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화산파 역대급 천재-209화 (209/288)
  • 209화

    탄생(15)

    무한의 가능성을 욱여넣은 남궁벽의 반고검이 날아든다.

    운호의 두뇌가 그 모든 가능성을 지켜보았다. 그때와 같았다. 아주 먼 옛날. 지금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약했던 그 시절. 이준형과의 싸움에서 뇌가 타들어가는 것 같은 고통을 느꼈던 그때.

    코에서 주르륵 핏물이 흘러내렸다.

    그의 두뇌가 소리쳤다. 외면하라고. 하늘의 해를 똑바로 바라보는 이의 각막이 타들어 가는 것처럼 저것을 ‘이해’하려는 행위는 인간의 작은 두뇌를 폭발시킬 것이라고.

    또한 운호의 몸을 압박하는 제왕의 기운 역시 그대로였다.

    덕분에 그의 몸에 저장되어있던 잉여분은 이미 모조리 당으로 분해된 지 오래였다. 하지만 인간의 육체가 움직이기 위해서는 어찌 됐건 그만한 동력원이 필요한 법이다. 덕분에 운호의 몸은 얼마 되지 않는 지방까지 적극적으로 분해하기 시작했다.

    물론 보통 사람의 경우 지방을 분해하여 만들어낸 동력원으로 뇌를 활성화하는 것은 매우 어렵다. 하지만 운호의 경우 평소에도 곡기를 멀리하고 오직 벽곡만을 섭취하는 생활을 오래 지속해왔다.

    그리고 그것이 가속화되고 가속화 됐을 때.

    불가해의 공격을 이해하려는 터무니 없는 시도와

    그 시도를 위해 필요한 동력의 부족이 맞물렸을 때.

    마침내 새로운 현상이 일어났다.

    오랜 시간 단식을 한 고승의 두뇌가 한순간 명료하여 세상의 이치를 파악한다는 이야기는 종종 전해진다. 물론 그 과정에서 죽어나가는 승려가 더 많겠지만 중요한 것은 그런 일이 절대 불가능한 일이 아니라는 점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운호는 그리 머지 않은 과거.

    물론 그의 작은 뇌에서는 휘발돼버리기는 했지만, 어느 순간 인간을 초월한 적이 있었다.

    그때만큼의 어마어마한 깨달음은 아니었다.

    하지만 한순간 운호의 두뇌가, 육(肉)이라는 절대적인 제약에 사로잡혀있던 그것이 한계를 넘어섰다.

    먼 옛날 보리수 아래 깨달음을 얻었던 붓다와 같이, 혹은 먼 훗날 용화수 아래서 깨달음을 얻을 미륵과 같이 삼라만상의 이치가 모두 손아귀에 들어온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감히 무한을 흉내 내는 저 일 검의 이치 정도는 손에 잡힐 듯이 잡혀 온다.

    더 이상 어렵지 않았다.

    그저 여실하게 검을 내밀었다. 무한을 흉내 내는, 무한에 한없이 가까운 저 일 검에 그저 아주 작은 가능성 하나 정도를 더했다.

    그리고 그것만으로도 남궁벽의 반고검은 그 의미를 잃었다. 남은 것은 시작과 결과뿐.

    그 과정이 사라진 결과 앞에서 남궁벽이 부러진 자신의 검을 바라보며 몸을 떨었다.

    “이게 대······, 대체 어떻게······. 사······.”

    “자신의 이해만 벗어나면 모두 사술이라고 하다니. 참으로 편한 정신승리로군요. 간단합니다. 방금 그 검식. 일전에 남궁형께 사용했던 것보다 완성도가 훨씬 높아져서 깜짝 놀랐습니다만, 그저 제가 더 완벽하게 펼쳐냈을 뿐입니다.”

    “아니, 아니다. 그럴 리가!!”

