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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산파 역대급 천재-187화 (187/288)
  • 187화

    누구의 잘못인가(35)

    활불의 사자후를 버텨낸 종자명의 모습은 끔찍했다.

    몸 여기저기가 쩍쩍 갈라져 선혈이 낭자하다. 그야말로 피칠갑이라는 표현이 딱 들어맞는다. 보통 사람이라면 움직이기도 힘들 것 같은 상처. 하지만 핏빛의 강기로 둘러 쌓인 종자명은 그런 상처 따위는 느껴지지 않는다는 것처럼 달려들었다.

    천살성(天殺星).

    그래, 지금 종자명은 그야말로 천살성 그 자체였다.

    운호와 박진문의 공격을 버텨내던 활불의 호신강기가 와장창 박살 났다. 활불의 얼굴에 처음으로 당황이 어렸다.

    그리고 그 기세 그대로 종자명의 검이 활불의 몸을 뚫었다.

    -퍼억!!

    유가밀공을 대성했다는 것이 이런 것일까? 활불의 몸이 출렁였다. 하지만 종자명의 공격은 활불의 거죽을 뚫지 못했다. 호신강기를 박살내느라 그 힘이 줄어든 탓이다.

    그리고 그것은 운호도 박진문도 마찬가지였다.

    특히 박진문의 경우 그에게 귀조라는 별호를 붙여준 관절기를 사용하려 시도했지만 활불의 몸은 마치 뼈가 없는 연체동물처럼 그 공격을 흘려냈다.

    그렇다면!!

    관절을 바수지 못한다면 살점을 끊어낸다.

    박진문의 양손이 활불의 살점을 뜯어내기 위해 힘을 더했다. 하지만 대체 이것이 사람의 몸이기는 한 것일까? 마치 엿가락이 늘어지는 것처럼 활불의 살점이 주우욱 늘어졌다.

    활불의 시선이 종자명에게 향했다.

    운호가 판단했다. 이건 나의 역할이다.

    -콰과과과광

    운호의 검이 현란하게 움직였다. 활불의 격공장들이 소멸했다. 아직 흐릿하게 정답에 어려있던 별빛이 그 공격의 여파를 완벽하게 막아냈다. 검을 쥐고 단단한 것에 휘두르면 그 충격은 검을 휘두른 사람에게도 오기 마련이다. 너무나도 당연한 이치다. 하지만 검강은 인세의 이치에서 한 걸음 벗어난 이적이었다. 운호의 몸에는 약간의 충격도 남지 않았다.

    종자명은 그런 것들을 조금도 신경 쓰지 않았다.

    그의 붉은 살기로 번들거리는 눈은 오직 활불에게 고정됐다. 마치 이 세상에 활불과 자신밖에 없는 것처럼.

    그의 검이 맹렬한 기세로 활불의 몸을 쓸어갔다.

    -출렁

    이번에도 역시 활불의 몸이 크게 출렁였다. 하지만 앞서와는 다르다. 활불의 몸이 완성된 유가밀공의 정화라면 종자명의 검은 천살의 기운 그 자체다. 한계를 넘어서기 전에도 이미 일반적인 절정고수가 만들어낸 유사 검강과는 차원을 달리하던 천살이었다. 검강 역시 비범하기 짝이 없다.

    검극이 쓸고 간 자리.

    활불의 피부가 붉은 빛으로 부풀었다. 아직 찢어지진 않았지만 명백한 타격이 있다는 뜻이다. 보통 저런 류의 외공은 한번 박살나면 우르르 무너지는 경우가 많다는 것을 고려한다면 몹시 긍정적인 신호다.

    박진문이 그것을 정확하게 포착했다. 그의 검은 손가락이 활불의 붉게 달아오른 피부를 스쳤다.

    “감히!!”

    활불의 노호성과 함께 지금까지 끊기지 않는 탄력과 모든 것을 흡수하는 포용력을 갖추고 있던 그의 몸이 돌변했다. 한순간 지방으로 가득하던 그의 몸이 절간 문 앞을 지키는 사천왕상 금강역사의 그것처럼 단단하게 변했다.

    -우드득!!

    그 갑작스러운 변화에 그의 붉어진 몸을 노리던 박진문의 중지 손가락이 탈골됐다. 머리털이 쭈뻣 서는 고통. 하지만 박진문 역시 타국에서 일흔이 넘은 나이까지 굴러먹은 초절정의 고수다. 그의 인생에 이만한 경험따윈 부지기수다. 그가 추가적인 피해 없이 빠르게 뒤로 빠졌다.

    종자명은 여전히 아무것도 신경 쓰지 않았다.

    오직 공격과 공격과 공격.

    활불의 몸이 직선적으로 종자명의 공격을 받아냈다. 조금 전까지 가만히 있던 모습과는 사뭇 다르다.

    “결국 내가 움직이게 만들다니. 좋다. 칭찬하마. 하지만 너희는 마땅히 그 댓가를 치러야 할 것이다.”

