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화산파 역대급 천재-203화 (203/288)

203화

탄생(9)

가장 크게 당황한 것은 운호와 아현이를 여기까지 안내한 한상의 남경 지부장이었다.

“네? 갑자기 이게 무슨?”

물론 그러거나 말거나 쉰 살 남짓으로 보이는 사내.

운호가 공 노야라고 부른 그 남자가 저벅저벅 걸어 올라와 집무실 중앙의 의자에 –털썩 주저 앉았다.

“하여간에, 의자 하고는. 이런 모양만 그럴싸한 놈 말고 좀 제대로 된 놈으로 쓰라고 그렇게 말했거늘.”

“아버지!! 갑자기 이게 무슨!!”

“아버지?”

강아현이 자신도 모르게 깜짝 놀라 되뇄다.

그도 그럴 것이 누가 봐도 아버지라는 호칭에 어울리는 쪽은 공야자 쪽이지 뒤늦게 올라온 수석 대장장이 쪽이 아니었으니까.

의자에 앉은 그가 씨익 웃으며 말했다.

“놀랐나? 내 아들이 워낙에 세파에 찌들었더니 조금 일찍 늙은 감이 없지 않아 있지. 아들아, 내가 그러기에 세속에 신경을 좀 끊으라고 몇 번이나 말하지 않았더냐. 그놈의 돈이 뭐가 그리 좋다고. 쯧쯧쯧. 내가 이름까지 저 전설적인 명공인 구야자를 따서 지어줬거늘.”

“이상한 건 아버지죠. 나이 일흔에 이 정도면 지극히 정상인 겁니다. 게다가 그놈의 돈 없었으면 우리 전부 길바닥 나앉을 수도 있었다는 거 기억 못하시는 건 아니죠?”

젊은 아버지와 늙은 아들이라니.

심각하게 이상한 모습이었다.

하지만 강아현과 운호 모두 그 이상한 모습에 금방 적응할 수 있었다. 다행스럽게도 두 사람 모두 이 같은 광경이 처음이 아니었던 덕분이다. 당장 본산에만 가도 일흔의 나이에 오히려 그것보다 조금 더 늙어 보이는 장문인과 아흔에 가까운 나이임에도 오십대 정도로 보이는 청무 진인이 있지 않던가.

하지만 한상 남경 지부장의 경우는 조금 달랐다.

“자, 잠깐만요. 그러니까 이쪽 공노야의 아버지가 이쪽 젊은 공노야이신데, 그러니까 지금까지 저희가 거래를 하던 분이······.”

얼마나 놀랐는지 불안한 눈빛으로 횡설수설하는 그를 공야자가 달랬따.

“자네는 헷갈릴 것 없네. 만련공방의 주인은 아주 오래전부터 나였으니까. 아버지는 그저 공방의 우수한 장인일 뿐이야.”

“하지만 저 아이들이 찾아온 공 노야는 네가 아니라 바로 이 몸이지. 안 그러냐 얘들아?”

공야자가 발끈했다.

“어차피 아버지는 공방 일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모르시지 않습니까.”

“나야 그런 것까지 일일이 알 필요가 없지. 장인이 검만 잘 만들면 되지.”

“그래서 그렇게 잘 만든 검이 하도 안 팔려서 집안을 홀라당 말아먹을 뻔하셨지요. 넷째가 그 돼지한테 팔려 가다시피 시집갔던 건 기억하십니까? 그때 그 아이가 흘린 눈물이 과장 조금 보태서 장강 수위를 한 치는 높였을 겁니다.”

“아니, 시집가서 잘 사는 애는 또 왜 걸고 넘어지는 게냐. 곽서방이 조금 푸짐해서 그렇지 첩질도 안 하고, 넷째한테 얼마나 잘해줬는데.”

아무도 생각지 못했던 부자간의 말다툼이 점점 유치하게 흘러갔다. 이대로면 언제까지 이야기가 이어질지 모른다는 생각에 운호가 슬쩍 끼어들었다.

“제가 오늘 찾아뵌 것은 공방에 관련된 일이 아니라, 검 때문입니다.”

“거봐라. 메고 있는 검을 보니 보통 일이 아닌 것 같은데 이런 건 세속에나 신경 쓰는 네가 건드릴 수 있는 분야가 아니야.”

“아버지, 혹시 잊으신 건가 해서 드리는 말씀인데 아버지께서 분명 돈에 관련된 일은 완벽하게 저에게 모두 맡기겠다고 하셨습니다. 일구이언은 이부지자라 하지 않았습니까. 전 이 나이에 할아버지를 둘이나 갖고 싶지 않군요.”

“아니, 공방이 아니라 검 때문에 왔다는데 그게 무슨 돈에 관련된 일이냐.”

“검을 만드는 건 어디 공짜랍니까?”

“그런 식으로 따지면 세상에 돈에 관련 안된 일은 하나도 없겠구나.”

