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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산파 역대급 천재-225화 (225/288)

225화

다시 화산으로(13)

아주 먼 옛날, 종남산 종남루에서 순양자가 정양자에게 화룡의 법을 얻었다. 이후 종남의 무공은 언제나 순양(純陽)을 근간으로 한다. 그리고 그것은 화산이 자하(紫霞)를 근간으로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당연한 일이었다. 그리고 종남이 낳은 천재 태을검선이 그 당연함을 깨트렸다.

벽운은 태을검선의 실험적인 무공을 익힌 일 세대였다.

완전한 순양(純陽)도 아니고 완전한 태을(太乙)도 아닌 어딘가. 그렇기에 그의 태을은 불완전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 찌르는듯한 기파는 벽운이 현무와 마찬가지로 경지에 올랐음을 모두가 알 수 있었다.

현무와 함께 초절정의 경지를 개척할 것이라 기대를 모았던 소림의 종무, 무당의 자현, 점창의 청일 가운데 아직 초절정에 오른 인물이 아무도 없음을 고려해보면, 벽운의 성취가 얼마나 빼어난 것인지를 알 수 있었다.

운호는 그에게서 태을검선이 보여주던 기파와 종화의 기운이 절반쯤 섞인 느낌을 받았다. 그리고 그 기파가 워낙에 강렬했기에 그 곁에 서 있던 종화를 발견하는 것이 한 박자 늦었다.

마치 칼로 대충 자른 것 같은 덥수룩한 더벅머리. 그것은 처음 그녀가 화산을 올랐던 시절과 흡사했다.

운호가 잠시 종화에게 시선이 팔렸을 때, 종남파 일행에게 먼저 다가간 것은 조왕 주고수였다.

“종남인가?”

“이 분은?”

벽운자로서는 처음 보는 사람이었지만 감히 함부로 할 수 없었다. 초절정의 무위뿐만 아니라 인간에게서 느껴지는 품격 자체가 범상치 않다.

“왕야, 나오셨습니까. 인사하게. 조왕 전하네. 전하, 이쪽은 종남의 벽운입니다.”

“벽운자라고 합니다. 왕야를 뵙습니다.”

딱히 당황한 기색 같은 것은 없었다.

종남 역시 명문 중의 명문. 황제 정도 된다면 또 모를까. 고작 친왕 정도에 당황할 것은 없단 뜻이겠지.

“흐음, 자네가 그 유명한 벽운자로군. 종남이 요 몇 년 강호에 통 발을 내밀지 않는다고 하더니, 자네를 보니 무슨 바람이 불어 이렇게 행차를 했는지 알 것 같군.”

“과찬이십니다.”

“참으로 특이한 기파야. 경지에 들었음에도 이리 불안정하게 느껴지다니 말이지. 어떤가? 저기 뒷산이 참으로 한적한데 나와 같이 마실이나 잠시 다녀올 생각은 없나?”

벽운자의 시선이 주고수의 팔에 감긴 붕대로 향했다.

주고수가 그 시건의 의미를 곧바로 읽어냈다.

“아하, 이것 말인가? 걱정할 필요 없다네. 이건 그냥 잔소리쟁이 하나가 하도 돌아가자고 쫑알거려서 그냥······. 하여간에 본왕의 몸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으니 어떤가?”

벽운자가 상당히 난감한 표정을 보였다. 만약 다른 사람이었다면 일언지하에 거절했을 터. 하지만 상대의 신분이 신분이다보니 그러기도 쉽지 않았다.

현무자 역시 끼어들기 애매한 상황. 그 상황을 해결해준 것은 최근 주고수와 많은 대화를 나누며 그의 성향을 파악한 운호였다.

“오래간만입니다.”

“그렇구나. 참으로 오래간만이다. 소식은 들었다. 믿기 힘든 소식이었는데······. 정말이었구나.”

벽운이 운호를 다시 한 번 살폈다.

놀랍다. 정확하게 파악하기 힘들었지만, 오히려 그렇기에 운호의 경지가 더 확연하게 다가온다.

이십대의 젊은 나이에 초절정이라니.

‘설마 우리 화아보다 더한 녀석이 존재할 줄이야······.’

그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종화에게 향했다.

금녀의 문파인 종남에 최초로 들어왔던 여제자. 태을검선의 새로운 무공을 오롯하게 이어받은 천고의 기재.

그녀는 그 모든 기대에 완벽하게, 아니 그 이상으로 부응했다. 긴 폐관 수련에서 나와 운호의 소식을 듣기 전까지 벽운은 종화야말로 앞으로 다가올 시대에 천하제일인이 될 것이라 확신했었다.

