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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산파 역대급 천재-208화 (208/288)

208화

탄생(14)

온몸이 저릿하다.

과연 검왕이라는 이름은 허투루 얻어낸 것이 아니라는 뜻이겠지.

제왕검결은 천고의 절학이다.

단순히 초절정의 경지까지 이를 수 있는 길을 제시했기 때문이 아니다. 그 근본 철학부터가 이질적이며 천재적이다.

어마어마한 감각의 홍수가 신경계를 두들긴다.

긴장은 본래 생명체가 생존하기 위한 본능 중 하나다. 그것은 두뇌나 소화기관과 같은 지금 당장 필요 없는 기관의 활동을 잠시 억제하고 오직 생존을 위한 근육에 모든 힘을 쏟기 위한 과정이다.

하지만 약도 과하면 독이 되는 법이다.

제왕검결의 창시자는 그것을 잘 알고 있었다.

-조심해라. 저 놈의 제왕검결은 그 어린 녀석과는 완전히 다르다.

파검의 말이 아니더라도 운호 역시 충분히 그것을 느끼고 있었다.

운호는 이미 인간을 초월하기 시작했다. 그의 육신은 온전히 자신의 통제 아래 있었고 그것은 심장 박동과 같은 불수의근조차도 벗어나지 못한다. 심지어 운호는 스스로 호흡을 멈춰 자살하는 것조차 가능할 만큼 완벽하게 육체를 자신의 통제 아래 두고 있다.

심장이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운호의 의지가 그것을 억눌렀지만, 소용없었다.

의념이다.

인간의 한계를 초월한 고수가 자신의 의지를 세상에 강요하는 이 불합리한 현상이 운호의 몸을 옥죄였다.

운호의 의지 역시 그것에 대항했다.

하지만 부족했다. 단순히 의지의 크기 때문일까? 아니다. 남궁벽은 저 제왕검결이라는 것을 통하여 초절정의 경지에 올랐다. 그의 의념 자체가 그가 평생을 연마해온 무공의 연장선에 있는 셈이다. 만약 운호가 완성된 외공을 통하여 초절정의 경지에 올랐다면 이야기는 또 달라졌을 것이다.

남궁벽의 의념이 운호의 육체에 대한 통제력을 넘어섰다.

자율신경계의 교감신경이 극도로 활성화됐다.

동공이 확대되고 심장 박동이 빨라졌다. 위와 장의 운동이 억제되고 간과 쓸개에서 당을 활발하게 분해하기 시작했다. 당장 사용할 것을 넘어 그 이상으로.

-버릴 것은 버려야······. 아, 알아서 잘하고 있군.

파검이 자신도 모르게 잔소리하려던 입을 다물었다.

남궁벽은 운호가 스스로를 추스를 시간따위는 주지 않았다. 이 모든 과정의 일들이 벌어진 것은 그야말로 순식간.

심즉동이라.

남궁벽 역시 마음이 움직이는 대로 몸이 따르는 경지에 올라선 지는 오래다. 금빛으로 빛나는 검이 운호의 몸을 주욱 찔러왔다.

단순한 검강이 아니었다.

황금빛의 기운이 수십 가닥의 강사(罡絲)로 올올히 풀려난다. 강기 자체가 인세에 존재하지 않는 별의 기운이다. 그렇게 풀려난 강사 한 가닥 한 가닥이 석자 두께의 강철 조차 동강 낼만큼 위력적이다.

점이나 선이 아닌 면. 아니 면을 넘어 공간을 점유하는 일검.

그것은 남궁벽이 판단한 운호를 상대하기 가장 효율적인 방법이었다. 파검의 평가처럼 그는 이기적인 개자식이었지만 동시에 초절정에 오른 절세의 무인이었다.

남궁벽은 수 싸움에 자신을 갖고 있었다. 초절정 고수들 가운데서도 오직 수싸움에 한정짓는다면 자신을 따를 이가 거의 없다고 생각해왔다. 그렇기에 그는 앞선 몇 번의 공방만으로도 운호가 어떤 식으로 초절정의 경지에 올랐는지를 대략적으로 유추해낼 수 있었다.

초식에 대한 놀라운 깨달음.

그렇다면 답은 간단하다.

압도적인 힘.

아무리 초절정의 고수라고 해도 나이는 속일 수 없다. 늙은 초절정의 고수가 근력이 부족해지는 것처럼 젊은 초절정의 고수는 상대적으로 내공이 빈약하기 마련이다.

하물며 운호는 젊음을 넘어 어리다고해도 과언이 아닌 수준이다. 남궁벽은 명가의 후계자로 젊은 시절부터 몸에 좋은 영약을 밥 먹듯이 먹어가며 자라났다. 터무니없는 기연으로 인세에 보기 드문 내공을 소유한 걸왕이나 천하제일로 손꼽히는 환상의 영약. 매화신단을 두 알이나 섭취한 권신만큼은 아니지만, 초절정 고수 가운데서도 최상위권으로 꼽을 만큼 내력이 심후하다.

