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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산파 역대급 천재-201화 (201/288)

201화

탄생(7)

“너무 놀랍더라. 남궁 공자가 느끼한 눈으로 쳐다보던 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남경으로 가는 길.

강아현은 끊임없이 이야기를 던져왔다.

“확실히 형님 첫 인상이 좀 안 좋기는 했지.”

운호가 씨익 웃었다.

참으로 생소한 모습이었다. 이전에는 웃지 않았다는 말이 아니었다. 하지만 얼마 전까지의 웃음들은 그 웃음 사이에도 어딘가 그늘이 진 것 같았다.

그렇기에 아현은 지금의 이 웃음이 참으로 보기 좋았다.

하지만 동시에 얼마 전 남궁혜의 무덤 앞에서 주르륵 눈물을 흘리던 운호의 모습 역시 쉽게 지워지지 않았다. 충격적인 모습이었다. 사내가 그렇게 눈물을 흘리다니.

“그러고 보면 형님도 참 많이 변하긴 했어. 하긴······, 우리가 지금까지 경험했던 일들을 생각해본다면 변하지 않는 것이 더 이상한 일 아니겠어?”

“무공도 많이 발전한 것 같던데?”

“······, 그렇지.”

운호가 무언가를 말하려다 참았다.

사실 당연한 일이었다. 남궁철은 무려 그 ‘파검’의 무공을 전수받았다. 그것도 그가 우화등선을 하기 직전. 무언가 초월적인 형태를 통해서 말이다.

물론 그것이 몽원경 이상의 것이라 믿기는 어려웠다. 하지만 이와 같은 초월적인 형태의 무언가가 존재한다면 그의 성취가 매우 놀라운 속도로 상승한다는 것은 놀랄 일이 아니다.

아현이가 약간 의아한 눈빛으로 그를 바라봤다.

하지만 자신이 알고 있는 사실을 입 밖에 내지 않았다. 물론 남궁세가는 강력한 세력이지만 누군가가 보물을 가졌다는 것을 굳이 소문 낼 필요는 없었다. 물론 아현이가 어딘가에 이런 이야기를 떠벌이고 다닐 거라고 의심하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낮말은 새가 듣고 밤말은 쥐가 듣는 법이며 비밀이란 때론 그것을 아는 것만으로도 그 사람을 위험에 몰아넣는 법이니다.

“하지만 아현이 네 무공도 만만치 않잖아. 당장 형님이 네 나이일 때를 생각해보면.”

그 이야기에 강아현이 꺄르르 웃었다. 대체 이야기 어디에 재밌는 요소가 있는 것일까? 운호가 의아한 얼굴로 그녀를 바라봤다.

“아니, 맞는 말이기는 한데. 왠지 네가 이런 이야기를 하니까······.”

“아!!”

스물한 살에 절정.

충분히 역사에 남을만한 기록이다. 적어도 백 년 이내에 이만한 성취를 보인 이는 손에 꼽을 수 있다. 하지만 그 말을 한 사람이 백운호다. 무림의 역사가 시작한 이래, 적어도 기록된 역사에서 운호보다 빠른 성취를 보여줬던 이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것도 그렇긴 하네.”

운호가 머쓱하게 자신의 머리를 긁적였다.

그 모습조차 귀엽게 느껴졌다. 강아현이 자신도 모르게 운호의 어깨를 향해 손을 내뻗으며 웃었다.

운호의 몸이 움찔했다.

피할까? 한참을 망설이는 동안 어느새 강아현의 손바닥이 어깨에 와 닿았다. 작정하고 휘두르면 집채만 한 바위도 바스러트릴 손바닥이지만 너무나도 부드러웠다.

심장이 빠르게 뛰려고 했다.

하지만 명색의 초절정 고수다. 저 밤 하늘의 별빛조차 끌어오는 이적을 발휘하는 고수가 고작 불수의근따위 제어 못 할 리가 없다.

-쯧.

파검이 혀를 찼다.

하지만 그 소리조차 귀에 들리지 않았다. 단순히 어깨를 두들기며 웃었을 뿐인데 분위기가 묘해졌다.

아현이가 자신도 모르게 침을 –꼴깍 삼켰다. 소리가 너무 크지 않았을까?

물론 너무 컸다. 수백 장 밖의 바늘 떨어지는 소리도 포착하는 감각이다. 무엇보다 아현이의 심장이 두방망이질 치는 소리가 너무 생생하다. 아현이의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하, 너무 열심히 와서 그런가? 조금 덥네.”

“그렇지? 잠깐 쉬었다 갈까?”

“어, 어? 아니, 아니야. 어차피 얼마 남지 않았는데 얼른 가자.”

