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화산파 역대급 천재-220화 (220/288)

220화

다시 화산으로(8)

사형들을 잊지 않겠다는 마음을 담은 삼갑자에 가까운 거력이 일시간에 풀려났다. 그 압도적인 힘의 해방에 주변의 공간이 휘어지는 듯한 느낌마저 들 지경이다.

그 광경에 주고후가 입꼬리를 뒤틀었다. 뒤틀린 입꼬리 사이로 빛나는 새하얀 이빨. 그것은 분명 웃음이었다.

“그래, 좋다!! 아주 좋구나!! 두베!! 힘을 낼 시간이다!!”

그 순간 그의 검이 새하얗게 백열하기 시작했다. 본래 그의 검에 맺혀있던 별빛은 찬란한 적금빛이었다. 하지만 이 순간 검에 새롭게 맺히는 빛은 맑은 청녹색이었는데, 결과적으로 두 가지 색깔의 빛이 하나로 합쳐지는 순간 터져 나온 것은 티끌 하나 없는 순백의 빛무리였다.

초절정의 경지에 오른 이들이 구사하는 강기의 빛은 어째서 서로 다른 색을 띠는가. 그것은 명확하게 답을 하기 참 어려운 질문이었다.

혹자는 그것이 저마다 익힌 진기의 속성이 다르기 때문이라고 했는데, 실제로 같은 무공을 익힌 이들은 대부분 그 강기의 빛이 매우 흡사하기에 일견 맞는 이야기인 듯하다. 하지만 세세하게 따져보면 같은 자하기공을 익힌 이들도 그 빛깔의 농도와 채도가 각기 다르고 가끔은 완전하게 다른 빛을 띄는 이도 있었으니 진기의 속성이라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

하여간 이유야 뭐가 됐건, 누군가가 내뿜는 강기의 빛은 그 사람 고유의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헌데 한 사람이 두 가지 빛깔의 강기를 구사한다? 유례를 찾기 힘든 일이다. 하물며 그 위력은 또 어떠한가.

마치 두 명의 초절정 고수가 조금의 낭비도 없이 힘을 합친 것처럼.

이전까지의 강기가 그저 밤하늘 별이 내뿜는 빛무리를 끌어온 것이었다면 지금 주고후가 내뿜는 강기는 저 하늘의 별 그 자체였다.

세상 모든 것을 파괴할 것처럼 압도적인 기세로 밀려가던 청허 진인의 일장이 그 강기 앞에 스러지기 시작했다. 많은 양의 솜덩이를 아무리 단단하게 뭉쳐낸다고 해도 강철을 버텨내지 못하는 것처럼 그렇게 자주빛 기운의 덩어리를 파고드는 투명한 검강.

이것은 단순한 양을 넘어선 명백한 질의 차이였다.

“사숙조님!!!”

그것을 지켜 보고 있던 현무가 자신도 모르게 앞으로 달려 나갔다.

당당한 정파의 무인이 연수합격을 한다는 부끄러움을 생각할 여유 따윈 없었다. 또한 그 대상인 주고수 역시 그것을 탓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기껍게 생각했다.

처음부터 말하지 않았던가. 둘 다 나서라고.

청허를 향해 찔러가던 그의 검극이 틀어졌다.

-부웅

아슬아슬한 회피.

현무자의 도관이 날카로운 검극에 갈라졌다. 흩날리는 머리카락 사이로 현무의 두 눈이 번쩍인다.

화산의 무공은 수성이다.

정직하게 쌓은 내공을 바탕으로 우직하게 그것을 펼쳐나간다.

마치 어리석은 노인이 산을 옮기는 것처럼.

지난 벽운과의 싸움에서 현무는 그러한 싸움을 했었다.

그리고 패배했다.

화산의 무공이 잘못된 것일까?

그럴 리가.

패배한 것은 화산의 무공이 아닌 현무자 자신이며, 패배의 이유는 화산 무공의 철학 때문이 아닌 그것을 받아들인 현무 자신의 미련함 때문이다.

우공이산의 마음으로 노력을 거듭하는 것은 변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수련의 방편일 뿐이다. 그저 익힌 것을 그대로 펼쳐내는 것은 충분치 않다. 전해오는 것을 익힌 그대로 펼치는 것은 전통의 존중이 아닌, 생각을 포기한 것에 불과하다.

저 종남의 정수라고 할 수 있는 태을검선이 어찌했던가.

그리고 그것을 물려받았던 벽산 그 친구는 또 어찌했던가.

또한, 화산에 존재하는 것이 어찌 가진 바 내공을 뽐내는 자하기공뿐이라던가.

