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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산파 역대급 천재-211화 (211/288)
  • 211화

    탄생(17)

    조목조목 이야기를 늘어놓는 공야자의 이야기에 남궁강이 적지 않게 놀랐다.

    그의 말에 논리나 그 내용 때문이 아니었다. 그의 태도 때문이었다. 지금까지 공야자는 마치 세속의 그런 것에는 아무 관심 없는 고고한 장인의 모습을 보여왔다. 물론 남궁강 역시 그 모습이 기만임은 내심 짐작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렇게 노골적인 모습을 보고 있자니 적잖이 당황스럽다.

    “공방 건물에 많은 돈이 투자됐다고는 하지만, 그 공방을 짓는 비용도 그만큼은 아닐 겁니다. 아니, 차라리 다른 빈 공방 하나를 인수하시죠. 그리고 그 자리에 장인들을 고용해서 기술 개발을 진행하셔도 그 반의 반이면 충분할 것 같군요. 그러니까 보광현 인근에 아마 무진공방 이라는 곳이 있었던 것 같은데······. 거길 통으로 인수한다고 해도······. ······. 그래서 최종적으로는 이런 금액이군요. 어떻습니까?”

    남궁강을 따라온 한상의 남경 지부장이 공야자의 말에 하나하나 반박을 하고 나섰다. 세세한 숫자들을 근거로 공야자를 압박한다.

    “너무 희망적인 관측이군요. 그리고 그 시장의 평균가라는 것 자체도 좀 터무니없어 보입니다. 무엇보다 저희 일이라는 것이 그런 식으로 규격화된 것이 가능한 일이 아니에요. 뭐, 공방의 1년 치 상품이라면 얼마든지 그런 식으로 드릴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저희 비거궐을 한 번 보시죠. 권력이 있는 분, 돈이 있는 분, 혹은 개인의 무력이 출중한 사람들까지. 모두가 원하지만 그 수량은 절대적으로 한정됐습니다. 이미 수백 냥의 가격이 매겨졌지만, 돈이 있어도 줄을 서야 하고, 그렇게 나간 상품이 혹시라도 암시장에 풀리면 그 가격은 수백 냥을 넘어 수천 냥을 호가합니다. 이번 일 역시 그와 같죠. 아니 어떻게 보면 그 이상입니다. 왜냐구요? 클클클, 그거야 너무 간단한 문제 아닙니까. 그 일을 맡을 수 있는 공방이 바로 저희 만련공방뿐이니까요.”

    하지만 공야자 역시 만만치 않았다.

    대량 생산가능한 재화와 공급이 극히 제한된 재화의 차이를 논하며 그의 말을 반박했다.

    “하······,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비용적 측면에서 볼 때, 우리가 만련공방에서 매년 소화해주는 물량이······.”

    남경 지부장의 말이 막혔다.

    결국 나올 수 있는 것은 자신들이 너희의 최대 거래처라는 말뿐. 남궁강이 손을 들어 지부장의 말을 제지했다. 얼굴이 크게 일그러진 지부장이 토 달지 않고 뒤로 한 걸음 물러났다.

    “공 노야.”

    “남궁 가주님. 섭섭하신 마음은 잘 알겠습니다만, 이건 저도 어쩔 수가 없는 문제입니다. 아시다시피 저희 공방의 식구만 하더라도 이백사십칠 명, 거기 딸린 입까지 하면 정말 천 명에 달하는 대인원입니다. 어디 그뿐입니까? 저희에게 이것저것 물건들을 납품하는 작은 상단들, 그리고 저희 식구들이 팔아주는 돈으로 장사하는 보광현의 상점들이며 식당들 객잔들까지. 저는 공방을 유지해야하는 의무가 있습니다.”

    장황하게 이야기를 이어나가는 공야자.

    남궁강이 조용하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상체를 숙여 탁자 반대편에 있는 그의 귓가로 다가가 속삭였다.

    ‘아버님이 그렇게 싫으십니까?’

    흠칫, 공야자가 깜짝 놀라 상체를 크게 뒤로 뺐다.

    운호에게 이야기를 들었을 때,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다. 남궁강이 한상의 남경 지부장을 바라봤다.

    뭔가 보여주겠다는 마음으로 따라와서 하는 일 없이 아래층으로 내려가는 것만 벌써 두 번째. 남경 지부장이 조용히 물러났다.

    그가 사라진 자리.

    공야자가 물었다.

    “어떻게······.”

    “상식적으로 너무 말이 안 되는 조건이었으니까요. 저희와의 관계를 생각한 에두른 거절이었죠. 뭐, 지부장도 지금쯤이면 눈치챘을 겁니다. 원래 눈치가 없는 사람은 아닌데, 최근에 일도 그렇고 아무래도 제가 옆에 있으니 부담이 됐겠죠. 게다가 본래 이렇게 실전에서 뛰는 유형은 아니잖습니까. 남경쯤 되면 서류작업 쪽이 더 중요해지는 위치죠.”

