 그의 몸상태가 엉망이라고는 하지만 그가 반응할 틈도 없을 만큼 빠른 공격을 출수한 운호도 그렇고, 그것을 저리 아무렇지 않게 막아낸 이준형 역시도······.

“보셨습니까? 저게 과연 졸자의 무공이라고 생각되십니까?”

“아닙니다!! 방금 기묘한 환각 속에서 저는 만리우보 백운 사조님의 환영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실로 대단한 기연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기연? 고작 꿈속의 깨달음으로 경지에 이르렀다고? 헛소리. 검종의 무공이라면 몰라도 기종의 무공은 그렇지 않다는 것. 사조님께서도 잘 아시지 않습니까.”

“매화신단!! 매화신단을 먹었습니다.”

“매화신단? 그게 무슨 소리냐. 네가 그것을 어찌.”

“청무 태사조님께서 사부님께 내리신 반쪽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사부님께서 제게 그것을 하사하셨습니다.”

“현무가?”

청허진인의 눈이 현무자에게 향했다.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맞습니다.”

“설혹 그렇다고 해도 여전히 대제사장이 노린 것이 졸자는 아니었다는 말은 유효합니다.”

“운호의 말은 단순히 주장뿐입니다. 무엇보다 마교의 수괴가 누군가의 몸을 노린다면 그리고 그것이 청무 태사조님의 몸이었고 거기에 실패를 했다면, 그 성취를 따져볼 때 응당 그다음 순위는 태사조님과 사부님. 그리고 운호 저 녀석이 아니겠습니까?”

“굳이 내 얼굴에 금칠을 할 필요는 없다. 확실히 청무 사형을 제외한다면 이 자리에서 가장 높은 성취를 보이는 건 운호다. 그런 의미에서 마교의 수괴가 운호의 몸을 노렸을 거라는 말은 제법 타당하지.”

-콰과과과광!!!

마교의 마인들, 그리고 화산과 종남, 조왕의 싸움이 더욱 치열해졌다.

동시에 청허의 마음도 급해졌다. 하지만 만약 이 두 아이 중 누군가의 말이 사실이라면 그것은 저 싸움보다 훨씬 더 중요한 문제다.

“운호야, 준형아. 대체 무슨 증거로 서로를 마교의 수괴라고 하는 것이냐.”

“마교의 수괴가 빛과 함께 사라지고 멍하니 있던 운호가 갑자기 아무런 말도 없이 저에게 공격을 해왔습니다.”

“마교의 대제사장에게 연결되어 있던 거대한 기의 흐름이 그 방향을 준형이에게 틀었습니다.”

“그러니까 운호 너는 단순히 기의 흐름이 준형이에게 몰려들었기 때문에, 그리고 준형이 너는 운호가 갑자기 너에게 공격을 해왔기 때문에 그렇다고 생각하는 거란 소리로구나. 하지만 운호야 준형이의 말처럼 정말로 준형이가 무언가 커다란 깨달음을 얻었다면 화산의 기운이 준형이에게 동조했다고 해도 이상한 일은 아닌 것 아니더냐. 그리고 운호가 준형이를 공격한 것은 단순한 오해때문일 수 있고 말이다.”

운호가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그것보다 청허가 말을 하는 것이 조금 더 빨랐다.

“확증이 없는 일에 굳이 기를 쓸 필요는 없지 않더냐. 일단 힘을 합쳐 저 마인들을 무찌르자꾸나. 혹시나 배신의 위험을 생각한다면 둘이 서로 떨어진 곳에서 마인을 처단하면 그만이다. 그리고 여유가 생겼을 때 다시 이야기해보는 것은 어떠하냐. 무엇보다 정말로 마교의 수괴라면 자신의 수하들을 자기 손으로 죽여 더 불리한 상황을 만들 이유는 없을 테니 금방 구분이 될 테고 말이다.”

운호가 날아 돌아온 파검을 움켜쥔 채 한 걸음을 걸어나갔다.

“아뇨, 안됩니다!! 대제사장이 준형이의 몸에 들어간 지금이 그가 가장 취약한 시점입니다. 이 기회를 놓칠 수는 없습니다!!”

“그렇다면 나는 준형이의 말을 일단 믿을 수밖에 없다.”

고작 이 할.

늙어가는 초절정의 고수가 강하게 한 걸음을 내디뎠다.

“태사조!!”

“굉무도!! 현종도!! 검을 쓰는 놈들은 항상 모두 그러했다. 항상 자신이 옳다고 떠들어댔지!! 그리고 그 결과가 어떠했는지 아느냐?? 머리를 쓸 줄 아는 것은 너 혼자가 아니다. 백운호!! 사문의 어른으로서 명한다. 우선 저 마인들을 먼저 척결해라.”

하지만 실로 가소로웠다.

고작 이 할 남짓한 진기. 설사 청허와 준형이가 합공을 한다고 해도 너끈히 상대할 자신이 있다.

운호가 물러나지 않고 한 걸음을 앞으로 걸어나갔다.

“이놈!!! 감히 네가 기사멸조의 대죄를 저지르겠다는 것이더냐.”

“지금이 최고의 기회입니다.”

“준형아!! 안 되겠다. 아무래도 역시 네 말이 맞는 것 같구나. 우선은 운호를 제압하도록 하자. 내가 돕겠다. 그리고 현무야, 너는 가서 아이들에게 지금 상황을 제대로 알리거라.”

“네, 알겠습니다.”

-쯧, 역시 팔은 안으로 굽는다는 건가?