세류표(細流飄)

비류보(飛流步)

마치 가늘게 흐르는 시냇물과 같이.

또한, 절벽에서 세차게 떨어지는 물줄기와 같이.

그렇게 화산에서 전해지던 두 가지의 전혀 다른 보법이 그의 몸에서 구현됐다.

주고수의 검이 그의 몸을 갈랐다.

아니, 가르지 못했다.

검이 갈라낸 것은 그저 현무가 지나간 자리일뿐. 하나의 잔영이 날카로운 칼날 앞에 갈라진다. 덜컥 멈춰있던 몸이 폭포수처럼 움직이고, 그런 것이 다시 잔잔하게 흘러갔다. 그 압도적인 보법으로 인하여 마치 현무자의 몸이 여러 개로 나뉜 것처럼 갈라졌다.

물론 초절정 고수의 동체시력은 초월적이다.

하지만 주고수의 눈으로도 현무의 몸을 제대로 파악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인간의 눈이 갖는 태생적인 한계를 아득하게 넘어선 까닭이다.

또한 현무의 몸에서 뿜어나오는 자하기공의 힘이 대기를 진동시킨다.

그렇기에 초절정의 경지에 이른 주고수의 기감으로도 느낄 수 없었다. 저것이 그저 눈의 착각이 만들어낸 잔상인가, 아니면 그의 실체인가.

“좋구나!!”

흥이 났다.

주고수의 검이 연거푸 현무의 몸을 갈랐다. 검에서 뿜여져나오는 예기가 저릿하다. 그저 스치는 것만으로도 초절정 고수의 단단한 피부가 갈라지고 그 안에 근육이 조금씩 상처 입는다.

그 사이 청허가 호흡을 골랐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초절정고수간의 사투에서는 결코 짧지 않은 시간이었다. 도관이 날아가고 몸 곳곳에 예리한 자상을 입은 채 고군분투를 보이는 사손의 모습을 바라보며 청허가 소리쳤다.

“왕야!! 그만 하시지요. 저희가 졌습니다.”

“아니!! 아직이다. 여기 선 모두가 이렇게 쌩쌩하거늘 어서 합류하거라. 이 아이의 절학과 너의 절학이 합쳐지면 얼마나 더 재밌을지 벌써 기대가 되는구나.”

가능성?

솔직히 말해 합공을 한다면 패배할 확률 보다는 승리할 확률이 훨씬 높다고 생각했다. 조왕 주고수가 손에 쥔 검은 천하에 못 베는 것이 없는 절세의 보검이지만, 그것이 초절정 고수 두 명의 손을 모조리 봉쇄할 수 있다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하지만 그것이 과연 승리일까?

혹여 저자들이 마교의 무리라도 된다면 또 모른다. 하지만 관부의 고수, 그것도 왕야의 신분을 지닌 이를 둘이서 합공으로 이긴다?

“아닙니다. 왕야의 신공은 실로 고절하여 이 도사들로는 감히 감당하기 어렵습니다. 현무야, 뭐 하느냐. 어서 왕야께 패배를 인정하지 않고!!”

현무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도사야, 그러지 말아라. 너도 지금 한참 재밌지 않더냐.”

“현무야!!”

사조의 재촉에 마침내 현무가 발걸음을 멈췄다. 그리고 그것을 따라 자연스럽게 주고수의 검 역시 멈춰 섰다.

“이 망할 도사 놈들 같으니!! 어서 다시 덤비지 못할까!!”

여전히 그의 검에는 하얀빛의 강기가 서려 있었다.

이해할 수 없는 압도적인 위력의 검강.

그러고 보면 전해지는 기록에도 태조 황제가 파양호 전투에서 승리한 이후, 원나라를 상대로 벌였던 북벌에서 무색의 검강으로 원나라의 정예 철기병 백을 일 검에 베었다는 기록이 있었다. 수많은 사람이 그것을 그저 으레 있음 직한 과장이라 여겼는데, 지금 저것을 보고 있자니 어쩌면 진짜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왕야, 고정하시지요. 빈도들은 감히 왕야의 신공을 당해낼 재간이 없기에 스스로 패배를 인정한 것입니다.”

“제대로 해보지도 않았으면서 그게 무슨 소리더냐!! 그리고 저 도사의 생각은 너와 다른 것 같은데. 아니냐?”

“문시 진인, 문시 진인.”

“아직 어린 아이입니다. 혈기가 다 사라지지 않아 상대와 자신의 기량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는 것이지요.”

조왕 주고수의 얼굴에 불만이 그득했다.

또한 그의 검에 서린 검강은 사라지지 않았다. 약간의 고민. 그냥 눈 딱 감고 검을 휘둘러 버릴까? 제 놈들도 살고 싶다면 최선을 다하지 않을까?

