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화
탄생(8)
운호도 아현이도 이미 북경을 한 번 경험한 적이 있었다. 그것도 그저 보통 사람들처럼 한번 다녀왔다는 수준이 아니다. 황족이 직접 주최하는 국가 단위의 대행사에 참석했고 현재 제국 최고의 권력자로 손꼽히는 최염의 저택도 방문해봤다.
하지만 그럼에도 이 만련공방의 모습에는 감탄을 금할 수가 없었다.
무려 4층.
목조건물의 크기를 결정짓는 것은 결국 나무다. 그리고 이런 거대한 건물을 짓는데 필요한 나무를 구하는 것은 쉽지 않다. 천 년 전에야 남방이 아직 개척이 덜 됐던 시절이니 그나마 나무를 구하는 것이 가능했다. 단순히 크기만 크다고 다 되는 것이 아니다. 이만한 규모를 감당하기 위해서는 그 강도 역시 여간 단단해서 될 일이 아니다.
이 건물을 위해서 저 북방. 장성 너머에서 남해를 통해 공수해온 특별한 나무들이 사용됐다. 60년 전까지 황성이었던 남경의 관청. 그리고 저 북경의 황성을 짓는데 사용된 특별한 나무들이다. 채집부터 운송까지 그 비용은 그야말로 천문학적이다.
게다가 그 안은 또 어떠한가.
“······.”
“대단한데?”
강아현은 말하는 것조차 잊었다.
만련공방의 가장 넓은 1층을 가득 메운 수 많은 병장기들. 그들을 마중 나온 지배인이 자랑스러운 얼굴로 말했다.
“저희 만련공방이 자랑하는 만병관입니다. 이곳에는 천하의 모든 병기가 모여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겁니다.”
확실히 배가 불룩 나온 지배인의 자랑이 무색하지 않은 것이 그 무기의 수량이 심상치 않았다. 흔히 볼 수 있는 병기부터 어지간해서는 볼 수 없는 기병들까지.
‘흥, 그래 봐야 어설프기 짝이 없는 병기들뿐이로구먼 뭐. 게다가 천하의 모든 병기라고 하기에는 당장 저 어린놈이 등에 메고 있는 검만 해도 여기에 없는 물건인데 무슨······.’
쉰쯤 됐을까?
중늙은이 하나가 작게 궁시렁거리는 소리가 운호의 귀에 들어왔다. 그야말로 초절정 고수의 초월적인 감각이다.
그런 운호의 시선을 눈치챈 것일까? 지배인이 웃는 낯으로 말했다.
“아, 저분은 저희 공방의 수석 장인이십니다. 이렇게 가끔 공방에 나와서 물건들의 품질을 관리하시죠. 이런 엄격한 품질관리야말로 저희 공방 무구들이 전 중원에 신뢰를 받는 비결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렇군요.”
지배인이 빠르게 그들을 안내했다.
“물론 여기 계신 분들께 1층의 무구들은 많이 부족하긴 합니다만, 그래도 굳이 이렇게 안내를 해드리는 것은, 하나의 단체를 이끌어가는 분들라면 소속 무인들에게 보급할 무기들도 관심이 있지 않을까 해서입니다. 사실 무구라는 것이 결국 소모품 아니겠습니까? 양질의 제품을 적절한 가격에 다량 공급한다. 장담하건대 그 부분에서 저희 만련공방만큼 안정적인 곳은 없을 겁니다.”
“아, 그러면 혹시 생산도 여기서?”
“하하, 물론 그건 아닙니다. 대규모의 대장간을 이곳에 두기에는 아무래도 철의 수급도 그렇고 남경의 지대가 하하하······. 여기서 조금 떨어진 보광현이라는 곳에서 생산하고 있습니다.”
운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저 수석 장인이라는 중늙은이의 중얼거림은 조금 야박한 감이 있었다. 물론 품질면에서 볼 때 화산에서 보급해주는 검만큼 좋지는 않았다. 하지만 대장군부에서 병사들에게 보급하던 검보다 오히려 뛰어나다.
“하지만 이 층부터는 조금 더 눈에 차실 겁니다.”
일 층의 8할쯤 되는 공간.
무기의 가짓수가 급격하게 줄어들었다. 하지만 그 품질은 놀라울 만큼 올라갔으며 같은 종류의 무기가 수십 개씩 진열된 모습이 마찬가지로 장관이었다. 최소한 화산에서 지급하는 검보다 오히려 더 수준이 높다. 어쩌면 지금 등에 매고 있는 정답과 비교해도 순수한 검의 품질만으로 보자면 더 훌륭할 지경이다.
