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화산파 역대급 천재-206화 (206/288)

206

탄생(12)

“외인이 아니라니 그게 무슨 허튼소리냐!!”

감히 자신에게 대드는 아들에게 검왕이 노기를 담아 소리쳤다.

하지만 남궁강 역시 지지 않았다. 고작 저런 말에 깨갱하기에는 그가 경험했던 일들은 너무 충분하게 많았다. 가문을 통으로 말아먹을 것 같았던 저 빌어먹을 아버지에게 가문을 뺏어왔던 일에 비하자면 이건 아무것도 아니다.

“저 아이는 철이와 형제의 연을 맺었습니다.”

“흥!! 대 남궁세가의 후계자가 어디서 굴러먹던 놈인지도 모르는 녀석과 형제의 연이라니. 감히 누가 그걸 허락했단 말이냐!!”

“사내와 사내의 마음이 통하여 형제가 되는 것에 저 하늘을 제외하고 대체 누구의 허락이 또 필요하단 말입니까. 하지만 좋습니다. 만약 아버지의 말씀처럼 하늘이 아닌 누군가의 허락이 필요했다면 감히 제가 했다고 하지요. 말씀하셨던 대 남궁세가의 주인인 저 남궁강 말입니다.”

“이이익!!!”

검왕 남궁벽의 뺨이 부들부들 떨렸다.

감히!! 아랫것들과 외인이 있는 장소에서 아비인 자신에게 이런 굴욕을 준다고? 남궁세가 백 년 이래 최고의 고수이며 무림맹의 맹주이자 장차 천하제일을 노릴 이 몸에게?

어쩌다 상황이 이렇게 됐는지.

지금까지 자신이 무슨 말을 했는지는 그리 중요하지 않았다. 남궁벽이 그런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이었다면 애당초 상황이 여기까지 오지도 않았을 테니까. 그에게 중요한 것은 그저 지금 감히 저 별 볼일 없는 것들이 자신에게 대든다는 것. 그리고 그로 인해 자신의 체면이 깎이고 있다는 것뿐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대 남궁세가의 가주로 무림맹의 맹주께 여쭙겠습니다. 대체 무슨 연유로 남궁세가의 담장을 넘어 세가의 후계자에게 위협을 가하신 겁니까.”

“주인이 자기 집 담장을 넘는데 굳이 이유가 필요하다더냐!! 헌데 집 지키는 개들이 주인을 알아보지 못하고 짖어대니 그저 약간의 교훈을 내리려 한 것뿐이다. 또한, 후계자에게 위협이라니. 그저 할애비로써 손자의 무공을 잠시 시험해봤을 뿐이다.”

“그저 무공의 시험이라고요? 지금 저 꼴을 보고도 그런 말씀이 나오십니까? 게다가 한참 무림맹의 공사를 보고 계셔야 할 무림 맹주께서 하실 말씀이 자기 집 담장을 넘는 데는 이유가 필요 없다뿐이라니. 무림맹에 가장 많은 돈을 기부하는 사람으로서 대체 뭐라고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군요.”

-큭큭큭, 입씨름으로 아들에게 가주 자리를 잃어버린 놈이 또 입씨름을 걸어? 나이를 먹어 현명해지기는커녕, 지능만 더 떨어졌구나.

검왕의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하지만 그 역시 여기선 더 말을 해봐야 자신만 손해라는 것을 확실하게 깨달았다.

“흥, 늙어 잠시 자리를 비웠더니 내 집에 한 번 오기도 힘들구나. 방이나 뺀 건 아닌지 모르겠군. 봉명!! 내 방으로 가겠다. 앞장 서라”

-스르륵, 어디선가 복면인 하나가 유령처럼 나타나 남궁명의 앞에 섰다.

운호의 마음 속에 뭔가 한 마디를 보태고 싶은 마음이 무럭무럭 피어났지만 참았다. 이미 앙심을 품은 것 같지만 어쨌거나 저 늙은이는 무림맹주다. 굳이 한 마디를 보태는 것으로 더 크게 척을 질 필요는 없었다.

***

남궁세가의 약당.

남궁강이 눈을 감고 맥을 살피는 의원에게 물었다.

“고 의원. 그 아이는 좀 어떤가?”

“아버지, 전 괜찮습니다.”

“어허!! 누가 너에게 물었더냐. 난 고 의원에게 물었다.”

“크게 문제 되는 부분은 없습니다. 외상은 그저 연고 잘 바르고 내기가 진탕된 것은 몸을 보할만한 약 먹고 하루 이틀 요양하면 아무 일 없었다는 것처럼 털고 일어나실 겁니다.”

“고맙네.”

이제 한 아이의 아버지가 됐기 때문일까?