    “차라리 처음에 하시려던 것처럼 그냥 무식하게 쌓아 올린 내공으로 우직하게 밀고 나가지 그러셨습니까. 그랬으면 조그만 가능성이라도 있었을 텐데요. 재능이 부족하면 그 부족함을 메우는 방식을 사용해야죠. 안 그렇습니까?”

    -클클클, 그래 네 말이 맞다. 재능이 부족하면 그렇게라도 해야지.

    파검이 신을 내며 운호의 말에 동조했다.

    남궁벽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이미 그 얼굴에 신선과 같던 그 풍모는 온데 간데 보이지 않았다. 남은 것은 굴욕으로 일그러진 노인의 얼굴뿐이다.

    “헛소리!! 헛소리다!!!”

    발작적으로 소리친 남궁벽이 부러진 검을 내던졌다.

    -툭

    운호의 가벼운 손짓 한 번에 그 검이 허공에 멈춰 섰다. 그리고 그의 마음이 끄는 대로 다시 그 검이 남궁벽의 앞으로 날아갔다.

    “오랫동안 사용하셨던 검 같은데 아쉽게 됐습니다. 다행스럽게도 오늘내일 즈음 남궁 가주께서 만련공방의 공 노야를 만나러 가실 듯하니 새로운 검을 한 자루 부탁하시면 되겠군요.”

    “이 노옴!! 감히 내가 누구인 줄 알고!!”

    허공에 멈춰있던 부러진 검을 움켜쥐고 남궁벽이 도약했다.

    부러진 검을 따라 별빛이 모여든다.

    긴 세월 동안 쌓아 올린 막대한 내공이 별빛을 끌어들였다.

    검왕의 마음속에 새겨진 검의 형상 그대로.

    부러지기 전과 다름없는 형상으로 검강이 일어났다.

    -하여간 저 놈도 재능 하나는······.

    파검이 나지막하게 감탄했다. 그 자신이 사용했던 절기였기에 알 수 있었다. 분명 의도한 것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명확하다. 저것은 심검(心劍)의 가장 기초적인 형태다. 그저 막무가내로 화를 내는 와중에 저런 모습을 보여주다니.

    파검의 마음 한구석에 약간의 만족감이 생겨났다. 복잡한 감정이었다.

    아무리 얄미운 놈이라고 해도, 어쨌거나 검왕은 그가 젊은 시절 호적수로 생각해왔던 상대다. 아무것도 해보지 못하고 두들겨 맞기만 하고 끝나는 것도 통쾌하겠지만, 저것도 나쁘지 않다. 어쨋거나 그가 호적수로 여겨왔던 상대가 그만한 자격을 갖췄다는 증거였으니까.

    다만 오늘은 상대가 너무 나쁘다.

    세상에 아무리 날카롭고 강력한 검이면 뭐하겠는가.

    닿을 수가 없는 것을.

    수 싸움에서 그야말로 압도적이다.

    검왕으로써는 환장할 노릇이었다. 그는 제왕검결이 상대에게 얼마나 큰 제약을 주는지 명확하게 알고 있었다. 헌데 그런 제약 속에서 이렇게 놀라운 실력을 보여준다고?

    보통 사람이라면 혹시라도 제왕검결이 전혀 통용되지 않고 있을 수도 있다는 의심을 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이 와중에도 설마 제왕검결에 제대로 먹히지 않을 수도 있다는 생각 따위는 조금도 하지 않았다.

    검왕 남궁벽은 그런 사람이었다.

    신체의 제약이 운호의 두뇌를 더 높은 단계로 끌어냈다.

    십수 년의 고행을 끝낸 고승들의 육체가 바싹 마르는 것처럼. 운호의 피부에 윤기가 사라졌다. 그의 몸은 본래 근육이 크게 발달한 몸이 아니었음에도, 지방이 사라진 몸에 근섬유가 한올 한올 보일 지경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운호의 상황이 마냥 좋은 것은 아니었다.

    영혼백육(靈魂魄肉).

    지상의 인간이 인간으로 존재하는 이상 그 영혼이 아무리 고차원적인 곳에 도달한다 해도 육체를 초월할 수는 없다.