감히, 내가 자신보다 약하다고?

수준의 격차라는 것이 무엇인지를 똑똑히 보여주겠다. 그 과정에서 어디 한 군데가 터져 나간다고 해도 그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아무리 화산이 천하제일의 대문파라고 해도 감히 무림 맹주에게 그러한 폭언을 했으니 항의는 할 수 없을 것이다.

운호가 금빛으로 빛나는 수십 가닥의 강사를 바라봤다.

그의 이해는 상식을 초월한다.

물체의 움직임, 무게 중심, 상대방의 상황에 대한 판단력을 비롯한 어마어마한 양의 정보를 한순간에 받아들이고 그것을 처리한다.

하지만 그것들은 어디까지나 인세의 것이기에 가능한 일이다.

쉽게 말해 날아오는 공을 받아내는 것은 쉽다. 그 공이 특정한 규칙을 따라 변화를 보이는 것 역시 받아낼 수 있다. 심지어 그것이 누군가에게는 불규칙으로 보일지라도 운호는 그 규칙을 발견해낸다.

하지만 검강은 다르다.

그것은 명백히 인세의 이치를 벗어난다. 저 금빛의 강사가 움직이는 길을 예측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그래, 불가능에 ‘가깝다.’

운호의 검이 움직였다.

제왕검결의 제약이 그를 옭아맸다. 하지만 어렵지 않다. 이미 한 차례 경험해봤다. 절정에 오르기 전. 절정을 코앞에 두고 있던 남궁철의 제왕검결 역시 그를 지금처럼 옭아맸었다.

파검이 말했다.

버릴 것은 버려야 한다고.

그렇다면 취해야 할 것은 무엇인가?

사람들은 제왕검결의 가장 큰 효능으로 신체의 반응을 과도하게 끌어내어 움직임을 둔하게 하는데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운호가 판단할 때는 그것이 아니다. 제왕검결의 진정한 무서움은 전신의 여력을 모두 근육에 가져다 쓰는 것으로 두뇌의 움직임을 둔하게 하는데 있다.

분해된 당이 전신의 근육으로 배분되는 것을 억제한다.

머릿속에 담긴 그 자그마한 두뇌가 어마어마한 열량을 빨아들였다. 정신과 의지는 지상을 초월하고 있지만, 그 정신이 담긴 육체는 아직 지상의 것이다. 극도로 활성화된 두뇌가 평소와 다름없는, 아니 오히려 평소보다 빠른 판단을 내린다.

움직였다.

한 박자 더 빠르게.

머릿속으로 생각했던 것이 한 박자 느리게 따라온다. 하지만 괜찮다. 이미 운호의 두뇌는 무한에 가까운 가능성을 파악하고 있었다. 전지(全知)는 전능(全能)의 동의어가 아니지만, 한없이 전능에 가까운 힘을 갖는다.

남궁벽이 눈을 부릅떴다.

대체 어떻게!!

수십 가닥의 강사로 빠져나갈 틈새 없이 완벽하게 공간을 점유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사이로 운호의 검이 길을 만들었다.

만약 그것이 힘으로 억지로 뚫어낸 것이라면 감탄했을지언정 지금처럼 경악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아니었다.

무공을 펼친 남궁벽 자신도 인지하지 못했던 허점들. 아니, 그것이 애당초 허점이기는 했던 것일까?

-톡, 톡, 토옥.

아주 가벼운 세 번의 부딪힘.

어느새 운호와 남궁벽의 몸이 서로를 스쳐 처음의 반대 방향에 위치했다. 한순간의 반전. 또 한 번 남궁벽의 공격이 운호를 스쳤다. 이번에도 남궁벽의 공격은 운호를 스치지 못했다.

대체 어떻게!!

공간을 점유하는 이 강사의 불규칙한 움직임을 대체 어떻게 읽어내는 것인가!! 아니 정녕 읽어낸 것이 맞나? 혹시 두 번의 우연이 만들어낸 나의 착각이 아닐까?

남궁벽이 현실을 부정했다.

세 번, 네 번, 그리고 다섯 번!!

압도적인 힘으로 일격에 분쇄를 하려던 그 공격이 무려 다섯 번이나 펼쳐졌다. 하지만 여전히 그 공격들은 운호의 옷깃조차 스치지 못했다.

“대체 어떻게!!”

남궁벽이 크게 소리 쳤다.

운호는 굳이 답하지 않았다.

사실 남궁벽의 이 한 수는 실로 대단했다.

검강을 수십 가닥으로 쪼개고 그 강사 하나하나에 위력을 유지하다니. 과연 검왕. 천무십칠성이라는 위명에 어울리는 수법이다.