이런 묘한 분위기에 가만히 앉아 있는 것 자체가 더 곤욕이다. 강아현이 한 걸음 먼저 길을 재촉했다.

운호 역시 아무 말 하지 않고 그 뒤를 따랐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심장 박동을 제어하고, 붉어지려는 얼굴을 제어하기 위해 혈관을 수축시킨다. 체온이 상승하고 머리가 어질하다.

이거 정말 괜찮은 걸까? 운호가 자기 자신에게 물었다.

물론 답은 나오지 않았다.

-아니, 쫌!!

***

“뭐라고? 지금 뭐라고 했느냐.”

“그게 그러니까 예산이······.”

예순 즈음 됐을까?

큼지막한 주먹코에 호안이 번뜩이는 노인이 의자 팔걸이를 주먹으로 내리쳤다. 단단한 자단목 의자가 단번에 박살났다.

-쾅!!!!

“예산? 지금 본좌에게 예산이라고 했느냐? 어처구니가 없군. 그러니까 고작 돈 몇 푼 때문에 지금 본좌의 행차를 방해하겠다 그런 이야기더냐? 허어······.”

“아니, 그것이······.”

“실로 어처구니가 없구나. 어처구니가 없어. 설마 본좌가 누구인지를 모르는 건 아니겠지?”

그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 모습이 마치 태산과도 같았다. 한낱 인간이 어찌 그 앞에 버티고 설 수 있을까. 예산을 이야기하던 사내가 벌벌 떨며 무릎을 꿇었다.

바로 그 때.

누군가가 활짝 열린 문으로 들어왔다.

“그만하시지요.”

“네 이놈!!!”

텅 빈 오른 소매.

마흔에 가까운 나이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청수한 외모. 시중에 떠도는 제갈량의 초상화를 꼭 빼닮은 얼굴을 한 남자. 바로 제갈첨이 그 주인공이었다.

“장조부(丈祖父)님이 무림맹주인 걸 모르는 사람이 세상천지 어디에 있겠습니까. 하물며 여긴 무림맹인데요.”

“허면 그걸 아는 놈들이 이리 방자하게 군단 말이더냐!!”

“방자한 게 아니라 정말로 예산이 부족한 겁니다.”

“예산? 그러니까 그깟 돈 몇 푼 때문에 지금 무림맹주의 행차를 막는다. 그런 소리더냐?”

“그깟 돈 몇 푼이 아닙니다. 얼마 전에 점창에 방문하셨을 때 사용하신 돈이 물경 금자로 팔백일곱 냥입니다. 이보게 곽서기. 자네 월봉이 얼마인가.”

제갈첨이 검왕 남궁벽 앞에 꿇고 있던 서기에게 말을 걸었다.

“네······, 네? 저······, 저요?”

“여기 곽서기가 자네 말고 또 있던가.”

“그, 그건 그렇죠.”

“그래서 자네 월봉이?”

“열 냥입니다.”

“오, 열 냥이라. 대단하군. 혹시 금자인가?”

“그럴 리가요. 금자 열 냥은 총군사님도 월봉을 그렇게는 못 받아 가시는 걸요. 당연히 은자입니다.”

남궁벽이 눈치 없이 대답하는 곽 서기를 향해 눈을 부라렸지만 이미 늦었다.

“좋은 정보 고맙네. 그러면 이만 나가보게.”

“네······, 네!!”

곽 서기가 빠르게 열린 문으로 빠져나갔다.

“들으셨습니까? 은자 열 냥이랍니다. 향시에 합격한 거인이 월에 은자 열 냥을 받고 이렇게 일을 하고 있습니다. 금자로 팔백일곱 냥이면 은자로 팔천칠십 냥. 저런 인물 일흔 명을 일 년 동안 고용할 수 있을 거금이라는 말입니다.”

“크흠, 하지만 명색의 무림 맹주가 마교와의 싸움으로 피폐해진 문파를 위무하러 갔는데 어찌 짠돌이처럼 굴 수 있겠느냐. 게다가 어차피 돈이라면 본가에서 충분히 올려 보내고 있지 않더냐.”

늙으면 부끄러움이 사라진다는 말이 있다.

군왕무치(君王無恥)라는 말도 있고.

늙은 데다가 어지간한 소국의 왕 정도는 되는 위치라서 그런 것일까?

확실히 부끄러움이라고는 조금도 찾아볼 수 없다. 무슨 남궁세가가 화수분도 아니고 어차피 돈은 본가에서 충분히 올려 보내고 있지 않냐니.

“없습니다. 아무리 남궁 세가가 이름 난 거부라고 해도 그렇게 수백 냥씩 펑펑 쓰시는데 어떻게 돈이 남아나겠습니까. 이제 매달 나갈 월봉 정도 제외하면 정말 한 푼도 없습니다.”