남궁철은 이전에는 그저 과한 보호로만 생각되던 아버지의 이런 행동이 조금은 이해가 되는 것 같았다.

남궁강이 운호에게 말했다.

“미안하다. 부끄러운 꼴을 보였구나.”

“아닙니다. 말씀하셨던 것처럼 그저 가벼운 가르침일 수도 있었는데 제가 괜히 끼어들어 일이 커진게 아닌가······.”

남궁강이 손을 내저었다.

“아니다. 아니야. 후······.”

뭐라 말하고 싶은 것이 많아 보이는 표정이었다. 하지만 여기서 불평을 해봤자 결국 아버지의 욕이니, 그야말로 제 얼굴에 침을 뱉는 격이다. 남궁강이 화제를 돌렸다.

“그보다 만련공방의 일은 간략히 보고 받았다. 네가 찾던 공노야가 만련공방의 주인인 공야자 어르신이 아니라 그 아버지였다면서. 참으로 놀라운 일이로구나. 공야자 어르신만 하더라도 올해로 세수 일흔이 넘은 분이신데, 그 아버지라는 분이 그토록 정정하게 살아계시다니······.”

강호의 초월적인 고수들이야 일백 살까지 사는 경우도 빈번하지만, 절정의 고수라고 해도 평균 수명은 여든 남짓이고 그 이하, 혹은 무공을 익히지 않은 범인은 예순만 되도 장수했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혹시 그분도?”

운호가 그 말에 담긴 함의를 읽었다.

“아닙니다. 무공을 아예 모르시는 건 아니지만 그 수준이 그리 높지는 않으십니다.”

“허어······. 그렇다면 참으로 기사로구나. 자식보다 젊어 보이는 아비라니······.”

크게 놀라워하던 남궁강이 이내 정신을 차렸다.

“아무튼, 이후의 내용에 대해서는 지부장이 자리를 비운 터라 들을 수가 없었구나. 그래, 원하던 일은 잘 해결됐느냐?”

“그것이······.”

운호가 당시의 상황을 설명했다. 기술을 가진 것은 아버지이지만 공방의 대소사를 결정하는 것은 아들이다. 그리고 아들은 금전적인 부분에서 양보할 생각이 없다.

그 이야기에 남궁강의 얼굴이 복잡해졌다.

“너무 걱정해주지 않으셔도 괜찮습니다. 제가 모아둔 돈도 어느 정도 있고, 아마 사문에 이야기를 한다면······.”

화산파는 부유하다.

하지만 화산파가 부유하다고 운호에게 쉽게 돈을 내 줄것인가 하는 부분은 조금 애매하다. 물론 운호는 이제 자신의 입지가 예전과 다르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무려 초절정 고수. 앞으로 천하제일인이 될 것이 거의 확실시 되는 고수다.

하지만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단순히 검 한자루를 구하겠다고 수천 금을 들인다? 그건 아무리 초절정의 고수라도 쉽게 사용할 수 있는 금액이 아니다. 게다가 장문인의 태도가 예전과 달라졌다지만 화산파는 장문인이 홀로 모든 결정을 내릴 수 있는 구조도 아니다. 기본적으로 화산파의 늙은 장로들은 검종을 여전히 크게 경계하고 있다.

남궁강이 고개를 저었다.

“아니, 아니다. 그런 것 때문이 아니다. 그저 그쪽 집안의 사정이라는 것을 듣다 보니 괜히 내가 처한 상황과 대비가 되어 그런 것뿐이다.”

“아······.”

그러고 보니 묘하게 닮긴 닮았다.

가문의 수장 자리를 물려준 금전 감각이 없는 아버지. 하지만 능력만 따진다면 감히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대단하다.

“일단은 내가 직접 이야기를 해보는 것이 좋겠구나.”

“아, 아닙니다. 가주님께서 신경 쓰실 것도 많으신데 굳이 이런 것까지······.”

“어허!! 내 아들과 형제라면 나의 또 다른 아들인 셈이다. 게다가 네가 지금까지 우리 집안에 베푼 은혜가 얼마인데!!”

-확실히 남궁벽 그놈이 인생은 아주 막 살았는데, 반면교사 역할은 톡톡히 해낸 것 같구나. 아들놈은 아주 반듯하게 잘 컸어.

“감사합니다.”

운호가 고개를 숙였다.

***

“빌어먹을······. 집안에 망조가 들어도 아주 단단히 들었다.”

“······.”

“감히 누구 눈을 속이려고. 그건 분명 좌가 그 놈의 검술이었다. 봉명, 그렇지 않더냐?”

“······.”

침묵하는 수하를 앞에 세워두고 남궁벽이 미친 듯이 중얼거렸다.

필생의 대적이었던 좌가놈의 검술을 그의 손자가 사용하다니.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문제는 그것만이 아니었다.