“많은 분이 여기부터는 장인들이 심혈을 기울여 만들어낸 작품인지를 묻습니다. 물론 저희 공방의 모든 무기들은 하나하나가 작품이라고 칭할만한 물건들이지요. 하지만 엄밀한 의미에서 보자면 이 무기들은 장인들이 스스로의 혼을 불태워 만들어낸 ‘작품’이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대량생산 물건이로군요.”
이건 정말이지 더 놀랍다.
좋은 품질의 검을 만들기 위해서는 결국 좋은 품질의 철이 필요하다. 그것은 단순히 좋은 철광석을 수급하는 것으로 가능하지 않다. 철광석의 제련은 비법의 영역이고 심지어 명장이라고 불리는 장인이라도 항상 균일한 품질로 만들어낼 수 없다. 헌데 지금 이곳에 가득한 무기들은 그 품질이 거의 균일하다. 그것도 몹시 뛰어난 수준으로.
‘혼이 없어. 혼이. 장인의 혼이 담기지 않은 물건은 쓰레기일 뿐이지.’
어느새 그들을 따라온 그 수석 장인이라는 중늙은이가 또 다시 중얼거렸다. 이번에도 마찬가지로 운호를 제외한 아무도 그 목소리를 듣지 못했다.
그들이 삼 층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이 층의 칠 할 남짓한 공간.
몇 개의 구획으로 나뉜 그곳에는 정말로 휘황찬란하다는 말이 어울릴만한 장식 사이에 몇 개의 무기들이 진열되어 있었다.
“어? 운호야, 저기 저 검?”
강아현이 가장 먼저 무언가를 발견하고 손가락질을 했다.
-비거궐(比巨闕)-
어린 아이가 가장 먼저 접하는 서적인 천자문에는 검호거궐 주칭야광(劍號巨闕 珠稱夜光)이라는 말이 있다. 거궐이야말로 검 가운데 으뜸이라 할만하다는 뜻이다. 거궐은 전국시대 전설적인 명장인 구야자의 명검 가운데 하나로 과거 대장군 운보가 황제에게 진상했다는 간장이나 막야에 비견되는 전설상의 명검이다.
헌데 감히 그 거궐검에 비견할만하다니. 실로 오만한 이름 아니던가. 하지만 운호는 저 이름이 절대 오만한 이름이 아니라 생각했다. 그도 그럴것이 운호는 저 검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아, 남궁세가에서 오셨으니 이 검을 잘 알고 계시겠군요. 혹시 써보셨습니까?”
운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어찌 모를까. 절강에서는 초절정 고수였던 남로군의 궁익을 상대로 한 자루를 날려 먹었고, 청해성에서는 마교의 고수 광비검 병조량을 상대로 한 자루를 날려 먹었었다.
당시 남궁철은 천금을 들여 만들어낸 검 가운데 성공작은 자신이 들고 있던 것이 유일했고 나머지는 그 성공작을 만들어내기 위한 시험작들이었다고 말했었다.
그렇다면 저 검 역시 그 시험작 중 하나일까?
“참으로 어려운 과정이었습니다. 한상과 남궁세가의 투자를 받아서 말 그대로 천금을 들여 만들어낸 검이었죠. 재료 수급의 난항과 수율 안정화 실패로 인해 현재까지도 양산화에는 실패했습니다만, 실패작마저도 금자로 백 냥을 호가하는 저희 공방의 최신 대표작입니다.”
“잠깐만요. 허면 이런 검을 만련공방에서는 계속 생산할 수 있다는 말씀이십니까?”
“아무렴요. 물론 수율이 영 좋지 않아서 성공작은 일 년에 서너 자루 남짓인지라 대기만 년 단위로 밀려있는 제품입니다. 물론 단순히 돈만 있다고 살 수 있는 건 아니고, 적어도 저희 공방과 매우 돈독한 관계가 있는 경우에만 판매를 하고 있습니다.”
한 순간.
운호의 시선이 계단으로 향했다. 지금까지 그들을 꾸준히 따라오던 그 수석 장인 때문이 아니었다. 그보다 높은 곳. 4층에서 누군가의 인기척이 느껴졌다.
“이 지배인!! 지금 자네가 모시는 분이 누구인줄 알고 감히 그런 천박한 말을 한단 말인가.”
“다, 단주님!!”
배가 불룩 나온 지배인이 화급히 한 걸음 물러나며 고개를 꾸벅 숙였다.
여든? 아흔? 젊었을 적에는 제법 체격이 괜찮았겠지만, 이제는 나이를 먹어 쪼글쪼글함밖에 남지 않은 노인이 계단을 걸어 내려왔다.
“쯧, 미안하네. 이문에 워낙 밝아 앉혀놨는데 아쉽게도 그 재주를 뽐낼 상대를 고르는 능력은 부족한 것 같군. 노부의 실책일세. 내가 미리 나가봤어야 했는데 요즘 새로운 작품을 구상하느라 워낙에 바빠서 말이지.”
