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화
탄생(6)
운호가 잠시 숨을 멈췄다.
이걸 대체 뭐라고 해야 할까.
그래, 작다. 참으로 작다.
오직 그것밖에는 그 생명체를 표현할 방법이 없었다.
눈도 제대로 뜨지 못하고, 목도 제대로 가누지 못하는 그 작은 생명체는 남궁철의 품에 안겨 그저 조용히 숨만 쉬고 있을 뿐이었다.
그 뒤편으로 약간 부해진, 하지만 동시에 초췌함이 엿보이는 조헌화가 함께 걸어왔다.
“백 공자 오래간만이에요. 일전에는 경황이 없어 미처 감사 인사도 드리지 못했었는데 지금에야 이렇게 얼굴을 뵙고 인사를 드리게 되네요. 참 감사합니다.”
“아, 아뇨. 아닙니다. 그저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
대답을 하면서도 그 시선이 아이에게서 떨어질 줄을 몰랐다.
참으로 신기했다.
저 작은 얼굴에 어떻게 눈코입이 다 들어가 있는 것일까? 저 손발은 또 어떠한가. 무엇보다 놀라운 점은 저 작은 생명체가 그의 의형 남궁철과 파검의 외손녀인 조헌화의 얼굴을 조금씩 가져왔다는 점이었다.
남궁철이 품에 아이를 안은 채 작은 소리로 웃었다. 신기한 것은 그 작은 웃음소리에도 불구하고 그 웃음 자체는 참으로 호탕해 보인다는 점이었다. 저것도 재주라면 재주다.
“하하하, 부인 내가 몇 번이나 말하지 않았소. 나와 운호는 피만 섞이지 않았을 뿐 마음으로 맺어진 형제라고. 운호는 당연히 할 일을 한 것이요.”
물론 운호가 말했던 당연히 할 일의 의미는 파검의 가족을 구하는 일이었지만 굳이 남궁철의 말을 부정하지는 않았다. 또한 남궁철의 말을 오해하지도 않았다. 지금 그는 운호가 당연히 자신을 위해 희생할 것이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었다. 저것은 남궁철 본인 역시도 당연히 운호를 위해 그리할 것이라는 이야기였다. 저 밉살스러운 도련님의 말속에는 언제나 그런 의미가 숨겨져 있었다.
물론 모두가 남궁철의 말을 그렇게 받아들이는 것은 아니었다.
조헌화가 미간을 찌푸렸다.
“여보!!”
“아니, 그러니까 내 말은 의형제간에는 당연한 일에 일일이 고맙다는 말은 할 필요가 없다 뭐 그런······.”
“형수님. 괜찮습니다. 형님 말씀이 맞습니다. 의형제간에는 당연한 일이지요. 너무 그렇게 고마워하실 필요 없습니다.”
“크흠, 그거 보시오. 운호도······.”
운호의 말에 반색하며 어깨를 쫙 피던 남궁철이 자신을 째려보는 조헌화의 눈빛에 황급히 말을 삼켰다. 운호는 그 모습이 참으로 보기 좋았다. 저 모습이야 말로 그가 기억하던 남궁철의 모습이었다. 그 명성과 무위, 지위에 어울리지 않게 과장되고, 주책맞은 모습.
하지만 동시에 한편으로는 섭섭했다.
그는 시신조차 제대로 남기지 못했던 혜아를 벌써 잊어버린 것인가? 그녀가 남긴 작은 뼈조각 하나를 품고 복수를 다짐하던 남궁철은 어디로 간 것인가.
하지만 굳이 그것을 티 내지 않았다.
그저 저 작고 신기한 생명체를 바라봤다. 어린아이 특유의 좋은 냄새가 코끝을 스쳤다. 왠진 모르겠지만 마음이 편안해지는 느낌이었다.
“이름은 호라고 한다. 내가 아는 가장 똘똘한 놈을 닮길 바라는 마음에서 그리 이름 붙였다.”
운호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그를 바라봤다.
남궁철이 멋쩍은 얼굴로 시선을 피했다. 저 능글맞은 인간이 부끄러워하다니. 운호가 뭔가 말을 하려는 찰나.
아들이 자신의 아비가 위기에 처한 것을 느끼기라도 한 것일까?
-응애!!!!
그 작은 몸에서 어떻게 저렇게 우렁찬 소리가 터져 나오는 것일까?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남궁철에게서 조헌화가 아이를 넘겨받았다. 하지만 제 어미가 아무리 어르고 달래도 그 울음은 쉽게 그치지 않는다. 낯선 사람이 많아서일까? 아니면 배가 고파서일까. 공 대부인과 조헌화가 서둘러 아이와 함께 자리를 피했다.
따라가야 할까? 아니 그래도 손님이 옆에 있는데?
