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4화
탄생(10)
“뭘 놀라고 그래? 대장장이가 검의 목소리 듣는 게 뭐가 이상하다고.”
아니, 명백히 이상한 일이고 놀랄 일이다.
그러고 보면 놀랄 일은 그것 뿐만이 아니다. 태조황제가 건국을 한 것이 벌써 백 년 전 일이다. 그와 어깨를 나란히 하고 달자들과 싸웠다는 말은 적어도 나이가 백 살은 넘겼다는 이야기가 된다.
물론 본산의 청무진인 역시 아흔이 다 돼가는 나이에 여전히 오십 대 초반으로 보이는 외모를 유지하고 있기는 하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자하신공이라는 특수한 기공의 힘. 그리고 초절정이라는 경지의 영향이다.
운호는 저 공두베라는 대장장이에게서 상승의 흔적을 느끼지 못했다. 차라리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더라면 저 대제사장이나 활불과 같은 규격 외의 괴물이라고 의심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 저 사내에게서는 일류와 이류의 경계 그 언저리의 어떤 기척이 느껴졌다.
정답을 이리저리 둘러보던 공두베가 입을 열었다.
“흐음, 검 자체는 정말 대단한 검이었군. 신검이라는 이름에 딱 어울리는 검이었겠어. 어쩌면 당대에는 간장이나 막야보다 더 대단했을지도 몰라. 인정하고 싶진 않지만 그 크기만 따지자면 내 황룡검보다도 월등하구만.”
“크기라면?”
“당연히 신검에 머물 수 있는 영역의 크기를 말하는 거지. 망가지기 전에는 정말 신도 거할 수 있을 만큼 광활했겠구먼.”
“네? 망가졌다고요?”
“몰랐나? 최근에 망가진 것 같은데? 대충 어거지로 땜질을 해놓기는 했는데······. 뭐 그것만으로도 이런 허접한 혼백이 머물기에는 충분해 보이기는 하다만······.”
허접하다는 말에 파검이 발끈했다.
-우우웅!!!!!
“그래, 백이야 그렇지. 하지만 그건 저 천상으로 떠난 파검 좌부원 노사의 몫 아니더냐. 게다가 그 거대한 백은은 어차피 시간의 흐름 속에 닳아 없어질 것이다. 네가 정말로 신검으로 거듭나고 싶다면 그 조막만한 혼이나 잘 키워보거라. 뭐, 그럼 혹시 모르지. 정말 신검이라는 이름에 어울리는 영성을 갖게 될지. 그나저나 아이야, 망가진 검을 수리하고 싶어서 찾아왔다고 생각했는데, 말을 들어보니 검이 망가진 것도 몰랐던 것 같고. 허면 대체 나를 왜 찾아온 것이냐.”
“그게 그러니까······, 영보 대장군님의 말씀에 따르자면 공 노야께서 정답을 보통 검의 형태로 개조해주실 수 있으실 거라고······.”
“개조?”
공두베가 정답을 쥐고 가볍게 몇 차례 휘둘렀다.
확실히 그저 오랜 망치질로 단련된 근육일 뿐, 검객의 움직임이 아니다.
-부웅, 부웅
그렇게 몇 차례 검을 휘둘러본 그가 말했다.
“확실히 일반적인 중원의 검과는 무게 중심 자체가 다르구나. 두터운 갑주를 부수는 데 그 목적을 가진 검이야. 사슬갑옷까지도 아니고 당시에 유행하던 철판 갑옷류를 박살 내는 용도였겠군. 지금도 나무를 베거나 하는 작업용으로는 아주 쓸만하겠는데?”
-우우웅!!
파검의 격렬한 항의를 무시한 채 운호와 공두베가 대화를 이어갔다.
“그저 나무나 베고 곡식이나 일구며 살아갈 수 있다면 그것 역시 좋겠습니다만······. 저에게는 할 일이 있습니다.”
“끌끌끌. 할 일이라······. 그래, 딱 그런 눈이야. 중팔 형님도 그랬고 윤문이 그 아이도 그랬었어. 하지만 성공한 사람은 과거를 잊었고, 실패한 사람은 미래를 뺏겼었지.”
노인들 특유의 쉽게 이해할 수 없는 선문답.
운호가 아무런 답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어쩌겠나. 이렇게 나를 찾아온 것 자체가 인연인 것을. 그리고 사실 나도 좀 아쉽기는 아쉬웠단 말이지. 아무리 중팔 형님이라도 그렇지 내 필생의 역작을 가져가서는 마음대로 황룡검이라니.”
“허면?”
“도와주지. 아주 입이 떡 벌어질 만한 녀석으로 바꿔주겠네. 하지만 조건이 있다네.”
“조건이라시면?”
“뭐 별 다른 건 없네. 그냥 개조할 검의 이름을 두베라고만 해주······.”
