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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산파 역대급 천재-194화 (194/288)
  • 194화

    누구의 잘못인가(42)

    -콰과광!!!

    심장을 찔린 활불의 몸이 요동쳤다.

    그와 동시에 그의 표피에 머물던 황금빛 기운이 크게 확장됐다.

    마치 열 자루의 단검을 휘두르는 것처럼 열 손가락으로 검은 빛을 뿌리며 활불의 몸을 난자하던 박진문도, 핏빛의 강기를 폭발시키며 활불을 내리치던 종자명도 그리고 활불의 심장을 찌른 운호 역시 그 요동에 뒤로 크게 밀려났다.

    보통의 사람이라면 즉사가 응당한 그 상처조차도 그에게는 그저 생채기에 불과한 것일까? 아니, 그럴 리 없었다.

    물론 한계를 초월한 외공의 고수.

    예컨대 무한 혈사 당시의 무신 모용경이나 소림의 대력금강 공조 대사 정도만 돼도 충분한 시간만 주어진다면 심장의 상처마저도 봉합할 수 있을 만큼의 터무니없는 재생력을 발휘하곤 한다. 하지만 그것도 어디까지나 일반적인 상처일 때의 이야기다.

    운호의 검에는 검강이 서려 있었다.

    검강이란 저 하늘의 별빛이다. 인간의 힘으로 하늘의 별빛을 불러낸 검에는 이치를 초월하는 심상이 담겨있다.

    다만 활불은 앞선 무신 모용경이나 대력금강 공조 대사와는 또 차원을 달리하는 고수였다. 검강에 담긴 운호의 심상조차 그 재생을 완벽하게 억제하기는 힘들다. 아마 충분한 시간만 주어졌더라면 검강으로 파괴된 심장마저도 재생시킬 수 있었을지 모른다.

    활불은 시간이 필요했다.

    하지만 그의 곁에는 적대적인 초절정의 고수 셋이 버티고 있었다.

    가장 먼저 달려든 것은 역시 종자명이었다. 몸의 상처가 가장 심각해 보였음에도 불구하고 그 기세는 조금도 줄어들지 않았다. 특히 조금 전 그 활불의 마지막 발악으로 한쪽 팔뼈가 부러져 덜렁거림에도 불구하고 나머지 한 손으로 검을 움켜쥔 채 사납게 달려들었다.

    박진문은 그보다 조금 늦었다. 하지만 그 위력은 결코 만만치 않았다.

    은검귀조(隱劍鬼爪).

    평소 거대한 대검을 들고 다니는 것으로 그 별호를 갈음하는 척했지만, 이것이야말로 내 별호에서 말하는 숨은 검이라는 것을 열 손가락에서 뿜어내는 검은 빛으로 증명했다.

    활불의 몸이 흔들렸다.

    자욱하던 수증기가 점점 줄어든다. 그와 동시에 타는 것 같던 열기도 급격히 감소했다.

    “그래, 너희가 이겼다.”

    심장의 상처를 틀어막기 위해 일으킨 유가밀공으로 인해 균형이 깨지기 시작했다. 금강역사와도 같던 근육질의 몸이 평범한 사람의 그것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서걱

    종자명의 검이 활불의 손가락을 잘라냈다.

    그 날아가는 손가락을 바라보는 종자명의 얼굴은 뭉개지고 피로 물들어 평소의 그 잘생긴 얼굴은 흔적도 찾아볼 수 없었다. 하지만 그런 심각한 상태에서도 짖뭉개진 입이 벌어지며 몇 개 남지 않은 치아가 모습을 드러냈다.

    저것을 과연 웃음이라고 할 수 있을까? 패자보다 더 패자 같은 그 모습으로 종자명은 웃었다. 핏빛으로 물든 그의 검이 한층 더 빨라졌다.

    그 치열한 싸움 속에서도 활불이 크게 외쳤다.

    “하지만 잊지 말아라. 삶은 유한이나, 본불은 무한하니 본불에게 이것은 그저 쉼표일 뿐 결코 마침표가 아니다. 너희 침략자들이 이 땅에 발을 붙이고 있는 한, 본불은 투쟁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 지금 너희는 살아 돌아가겠지만, 너희의 아들과 딸, 만약 그것이 안 된다면 손자와 손녀. 혹은 그 후손의 후손들까지도. 잊지 말아라. 너희는 그저 오늘을 유예했을 뿐이라는 사실을!! 본불은 너희 스스로가 만들어낸 영원한 징벌이다!!”

    그것은 단순한 외침이 아니었다. 이곳에 있는 모든 이의 귓가에 내리꽂히는 저주와도 같았다.

    누군가.

    아마도 이번 대장군부의 계획을 아는 누군가가 그 거대한 외침에 크게 반발하며 소리쳤다.

    “웃기지 마라!! 너희들의 만행도 이것으로 끝이다. 이제 네 터전인 포달랍궁은 불탈 것이며 네 형제 자매들은 모조리 흙으로 돌아간다. 죽음에서 돌아온다 한들 너를 반기는 이는 아무도 없을 것이고 그저 홀로 외로이 몸부림 치다가 다시, 그리고 또다시 죽어갈 것이다.”

