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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산파 역대급 천재-233화 (233/288)
  • 233화

    무의 이름(6)

    대제사장과 지상을 연결하는 것에 전력을 다하던 마인들이 눈을 떴다.

    “그래, 이래야지.”

    조왕 주고수가 기쁜 표정으로 마인들을 바라봤다.

    그의 할아버지는 저 원의 달자들과 싸워 제국을 건설했다. 또한 그의 아버지는 조카와 싸워 제국을 쟁취했다.

    자연의 이치는 본디 약육강식이다.

    허나 어찌 인간이 자연의 이치대로만 살아갈까. 조왕 주고수는 자신의 욕망을 억누르고 살아왔다. 그것도 아주 오랜 시간을. 그리고 그렇게 억눌린 욕망의 해소구는 오직 무공뿐이었다.

    본의 아니게 대제사장의 마지막에 지대한 공을 세웠던 주고수의 검강이 백열했다. 그가 마치 성난 사자와 같은 기세로 서른 명의 마인들을 향해 뒤도 보지 않은 채 돌진했다.

    혼자는 아니었다.

    “늦었습니다.”

    벽운자.

    종남의 초절정 고수가 곧바로 주고수의 뒤를 따랐다. 또한 그 벽운자의 뒤를 따라 종남의 고수들 역시 곧바로 합류했다.

    “끄응······.”

    화산의 제자 가운데는 굉원이 가장 먼저 눈을 떴다.

    운호와 악연이 있던 장광의 사조로 외공을 통해 절정의 경지에 이른 흔치 않은 무인이었다. 그 경지 역시 대단하여 외당주 굉명과 함께 굉자배 최고의 고수로 꼽히던 인물이다.

    그리고 그의 뒤를 이어 몇몇 무인들이 눈을 떴다.

    하지만 여전히 반절이 넘는 화산의 제자들이 깨어나지 못했다.

    운호가 잠시 고민했다.

    대체 어째서?

    천상에서 갑자기 멀어진 탓일까? 숨 쉬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들어오던 수많은 정보가 차단됐다. 그것은 마치 눈이 나쁜 이가 오랫동안 쓰고 있던 안경을 갑자기 잃어버린 것과 같다.

    물론 그 고민은 그리 오래 가지 않았다.

    깨어나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의 차이가 너무 명확했기 때문이다.

    자하기공.

    자하기공을 익힌 이들은 여전히 눈을 뜨지 못하고 있었다.

    굉자배에서 굉원 진인과 쌍벽을 이룬다는 굉명 진인은 물론이거니와 최근 초절정의 경지에 오른 현무, 그리고 청허까지도.

    하지만······. 분명 대제사장은 소멸한 것 아니었나?

    설마?

    운호의 시선이 저 멀리 떨어진 청무 진인에게 향했다. 피투성이가 되어 쓰러진 도사가 자리에서 서서히 일어났다.

    아니, 아니다.

    마치 생명처럼 꿈틀거리는 자하기공의 흐름은 청무 진인을 향하고 있지 않았다. 천상의 문이 닫힌 것이 참으로 아쉽게 느껴졌다. 하늘과 연결되어 있던 조금 전의 감각이었더라면 곧장 어떻게 된 일인지를 알 수 있었을 터인데.

    -후읍

    청무진인이 크게 호흡했다.

    마인들의 단단한 마기로 억제되어있던 화산의 정기가 다시금 크게 일어났다. 하지만 아쉽게도 지금 그의 몸은 그 기운을 모두 수용할만한 상태가 아니었다. 이전에 비하자면 참으로 하찮은 힘의 총량으로 청무가 마인들과의 싸움에 합류했다.

    다섯 명의 천마와 스물다섯의 지마.

    반면 이쪽의 인원은 이백을 훌쩍 넘어간다. 그러나 놀랍게도 싸움의 흐름은 마인들이 쥐고 있었다.

    조왕 주고수가 터무니 없는 기세로 날뛰고 있었고 벽운 도사가 검선의 그것을 닮은 순양태을검을 검을 연신 휘둘렀다. 또한 만신창이가 된 청무진인 역시 몸상태를 고려한다면 정말 놀라운 활약을 보여주고 있었지만, 동수의 천마를 묶어두는 것이 고작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도 물경 이백에 가까운 인원이다.

    절정 고수 스무 명이면 초절정 고수도 잡아둘 수 있다. 저 이백 명의 인원 가운데 절정의 고수가 대체 몇이던가. 하물며 이곳은 화산으로 화산파의 고수들은 그 기운에 익숙하며, 그만큼 더 큰 힘을 끌어다 쓸 수 있다.

    정상적인 상태라면 다섯 명의 천마와 스물다섯의 지마라고 해도 얼마든지 제압함이 마땅했다.

    “대체 어째서!!”

    깨어난 화산의 무인들이 혼란에 빠졌다.