“잠깐!!”
가만히 둘의 이야기를 듣고 있던 공야자가 한걸음 쓱 앞으로 걸어 나오며 공두베의 말을 막아섰다.
“하하하, 소협. 그 조건에 관해서는 나와 이야기를 하면 될 것 같군. 아버지께서 미리 말씀하셨던 것처럼 아버지는 속세의 일에는 상관을 하지 않기로 하셔서 말이지.”
“이놈이?”
“내가 뭐 많은 걸 바라는 건 아니라네. 사실 아버지야 사업 같은 건 신경 안 쓰고 하고 싶은 것만 하시니 잘 모르시겠지만, 애당초 아버지가 사용하시려는 특수 공방 자체가 천문학적인 시설비와 유지비가 들어가는 곳이야. 중원 전체를 통틀어서 그만큼이나 안정적으로 고열을 유지하는 고로는 없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지. 아버지는 그냥 대충 나무 떼고 풀무질하면 불이 활활 타오르는 줄 아시지만 그건 백 년 전 이야기고. 요즘은 또 그게 아니란 말이지. 어쨌거나 그런 곳을 사용한다는 건 그것 자체만으로도 어마어마한 비용이 들어가는 일인데, 이게 또 그걸로 끝이 아니거든. 아버지가 그 검을 ‘개조’하기 위해서 시설을 사용하는 만큼 우리의 시제품을 제대로 개발을 못 하게 된단 말이지. 그로 인한 손해 역시 계산하지 않을 수가 없다네. 우리 공방에 목을 매고 있는 직원들, 그리고 그 직원의 가족들까지 생각하면 그저 꿈과 호의 만으로 움직일 수는 없어.”
“그······, 그렇군요.”
얼마 전까지 마치 돈에 초연한 것 같은 모습을 연출하던 공야자였다. 하지만 이미 그런 모습을 보여주는 것은 글렀다는 것을 알고 있어서였을까?
누구보다 이문에 민감한 상인의 얼굴로 운호에게 성큼성큼 걸어왔다.
“돈······, 돈이라······. 얼마나 필요하겠습니까?”
“그거야 아버지가 그 ‘개조’라는 것을 위해 얼마나 긴 시간을 필요로 하는지에 따라 다르겠지.”
운호와 공야자의 시선이 공두베에게 향했다.
“이······. 아니, 일 년. 일 년이면 충분하다. 심재만 손상 없이 추출할 수 있다면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니야.”
“일 년······. 일 년이라······.”
가만히 숫자를 헤아리는 공야자의 손가락이 무서웠다.
저 손가락 하나가 대체 금자 몇 냥을 의미하는 것일까? 운호의 시선이 공두베에 가 닿았다. 하지만 공두베 역시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다.
일 년이라는 시간은 어디까지나 공방의 시설을 사용한다는 전제하의 이야기다. 천하를 통틀어 만련 공방보다 시설이 좋은 곳을 꼽자면 황궁 정도 밖에는 없다. 게다가 아무리 자신이 창업주라고 한들 공야자의 말처럼 공방의 자산을 자신의 욕심대로 마음껏 사용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흐음, 자세한 건 조금 더 계산을 해봐야 알겠지만 지금 대략 계산해봤을 때 얼추.”
“잠시만요.”
“응?”
지금까지 꿔다 논 보릿자루 마냥 그들의 대화를 그저 지켜만 보던 강아현이었다.
“남궁 공자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돈에 관한 부분은 한상의 지부장님과 이야기를 나누라고 하셨었습니다.”
“한상의 지부장과? 으음, 확실히······.”
공야자가 말을 흐렸다.
어림잡아 계산한 금액의 액수가 만만치 않았다. 과거 비거궐을 개발하기 위해 남궁세가에서 만련공방에 지불한 금액은 작은 장원 몇 개는 너끈히 살 수 있을 만큼 실로 천문학적인 금액이었다. 재료비는 아직 계산하지 않았지만, 년 단위의 시간이 필요하다는 말은 어쩌면 그 이상의 비용이 들어갈 수 있다는 뜻이다.
아무리 운호가 화산파의 초절정 고수라고는 해도 이제 겨우 삼대 제자다. 그런 커다란 돈을 마음대로 턱턱 쓸 수는 없었다. 그렇다면 차라리 남궁세가의 소가주와 한상의 지부장쪽이 더 현실성 있는 상대 아닐까?
“하지만!!”
“운호야. 네가 말했잖아. 의형제간에는 그런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무언가 반발하려던 운호를 강아현이 가로막았다.
확실히 조헌화가 운호에게 감사를 표하던 그때, 운호는 그렇게 이야기 했었다. 또한 남궁철 역시 같은 마음이었을 것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내가 베풀던 입장이 됐을 때와 이렇게 도움을 받아야 하는 입장이 됐을 때의 느낌은 또 달랐다. 차라리 베풀 때면 몰라도 도움을 받아야 하는 순간에 그것을 ‘당연한’ 일이라 말하는 것은 참으로 어려웠다.