남궁철의 그 어쩔 줄 모르는 모습에 운호가 피식 웃었다. 혜아를 벌써 잊어버린 것 아닌가 하는 생각에 섭섭하던 생각이 눈 녹듯이 사라졌다.
참으로 보기 좋았다.
“형님, 따라가보셔야 하는 거 아닙니까?”
“어? 어어. 아니다. 그냥 자다 깨서 놀라서 그랬겠지. 그보다 따라오너라. 보여줄 곳이 있다.”
“보여 줄 곳이요?”
남궁철이 운호를 데려간 곳은 작은 무덤가였다.
“여긴······. 설마?”
“그래, 혜아의 무덤이다.”
그곳에는 수십 개의 무덤들이 줄지어 있었다. 무한에서의 사건으로 목숨을 잃은 남궁세가 사람들이었다. 그 가운데 태반이 시신조차 제대로 남기지 못했다. 그나마 한쪽 손이라도 남긴 남궁혜의 경우는 양반이다. 대부분이 거대한 공격에 휘말려 함께 으깨지고 뭉개져 버려 분류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했다.
“살아있을 당시 입었던 의복이나 아끼던 물건들로 대신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렇군요······.”
남궁혜의 얼굴이 떠올랐다. 참으로 아름다운 얼굴이었다. 그렇기에 마음이 아렸다. 그녀를 마지막으로 본 것은 불과 4년 전이었다. 하지만 운호가 느끼는 세월의 크기는 그보다 훨씬 컸다.
굴불신마 영무결은 운호의 하루가 남들의 열흘과 같다고 표현했다. 물론 그것은 그가 섭취하는 벽곡단이 그의 오성을 날카롭게 갈아주는 대신, 그의 수명을 그만큼 갉아먹고 있음에 비유한 것이었다.
하지만 실제로도 운호는 남들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최근 몇 달은 그래도 조금 괜찮았다. 활불과의 싸움 덕분에 몽원경에서 보내는 시간 자체가 극도로 짧아졌으니까.
하지만 파검이 떠나고 활불이 들어오기까지의 긴 시간. 그 속에서 운호는 그야말로 열흘과 같은 하루를 보내왔다.
확신할 수 없었다.
자신이 기억하는 남궁혜의 얼굴이 정말 4년 전에 봤던 남궁혜의 얼굴 그대로인지. 아니면 긴 시간 속에서 왜곡된 기억인지.
운호의 눈가에서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강아현이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왕효와 장당이 숨소리조차 자제하며 그것을 지켜봤다.
남궁철이 그런 운호의 등을 말 없이 두들겼다.
***
“만련공방?”
“네, 잘 아십니까? 거기에 공 노야라는 분을 만나볼 생각입니다.”
“만련 공방의 공 영감이라면 잘 알고 있지. 돈을 좀 밝히는 게 문제이긴 하지만 좋은 검을 만드는 장인이지. 아, 참. 그러고 보니 일전에 네게 줬던 그 검도 공 영감이 만들었던 검이다.”
검 한 자루에 수백 냥의 금자가 들어갔다고 하여 놀랐던 기억이 났다. 하지만 과연 비싼 검답게 실로 손에 착 감기는 명검이었다. 덕분에 목숨을 구하기도 했었고. 다만 고작 검 한자루에 그런 비싼 값을 치를 것인가를 묻는다면 솔직히 고개를 좀 갸우뚱 하게 되는 것은 사실이다. 남궁세가와 같이 돈이 썩어나는 곳이라면 또 모를까.
금자 수백 냥이면 한적한 시골에 거대한 장원 한 채, 혹은 이름난 영약도 구매할 수 있을 만큼 거액이다.
“헌데 그 양반은 갑자기 왜?”
“아, 좀 물어볼 일도 있고······, 부탁할 일도 있을 것 같아서요.”
“부탁? 흐음······. 그래, 잘 됐다. 그거라면 내가 도움을 줄 수 있을 것 같구나. 아니, 도움을 꼭 줘야겠다.”
“네?”
어차피 소개장이 있다는 이야기를 하려는 찰나.
남궁철이 먼저 입을 열었다.
“만련공방의 물량을 소화하는 상단이 한상이다. 그 영감이 좀 까탈스럽기는 하지만 그래도 가장 큰 고객을 함부로 할 수는 없지. 게다가 그 영감이 심혈을 기울여 만드는 무기들을 소화 가능한 곳도 우리 남궁 세가 정도밖에 없으니까. 가격을 워낙 비싸게 불러야 말이지.”
“그렇습니까?”
“여기서 잠시만 기다려라. 내가 만련공방 쪽으로 연통을 넣을 테니. 한 일주일이면 얼굴을 볼 수 있을 게다.”
남궁철의 이야기에 운호가 손을 내저었다.
“아닙니다. 제가 필요한 일로 가는 건데, 직접 가봐야지요.”