어느새 정신을 차린 파검이 혀를 찼다.

확실히 그 말대로라면 지금 청허의 팔 안쪽은 준형이다. 그는 굉허에서 현무로 이어지는 그의 직계였으니까.

운호가 검을 들었다.

이준형의 탈을 쓴 대제사장이 한 걸음을 걸어 나왔다.

그 뒤편에서 청허가 얼마 되지 않는 기운을 긁어 모았다.

다시 매농의 검?

아니었다.

운호가 선택한 것은 광음.

찰나의 틈새를 파고드는 바로 그 일검이었다.

운호의 그 자세를, 그 기운을.

이준형이 읽어내며 대비했다.

그리고 바로 그 순간.

-쾅!!!!!

청허의 양손이 이준형의 등판을 두들겼다.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던 순간의 갑작스러운 기습. 자욱하게 모여있던 자하기공의 보랏빛 안개가 한순간 크게 흔들렸다. 그리고 운호의 검이 그것을 놓치지 않았다. 보랏빛 안개를 가르는 찬란한 별빛.

-콰과과과과과광!!

이준형의 양팔에 수십 개의 자상이 생겨났다. 그 가운데 하나는 뼈가 보일 만큼 커다란 상처였다.

“사조님 대체 왜!!”

“마교의 악적아. 너는 대체 나를, 아니 이 화산을 어디까지 농락할 생각이더냐. 내가 설마 이 꼴을 보고도!! 이 꼴을 보고도!!!!”

부르르 떨리는 노인의 두 뺨.

고작 그 한 번의 공격에 대체 얼마나 많은 기운이 소실된 것일까. 오늘 아침만 하더라도 흰머리 하나 찾기 힘들었던 청허의 머리에는 이제 검은색이 남지 않았다.

기운을 소실한 화산의 제자들은 모두 자하기공을 익힌 무인들이었고 저기서 싸우는 모든 아이들은 자하기공을 익히지 않은 아이들이었다. 또한, 대체 어떻게 감히 마인들은 신성한 화산에서 저리 시커먼 마기를 풀풀 풍기며 싸울 수 있을까? 그리고 그 마기의 한켠에 어떻게 자하기공의 향취가 묻어나는 것일까?

무엇보다 그가 정신을 잃기 전 봤던 그 얼굴.

만리우보 백운진인 공양소.

그저 정신을 잃기 전 잠시 헛것을 봤던 것이라 치부하고 싶을만큼 충격적인 기억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부정할 수 없는 명백한 사실이었다.

물론 그 모든 사실을 두고도 자하기공에 대한 의심을 하지 않을 수도 있었다. 대부분 사람은 믿고 싶은 것을 믿기 마련이고 특히나 평생동안 자신이 수련해온 무공이 누군가의 농간임을 인정하는 것은 절대 쉬운 일이 아니었으니까.

그것은 분명 청무와 같은 사람조차 한순가 넋이 나갈 만큼 충격적인 진실이었다.

-과연, 황실의 능구렁이들도 화산파 장문인에게는 한 수 접고 들어간다더니. 대단하다. 설마 마교의 대제사장을 속일 줄이야. 운호 너는 언제 눈치를 챈거냐?

‘머리를 쓸 줄 아는 것은 저 혼자가 아니라고 하셨으니까요.’

굉무도 현종도 모두 항상 스스로가 옳다고 믿었다. 그리고 그것을 바꾸지 않았다. 당연하다. 그 어느 순간에도 진실은 타협할 수 없는 법이니까. 마치 지금 운호가 청허의 말에 끝까지 타협하지 않았던 것처럼.

그리고 무엇보다 저 노인도 이제는 알고 있었다.

검종이 틀린 길이 아니라는 것을.

이준형.

아니 이준형의 탈을 쓴 마교의 대주교가 쓰게 웃었다.

“장오 저 녀석도 그렇고. 곽이 너도 참으로 속을 썩이는구나.”

“남의 몸을 훔쳐 살아가는 요괴 주제에 마치 나의 사조님이라도 되는 것처럼 혀를 놀리는 꼴이 참으로 요사스럽다. 하지만 그렇기에 기껍구나. 주먹 대신 입을 놀린다는 것은 결국 그것밖에는 할 수 있는 것이 없다는 뜻일 테니.”

“글쎄? 과연 그럴까?”

이준형의 양팔에 있는 상처가 서서히 아물어가기 시작했다.

상식을 초월한 회복 속도.

운호가 그것을 지켜보지 않았다.

날카로운 공격.

이준형의 몸이 휘청이며 그 공격들을 피해냈다.

“그래, 내가 보기에는 과연 그러할 것 같구나. 이 사기꾼아. 전지의 능? 참으로 이름 하나는 거창하게 잘 지었다.”

운호와 같은 재능?

그래, 천하는 넓으니 어쩌면 그런 이가 또 없으리라는 법은 없다. 실제로 몽원경에 있던 증무진인도 운호와 비슷한 수준의 이해력을 갖추고 있었다. 하지만 단언하건대 저자는 아니다. 만약 그러했더라면 운호가 매농이 아닌 광음의 형을 취하는 것만으로 청허의 공격을 대비했을 테니까.

그렇기에 답은 아주 간단했다.

운호와 같은 분석력이나 판단력이 없음에도 그와 같은 선택을 할 수 있었던 이유.

“이천년이라고 했던가?”

아득한 시간.

이준형의 탈을 쓴 그가 팔을 뻗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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