“잘 아시네요. 세상은 본래 돈이 전부입니다.”

그들의 대화를 바라보고 있던 강아현이 혀를 내둘렀다.

분명 조금 전까지만 해도 운호에게 비거궐을 흔쾌히 내주며 돈에 초탈한 장인과 같은 모습을 보여주던 공야자였다. 헌데 갑자기 이런 변화라니.

“어휴, 그놈의 돈 돈 돈. 아주 지겨워 죽겠구나. 없을 때라면 또 모를까. 이렇게 커다란 건물도 한 채 새로 세웠고 공방도 확장까지 했으면 이제 좀 적당히 할 때도 되지 않았느냐. 저런 쓰레기 같은 검을 수백 냥씩이나 그것도 금자로 받아먹다니. 내가 참 부끄러워서 고개를 들 수가 없구나. 아이야. 얼른 그 칼 옆에 그 여자애한테 줘버리거라. 너 같은 수준의 고수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검이다. 저놈 속셈이야 너무 뻔히 보이지 않더냐. 요즘 떠오르는 젊은 초절정 고수, 장차 천하제일인이라 불릴 아이가 사용하는 검이라고 홍보하고 더 비싸게 팔아먹을 생각이겠지.”

“크흠. 아니, 그게 무슨 음해입니까. 소협, 믿지 말게. 그저 난 명검을 어울리는 사람 손에 쥐여주려는 순수한 의도일 뿐이었다네.”

“명검은 무슨. 아이야. 다시 한번 말하지만, 얼른 옆에 그 여아한테나 줘버리거라. 딱 저 아이가 쓰면 좋을 수준의 검일 뿐이다.”

그 말다툼에 운호가 고개를 갸웃했다.

다른 말들이야 그렇다 치더라도 이 검이 명검이 아니라니.

“어르신. 어르신은 정말로 이 비거궐이 명검이 아니라고 생각하시는 겁니까?”

“흥, 비거궐 같은 소리 하네. 구야자가 무덤에서 벌떡 일어나겠구나. 거궐과 그 검의 공통점이라고는 재질이 조악하다는 것뿐이다.”

“네? 재질이 조악하다고요? 하지만······.”

운호가 비거궐을 뽑아 들었다.

그 무게의 중심이며 형태까지 참으로 완벽했다.

운호가 손가락으로 검끝을 튕겼다.

-티잉

실로 청명한 소리가 울렸다. 그 소리에서, 그리고 손끝에서 느껴지는 경도와 탄성이 완벽하다. 단언컨대 이 검은 지금까지 운호가 쥐어 본 검 가운데 가장 훌륭한 검이다.

하지만 노인의 생각은 조금 달랐다.

“거 봐라. 칼에 맥아리 하나 없는 거. 애당초 모양만 그럴싸해서 그만한 모양을 견뎌낼 만한 강도가 아니야. 뭐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이지. 용골과 운철로 만들어낸 검의 모양만 가져다 썼으니 쯧.”

“용골과 운철이요?”

“그래, 지금 생각해도 참으로 훌륭한 검이었다. 구야자 그 양반이 어장과 순구를 만들었고 간장이 간장과 막야를 만들었다면 나 공두베는 명검 두베를 제작했지. 역사에 영원히 이름을 남길만한 명검이었어.”

명검 두베?

아니, 간장검만 보더라도 장인이 자신의 작품에 본인 이름을 붙이는 일이야 종종 있는 일이라지만 이 사람은 이름 자체가 워낙에 이상했던 터라 검 이름도 영 이상한 느낌이다.

그의 말에 공야자가 입을 삐쭉였다.

“아니, 검 이름이 두베가 뭡니까. 두베가. 그러니까 이 중원 땅에서 그 검을 그 이름으로 부르는 게 아버지 하나 뿐인 거 아닙니까.”

“아니, 두베가 뭐가 어때서. 황룡검 같은 촌스러운 이름보다는 수백 배는 낫구만. 하여간 중팔 그 형님도 취향이 참 이상하단 말이야.”

“아버지!!”

“소리 좀 그만 질러라. 내 귀는 아직 멀쩡하니까.”

중팔 형님?

그리고 황룡검?

설마?

운호가 자신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황실수호검?”

“오, 아이야. 혹시 두베를 본 적이 있는 거냐? 그렇다면 지금 그 검이 얼마나 쓰레기인지 잘 알겠구나.”

맙소사.

운호가 주변을 살폈다.

다행이다. 아무도 없다. 방금 공두베의 말은 그만큼이나 위험한 발언이었다. 중팔이라면 태조 황제가 개명을 하기 전 이름이다. 물론 개명 전 이름이기 때문에 피휘법(避諱法)의 대상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이렇게 공공연하게 이름을 불러도 된다는 뜻은 아니었다.

어찌됐건 정황을 봤을 때 제대로 찾아온 것은 확실한 것 같았다.