“이 녀석아. 내가 너와 함께 있고 싶어서 그런다. 이번에도 만련공방에서 볼 일이 끝나면 훌쩍 떠날 것 아니더냐.”
운호가 멋쩍게 웃었다.
확실히 절강성에서 그 일이 있었던 이후에도 며칠 더 머물고 가라는 것을 너무 매몰차게 떠나기는 했었다.
“아닙니다. 그때야 북경에서 급한 일이 있었던 탓이고, 지금은 그런 것도 없지 않습니까. 게다가 저도 제 이름을 딴 예쁜 조카를 조금 더 보고 싶기도 하고요. 돌아오겠습니다.”
“크흠. 아니, 뭐 꼭 네 이름을 땄다고 하기에는······.”
남궁철이 이번에도 시선을 돌렸다.
저 능글맞은 양반이 어지간히 부끄러운 모양이다.
“아무튼간 그러면 소개장을 하나 써줄 테니 그걸 들고 가보거라. 아니, 아니다. 그냥 사람을 붙여줄 테니 함께 가거라. 남경에 가면 절대 바로 만련공방으로 가지 말고, 한상 남경 지부부터 들르거라. 내가 지부장에게 전선구를 보내둘테니까 함께 가면 될 것이다.”
“네? 아니, 굳이 그렇게까진 안해주셔도······.”
“아니다. 안 그러면 눈 뜨고 코 베이는 수가 있다. 그 영감, 장인인 척 깐깐하게 구는 주제에 셈은 또 지독하게 빨라서. 완전 장사치도 그런 장사치가 없다.”
남궁철의 설명을 들을수록 뭔가 공 노야에 대한 인식이 조금 바뀌는 것 같은 느낌이기는 했다. 무려 백년 전 태조 황제 이야기부터 황실의 수호검까지 전설적인 이야기들로 가득하던 장인이 돈을 지독하게 밝히는 장사꾼이라니.
“어지간하면 나나 아버지가 직접 얼굴을 보고 이야기를 해야 바가지 안 쓸 것 같긴 하다만, 그래도 남경 지부장이라면 그 영감이랑 익숙할 테니 터무니없는 짓까지는 당하지 않을게다.”
“걱정하지 않으셔도 괜찮습니다. 돈이라면 대장군부에서 조금 받아온 것이······.”
“최근에 검을 열 자루 만드는 데 금자로만 천 냥을 줬다. 그것도 일전에 개발비로 열 자루에 삼천 냥 냈던 거 그대로 재현하는데 그만한 돈을 냈지.”
“처······, 천 냥이요?”
“뭐 그래도 거기에 어울리는 물건으로 나오기는 하니까. 아, 그리고 돈 걱정은 하지 말아라. 부자형을 뒀으면 이런 데라도 써먹어야지.”
그 터무니 없는 액수에 파검이 기겁을 했다.
-운호야 뭐 하느냐. 얼른 고맙다고 해라.
운호가 입을 열려는 찰나.
남궁철이 손을 휘저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크흠, 아이참. 우리 백아는 밥 잘 먹고 잘 잠들었으려나? 요새는 잠깐만 떨어져도 눈에 밟혀서 계속 보고 싶어진단 말이지.”
형제의 일이다.
고맙다는 말 같은 건 필요 없다. 말 대신 행동으로 전하는 남궁철의 그 이야기에 운호 역시 웃음으로 고마움을 대신했다.
***
조헌화는 며칠이라도 더 머물고 가라며 연거푸 운호를 붙잡았다.
덕분에 운호는 남경에서 볼일이 끝나면 꼭 돌아오겠노라 거듭 약속 하는 것을 넘어 왕효와 장당 두 형제를 남궁세가에 두고 오는 것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강아현이 눈빛으로 조헌화에게 고마움을 표했다.
본래라면 몇 달 동안 둘이 오붓하게 여행할 것을 저 진드기들 덕분에 영 좋지 못했었는데, 이렇게 뜻밖의 도움을 얻게 됐다.
조헌화가 그 눈빛에 부드러운 웃음으로 화답했다.
그녀는 운호를 기억하고 있었다.
이제 막 열일곱이 된 그 소년은 영민한 눈동자를 반짝이며 옆에 앉아 있던 여자아이의 일거수일투족에 신경을 쓰던 그런 평범한 소년이었다.
물론 검을 뽑아드는 순간, 무려 그 할아버지가 감탄을 할 만큼 터무니 없는 모습을 보이기는 했지만, 적어도 일상에서는 그와 같았다.
하지만 지금. 그 소년은 검집에 검이 담겨있음에도 마치 검을 뽑아들고 있던 그 모습을 연상케 했다. 마치 자신의 낭군이 지금의 미소를 찾기 전 그랬던 것처럼.
조헌화가 길을 떠나는 선남선녀를 배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