그녀를 바라보는 운호의 시선이 조금 복잡했다. 모르는 척 외면하려 애썼지만, 어찌 그럴 수 있을까? 운호는 종화의 마음을 분명히 알고 있었다.

하지만 종화는 움직이지 않았다. 그저 무리의 가운데에서 담담한 시선으로 운호를 바라볼 뿐이다.

-팔 년이다.

그래, 팔 년.

좌부원의 이야기처럼 팔 년이다. 매우 긴 세월이다. 이제 고작 이십대에 불과한 그들의 인생에서는 거의 절반에 가깝다. 그것은 누군가를 향해 불타오르던 연정도 언제 그랬냐는 것처럼 사그라들기에 충분한 시간이다.

“아, 그러고 보니 종화와 친하게 지냈었지.”

“네.”

운호와 종화가 시선을 마주쳤다.

그들이 지금 이런 모습으로 남게 된 것은 ‘같은 사건’ 때문이었다. 그래서였을까? 이제는 제법 긴 시간이 흘렀던 그 날의 사건이 다시금 선명하게 떠올랐다.

운호의 가슴이 욱씬 아파왔다. 그 표정을 바라보는 종화의 눈빛 역시 미미하게 흔들렸다.

-으득

그녀가 이를 악물었다.

“자자, 그러면 길에서 이러지 말고 일단 본문으로 들어가는게 어떻겠습니까. 왕야. 종남의 무인들도 제법 먼 거리를 오느라 피곤할 텐데, 나눌 이야기가 있으시다면 조금 후에 나누시는 것이 더 좋지 않겠습니까.”

그 순간 현무자가 나서서 그 복잡한 기류를 정리했다.

옳았다. 그의 말처럼 언제까지 이렇게 길에서 이야기를 나눌 수는 없는 노릇이다.

“크흠, 그래, 그렇지. 일단은 화산으로 가서 짐을 푸는 것이 우선이겠지. 허면 내 조만간 찾아가도록 하겠네.”

“알겠습니다.”

***

대월국과 제국의 경계지점.

십만대산이라 명명된 그 산맥은 실로 넓고 광대했다. 화산파가 위치한 섬서성 면적의 절반을 넘어간다. 어지간한 소국보다 더 광대하다. 실제로 중원에 조공하는 조공국 가운데 가장 강성한 세력을 자랑하는 조선의 강역이 섬서성보다 조금 작다는 점을 고려하면 십만대산이 얼마나 넓은지 미뤄 짐작할 수 있다.

광서대장군부.

서장 포달랍궁의 침입을 막아내는 최일선이 청해대장군부라면 십만대산에서 발호하는 마교를 막아내는 최일선이 바로 이 광서대장군부다.

물론 포달랍궁과 마교의 세력은 두 배, 아니 그 이상으로 막대하다. 하지만 후방 걱정 없이 오직 청해대장군부를 노리는 포달랍궁과 달리, 마교는 그 등 뒤로도 적대적인 세력을 두고 있었으니, 대월국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적의 적은 아군이다라는 말이 있다.

광서대장군부와 대월국 역시 그러했다. 언제나 우호적인 것만은 아니었지만, 기본적으로 광서대장군부와 대월국은 마교라는 공동의 적 앞에서는 협력을 아끼지 않았다.

그리고 지금.

“뭐라고?”

광서대장군 백기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마교의 기습적인 공격에 완정염 장군이 크게 부상당하고 그의 장남인 완문오와 차남 완문명이 사망했다고 합니다. 다행히 완정염 장군의 동생인 완정갑 장군이 병력을 수습하여 항전에 나섰지만 마인들의 공세가 워낙에 대단하여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그런 멍청한!! 아니 대체 대월국에서는 경계를 어찌했기에 기습을 허용했단 말이냐. 게다가 우리 쪽 아이들도 그들이 움직이는 것을 미리 눈치채지 못했단 말이냐?”

“최근 중원에서 온 작자들이 마교의 위치를 특정하겠다며 인근 지역을 쑤시고 다닌 덕분에 경계망에 틈이 생겨서······. 게다가 대월국에 뿌리내리고 있던 마교의 세력이 생각보다 거대했던 것 같습니다.”

“안되겠다. 당장 궁익에게 지원군을 구성하라고 해라. 아니, 아니다. 내가 직접 나서야겠다.”

“네? 하지만!!”

“순망치한이라고 했다. 대월국 없이 우리 단독으로는 절대 마교를 상대할 수 없다. 하물며 대월국이 통째로 마교에게 넘어간다? 돌이킬 수 없는 일이 벌어질 것이다.”

“알겠습니다!! 궁 장군에게 바로 그리 전하겠습니다.”

“아!! 그리고 무림맹이라며 협조를 요청한 무리들이 있었지?”

“네.”