    전대의 활불은 금강공과 유가밀공을 동시에 대성하여 감히 천하제일을 논할 만한 무력을 손에 넣었었다. 경(硬)의 극한과 유(柔)의 극한을 동시에 손에 넣는다? 이는 사실 뜨거운 얼음이나 차가운 불과 같이 말이 되지 않는 일이었다. 하지만 천고의 재능을 타고났던 육체가 그것을 가능케 했다.

    당대의 활불은 자신의 몸이 전대의 그것과 다르다는 것을 분명히 인지하고 있었다. 하지만 굴불신마 영무결이 그의 마음을 조급하게 만들었다. 결과적으로 당대의 활불은 금강공과 유가밀공을 동시에 대성하는데 실패했다. 그리고 그 반작용으로 지금과 같이 무인이 제대로 무공을 펼치지 못하는 우스운 꼴이 돼버렸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활불에게는 오백 년의 세월 동안 쌓아 올린 무공에 대한 방대한 지식이 존재한다는 점이었다. 그는 붕괴해가는 자신의 무공을 두 갈래로 나눴다.

    지금의 이 모습은 그 가운데 하나.

    금강공을 기반으로 쌓아 올린 바즈라파니다.

    그의 주먹이 대포알처럼 날았다.

    -쾅!!!!

    운호의 검이 그 공격을 받아냈다. 운호는 활불의 갑작스러운 변화에 놀라지 않았다. 오히려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활불은 저 마교의 대제사장과 함께 중원의 오랜 숙적으로 불리는 살아있는 전설이다.

    그리고 운호는 이미 한 차례 마교의 대제사장을 만나보았다. 그리고 그가 얼마나 터무니없는 괴물인지를 절실하게 체감했다.

    그런 마교의 수괴와 명성을 나란히 하는 활불이 고작 이 정도로 끝날 리 없다.

    운호가 뒤로 크게 튕겨 나갔다.

    내부가 진탕되는 느낌이다. 삼단공에 오른 포원공이 그런 운호의 경맥을 달랬다. 각오했지만 각오했던 것을 훨씬 뛰어넘는 위력이다. 저 단순한 주먹질 한 방이 그 위력만 따지자면 걸왕의 항룡장에 버금간다는 느낌이다.

    한 번의 주먹질을 끝낸 활불의 몸에서 어마어마한 양의 땀방울이 뿜어져 나왔다. 아니, 그것은 땀방울이라고 할 수도 없었다. 피부로 올라온 땀방울이 순식간에 기화되어 수증기로 사라진다.

    활불의 몸이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그것은 검붉은 핏빛의 강기로 전신을 감싼 종자명과는 조금 다른 붉은 빛이었다. 저것은 순수한 열이다. 몇 걸음 떨어져 있음에도 그의 몸에서 뿜어지는 어마어마한 열기가 느껴졌다.

    -열양공(熱陽功)?

    아니었다.

    저것은 금강공과 유가밀공을 융합하지 못한 활불이 짊어져야 하는 마땅한 댓가다. 활불의 몸이 벼락처럼 움직였다. 조금 전 살에 파묻혀 제대로 움직이지도 않던 모습과는 완벽하게 다른 양상. 그의 기둥 같은 다리가 박진문의 복부를 노렸다.

    어느새 내공의 힘으로 탈골된 중지를 맞춘 박진문이 양손을 내밀어 그 공격을 받아내려 했다. 위협적이라 느끼기는 했지만, 앞서 운호가 활불의 주먹질을 훌륭하게 받아내는 것을 보면 초절정의 고수인 자신 역시 크게 어렵지 않은 일이라는 판단에서였다.

    물론 발길질은 주먹질의 세 배나 되는 파괴력을 갖지만 운호는 경황없이 급박하게 그 주먹질을 받아낸 반면, 박진문 자신은 완벽하게 준비된 상태에서 적의 공격을 받아내는 것이다. 그러니 충분할 것이다.

    -우드득

    하지만 오산이었다. 박진문이 피를 토하며 여덟 걸음 뒤로 물러났다. 팔에서 느껴지는 통증이 어마어마하다.

    하지만 초절정 고수는 초절정 고수다. 그 급박한 와중에도 박진문 역시 소소하게나마 반격에 성공했다. 활불의 정강이에 시커먼 울혈이 올라왔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종자명이 활불을 향해 돌진했다.

    뒤를 보지 않는 공격.

    활불이 상체를 틀어 팔꿈치로 그것을 받아냈다.

    -쾅!!

    호신강기?

    아니다. 그것의 형태는 종자명의 검붉은 천살강기와는 달랐지만, 그 역할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활불의 팔꿈치에 맺힌 황금빛의 강기는 적을 멸하기 위한 의지를 품고 있었다.

    순식간에 오가는 수십 번의 공방.

    고양이와 호랑이의 가장 큰 차이는 무엇일까? 공격성? 날카로운 발톱이나 이빨? 아니다. 그것은 체격이다. 만약 고양이가 호랑이만한 체구를 지녔다면 고양이 역시 호랑이에게 지지 않을 맹수다. 이처럼 체격은 매우 중요한 요소다.