운호가 품에 넣고 있던 소개장을 꺼내들었다.

“역시 제가 제대로 찾아온 것 같군요. 공노야. 여기 영무결 대장군의 소개장입니다.”

운호가 건네는 소개장을 받아드는 공두베의 눈빛이 착잡했다.

얼마 전 자신의 성을 딴 남궁백의 꼬물거리던 모습을 본 탓일까? 운호는 저 눈빛을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었다. 그의 말이 모두 사실이라면 저 노괴는 무려 태조 때부터 살아온 괴물이다. 전전대 대장군인 영균과 동시대의 사람인 것이다. 그렇다면 조카뻘이던 운보가 그렇게 세상을 떠나고 그 아들이 자리를 이었다는 말이 된다.

“그렇구나. 여기부터는 긴밀한 이야기를 나눠야 할 것 같으니 관련이 없는 이들은 자리를 좀 비워줬으면 좋겠는데?”

공두베의 시선이 정확하게 자신의 아들에게 꽂혔다.

물론 공야자는 그 진지한 시선을 완벽하게 무시했다.

“지부장, 아버지가 자리를 좀 비켜달라고 하시는군. 사업에 관련된 이야기는 나중에 천천히 나누도록 하고. 오늘은 일단 자리를 좀 비켜주게.”

“네.”

운호와 아현이를 안내해온 지부장이 기꺼이 먼저 자리를 비켰다. 궁금하기는 했지만 지금 오고가는 이야기가 자신이 감당 가능한 범위를 벗어나고 있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만수무강을 위해서는 이런 위험한 일에서는 멀어지는 것이 상책이다.

공두베의 시선이 공야자에게서 떨어지지 않았다.

“제가 자리 비우면 또 무슨 터무니 없는 약속을 하시려고요.”

“터무니 없다니!! 그리고 무결이 소개장을 들고 온 아이인데 좀 잘 해줘야지. 넌 기억도 안 나느냐. 무결이가 어릴 적에 널 얼마나 잘 따랐었는지?”

“흥, 그래봤자 우리 집 망해갈 때 별 도움도 안 준 집안 아닙니까.”

“인석아. 그야 그 시절 주체 그 녀석이 워낙에 살벌하지 않았더냐. 그리고 저기 백가 놈들이랑은 다르게 알음알음 도움을 준 것도 있어.”

“아무튼지 간에 전 자리 못 비웁니다.”

뭔가 전대의 비사들이 마구잡이로 흘러나오는 그 자리에서 공두베가 어쩔 수 없다는 듯 어깨를 한 번 으쓱하고는 다시 운호를 바라봤다.

“그래, 머리 좀 굵어졌다고 말 안들어먹는 자식놈과 투닥거리느라 소개가 좀 늦었군. 나는 이 만련공방의 창업자이자 현재는 뒷방에서 망치질이나 뚝딱이고 있는 공두베라는 늙은이일세.”

“화산파 삼대제자 백운호라고 합니다.”

“그래, 무슨 일로 노부를 찾아 온건가? 뭐 얼추 등에 매고 있는 놈을 보니 짐작이 가긴 하지만 그래도 본인 입으로 듣는 것이 더 낫겠지.”

운호가 정답을 뽑아들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정답이 스스로 칼집에서 빠져 나왔다.

-우우웅

선명한 검명.

같은 자리에 있는 공야자나 강아현은 그 이기어검과 검명에 운호가 지금 갑자기 자신의 무공을 왜 보여주는가 하는 생각을 했다.

“흠, 그렇구만. 이것저것 볼 꼴, 못 볼 꼴 다 봤다고 자부했지만 이런 꼴은 또 처음이로군. 수명이 다한 신검에 새로운 령이 깃들다니. 아니지. 아니야. 령이 아닌 백이니. 엄밀히 말하자면 귀검이지.”

-우우웅

“나도 안다 이 녀석아. 확실히 너를 단순히 귀검이라고 할 수는 없겠지. 우화등선을 해낸 인간의 백이라 그런가? 이상한 영성도 있는 것 같고······. 참으로 복잡한 놈이로구나.”

-우우웅

하지만 공두베는 달랐다.

운호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맙소사······.

과거 정답이 신검이라는 것을 알아봤던 대장군 영보도 이 정도는 아니었다.

처음이었다.

-지금 이 녀석 내 말을 다 알아듣고 있는 거야?

“어허, 이 녀석이라니. 이놈아. 내가 검 두들기던 망치로 달자 놈들 대가리 두드릴 때 네 놈은 아직 태어나지도 않았다.”

-우우웅.

“아니, 그러니까 누가 먼저 가라더냐?”

확실했다.

지금까지 운호 본인을 제외한다면 아무도 듣지 못했던, 그저 –우우웅 하는 검명으로 밖에는 들리지 않는 파검의 이야기를 완벽하게 알아듣고 있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