    남궁강이 소문대로 한상의 실질적인 주인은 자신이라는 것을 은연중에 드러냈다. 아마 저것도 의도한 것이겠지.

    “게다가 사실 저도 아버지와 사이 안 좋기로는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만한 사람이라서 말이죠.”

    “······.”

    이거 함께 웃어야 할지, 아니면 크게 부정해야 할지. 공야자가 난처한 표정으로 웃음 비슷한 표정을 지었다.

    “하하하, 그냥 농담입니다. 농담. 아버지는 저 무한에서 강호 무림의 안녕을 위하여 불철주야 무림맹의 일에 매진하고 계시고, 이 아들은 아버지께서 물려주신 자리에서 남궁세가를 위해 일하고 있으니 사이가 안 좋을 이유가 없지요. 안 그렇습니까?”

    “그······, 그렇지요.”

    “뭐, 굳이 따지자면 공노야와 아버님의 관계도 비슷하지 않겠습니까. 아버님은 저 보광현에서 장인으로서의 일에 매진하고 계시고, 공 노야는 여기 남경에서 이렇게 사업을 크게 일구고 계시니까요.”

    공야자가 침을 꼴깍 삼켰다.

    “참, 천재의 아들로 산다는 건 그 나름대로 어려운 일이지요. 그거 아십니까? 천재와 바보는 사실 한 끗 차이라는 것을요. 바보에게 보통 사람들이 적응하기 힘든 것처럼, 천재에게도 보통 사람들은 적응하기 힘듭니다. 뭐, 차이가 있다면 바보는 보통 사람을 이해할 수 없는 것이고, 천재는 보통 사람을 이해하지 않는 것이라는 점 정도겠죠. 경험해본 입장에서는 후자 쪽이 더 화가 나더군요. 하지만 그보다 더 화가 나는 게 뭔지 아십니까?”

    “······.”

    공야자가 속으로 답했다.

    그리고 그 답을 남궁강이 대신 말해주었다.

    “질투. 누군가가 말했죠. 아들은 언제나 아버지를 이기고 싶어하는 법이라고. 맞습니다. 전 아버지를 이기고 싶었어요. 인정받고 싶었죠. 하지만 나이를 먹으면서 알게 됩니다. 나는 절대 그렇게 될 수 없다는 것을요.”

    공야자는 능숙한 사업가였다.

    그는 평소 스스로를 대단한 장인, 돈에 초연한 사람으로 포장해왔다. 그리고 공야자 자신은 그것이 사업을 위해 꼭 필요한 일이라고 여겨왔다. 물론 그것도 어느 정도는 사실이었다.

    하지만 과연 단지 그것뿐이었을까?

    어쩌면 공야자는 자신이 가장 되고 싶었던 것을 연기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어린 시절 목격했던 그의 아버지와 같은. 시대의 영웅들과 어깨를 나란히 했던 그 위대한 거인을.

    남궁강의 말이 이어졌다.

    “그래서 다른 길을 팠습니다. 제법 크게 성공했죠. 가문의 모든 사람, 아니 중원의 모든 사람이 인정했습니다. 딱 한 명. 내 아버지를 제외하고요. 아닙니까? 제가 알기론 만련공방도 지난 태종 황제 때의 일로 크게 휘청이셨었다고 알고 있는데요.”

    “······. 참으로 어려웠었죠. 당시 아버지께서는 혜황제야말로 적통이니 그편을 들어야 한다고 하셨었고 덕분에 아주 호된 댓가를 치렀었죠.”

    “그리고 그 모든 것을 수습한 것은 공 노야셨고요. 솔직히 만련공방의 전성기는 지금이잖습니까. 지금 이 자리야 당시에도 공방 건물이 있었다지만, 지금처럼 거대한 규모로 확장한 것은 전적으로 노야의 힘이셨죠. 판매와 생산을 이원화한 것 자체가 당시의 공방으로는 상상하기 힘든 과감한 결단이었을 겁니다. 하지만 아버지께서는 인정해주지 않으셨겠죠.”

    공야자가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진정한 장인이 되야한다. 구야자가 저승에서 통곡을 하겠구나. 자신과 같은 이름을 쓰는 이가 고작 장사치라니. 뭐 기껏해야 그런 말씀뿐이셨죠. 본인께서 공방을 말아먹을뻔한 것을 내가 살려냈다는 것은 애써 무시한 채요.”

    “역시······.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헌데 화가 나는 것은 강(强)이라는 이름과 달리 저는 전혀 강하지 못하다는 점이었죠. 솔직히 무공으로 아버지를 따라가 보겠다는 욕심은 진즉에 버렸습니다. 심지어 아버지의 인정이야 뭐 그거 받아서 이제 뭐에 쓸까? 하는 생각도 있었죠. 하지만 최근에 깨달았습니다. 어쩌면 그건 포기가 아니었을까? 라고요. 그리고 결심했죠.”

