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0화
무의 이름(3)
사람이 별빛으로 흩어지는 광경은 실로 장엄했다.
그리고 동시에 매우 파괴적이었다.
인간의 형상을 한 강기?
아니, 저것은 그 이상이다.
인간의 몸은 지상의 법칙에 구애를 받는다. 그리고 그것은 인간을 초월한 초절정의 고수라고 해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
백운진인의 형상을 한 저 강기의 덩어리, 마교의 대제사장은 인간의 몸을 벗어났다. 그리하여 마침내 지상의 법칙에서 자유로워졌다.
별빛이 움직였다.
지상의 법칙에 따르자면 빛보다 빠른 것은 존재할 수 없다.
아니, 조금 더 정확히 말하자면 지상에서 정의한 가장 빠른 속도는 빛의 속도와 같다. 그리고 이 순간, 지상의 법칙을 벗어난 저 별빛의 덩어리는 지상에서 정의 내린 가장 빠른 속도를 아주 조금 상회하는 속도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빛보다 빠른 행동이 시간의 저편에서 움직였다.
그리고 그것이 의미하는 바는 실로 끔찍했다.
지상의 절대적인 규칙 중 하나인 시간의 연속성이 뒤집혔다.
그리하여 원인과 결과가 뒤바뀐다.
백운진인의 형상을 한 별빛이 움직였기에 청무진인의 어깨가 폭발한 것이 아니라, 청무진인의 어깨가 폭발했기에 백운진인의 형상을 한 별빛이 움직인 것이 돼버렸다는 뜻이다.
그것을 지켜보던 운호는 그것을 이해할 수 없었다.
당연한 일이다.
인간의 인지는 그것을 이해해서도 인식해서도 안 됐으니까.
하지만 언젠가 인간을 벗어나려 했던 운호의 영혼이 본능이라는 이름으로 그것에 강한 경고를 내려보냈다.
저것은 세상 모든 것의 반(反)이다.
세상 모든 물건은 힘을 모을수록 강해지고, 더 빨라지기 마련이다. 그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이치였다. 하지만 저것은 그것에도 반한다. 잃어버리고 사라질수록 더 강하고 빨라진다.
즉, 저것이 가장 약한 시점은
아직 인간의 형상이 남아있는 바로 지금이라는 뜻이다.
그래, 지금이라면 아직 가능성이 남아있다.
“영감님!!”
-안 그래도 준비 끝났다!!
공두베가 말했다.
나는 이 검으로 너의 약점을 보완하고, 강점을 살려주겠노라고.
운호의 약점은 내력이었다. 그렇다면 운호의 강점은 무엇인가?
공두베가 심어둔 그 두 번째 기능이 빛을 발했다.
-콰과과과광!!!
권신 청무진인의 오른팔이 부서졌다.
사실 부러졌다는 말이면 또 몰라도 부서졌다는 표현은 사람의 몸을 대상으로 하기에는 조금 어울리지 않는 표현이었다. 하지만 지금 청무진인의 오른팔을 설명하기에 그보다 더 적절한 표현은 존재하지 않았다.
마치 그 안에 뼈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청무진인의 오른팔은 실로 참혹한 형상으로 흘러내렸다.
대체 얼마나 끔찍한 고통일까?
청무진인의 얼굴이 크게 일그러졌다.
“아······.”
벌어진 입에서 멀건 침이 뚝뚝 흘러내렸다.
하지만 놀랍게도 청무진인이 지금 느끼는 가장 큰 고통은 육체의 상처가 아니었다. 그 고통은 오히려 무언가 알고 싶지 않은 사실을 알게 된 참담함이 만들어낸 마음의 통증이었다.
충돌의 순간
그의 머릿속으로 참으로 많은 것들이 흘러들어왔다.
사실 애당초 이 충돌 자체가 말이 안되는 일이었다.
분명 대제사장이 목적했던 것은 청무진인의 명(命)만을 깔끔하게 도려내는 것이었으니까. 그렇기에 대제사장의 공격은 청무진인의 팔을 앗아갔으되 명백한 ‘실패’였다.
시간을 정의하는 것은 무엇인가.
청무진인은 시간이 상대적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 앎은 이론적인 무언가를 통해서 알아낸 것이 아니었다. 단순히 절정 혹은 그 이상의 경지에 올라 인지의 속도가 빨라짐을 통해 얻은 착각도 아니다.
자하 기공의 구단공.
지금 눈앞에 있는 저 가짜가 아닌, 진짜 백운진인이 생전에 보여줬던 바로 그 경지다. 그리고 청무가 이 경지에 올랐던 것도 벌써 이십 년 전 일이다.