    이유는 간단했다.

    지금 화산의 기운은 그들에게 동조하지 않고 있었다. 본래라면 저 마인들의 진득한 마기를 억눌러야 할 화산의 맑은 정기가 움직이지 않는다. 아니, 오히려 화산의 정기는 그와 다른 형태를 띄고 있는 종남의 무인들을 억눌렀다.

    “당황하지 말아라!! 그저 화산 밖에 나왔다고 생각하고 움직여라!!”

    그 와중에 현종자 공야찬이 소리쳤다.

    그는 외당 소속으로 가장 많은 외유를 나간 제자였다. 그렇기에 화산의 무인들 가운데 가장 이런 순간에 익숙한 사람이기도 했다.

    “호야. 내 뒤에 서거라.”

    통상적으로 중원에서 천급의 마인은 초절정에 지급의 마인은 절정에 비견한다. 하지만 공야찬은 알고 있었다. 그 기준은 어디까지나 중원에서 정한 기준이라는 것을.

    그는 인급의 마인이 상대라면 필승을 자신할 수 있다. 하지만 지급의 마인이라면? 전성기를 기준으로 해도 승률은 2할 미만. 하물며 전성기를 지나 그 시절의 8할도 채 되지 못하는 기량을 지닌 지금이라면?

    장호가 손을 덜덜덜 떨며 공야찬의 뒤에 섰다.

    공야찬은 문득 이와 비슷한 순간이 언젠가 있었던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한.

    그래, 어쩌면 그때와 비슷한지도 모르겠다. 물론 당시의 운호는 덜덜덜 떨지도 않았고, 눈 앞에 선 상대는 저 정도로 강대한 기운을 내뿜고 있지도 않았지만, 어쨌거나 제자를 등 뒤에 세우고 검을 내밀고 있다는 사실 만큼은 그때와 똑같았다.

    옥녀봉 홍매당은 화산파을 구성하는 집단 가운데 자하기공을 가장 적게 받아들인 집단이었다. 연단을 중심으로 하는 폐쇄적인 환경 덕분이었다. 하지만 동시에 그만큼 비전투 인원도 많았고, 전체적인 무력의 수준도 낮았다.

    “이쪽으로!!”

    강아현이 선두에서 검을 휘둘렀다.

    능라나찰 소여향이 그런 딸의 모습을 보며 나지막하게 감탄했다. 오랜 시간 여행을 한 보람이 있긴 있구나. 거의 자신에 버금가는 실력이다.

    물론 어디까지나 버금이지만.

    화산금정 강진은 자신의 무력감을 통감하며 뒤로 빠르게 물러났다. 지금 저 싸움에 끼어들어봤자 방해만 될 뿐이라는 사실이 뼈아프게 다가왔다.

    ‘단환만 완성됐더라면······.’

    자유로운 두 명의 천마가 움직였다.

    굉원자를 비롯한 설매각의 인원들이 그중 하나를 막아섰다.

    ‘젠장, 젠장, 젠장!!’

    그리고 그 설매각 인원들의 최후미.

    턱을 덜덜덜 떠는 장광이 있었다.

    천마가 내뿜는 기운은 실로 강대했다. 평소 감히 눈도 똑바로 마주치지 못하는 굉원 사조조차도 그 앞에서는 수레바퀴 앞의 사마귀와 같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장광의 몸은 오랜 기간 훈련받은 그대로 움직였다.

    그리고 또 하나.

    종남파의 도복을 입은 더벅머리 도사가 날랜 걸음으로 달려왔다.

    -쾅!!

    가벼운 걸음에 어울리지 않는 묵직한 일격.

    하지만 상대는 그 의지만으로 천기를 내리누른다는 천마였다.

    “계집? 네년이 그 종남의 소검후인가 하는 년이로구나. 쯧, 근데 어찌 생긴 것은 사내와 크게 구분이 되지 않는구나.”

    종화가 그의 말에 답하지 않았다.

    그저 움켜쥔 검에 힘을 더했다.

    종남루에서 순양자가 정양자에게 화룡의 법을 얻은 이후 종남은 오직 순양을 그 근간으로 했다. 그리고 태을 검선에 이르러 처음으로 순양이 아닌 다른 길을 모색했으니, 태을 검선은 그 힘에 태을(太乙)이라 명명했다.

    태을 검선에서 벽운자로 그리고 다시 종화에게.

    최초의 창안자인 태을 검선은 천재였다. 하지만 그는 그저 이론을 만들었을 뿐, 그것을 익혀내지 못했다. 최초의 전승자인 벽운자 역시 천재의 범주에 들어갈 만한 인물이었다. 하지만 그가 익혔던 태을은 반쪽이었다.