스물하나? 스물둘?

아니, 사실 그 한두 살은 그리 중요하지 않다. 진짜 중요한 점은

“그 새파랗게 어린 놈이 감히 나에게 ‘버금’ 갔다고?”

“······.”

“물론 시간만 아주 조금 더 주어졌더라면 내가 완벽하게 이겼겠지만······. 허어······. 장강의 뒷물결이란 참으로 무섭구나. 벌써 나와 같은 이에게 닿는 신진이라니······. 그렇지 않더냐?”

“······.”

감히 그 어린놈이 자신에게 필적할 것이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그저 버텨내는 수준. 그래, 기껏해야 딱 그 정도 수준이었을 것이다. 그래야만 했다. 남궁벽이 필사적으로 당시의 일을 자신에게 유리하게 생각해냈다.

“······.”

“아, 돈. 돈 이야기 말이로구나. 그래, 해야지. 쯧, 천박하게 무인이 돈 이야기나 해야 하는 시대라니. 참으로 통탄할 노릇이로구나. 그깟 금덩이가 무엇이라고.”

본래의 계획은 조금 달랐다.

멋지게 나타나 크게 호통을 치면 아들놈이 알아서 벌벌 떨면서 돈을 내놓을 것이라 생각했다. 최근 그가 무림맹주에 오른 이후 아들놈이 보여주던 모습을 보면 충분히 가능성이 있는 이야기였다.

“역시 그 어린놈 때문이겠지?”

그는 자신이 남궁철이라는 남궁강의 역린을 건드렸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그저 남궁강이 믿는 구석이 생겨 배짱을 튕기는 것이겠거니 하는 생각뿐이다.

봉명은 여전히 답이 없었다.

하지만 그렇기에 좋다. 세상에 누가 있어 남궁강 자신보다 현명한 답을 내놓을 수 있단 말이던가. 어줍지않게 조언을 하는 놈 따위는 필요 없다. 그에게 필요한 것은 그저 자신의 생각을 정리할 동안 묵묵히 이야기를 들어줄 부하다.

“봉명, 당장 가서 그 아이를 불러오거라. 강이 그 녀석이 그 어린놈을 믿고 그런다면 그것이 얼마나 멍청한 짓인지를 깨닫게 해주는 수밖에.”

“······네.”

***

-정말 갈 생각이더냐? 내가 봤을 땐 그냥 무시해도 상관 없을 것 같은데······.

‘아무리 그래도 일단은 무림맹주니까요. 게다가 남궁 형의 할아버지 아닙니까.’

-흥, 할아버지는 무슨. 그런 혈육의 정 같은 게 있는 놈이었으면 아까 그런 사단을 일으키지도 않았다. 아주 이기심밖에 없는 놈이지.

‘하지만······.’

-운호야 세상을 조금 돌아봤다고 착각하지 말아라. 모든 악당이 다 사연이 있는 것은 아니고 세상에는 원래 그렇게 태어나는 놈도 있는 법이다. 저 남궁벽이라는 놈이 바로 그런 놈이다. 그냥 운이 좋게 남궁세가라는 거대 세가의 후계자로 태어났고, 재능을 타고 났을 뿐, 어디 저자에서 태어났다면 마교의 대마두가 되기 딱 좋은 놈이지.

‘아니, 아무리 그래도 무림 맹주에게 마교의 대마두라니······.’

-그러니까 환장할 노릇이지. 수저 하나 잘 물고 태어났다고 무림 맹주까지 해먹다니. 쯧. 내가 이런 꼴이나 보자고 거기서 목숨까지 걸어가면서 그 괴물과 싸운 게 아니었는데.

파검이 혀를 차며 남궁벽에 대하여 온갖 비난을 늘어놓는 사이, 운호가 남궁벽의 방에 도착했다. 역대 남궁 세가 가주들의 흔적이 오롯하게 남아있는 고풍스러운 방이었다.

남궁벽이 남궁세가의 가주 자리는 남궁강에게 양보했지만 집무실 만큼은 양보하지 않았다는 이야기가 있었는데 위치와 크기. 그리고 그 안을 가득 채운 물건들을 보면 그 말이 맞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 왔느냐.”

뒷짐을 쥔 채 등을 돌리고 서 있던 남궁벽이 몸을 돌려 운호에게 걸어왔다.

조금 전 싸울 때와 다르게 잘 정돈된 머리. 먼지 한 톨 보이지 않는 의복. 그리고 그 인자한 미소까지. 남궁벽에게서는 그야말로 이것이 무림맹주다 라는 느낌이 물씬 풍겨 났다.

“참 인상적이었다. 과연 후기지수 가운데서도 으뜸이라고 하더니. 명불허전이었다.”

-이 새끼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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