“그자들까지 모조리 징발하거라.”

“네?”“어차피 마교를 상대하겠노라 나선 자들 아니더냐. 그들이 원하던 대로 아주 실컷 상대하게 해줘야지.”

무한에서의 혈사 이후 무려 팔 년.

지금까지 그저 꼭꼭 숨어있다고 생각하던 마교가 기습적으로 준동했다. 그리고 그 방향은 중원이 아닌, 그들의 후방. 대월국이었다.

“어찌 됐느냐?”

“광서 대장군부의 병력 가운데 약 오 할이 십만대산을 가로지르고 있습니다.”

“백기는?”

“포함되어 있다고 합니다.”

광서대장군 백기.

그리고 대월국의 완정염.

모두 까다로운 상대였다.

마교의 제사장들. 그 가운데서도 서열 이 위라고 할 수 있는 프라파타나. 자신조차도 쉽게 생각할 수 없는 상대다. 물론 위대한 존자께서 직접 손을 쓰신다면 그저 윙윙거리는 날벌레에 불과할 것이다. 하지만 지금 존자께서는 존체를 옮기는 것만으로도 상당한 위험을 각오해야 하는 상황으로 절대 함부로 힘을 쓸 수 없는 상황이었다.

이런 얄팍한 수작. 물론 그 수작을 위해 마교가 대월국에 깔아뒀던 자원 대부분을 소모했지만, 어쨌거나 이런 얄팍한 수작으로 그들의 발을 묶고 시선을 돌릴 수 있다면 그 자원은 절대 아깝지 않다.

“목표는 확인됐겠지?”

“네, 최근에도 위치가 확인됐습니다.”

“그래.”

프라파타나.

중원에서 이르기를 편마가 고개를 끄덕였다.

***

이준형이 크게 호흡했다.

그의 몸을 중심으로 거대한 기의 흐름이 회오리친다. 매화신단이라고 했던가? 과연 초절정의 고수를 키워낸 강호 최고의 영약이라는 평가가 부끄럽지 않았다.

고작 반쪽에 불과했지만, 그의 진기는 날이 갈수록 크고 두터워졌다.

현재 그의 성취는 자하기공의 사단공.

일반적으로 강호에서 절정이라고 평가하는 단계다. 물론 운호 덕분에 조금 빛을 바래기는 했지만 고작 이십대 중반이라기에는 실로 무서운 성취였다.

‘지금 이 속도라면 어쩌면 조만간······.’

오단공.

자하기공이 오단공에 이른다면 명문정파의 장로급 무위라고 봐도 무방하다. 그의 윗 배분인 현자배 가운데서도 오단공에 이르지 못한 이가 대부분이며, 장로급이었던 그의 작은 할아버지 이진섭도 일흔을 넘긴 최근에야 간신히 육단공에 이르렀을 정도다.

“사부님, 부르셨습니까.”

“그래, 오늘 벽운을 만나러 가는 자리에 따라오너라. 물론 너의 성취는 나쁘지 않다. 그 녀석의 제자 아이가 제법 훌륭하니 너도 보고 느끼는 바가 있을 것이다.”

“네.”

좋은 경쟁자는 때론 좋은 친구보다 낫다.

물론 준형의 곁에는 강아현이라는 비슷한 실력의 상대가 존재한다. 하지만 화산파의 동기 가운데는 백운호라는 압도적인 상대가 있기 때문일까? 이상할 정도로 이준형은 강아현에게 경쟁심을 품지 않는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에 만났던 종화의 존재는 매우 훌륭했다. 백운호만큼 터무니없지는 않았다. 하지만 오히려 그렇기에 현실적으로 후기지수 가운데 으뜸이라고 해줄 만한 성취를 보였다. 초절정의 경지에 오른 괴물을 고작 후기지수로 묶는다는 것은 다른 아이들에게는 너무 가혹한 일일테니 말이다.

“응?”

종남파에 배정된 숙소로 걸어가던 현무자의 감각에 운호와 강아현. 그리고 그들을 따라오는 조왕 주고수의 모습이 들어왔다.

그들 또한 현무자를 발견한 것일까? 움직이던 방향을 약간 틀어 그를 향해 다가왔다.

저 먼 곳.

천천히 다가오는 백운호를 바라보는 이준형의 마음이 요동쳤다. 분명 과거 이준형은 잠시 강아현을 마음에 품은 적도 있었다. 하지만 어째서였을까? 그 옆에 따라오는 강아현의 모습 따위는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러고보니 운호가 돌아온 이후로는 처음 보는 것이겠구나. 허면 난 조왕 전하와 먼저 가볼터이니 동기끼리 천천히 해후를 나누고 오도록 해라.”

“네. 사부님. 그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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