    최소한의 힘으로 최대의 효율을 내며 상대를 농락했다. 납매검과 매농검은 거기에 특화된 검술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고 그 검술들에 있어 운호의 경지는 이미 그것을 창안했던 이의 그것, 혹은 그것을 재정립했던 증무진인의 그것에 근접했다.

    하지만 거기까지다.

    운호 역시 남궁벽을 완벽하게 제압할만한 힘을 끌어낼 수 없었다. 내공은 끊임없이 순환했지만 그 절대적인 양은 크지 않았고, 제왕검결에 의해 제약되는 육체 역시 최악에 가까운 상태였으니까.

    그저 –툭, -툭, -툭.

    운호의 검에 서린 별빛은 아주 잠깐씩 남궁벽의 검에 일렁이는 별빛을 감당하는 순간에만 빛났다. 그리하여 그의 검이 남궁벽의 몸을 두들기는 순간에 그것은 그저 평범한 철검일 뿐이었다.

    하지만 지금 상황에서는 오히려 그것이 남궁벽에게 더 큰 타격으로 다가왔다.

    절망.

    압도적인 절망.

    그리고 수치.

    최고의 수라고 생각했던 것이 분쇄됐으며

    마교의 수괴를 보고 연마해온 새로운 비장의 수법은 오히려 상대방이 한 번 보고 더 높은 수준으로 펼쳐내는 굴욕을 당해버렸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분노로 이끌어낸 심검은 상대의 옷깃도 스치지 못했고, 그 시간은 점점 길게 이어졌다.

    그리고 그 와중에 운호의 검이 남궁벽의 몸을 슬쩍 한 번씩 툭툭 건드리는 것은 그에게 더할 나위 없이 거대한 굴욕을 선물했다.

    굴욕은 곧장 분노로 이어졌다.

    하지만 분노는 휘발적이다.

    머리끝까지 차올랐던 분노가 사라진 자리를 차지하는 것은 자괴감. 그것은 싸움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커져 갈 수밖에 없었다.

    “이게 무슨 일이야?”

    “자······, 잠깐만. 지금 벽 형님 손에 저거?”

    “뭐야? 저거 설마 심검이야? 와, 저 양반 젊을 적에 좋은 거 혼자 그렇게 먹더니 나이 먹어서 이제 별 걸 다 보여주네.”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남궁벽의 수하인 봉명이 그들을 막으려 해봤지만 소용없었다. 이곳은 남궁세가. 안휘성에서 가장 많은 고수가 거하는 곳이다.

    절정에 다다른 이들의 숫자면 두 자릿수가 넘어간다.

    그리고 그들 모두가 태상가주실에서 터져 나온 폭음을 듣고 달려왔다.

    “백 공자님?”

    “아니, 백 공자님이 여기서 왜?”

    그리고 그들 가운데는 왕효와 장당 형제도 포함되어 있었다.

    ‘혹시 모르니 준비해둬라.’

    ‘네, 형님.’

    그들이 은밀하게 힘을 모았다.

    어쨌거나 이곳은 남궁세가. 아무리 그들이 호의적이라고 해도 팔은 안으로 굽기 마련이다. 검왕 남궁벽은 남궁세가가 자랑하는 초절정 고수이며 그들의 전대 가주이다. 위기의 상황에서 저들이 어떻게 나올지 모른다.

    “쯧, 저 형님 저거 또 난리네.”

    “아니, 오늘 담벼락 넘자마자 저러더니. 또 왜 저러는 거래?”

    “모르지. 벽 형님 머릿속을 감히 우리가 어떻게 짐작할 수 있겠나. 돌아가신 백부님께서도 죽는 그 순간까지 못 하셨던 일인데.”

    기우였다.

    남궁세가의 절정 고수 가운데 가장 다수.

    남궁벽이 조금 이르게 태상가주로 물러남으로써 반강제로 원로원에 처박히게 된 남궁벽의 사촌 형제들부터 딱히 남궁벽에게 호의적이지 않았다.