권신 청무 진인은 그 이십 년의 시간 동안 ‘발전’을 위하여 참으로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그리고 그 발전을 위한 방법 가운데 화산의 모든 정기를 자신의 몸에 욱여넣으려는 터무니 없는 시도도 있었다.
물론 불가능한 일이었다.
하지만 그 불가능한 일이 약간의 성취를 보였을 때 그는 깨달았다. 그 압도적인 기운을 사역하는 자신과 주변 사람들의 시간이 다르게 흘러간다는 것을. 단순히 사고의 속도가 빨라진 것과는 달랐다. 굳이 표현하자면 기운이 충만한 바로 그 순간. 그의 몸은 마치 시간이 멈춰버린 것 같았다.
사실 그것이 어떤 원리로 이뤄지는 것인지는 솔직히 관심 없었다. 그저 그렇다는 것을 알았을 뿐이고, 그것을 활용하여 어떻게 싸워야 할지를 고민했을 뿐이다.
그리고 조금 전 그 순간.
시간의 흐름조차, 원인과 결과의 순서조차 뒤바뀐 대제사장의 공격이 그의 몸을 두들겼다. 그리고 이 자리에서 오직 청무진인만이 그 공격을 ‘인지’할 수 있었다.
운호의 눈에는 청무진인의 오른팔이 먼저 부서지고 이후에 대제사장의 별빛이 흩날렸다. 하지만 청무 진인의 시야에서 그것은 멈춰버린 시간 속에서 맥락 없이 나타난 공격이었다. 그렇기에 완전히 피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그저 오랜 시간 몸에 박아넣어 사고의 속도보다 빠르게 반응한 육체만이 그것에 반응했을 뿐이다.
대제사장의 형상을 한 별빛은 허수였다.
본래 자연에는 존재할 수 없는 존재다. 흩어지는 별빛들이 그 파편을 남겼다.
-쯧, 쓸데없는 반항을. 그릇이 좋아도 너무 좋아서 오히려 더 귀찮아졌구나. 아니? 아닌가?
그 별빛은 백운이라는 인물을 구성하던 이치와 정보의 조각이었다. 그리고 그 한 번의 공방으로 그 조각들은 청무 진인에게 섞여 들어갔다.
그것은 알고 싶지 않았던 참혹한 진실이었으며 이상했지만 대수롭지 않게 여겼던 수많은 질문에 대한 해답이었으며 동시에 그의 미래가 꽉 막혀있다는 강력한 선고였다.
어째서인지 백운 사조는 당시 삼대제자에 불과하던 자신들에게 매화신단을 복용시켰다. 그리고 그렇게 매화신단을 복용한 청자배 사형제 가운데 가장 높은 성취를 얻은 것은 청무진인 자신이었다. 단순히 그에게 두 알의 매화신단이 배정됐기 때문일까? 그의 사형제들은 애당초 백운 사조가 청무 자신의 재능을 알아봤기 때문이라고 이야기했다.
하지만 청무는 알고 있다.
진정한 의미에서 ‘무학’에 대한 재능을 따지자면 청우가 첫째고, 청공이 둘째이며 자신이 꼴찌다. 허면 어째서 자하기공에 대한 그의 성취가 가장 높았는가.
답은 간단하다.
자하기공은 본래 그런 공부이기 때문이다. 내공의 축기에 최적화됐으며 쉽게 늙지 않는다. 또한 깨달음 따위에 무관하게 그저 체질과 노력에 따라 경지가 결정된다.
그의 사제들은 자하기공의 구단공에 이르기 위하여 발버둥을 쳤다. 하지만 청무 자신은 막힘없이 자하기공의 구단공에 이르렀다.
이것이 재능인가? 그래 어쩌면 재능이라면 재능일 수도 있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 청무는 그 재능의 정체가 무엇인지를 완벽하게 깨달았다.
“문시진인······. 문시진인······.”
도를 구하지 않던 도사의 탈을 쓴 무인이 도호를 외웠다.
그의 사제들은 결국 마지막 순간 자하기공의 구단공에 이르는 길을 찾아냈고, 그것을 실행에 옮겼다. 그리고 지금 저 별빛에 담긴 정보들을 습득한 청무는 그것이 얼마나 터무니없는 짓이었는지를 이해했다.
그것은 인간을 초월한 존재가 본래 그러할 수 없도록 만들어둔 설계를 깨트린 일이다.