옳은 말이라도 기분이 나쁘다.

아니 어쩌면 옳은 말이라 더 기분이 나쁘다. 남궁벽은 보통 그런 기분 나쁨을 참지 않는다. 하지만 제갈첨의 위치가 참으로 묘했다.

공적으로는 무림맹의 부군사이며 유력한 제갈세가의 후계자이다. 그리고 사적으로는 그의 손주 사위이기도 하다.

“그래, 알겠다. 이 모든 문제가 내가 무림맹의 돈을 함부로 써서 생긴 일이라면 내가 해결할 수밖에.”

“네? 해결하신다고요?”

설마······.

“그래, 내가 직접 본가를 다녀오도록 하마.”

남궁벽을 부를 새도 없었다. 초절정의 고수다. 그가 마음을 먹는 순간 이미 제갈첨의 시야에 그는 보이지 않았다.

검왕이 움직였다.

설마가 사람을 잡는 순간이었다.

***

남경은 불과 육십 년 전만 하더라도 제국의 수도였다.

물론 그 기간은 고작 사십 년밖에 되지 않았지만, 제국이 막 성립됐던 시기. 국가적인 역량을 끌어모으기 가장 쉽던 시절에 세워진 수도다.

쭉 뻗은 주작대로가 참으로 광활했다. 그리고 그 주작대로를 중심으로 한 상점들 역시 번화하기 짝이 없었다. 솔직히 도시의 규모만 보자면 현 제국의 수도인 북경과 비교해도 오히려 더 거대했다.

사실 생각해보면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었다.

제국 곡물 생산의 중심이 화북에서 강남으로 넘어온 것이 벌써 수백 년 전이다. 이미 강북의 생산량은 강남을 따라오지 못하고, 천하의 거부 역시 강남을 기반으로 하는 이들이 대다수다.

북경이 제국의 행정적 수도라면 남경은 경제적 수도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또한, 돈이 있는 곳에는 사람이 모이는 법이다. 인구수로만 따지자면 남경이야말로 제국 최대의 도시다.

그 제국 최대의 도시에서도 가장 비싼 곳.

주작대로를 따라 본래라면 가장 큰 권세가의 고루거각 중 하나가 위치해야 하는 그 자리에 만련공방이 있었다.

무려 사 층짜리 목조건물로 주작대로를 따라 주욱 늘어선 건물 가운데서도 가장 크고 넓다. 터무니없는 일이었다. 고작 상점이 주작대로변에 있다니.

본래 제국의 수도는 철저하게 계획되어 구획이 지정된다. 상점은 주작대로를 기준으로 왼쪽으로 두 골목을 들어간 곳에 있으며 그것은 천하 사대 상단으로 꼽히는 한상, 아니 황실의 비호를 받는다는 다른 삼대 상단들 역시 마찬가지다.

물론 남경은 이제 제국의 수도가 아니다. 그렇기에 그 구획 역시 강제성을 띠지 않는다. 하지만 남경에 살아가는 호족들의 생각은 달랐다. 그들은 남경이 북경에 못지않은 품위를 지녀야 한다고 생각했고 상단들이 아무리 많은 돈을 제시한다고 해도 절대 주작대로에 인접한 건물을 상단에 판매하지 않았다.

“오셨군요.”

운호와 강아현이 남경 성문 앞에 도착했을 때, 그곳에는 비단 화복을 갖춰 입은 뚱뚱한 중년 남자가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제가 한상 남경 지부장 호부종이라고 합니다. 편하게 호 지부장이라고 불러주시면 됩니다.”

“백운호라고 합니다. 헌데 어떻게 여기까지?”

“아, 미행을 했다거나 한 것은 절대 아닙니다. 그저 출발하신 시간을 알고 일반적인 고수분들의 이동속도를 알고 있으니, 얼추 시간에 맞춰 기다린 것뿐입니다.”

운호에게 깍듯하게 존대하는 그의 모습에 사람들이 수군댔다.

그도 그럴 것이 한상의 남경지부장 정도 되면 남경 지역의 어지간한 호족도 아래로 깔고 보는 위치다. 헌데 그런 인사가 고작 약관 남짓한 남녀에게 저리 깍듯하다니.

“그러면 어떻게? 잠시 지부에서 쉬어 가시겠습니까? 아니면 곧바로 만련공방으로 안내를 할까요? 공 노야와의 만남은 미리 약속을 잡아 두었으니 지금 가시면 곧바로 만나실 수 있을 겁니다.”

“그렇다면 바로 안내 부탁드리겠습니다.”

운호가 품 속의 소개장을 매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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