    “그나저나 저 화산파의 어린아이도 대단한데? 벽 형님을 상대로 팽팽하구만.”

    “팽팽은 무슨. 딱 봐도 벽 형님이 좀 봐주는 것 아닌가.”

    “그게 무슨 소리야. 내가 봤을 때는 그 반대 같은데. 저기 저거 봐봐. 저 아이 검이 벽 형님 몸에 툭툭 닿잖아.”

    “에이, 그거야 위협이 안 되는 공격이니 그냥 내가 기공으로 튕겨내는 거지.”

    “그런 거치고는 벽 형님 표정이 영 안 좋은데? 게다가 벽 형님 특기가 초식으로 거는 수싸움인데 내가 기공으로 퉁친다는 것 자체가 수세에 몰렸다는 소리 아니야?”

    사람들의 웅성이는 소리가 남궁벽의 귀를 때렸다.

    평소의 남궁벽이 자신의 약점을 지적받았을 때 보여주는 행동은 분노였으며, 그다음으로 보여주는 행동은 그 약점을 지적한 상대의 입을 뭉개버리는 것이었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

    남궁벽은 분노할 수 없었다.

    저기서 웅성거리는 사촌형제들의 입을 뭉개버릴 수도 없었다.

    해소될 수 없는 분노는 시간의 흐름 속에 굴욕이 되었고, 그 굴욕은 이내 무력감으로 변화했다. 그것은 남궁세가의 정명한 후계자로 태어났으며, 놀라운 재능으로 초절정의 경지에 올라 남궁세가의 가주가 되었던 검왕 남궁벽의 인생에 첫 경험이었다.

    남궁벽이 마침내 자신의 두 팔을 늘어트렸다.

    “그만하자.”

    한 손에 쥔 검을 앞으로 내민 운호가 그 팔을 늘어트리지 않았다. 그저 그 자세 그대로 꼿꼿하게 서서 남궁벽을 바라봤다. 그는 그 또렷한 눈동자를 감히 마주볼 수 없었다.

    “너는 정녕 끝을 보자는 것이더냐.”

    “······.”

    검극은 흔들리지 않았다.

    노인이 탄식했다.

    “굳이 식구들 앞에서 나에게 이렇게까지 굴욕을 주고 싶다. 그런 이야기인가? 아이야. 너는 대체 내가 무엇을 잘못했다고 이렇게까지 하는 것이냐.”

    “손녀의 이름은 기억하십니까?”

    “이름?”

    남궁벽이 되물었다.

    아니, 지금 이 상황에서 갑자기 이게 무슨 헛소리인가. 그깟 계집애의 이름이 뭐가 그리 중요하다고.

    “그러니까 그것이······.”

    “사과하시면 됩니다.”

    “사과? 허······. 어처구니가 없구나. 수십이나 되는 후손들의 이름 가운데 하나를 기억하지 못한다고 하여 사과를 하라고? 지금 대체 그게 뭐가 중요하다고!!”

    태어나 지금까지 누군가에게 사과를 해본 적 없는 노인이 소리쳤다.

    운호가 한 걸음을 내디뎠다.

    “지금 그 중요함을 결정하는 것이 누구라고 생각하십니까?”

    “······.”

    운호가 한 걸음을 더 다가갔다.

    남궁벽이 자신도 모르게 뒤로 한 걸음을 물러났다. 그가 그 사실을 깨달았을 때, 다시 한번 굴욕감이 그를 가득 채웠다. 하지만 굴욕은 분노로 이어지지 못했다. 아득한 무력감.

    노인이 손을 내저었다.

    “그래, 좋다. 내가 미안하다. 내가 미안하구나. 내 이렇게 사과하마.”

    참으로 조악한 사과.

    아니, 이것이 대체 사과이기는 한 것일까? 하지만 이것은 남궁벽이라는 인간이 태어나 처음 해보는 ‘사과’였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