청무진인은 자하기공의 십단공에 이르기 위하여 참으로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하지만 할 수 없었다. 마치 본래 그것이 불가능한 것처럼. 대체 어째서였을까? 번민하고 또 고뇌했지만, 그는 답을 구할 수 없었다.
하지만 이제는 알았다. 무의식적으로 외면하던 그것이 진실이라는 것을.
답은 간단했다.
자하기공은 본래 그런 공부이기 때문이다. 내공의 축기에 최적화됐으며 쉽게 늙지 않는다. 또한 깨달음 따위에 무관하게 그저 체질과 노력에 따라 경지가 결정된다.
하지만 세상에 그런 쉬운 공부가 어딨으며, 세상에 그렇게 쉬운 정답이 어디 있단 말인가. 이름 모를 선인이 만들어둔 길을 꾸준히 걸어가면 그것만으로 도에 이른다고?
멍청했다.
참으로 멍청했다.
저기 검을 들고 기묘한 짓을 행하려는 운호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동시에 그와 나눴던 대화가 떠올랐다.
대도는 무문이니 좌도의 방문에 집착하지 말고 대도를 받아들이라고 했었지? 물론 거기서 대도는 기종이며 좌도는 검종이었다.
“대도무문이라······. 허허······. 참으로 멍청하구나. 참으로 멍청해.”
대도는 문이 없다. 하지만 확실하다. 자하기공은 대도가 아니다. 그것은 그저 탈출구가 없는 멍청한 공부일 뿐이다. 아니 어쩌면 이것은 공부조차도 아니다.
양돈장의 돼지가 무탈하게 뒤룩뒤룩 살찌는 법이 어찌 공부란 말인가.
양계장의 닭이 매일매일 알을 낳는 방법이 어찌 공부일 수 있겠는가.
그의 시선이 빛으로 흩어지는 사조의 몸뚱이를 훑었다.
만리우보?
천하제일인?
화산파를 부흥시킨 최후의 천하제일인?
아직 어렸던 그들 청자배 사형제들이게 매화신단이라는 은혜를 베푼 은인?
그래, 모든 것이 다 사기였다.
그저 망해가는 문파에 재능 없던 무인이 악마와 손을 잡은 것.
그것뿐이다.
청무진인의 눈에서 눈물이 흘렀다.
파괴된 오른팔은 아프지 않았다.
아픈 것은 무의미했던 그의 인생. 그저 아무것도 알지 못한 채 최선을 다해 살을 찌운 돼지의 삶 그 자체였다.
천하최강 화산 무학의 정점.
감히 자신하건대 천하최강을 자랑하던 무인의 마음이 그렇게 뚝 부러졌다.
그리고 그 자리에 남은 것은 양계장에서 가장 성실하게 알을 낳던 닭이자 양돈장에서 가장 성실하게 살을 찌운 한 마리 돼지뿐이었다.
그 모습에 백운 진인의 탈을 쓴 마교의 대제사장이 웃었다.
참으로 우습다. 그래, 어찌 우습지 않을까.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법칙 밖의 공격으로도 어찌할 수 없던 무인이 고작 진실을 마주한 것만으로 저리 부러져 버린 것을.
그래, 인간은 저토록 약하다.
하지만 나는 그것을 탓하지 않겠노라. 본래 그렇게 만들어진 것이 그렇게 기능하는 것이 어찌 피조물의 잘못인가.
그러니 저토록 나약한 인간을 항상 시험에 들게한 잘못된 세계. 이러한 세계 자체를 바꾸겠다.
잘못된 것은 인간이 아니다. 잘못된 것은 세상 그 자체다.
사람의 형상을 한 별빛이 움직였다.
이전보다 더 빠르게.
이미 빛의 속도를 초월하였기에 지상의 단위로는, 지상의 인식으로는 측정할 수조차 없었다. 그저 나타난 것은 이미 이뤄진 일일 뿐.
그저 나타나야 하는 것은 이미 앞서 일어난 일이다.
그래, 분명 그래야 했다.
지금 자신이 입고 있는 몸은 자신의 깨달음을 감당하지 못하는 이 낡은 몸이 아닌, 더 강하게, 더 튼튼하게, 그리하여 가장 단단하게 지상에 존재하는 저 노인의 몸이어야만 했다.
-응?
하지만 그의 앞에 보이는 것은 마음이 부러진 노인.
그리고 그와 노인 사이를 막아선 한 청년이었다.
“이게 진짜 되네?”
그리고 그 청년의 손에는 칠흑으로 빛나는 검이 지상에 존재할 수 없는 기운을 끌어들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