    그렇기에 그들은 태을이라는 이 기운이 품고 있는 가능성이 얼마나 막대한지를 이해하지 못했다. 그것을 이해할 수 있는 것은 오직 천하에 유일하게 태을의 기운을 오롯하게 익혀낸 종화뿐이었다.

    순양태을(純陽太乙)이 아니다.

    순양의 기운을 태을로 변환하는 것은 마치 익힌 물고기 요리를 다시 물고기로 돌리려는 시도와 같다. 물론 인간의 의념은 불가능을 가능으로 변화시킨다. 그리고 인간의 한계를 초월한 초절정 고수의 그것은 한층 더 강력하다.

    태을을 팔 년이나 수련하여 얻을 수 있는 진기의 양은 순양의 기공을 일 년 동안 연마한 것에 미치지 못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이것이 순리일지니, 진정 올바른 길은 태을순음양(太乙純陰陽)에 있다.

    종화의 검이 천하의 기운이 음양으로 나뉘기 이전.

    시원(始元)에 가까운 힘을 내뿜었다.

    태을검(太乙劍)

    천지개벽(天地開闢)

    그것은 아직 초절정의 경지에 오르지 못했던 운호가 펼쳐낸 광음과도 같았다. 경지에 오르지 못했으나 분명 경지에 맞닿아있다.

    그 아득한 검술 앞에서 천마는 당혹감을 내비치지 않았다. 그의 몸에서 나온 진득한 마기가 주변을 붉은빛으로 물들였다. 기운의 질에서 종화의 검은 분명 저 진득한 마기를 압도했다. 하지만 아무리 질이 좋다고 해도 그 양이 너무 적다.

    끈적한 마기가 내려치는 종화의 검을 가로막은 그 순간.

    마인의 양손이 종화의 텅 빈 가슴을 노렸다.

    순양에서 태을로 전환하는 것은 순리에서 어긋난 역리다. 그러나 태을에서 시작한 기운이 순음과 순양으로 나뉘는 것은 응당 이뤄져야 할 순리일지니. 본디 겨자씨만하던 것이 크게 부풀어 천하가 되었다.

    그리하여 그것을 우리는 천지의 개벽이라고 한다.

    -콰과과과과과과광!!!

    종화의 태을검에서 어마어마한 기운이 폭발했다. 그 기운의 크기는 검을 휘두르는 종화 자신도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막대하여, 단지 그 검을 휘두르는 것만으로도 그녀의 경맥을 뒤흔들고 나아가 제법 깊숙한 내상을 일으켰다.

    종화의 가슴을 노리던 천마가 크게 튕겨났다.

    예상하지 못했던 불의의 일격. 만약 지급의 마인이었더라면 아마 반응할 틈도 없이 즉사했을 지도 몰랐다.

    하지만 상대는 무려 천기 그 자체를 흐트러트린다는 천마다. 신체 일부분은 얼어붙었고, 일부분은 화상을 입었다. 머리카락은 군데군데가 불에 탔으며 고드름이 맺힌 수염은 두두둑 부셔져 내렸다.

    “이 썩을 종남의 갈보년이 감히!!”

    -쿨럭

    종화가 기침 한 번으로 가슴에 맺힌 울혈을 뱉어냈다. 시커먼 핏물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표정에는 별다른 변화가 없었다. 그저 다시 묵묵하게 종남의 그 투박한 검을 움켜쥐었다.

    아직이다. 운호가 해냈다면 내가 해내지 못할 이유는 없다.

    천마가 몸을 날렸다.

    ***

    그것은 참으로 신비한 경험이었다.

    위대한 무인의 인생이 눈앞에 펼쳐졌다. 고난이 있었고 좌절이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그는 그 모든 것을 극복하고 천하에 우뚝 섰으며, 사문을 천하제일의 자리에 돌려놓았다.

    자신의 과거가 펼쳐졌다.

    잘못된 선택들.

    후회가 되는 멍청한 행동들.

    그리고 나타난 수많은 결과까지.

    또다시 과거가 펼쳐졌다.

    올바른 선택들

    가장 적절한 현명한 행동들.

    그리하여 만들어진 이상적인 현재까지.

    이준형이 눈물을 흘렸다.

    그래, 저 길로 갔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어렵지 않은 일이다.

    알 수 있었다. 그 말이 사실이라는 것을. 그저 고개만 한 번 끄덕이면 된다는 것을. 하지만 이준형은 고개를 끄덕이지 않았다. 모든 것은 자신의 선택이었고, 그것은 오롯하게 자신이 감당해야 하는 일이었으니까.

    이준형이 눈을 떴다.

    그리고 그 앞에 ‘그’가 빙그레 웃고 있었다.

    “그래, 바로 그거다. 이 모든 것은 너의 선택이었고, 그렇기에 네가 오롯하게 감당해야 하는 일이다.”

    위로는 청허부터 아래로는 삼대제자 백수한까지.

    정제된 화산의 기운이 이준형에게 쏟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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