    그 겹겹이 쌓인 원한들을 앞에 두고 운호가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검을 쥐는 일뿐이었다. 저런 복잡한 것들은 알 수 없었다. 운호는 단지 무인으로서 손에 쥔 검으로 할 수 있는 일을 할 뿐이다.

    무엇보다 저 활불은 현재 그의 가장······. 그러니까 가장 친한 친구를 해하려 했다. 만약 그가 제때 도착하지 못했더라면 이번에도 운호가 목격한 것은 그녀의 참혹한 시체였을 것이다.

    다시 뭐라 떠들기 위해 입을 여는 활불을 향해 운호가 검을 날렸다. 하지만 그보다 종자명이 빨랐다.

    언제부터였을까?

    종자명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붉은 빛이 한층 진해졌다.

    그것이 종자명의 원한 때문인지, 아니면 드디어 상대의 피를 봐서 생긴 살기 때문인지는 알 수 없었다.

    -서걱

    황금빛 서기가 사라진 활불의 피부.

    붕괴해가는 바즈라파니의 영향으로 강철의 거신과 같던 몸뚱이마저도 흐물거려져 가는 그의 어깨가 종자명의 검에 허무하게 잘려 나갔다.

    “크윽.”

    활불이 작게 신음했다.

    고타마 싯다르타는 보드가야에서 끝없는 고행으로 육체의 욕망을 초월했다. 물론 활불은 고타마 싯다르타가 아니었다. 그는 스스로를 불(佛)이라 칭하고 있었지만 자신의 경지가 진정한 부처와 멀다는 것 정도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금강공과 유가밀공의 완성된 수행자로서 욕망은 아니더라도 고통 정도는 진즉에 초월했다고 생각해왔다.

    헌데 종자명에게 잘린 손가락도 그렇고 지금의 어깨도 그 타는 것 같은 고통이 범상치 않았다.

    종자명은 기억하지 못했다.

    기억이란 결국 사고(思考)의 일환이었고, 이성을 잃어버린 그에게 무언가를 기억할 힘 따위는 남아있지 않았으니까.

    다만 아주 오래전.

    현재의 대장군인 영보가 그에게 천살(天殺)의 무공을 가르칠 때 그는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었다.

    “천살(擅殺)이 천살(天殺)로 승화하는 것이야말로 네가 해내야 하는 일이다. 혹여 네가 해내지 못한다면 너의 후대가, 그것도 아니라면 그 후대가. 오직 그것만이 이 지독한 악연의 굴레를 끊어낼 수 있음이니······.”

    영이 인간의 근원이라면 혼은 그 개인의 특질이며 백은 그가 쌓아 올린 인생이고 육은 그가 타고난 신체다.

    대장군 영보의 아버지인 영균은 저 활불을 없애기 위해서는 육체가 아닌 영혼, 적어도 혼백을 베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는 죽을 때까지 그 답을 찾지 못했고 그 공은 영균의 아들인 영보에게 넘어왔다. 그리고 영보가 내린 그 나름의 해답이 바로 이 천살의 무공이었다.

    오직 살해에 특화된 무공. 형체가 없는 살기에서 시작한 이 무공이라면 종국에는 인간의 근원 그 자체를 파괴할 수 있지 않을까?

    천살성(天殺星)의 기운이 활불의 어깨를 파고들었다.

    육체를 넘어선 혼백의 상처.

    발악적으로 내민 활불의 손바닥을 운호가 가볍게 받아넘겼다.

    -저 녀석 무언가 이상하다.

    파검의 말에 운호가 동의했다.

    자신이나 박진문의 공격이 통했을 때와 종자명의 공격이 통했을 때 반응이 달랐다. 싸움이란 본래 나에게 유리한 것을 행하고, 상대방이 싫어하는 것을 강요해야 하는 법이다.

    간신히 잡아뒀지만 실시간으로 붕괴하는 심장.

    혼백을 태우는 천살의 공격.

    모든 방어를 무력화 시키는 운호의 견제까지.

    활불의 거대한 몸이 쪼그라 들고, 마침내 종자명과 비슷한 누더기가 되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아······.아······.”

    당당하게 미래를 이야기하던 활불은 없었다.

    스스로 고통을 초월했다 여기던 초인은 넘쳐나는 고통이 입가에 흐르는 침을 삼키는 것조차 잃어버렸다.

    그 모습은 참으로 비루했다.

    억지로 싸움을 이어가던 라마승들 가운데 몇몇이 석장을 떨어트렸다. 그들에게 활불은 단순한 지도자가 아니었다. 스승이자 영적인 초월자였으며 구세주였다.

    종자명의 검은 멈추지 않았다.

    이제는 저항할 능력을 잃어버린 활불의 몸이 난자됐다. 그것은 천참만륙(千斬萬戮)이라는 표현이 딱 들어맞았다.