    “결심이라면?”

    “전 아버지가 진정으로 탄복하게 만들 생각입니다. 그래서 ‘강아, 네 생각이 옳았다. 네가 자랑스럽다.’라는 말을 꼭 들을 생각입니다. 노야의 생각은 어떠하십니까?”

    일흔을 목전에 둔 노인이 잠시 상상했다.

    자신이 만들었던 첫 번째 검을 받아들고 한숨을 내쉬었던 그 아버지가 진정으로 탄복하며 그를 자랑스러워하는 모습이 어떠할지를.

    그 상상만으로도 가슴이 두근거리며 뭐라 말할 수 없는 감정이 치밀어 올랐다.

    “공 노야. 어떠십니까? 마음이 동하신다면 제가 도와드릴 용의가 있습니다만?”

    하지만 동시에 그 늙은 머리가 소리쳤다. 이 사탕발림을 과연 믿을 수 있겠느냐고.

    “방법이 뭡니까?”

    ***

    “휴우······.”

    강아현이 자신도 모르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런 그녀에게 누군가 말을 걸어왔다.

    “동생, 그러다 땅 꺼지겠어.”

    좌부원의 손녀이자 남궁철의 아내인 조헌화가 바로 그 주인공이었다.

    “언니!! 대체 언제?”

    “절정의 고수가 사람 오는 것도 모를 정도면 어지간히 신경이 쓰이나 보네?”

    “그게 아니라······.”

    “그게 아니기는······. 무공을 잘 모르는 내가 봐도 시할아버님과 싸운 이후로 백 공자 얼굴이 말이 아니던데. 아니야?”

    고작 한 번의 싸움이었다.

    하지만 그 싸움 이후로 운호는 정말 몰라볼만큼 달라졌다. 오랜 세월 오직 벽곡단만을 섭취 하긴 했지만, 그래도 움직임에 필요한 단단한 근육들은 튼실하게 붙어 있던 몸이었다. 하지만 그 싸움 이후 운호의 몸은 그야말로 엉망이라는 말이 어울리는 수준으로 떨어졌다.

    특히 몇 달은 굶은 것처럼 푹 패인 볼은 봐주기 힘들 정도다. 워낙에 이목구비가 뚜렷하여 잘생긴 얼굴이었지만, 이래서야 그 타고난 수려함도 빛을 잃는다.

    “하지만······.”

    “그거 알아? 우리 할아버지도 할머니 속 엄청나게 썩인 거. 특히 시할아버님 이름만 어디서 들리면 이를 갈면서 며칠씩 먹는 것도 잊고 검만 휘둘렀었다더라.”

    “파검 어르신께서요?”

    “그래. 당시 할머니께서는 사내가 자신의 웅지를 펼치기 위한 인고의 시간을 보내는데 아녀자가 어찌 그걸 방해하겠느냐. 하면서 참으셨데.”

    “참 훌륭한 분이셨네요. 역시 파검 어르신이 우화등선하신 것도 우연은 아니었어요.”

    “그래서 지금은 그게 참 후회가 된다고 하시더라. 그때 검 휘두를 때 찾아가서 돌멩이를 던져서라도 멈추게 하고 밥을 먹였어야 했다고.”

    “네?”

    강아현이 두 눈을 크게 떴다.

    후회라고?

    “뭘 그리 놀래? 할머니 입장에서는 당연한 일이지. 그래도 사내가 검을 잡았으니 이왕이면 천하제일인을 노리겠다는 거에야 동의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천하제일인이 돼서 같이 백년해로 하겠다는 생각이었지, 누가 그렇게 훌쩍 하늘로 날아갈 줄 알았겠어? 할머니 말에 따르자면 졸지에 남편이 바람나서 도망갔는데, 그 대상이 하늘이라 화도 못낼 것 같고. 그냥 생과부가 된 것 같다고 하시더라.”

    “바······, 바람이요?”

    강아현이 자신도 모르게 실소를 내뱉었다.

    아니, 하늘이랑 바람이라니······. 모든 도인들의 염원과 같은 우화등선을 그렇게 표현했다고?

    “그러니까 동생도 어서 가서 백 공자 입에 뭐라도 좀 밀어 넣어. 우리 할아버지야 그래도 살만큼 살고 하늘이랑 바람났다지만, 요즘 백공자 하는 거 보면 당장 내일이라도 할아버지 따라갈 것 같아. 얼굴은 쾡한게 눈만 번쩍번쩍 거리고. 물론 저 하늘로 가는 것도 좋지만, 이 땅에도 좋은 게 참 많잖아? 동생이 그걸 좀 알려주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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