제각기 움직이는 수십 가닥의 강사가 만들어내는 경우의 수는 무한. 심지어 그 움직임은 가속과 감속, 관성과 마찰. 그 모든 법칙을 완벽하게 초월한 곳에서 존재했다. 아무리 운호라고 해도 그 모든 것을 예측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하지만!!

그 수법이 무한하다 한들, 그것을 펼치는 이는 결국 유한한 가능성에 갖힌 인간이다.

운호가 읽어낸 것은 강사의 움직임이 아니었다. 그것을 펼쳐내는 검왕 남궁벽 그 자체였다.

자신의 외침에 답하지 않는 운호를 바라보며 남궁벽이 그가 내릴 수 있는 가장 합리적인 추측을 내던졌다.

“사술, 그래 사술인가? 사술이로구나!!”

-큭큭큭, 완벽한 패배 선언이로구나. 사술이라니.

파검이 만족했다.

사술이라니. 저건 남궁벽과 같은 인사에게서 나올 수 있는 사실상의 패배 선언이다.

하지만 운호는 만족하지 않았다. 그가 지금 남궁벽과의 싸움에서 바라는 것은 정신승리조차 불가능한 완벽한 승리였다.

운호가 가벼운 도발을 던졌다.

“말해준다면 이해는 하실 수 있겠습니까? 하긴 뭐, 본인 이해의 밖에 있으니 어떻게 보면 사술이라고 해도 무방하겠군요. 저기 길거리 삼류들에게는 검강도 이기어검도 모두 사술 아니겠습니까.”

그것은 실로 굴욕적인 조롱이었다.

나에 비하자면 너는 길거리의 삼류나 다름없다.

“개소리!!”

사실 이것은 너무나도 뻔한 도발이었다. 하지만 자기 인생의 절반도 살아오지 않은 애송이에게 압도당하고 있는 현실. 그리고 그의 입에서 나온 그 조롱은 그 뻔한 도발을 도저히 참아낼 수 없는 무언가로 변신시켰다.

남궁벽이 호흡을 가다듬었다.

그는 이기적인 개자식이었지만 동시에 인간의 한계를 돌파한 무인이었다.

누가 뭐라고 해도 무공에 관한 그 재능만큼은 진짜다.

결승점에 도달한 이는 굳이 더 달릴 필요가 없다.

초절정의 고수들이 그러하다.

물론 그 너머 무한한 무의 세계가 펼쳐져 있다지만 그것은 너무나도 막연하다.

하지만 삼 년.

그가 천외천의 고수를 목격한 것이 벌써 삼 년 전이다.

제왕검결을 기초로 했다.

그것으로 초월에 다다른 자신의 무공을 뼈대로 삼았다.

그리고 저 천외천의 고수가 보여줬던 이적을 목표로 정진하였다.

앞서 잠깐 자신의 손자였던 남궁철에게 펼쳐냈던 검왕 남궁벽의 새로운 무공.

단 일 검에 모든 것을 담는다.

비유적인 의미가 아니다. 수만, 수십만. 아니 그것을 넘어 억(億)·조(兆)·경(京)·해(垓)·자(秭)·양(穰)·구(溝)·간(澗)·정(正)·재(載)·극(極)·항하사(恒河沙)·아승기(阿僧祇)·나유타(那由他)·불가사의(不可思議)·무량대수(無量大數).

그 모든 것의 가능성을 오직 일 검에 담아 낸다.

그렇기에 그것은 태초의 모든 것을 품고 있는 시원의 거인.

그리하여 감히 검왕 남궁벽은 이 일 검을 이렇게 칭했다.

반고검(盤古劍)

그렇기에 그것은 태생적으로 미완의 일검이었다.

어찌 인간의 무한을 담겠는가.

허나 분노는 때론 사람을 강하게 한다.

그리하여 지금.

남궁벽은 지금 자신이 펼쳐낸 이 일검이 지금껏 자신이 펼쳐낸 검 가운데 가장 ‘무한’했다고 확신했다.

인간의 육체는 한계가 존재한다.

사람이 인지하는 모든 것들은 결국 두뇌가 받아들일 수 있는 범위 이내다. 그 범위를 넘어서는 것에 인간의 두뇌가 취하는 행동은 무시다. 인지할 수 없는, 이해할 수 없는 범위의 것을 받아들이려 한다는 것은 결국 자살행위이기 때문이다.

검왕 남궁벽의 반고검이 바로 그러한 범위에 위치한 공격이었다.

이해를 넘어선 아득한 가능성으로 인지를 넘어선다. 그렇기에 사람의 인지 내에서 이 일 검은 그 시작과 결과만이 관찰될 뿐. 그 무한한 과정은 사라져 버린다.

그리고 이 일검이 바로 운호가 기다렸던 일검이었다.

정신승리조차 분쇄하는 것은

결국 그가 가장 자신있는 것을 완벽하게 깨부수는 것 뿐이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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