좋은 재질로 만들었지만 딱히 옷을 아끼는 성격은 아닌지 군데군데 구멍이 난 작업복. 그리고 질끈 묶은 백발의 머리카락. 고집있어 보이는 얼굴. 그야말로 그림으로 그린 것 같은 장인의 모습이었다.
“화산 제자 백운호라고합니다.”
“아차차, 내 소개가 늦었군. 만련공방을 책임지고 있는 공야자라고 하네.”
스스로를 공야자라 소개한 노인이 성큼성큼 비거궐 앞으로 걸어갔다.
“최초에 성공작을 남궁세가에 납품하고 두 번째로 나온 성공작이라고 할만한 녀석이었지. 듣기로는 첫 녀석도 공자의 손에서 그 명을 다했다고 들었는데 맞나?”
“네, 그렇습니다. 좋은 검이었지요. 덕분에 목숨을 건질 수 있었습니다.”
“다행이군. 검이 가장 어울리는 주인을 찾아가는 것만큼 장인에게 만족감을 주는 일도 없지.”
노인이 손을 뻗어 비거궐을 움켜쥐었다.
“선물이네. 이 녀석도 이만큼이나 여기에 머물렀으면 슬슬 좋은 주인을 찾아갈 때가 됐어.”
“네? 하······, 하지만!!”
지배인이 깜짝 놀라 한 걸음 앞으로 걸어 나왔다.
공야자가 손을 들어 그런 지배인을 제지했다.
“어차피 입소문은 탈 만큼 탔고, 굳이 이렇게 견본품을 보여주지 않더라도 사겠다는 사람이 줄을 선 상황 아닌가. 저 녀석도 좋은 주인을 만날 때가 된 거야.”
“단주님······.”
“자자, 여기서 이러지 말고 일단 위로 올라가지. 이 지배인은 내려가서 일 보도록 해. 나머지는 내가 알아서 할 테니.”
“네, 알겠습니다.”
만련공방의 4층.
주작대로가 바로 내려다보이는 가장 좋은 위치.
공야자의 집무실은 그야말로 온통 금속 투성이였다. 그가 사람 좋은 미소를 지으며 그 쇳덩이들을 한쪽으로 밀어냈다.
“미안하군. 밑에 아이들도 이제 슬슬 혼자서도 잘하고 있는데, 여전히 이 늙은이의 조언을 필요로 한단 말이지. 뭐 오랜 경험이 필요하다나?”
“어디나 마찬가지지요. 오랜 경험만큼 값진 것이 또 어딨겠습니까.”
“하하, 지부장이 또 이렇게 늙은이의 얼굴에 금칠을 해주는구만.”
공야자가 직접 차를 우려 그들에게 들고 왔다.
“참, 마음 같아서는 나도 보광에 가서 망치질이나 하고 살고 싶은데. 이게 공방이 커지다 보니 단주라고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일이 점점 줄어든단 말이지. 그렇다고 다 때려치우고 나가자니 나만 바라보는 직원들과 그 직원들에게 딸린 가족 수백 명에게도 못 할 짓이고 말이야.”
극품의 보이차였다.
운남 지역의 소수민족의 전통차로 그리 유명한 차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중앙의 높은 관리들 사이에서는 암암리에 유행을 하고 있었는데, 일반적인 차와 달리 최소 십수 년의 숙성을 필요로 한다는 점에서 제대로 숙성된 보이차의 가격은 그야말로 같은 무게의 금을 주고도 살 수 없는 귀물이다.
“다향이 참으로 좋군요.”
“허허, 그런가? 늙은이가 이런 골방에 갇혀 있다 보니 이 지배인이 이런 것에 조금 신경을 써주는 것 같더군. 마음에 든다니 다행일세.”
운호의 시선이 창문으로 향했다.
그곳에는 골방이라고 하기에는 주작대로의 뻥 뚫린 전경이 너무나도 속이 시원하게 펼쳐져있었다.
“그보다 이야기나 조금 해보도록 하세나. 듣기로는 나에게 물어볼 것이 있어서 왔다고 하던데?”
“아, 그게 그러니까.”
지부장이 무언가를 말하려는 찰나.
운호가 고개를 저었다.
“아뇨. 제가 만나고 싶은 분은 만련공방의 단주님이 아닙니다.”
“네? 하지만 분명히 공 노야라고······.”
“공 노야. 장난은 이제 그만 치시죠. 여기 운 대장군님께서 써주신 소개장도 있습니다.”
-저벅저벅
“흐흐, 그래도 아주 눈치가 없는 놈은 아니로구나.”
1층과 2층에서 혼잣말을 중얼거리던 사내.
지배인이 소개하기로는 수석 대장장이라고 하던 그 남자가 계단 위로 걸어 올라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