    그리고 지금 공방을 주고받는 종자명과 활불의 체격 차이는 고양이와 호랑이의 그것에 필적했다. 종자명 역시 8척이 조금 못 되는 장신의 사내다. 하지만 활불 쪽은 그것을 아득히 뛰어넘는다. 10척. 아니, 11척은 족히 되는 키다. 인간의 경우 무게는 키의 제곱으로 늘어난다. 그렇기에 단순히 체격이 비슷하다고 했을 때 무게는 두 배. 하지만 두 사람의 체격 차이는 그 키 차이보다 훨씬 더 하다.

    -쾅, 쾅, 콰콰콰콰광!!

    공방이 오갈 때마다 종자명의 몸이 덜컥이며 핏물이 솟구친다.

    칠공분혈(七孔噴血).

    눈, 코, 입, 귀에서 핏물이 흘러 내렸다. 사람이라면 응당 이미 죽어 나자빠져야 마땅할 상태다. 하지만 초월한 천살의 기운이 그를 거듭 움직이게 했다.

    그리고 박진문이 그 싸움에 합류했다.

    활불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수증기가 한층 더 강렬해졌다.

    보통 사람이라면 그 수증기에 닿는 것만으로도 커다란 화상을 입을 만큼 뜨거운 열기다. 박진문의 피부가 벌겋게 달아올랐다. 그는 종자명과 같이 전신에 강기를 두르는 터무니 없는 짓은 할 줄 몰랐다. 하지만 뜯어 죽이는 데는 그런 터무니 없는 짓이 아니더라도 그의 검은 열 손가락이면 충분하다.

    박진문의 오른손이 활불의 어깨를 움켜쥐었다. 강철조차 종이짝처럼 찢어발기는 손가락이다. 하지만 놀랍게도 활불의 어깨 근육은 강철과는 감히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단단했다. 피부를 파고들던 박진문의 손가락이 활불이 어깨에 힘을 주는 순간 –투웅 하고 튕겨 나왔다.

    참으로 터무니 없는 괴물이다.

    중원에 금강불괴를 자처하는 이들은 많았지만 이와 같은 이는 없었다. 장담컨대 지난번 사태로 죽어버린 중원의 무신 모용경이나 소림의 대력금강 공조 대사도 이 정도는 아닐 것이다.

    대체 굴불신마 영무결은 무슨 수로 이런 괴물을 이겼던 것일까?

    운호가 그 싸움을 잠시 살폈다.

    가능할까?

    파검이 권했다.

    -운호야 여아들을 챙겨서 일단 물러나거라. 마교의 그 괴물만큼은 아니지만 저것도 사람이 감당할 수 있는 괴물은 아니다.

    운호가 답하지 않았다.

    파검이 한차례 더. 빠르게 말했다.

    -저 녀석 지금 정상이 아니다. 너의 눈에도 보이지 않더냐. 어차피 자멸할 것이다.

    그것은 핏빛의 기운을 뿜어내며 활불에게 무모하게 달려드는 종자명을 말하는 것이 아니었다.

    기화된 땀으로 자욱했지만, 몇 걸음 떨어진 곳에서 그것을 지켜보는 운호는 확실하게 알 수 있었다. 집채만큼 거대하던 활불의 몸은 저 싸움을 거치는 사이 명백하게 줄었다.

    텐진이 떠올랐다.

    사자후라고 했던가? 활불이 보여줬던 그 한 음절의 사자후에 비하자면 매우 부족했지만 터무니없는 위력의 공격을 보여줬던 초절정의 고수.

    흐릿한 기억 속에서 운호가 그의 사자후를 받아 넘겼을 때, 그의 후덕하던 몸은 명백하게 줄어 있었다.

    활불 역시 그와 같다.

    9갑자의 내공.

    인간의 몸으로 어찌 그 큰 힘을 담을 수 있을까? 여전히 원리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답은 명확하다. 비정상적으로 부풀어 있던 몸. 저들의 내공은 아현이의 옥녀진결처럼 일종의 증폭이다. 아현이의 옥녀진결이 한순간 내공을 배가 하는 수법이라면, 저들은 평소 모종의 수단으로 내공을 저 거대한 몸에 따로 저장해두는 것이 분명했다.

    즉, 일회용이라는 뜻이다.

    -그렇다고 해도 적의 여력은 아직도 크다. 네가 이곳에 온 목적이 무엇이었는지를 기억해라.

    운호가 아현과 영현. 그리고 그녀들을 보호하는 동창의 창위들과 죽어 시체가 된 수많은 사람을 바라봤다.

    그 가운데는 영화의 시체가 있었다. 지금 종자명이 저런 모습이 될 수밖에 없었던 결정적 이유다.

    운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파검의 말은 옳았다. 그래, 대체 무슨 이유로 운호가 이곳에 왔던가.

    한계를 넘는 싸움을 위하여다.

    그리고 지금 운호의 눈앞에 보통의 초절정을 넘어선 세간의 평에 의하자면 마교의 대제사장에 버금간다는 괴물이 맹위를 떨치고 있었다.

    운호가 정답을 쥔 손에 힘을 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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