그리고 청허가 그것을 읽어냈다.

동시에 조왕 주고수가 진정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도.

“왕야, 여기서 화산까지 전력으로 달린다면 한 시진이면 충분합니다. 그리고 그곳에는 왕야의 갈증을 풀어줄 만한 사람이 있습니다.”

“한 시진? 하지만······.”

이번에도 또 청허가 귀신처럼 조왕이 무슨 생각을 하는 것인지를 알아냈다.

“어차피 마차에 누가 있는지 알게 뭐겠습니까. 그저 마차는 마차대로 오면 응당 귀한 분이 계시겠거니 생각하겠지요. 대신 이 속도를 생각하자면 왕야께서는 이틀이나 일찍 원하는 바를 성취하실 수 있지 않으시겠습니까?”

“흐음, 사형이라······. 허면 권신이라는 별호를 쓰는 그 자를 말하는 것이겠구나. 그 도사가 그 정도로 고수더냐.”

“장담할 수 있습니다. 제 사형이라면 여기 이 아이와 제가 힘을 합친 것보다 훨씬 더 훌륭한 모습을 보여줄 수 있을 겁니다. 초절정의 고수라고 해도 사상과 십이지신이 다른 것처럼, 천무십칠성 가운데서도 제 사형은 격이 다른 존재이니까요.”

“그렇단 말이지······.”

청허의 이야기가 마음에 든 것일까?

주고수의 검에 서려 있던 별빛이 흐려졌다. 백색에서 청록색으로, 그리고 다시 아무것도 없던 본래의 평범한 검으로.

“전하!! 천부당만부당한 말씀이십니다. 저 도사들을 대체 어찌 믿고 홀로 저들의 본거지에 들어가신단 말씀이십니까!!”

그들의 대화를 듣던 최효라는 노신이 빠르게 달려와 주고수에게 소리쳤다.

“감히!! 그 작은 머리로 지금 왕야의 판단과 무공을 의심하는 것인가?”

청허의 외침에 조왕 주고수가 미간을 찌푸렸다. 뻔한 수작이었지만 넘어갈 수밖에 없는 수작이다.

“전하, 저는 그것이 아니오라!!”

“됐다. 최효. 네 걱정은 잘 알겠으나 나는 이 나라 황제의 숙부다. 저들이 생각이라는 것을 할 줄 안다면 네 걱정이 현실에 일어날 리는 만무하다.”

“전하!!”

“또한 저자가 저토록 자신 있게 이야기하는 그 사형이라는 자의 무공이 실로 궁금하구나.”

“절대 실망하지 않으실 겁니다.”

“전하!!”

“시끄럽다!! 내가 벌써 며칠을 기다리지 않았더냐. 네놈들이 길만 미리미리 잘 닦아뒀어도 이런 일은 없었을 터!!”

그 언쟁 앞에서 현무가 조용히 한 걸음 뒤로 물러났다.

솔직히 이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아직 승부는 나지 않았다. 몸에 생채기가 좀 생겼다고는 하지만 피륙의 상처에 불과하며 그의 진기는 여전히 장강의 물결처럼 끊임없다.

하지만 지금 이야기를 이끌어 가는 것은 그의 사조였다. 감히 그가 끼어들 수는 없었다.

“자, 도사. 그러면 길을 안내해봐라.”

“네, 그러면 이 쪽으로.”

인간의 범위를 벗어난 세 명의 고수가 순식간에 그 자리에서 점이 되어 멀어졌다.

그리고 같은 시간.

-우우웅

운호의 등에 매여있던 검이 검명을 터트렸다.

한참 운호와 이야기를 나누던 청무 진인이 물었다.

“그 검은? 네가 보광현에서 얻었다던 그 신검이더냐?”

“네, 파검(波劍)이라고 합니다. 우연히 연이 닿아 얻을 수 있었습니다.”

“파검? 파검이라면 좌부원 그자의 별호 아니더냐. 무슨 연관이라도 있는 게냐?”

“네, 연이 닿았던 이들 가운데 가장 깊은 연이 있었던지라.”

“파검과의 연이라······.”

우화등선을 해낸 속가의 검사와 인연이라니.

이 어린 아이는 그 짧은 시간 동안 대체 얼마나 많은 일을 경험한 것일까?

“이야기를 하면 할수록 참으로 궁금한 것들이 많다. 하지만 아무래도 지금은 이야기를 나누기보다는 손님을 맞을 준비를 함이 옳겠구나.”

“준비하도록 하겠습니다.”

-드디어 이 몸이 나설 시간이로구나.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