    그는 살점 하나 뼈 하나, 제대로 남기지 않겠다는 기세로 검을 휘둘렀다. 피거품을 물며 움찔거리던 활불이 마침내 그 움직임을 멈췄다.

    누더기와 같은 종자명이 짐승처럼 울부짖었다. 운호는 감히 그 감정의 깊이를 감히 헤아릴 수 없었다.

    대체 얼마나 벅찰까. 만약 나도 편마(鞭魔)를 죽인다면, 아니 그것을 넘어 대제사장을 죽여버린다면 저런 마음을 느낄 수 있을까? 알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적어도 종자명은 그 자리에서 자신의 원한을 갚았다. 비록 누군가의 절대적인 도움이 있었다지만 그 마지막을 해낸 것은 스스로의 손이었다.

    종자명의 눈동자에서 빛이 사라졌다.

    -풀썩

    박진문이 고개를 저었다.

    아무리 초절정의 고수라고 해도 지금까지 저런 기세로 검을 휘두른 것 자체가 터무니없는 짓이었다.

    대장군부의 실솔들이 빠르게 그들에게 달려왔다.

    운호가 종자명의 맥문에 손을 가져다 댔다.

    흐리다. 하지만 그래도 아직 살아 있다.

    “누구 약 가진 거 없습니까?”

    없을 리가.

    “여기, 여기 있네.”

    “내 이것도 아주 귀한 약이라고 들었네.”

    사람들이 주섬주섬 무언가를 꺼내 들었다. 이곳에 있는 사람들 대부분이 대장군부의 귀한 몸들이다. 물론 무인이 아닌 사람도 다수였던지라 단순히 몸을 보하는 용도의 약도 많았다. 하지만 개중에는 정말 귀한 요상단도 다수였으며, 몇 개 안 되지만 영약의 범주에 들어가는 약 역시 존재했다. 특히 강아현이 내민 흑삼정은 중원 최고의 연단사가 만들어낸 요상단답게 그 효능이 발군이었다.

    운호가 그 모든 약을 씹어 삼켰다.

    “응? 자네 지금?”

    “백 장군!!”

    당연히 죽어가는 종자명을 위해 사용할 것으로 생각하던 차였다. 사람들이 그 모습에 기겁했다.

    “조용!! 제대로 알지 못하면 그냥 가만히들이나 있으시지요.”

    박진문이 그들에게 호통쳤다.

    강아현 역시 지금 운호가 보여주는 모습이 몇 달 전 자신이 기절했을 때 보여줬던 그 모습과 똑같으리라 여겼다.

    어마어마한 약 기운이 운호의 기맥 안에서 요동쳤다.

    똑같지 않았다.

    아마 당시의 운호였다면 이렇게 터무니없이 많은 약을 한번에 삼키는 미친짓은 엄두도 내지 못했을 것이다. 초절정의 경지에 올라 단단하고 질기기 짝이 없는 경맥이 그 어마어마한 기운을 어렵지 않게 감당했다.

    기운은 실로 혼탁했다.

    아무리 좋은 기운이라도 이렇게 섞어버렸으니 그저 오물이나 다름없었다. 쓸데없이 그 크기만 거대한 오물이다.

    하지만 운호는 이미 혼원단이라는 천하에서 가장 혼탁한 것을 복용해본 적이 있었다.

    무거운 것은 가라앉았고 가벼운 것은 위로 올라왔다.

    진득하게 느껴지는 기운이 운호의 손끝을 따라 종자명의 몸으로 쏟아졌다. 그의 몸이 푸드덕하고 경련했다. 그리고 그 경련 끝에 멈춰가던 숨이 가볍게 새어나왔다.

    몸의 상처는 여전히 참혹했다. 내상 역시 심각했다. 초절정의 고수라고 하지만 그 후유증을 다 피해갈 수는 없을 만큼.

    “대단한 재주로군. 삼도천에 몸을 담근 이를 억지로 잡아 올리다니 말이야.”

    “그저 약들이 좋았을 뿐입니다.”

    박진문이 혀를 내둘렀다.

    운호는 그저 약들이 좋았다고 이야기했지만, 애당초 저런 터무니 없는 기운을 한 번에 소화하는 것도 그것을 저렇게 내보내는 것도 기운을 제어하는 능력이 신기에 이르지 않고서야 불가능한 일이었다.

    물론 그렇다고 해도 삼도천에서 한 발을 뺐을 뿐.

    죽음에 가까운 것은 마찬가지다. 적어도 신의라고 불릴만한 의원을 찾아다 치료를 맡겨야 했다.

    “그래도 일단은 오늘의 승리를 축하하도록 하지.”

    수십의 창위들이 죽었다.

    게다가 저 괴물은 수십 년만 지나면 언제 죽었냐는 듯 다시 돌아올 것이다. 그럼에도 박진문은 웃었다.

    수십 년 전 영균을 비롯한 제국의 고수들이 활불을 죽이고 웃었던 것처럼.

    ***

    “응? 여기는? 난 분명 죽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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