“남궁 공자 역시 마찬가지였을 거야. 그러니 남궁 공자에게도 기회를 주자.”
강아현의 이야기에 마침내 운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자, 그러면 이제 다 해결 된 건가? 난 이대로 검 들고 가면 되는 건가?”
-우우웅
“아뇨, 아쉽지만 아직이요. 일단 남궁 형님과 이야기를 나눠보고 다시 찾아뵙도록 하겠습니다. 금액에 관한 자세한 부분은 한상의 남경 지부장님을 통해서 연락 부탁드리겠습니다.”
“알겠네.”
***
-콰과광!!
우레와 같은 굉음이 남궁세가 대연무장 한복판에 터져나왔다.
남궁세가의 담벼락은 낮다. 감히 이곳 안휘성에서 남궁세가의 담을 넘을 자가 감히 누가 있겠느냐는 자신감이다.
그리고 그 자신감에 어울리게 남궁세가의 무사들이 순식간에 그 굉음의 출처로 몰려들었다. 지난번 무한에서의 사건으로 전체적인 수준은 조금 떨어졌지만, 명문이 괜히 명문이 아니다. 오히려 정체되어 있던 빈자리를 메운 무사들의 사기는 나쁘지 않았다.
“누구냐!!”
자욱한 모래 먼지.
그 사이로 먼지 한 톨 묻지 않은 백의를 걸친 노인이 한 걸음을 –쾅!! 내디뎠다. 물리법칙을 벗어난 존재의 증거다.
압도적 존재감.
남궁세가의 무사들이 이를 악 물었다.
노인이 누구인지를 몰라봐서? 아니다. 알아봤기 때문이다. 과거 그들의 선배 가운데 노인의 정체를 알아보고 고개를 숙였던 이들은 정말 호되게 고초를 겪었었다.
“외부의 침입자에게 고개를 숙여? 만약 침입한 자가 본좌가 아니라 본좌를 흉내낸 다른 자였다면 어찌 하려고!!”
세상에 그런 사람이 어딨겠냐는 말이 목 끝까지 튀어나왔었겠지만 다행히도 선배들 가운데 그런 말을 내뱉은 사람은 없었다.
그리고 지금.
그 포위망을 바라보던 노인이 흉폭한 미소를 머금었다.
“감히!! 본좌가 집에 돌아왔는데 환영은커녕 검을 내밀어? 네 놈들이 오랫동안 보지 않았더니 모두 감을 잃었구나.”
이래도 저래도 돌아오는 것은 트집뿐.
현 무림맹주이자 남궁세가의 태상가주.
초절정의 고수인 검왕 남궁벽이 검을 뽑아 들었다.
‘아니 대체 누가 검을 내밀었다고!!’
소리 없는 비명성이 그를 포위한 남궁세가의 무사들 사이에 울려 퍼졌다.
하지만 그렇다고 여기서 물러나는 이는 없었다. 혹시 모르는 일이다. 고작 그런 이야기 한 번에 물러났다고 또 고초를 경험하느니 정해진 규칙대로 움직이는 것이 현명하다.
압도적인 기세가 남궁벽을 중심으로 퍼져 나왔다.
제왕검결.
인간의 긴장이 만들어내는 신체 반응을 역이용하여 그것을 교란시킴으로써 몸의 반응 체계를 무력화하는 절세의 무공. 그리고 검왕 남궁벽은 그것을 기반으로 초절정의 경지에 오름으로써 거기서 한 걸음을 더 나아갔다.
말 그대로 제왕의 검.
남궁벽이 그저 허공에 검을 한번 치켜드는 것만으로 수십의 일류 무사들이 무릎을 꿇었다. 어찌 범인이 제왕의 기세에 저항할 수 있을까. 자의가 아니었다. 덜덜덜 떨리는 무릎. 압도적인 공포. 포식자를 코앞에 둔 피식자의 그것처럼. 남궁세가의 무사들은 감히 남궁벽을 바로 볼 수 없었다.
그 사이로 떨리는 몸을 진정시킨 무사들은 오직 한 줌.
완성자의 단계로 나아간 절정의 무사들 뿐이었······?
‘응?’
분명 그래야만 했다.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남궁벽의 시선이 날카롭게 변했다.
“녀석, 이 할애비가 못 보던 사이에 제법 성취가 있었구나.”
남궁 세가의 소가주.
안수해원검 남궁철.
저 거친 폭풍을 뚫고 빛을 뿜어내는 등대처럼.
남궁철의 검이 남궁벽의 기세를 가르며 자신의 등 뒤, 십수 명의 남궁 세가 무사들을 지켜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