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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산파 역대급 천재-182화 (182/288)

182화

누구의 잘못인가(30)

박진문의 얼굴에 경악이 어렸다.

보통 사회에서 약간의 성공만 거두더라도, 아니 심지어 그 성공이 본인이 아닌 조상의 덕이라고 해도 자존감과 자신감이 넘쳐나는 것이 사람이다. 하물며 초절정 고수는 인간의 한계를 초월한 자들이다. 물론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그들 대부분은 자기 자신에 대한 무한한 확신을 갖고 있다.

그리고 그것은 박진문 역시 마찬가지였다.

불과 며칠 전.

박진문은 활불을 비롯한 포달랍궁의 무리들이 가까이 다가올 때까지 감지하지 못했었다. 그것은 마치 희미한 안개가 낀 것 같은 감각이었다. 단순한 무공이 아니었다.

좌도의 술수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그것이 어떤 느낌인지를 깨달았으니 다음에는 같은 수법에는 당하지 않으리라 생각했다.

같은 수법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 결과는 같았다. 박진문이 활불을 인지하는 순간 해일과 같은 감각의 홍수가 밀려왔다. 그가 쌓아온 경험이. 그가 타고난 오성이. 그리하여 그가 다다른 드높은 경지가 상황을 순식간에 일러 주었다.

어렵다.

당장 눈앞에 보이는 활불만 하더라도 걸어 다니는 재해와 같다. 하물며 그를 따르는 저 라마승들을 보라. 절정의 고수만 무려 열하나. 그들의 인원이 사백 남짓임을 고려하면 터무니없는 구성이다.

아마도 대장군부에서의 싸움으로 하수들이 상당수 죽어나간 결과일 터. 하지만 남은 인원들조차도 지금의 그들로써는 상대하기 매우 어렵다. 아니 매우 어려움을 넘어 거의 절망적이다.

박진문이 소리쳤다.

“뚫고 나간다. 싸움에 임할 수 있는 자들은 모두 검을 들어라.”

그가 자신의 대검을 뽑아 들었다. 일반적인 내관들의 모습과는 다른 마치 대장군과도 같은 늠름한 풍모다.

비록 최근 여러 가지 부분에서 아쉬운 선택과 부족한 모습을 보이기는 했다. 하지만 박진문 역시 일세를 풍미할만한 자격을 갖춘 고수다.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순간. 졸렬한 모습을 보이고 싶지는 않았다.

가장 먼저 한 걸음 빠르게 걸어 나갔다.

-쾅!!

날렵해 보이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것이 느리다는 말은 절대 아니었다. 마치 고대의 전쟁에 존재했다는 전차와 같은 무게감으로 그 대검을 내리쳤다.

활불은 움직이지 않았다. 고작 이런 공격 따위에는 몸을 움직일 이유조차 없다는 듯일까? 그저 크게 호흡을 들이마셨을 뿐이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어마어마한 경력이 몰려왔다. 하지만 무형의 기운이 어찌 유형의 공격을 당해낼 수 있겠는가. 심지어 그 공격을 행하는 주체가 초절정의 고수인 박진문일지인데.

켭켭이 쌓인 경력의 파도를 단박에 떨쳐내며 박진문의 대검이 활불의 몸을 강타했다.

-콰과과과광!!

어지간한 장정보다 반 배 이상 커다란 양손에 어마어마한 충격이 느껴졌다. 저만한 덩치의 통짜 강철을 내려쳤어도 이만한 반탄력을 느끼지는 않았으리라.

활불 역시 한 걸음 뒤로 물러났다. 하지만 그의 몸에는 작은 생채기 하나 보이지 않았다.

“호신강기(護身罡氣)!!”

검에 혹은 주먹에 별의 힘을 깃들게 하는 것만으로도 이미 인간의 한계를 넘어섰다고 평가받는다. 하물며 호신강기는 그것을 넘어선다. 걸왕이 천무십칠성 가운데 상위권으로 평가받았던 것은 저 호신강기를 완성했기 때문이었다.

박진문의 시선이, 그리고 눈을 넘어선 감각이 활불을 살폈다.

빈틈 따윈 보이지 않는다. 그야말로 완전한 의념. 완성된 호신강기다.

저 거대한 체구를 빈틈없이 두른 강기의 장벽.

믿기 힘들다. 걸왕 소진평은 3갑자. 무려 180년의 내공수위를 가졌다고 전해진다. 세상 대부분의 것이 그렇듯 내공 역시 일정 수준을 넘어서면 운기행공을 통해 모을 수 있는 기운이 점감(漸減)한다. 그렇기에 3갑자의 내공은 인간 한계에 가까운 내공이라는 것이 정설이었다. 그리고 그 막대한 내공으로도 소진평은 자신의 작은 몸을 호신강기로 감싸는 것이 고작이었다.

활불의 저 거대한 덩치를 보라.

면적만 따지자면 소진평의 세 배는 너끈하다. 그렇다면 설마 활불의 내공이 3갑자 내공의 세 배쯤 된다는 것일까? 터무니 없는 소리다. 하지만 저 활불에게서 느껴지는 마치 눈이 멀 것 같은 어마어마한 감각은 박진문에게 어쩌면 그 터무니 없는 소리가 사실일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을 안겨주었다.

하지만 불안감은 불안감.

지금은 일단 검을 휘두를 시간이다.

박진문의 몸이 또다시 활불에게 쇄도했다.

한 번의 호흡에 별빛이 어린다. 그 역시 초절정의 고수. 검기성강(劍氣成罡)의 경지는 숨쉬는 것처럼 자연스럽다. 활불도 이번에는 감히 그것을 경시하지 못해서였을까?

활불의 폐가 크게 부풀었다.

-옴!!-

짤막한 한 음절의 굉음.

사자후다.

그 무형의 파괴가 박진문을 덮쳐왔다.

-흐읍

그의 검극이 찬란하게 빛났다.

형체가 없는 소리를 가를 수 있을까 따위의 의문은 가지지 않았다. 검강은 곧 나의 마음일지니. 나의 마음이 가르지 못할 것이 무엇이겠는가.

찰나를 또 찰나로 가른 시간.

그의 검극이 소리를 꿰뚫었다.

완벽하게 무사하지는 못했다. 붕괴되기 시작한 사자후의 여파가 그의 굴강한 몸을 휩쓸고 지나쳤다. 옷과 살가죽 곳곳에 생채기가 생겨났다. 하지만 그 돌진은 조금도 느려지지 않았다.

활불의 몸과 그의 검 사이.

완성된 호신강기가 그의 돌진을 막아선다. 세상에 가르지 못하는 것이 없는 검기성강과 세상에 막지 못할 것이 없는 호신강기. 그야말로 모순(矛盾) 그 자체다.

그리고 박진문의 뒤편.

파괴된 사자후의 여파가 사람들을 휩쓸었다. 다행이라면 그 여파가 피아를 구분하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본래라면 일점에 집중되어 박진문만을 노렸을 공격이 널리 퍼진 탓이다.

“조심!!”

강아현이 영현을 그대로 끌어 당겼다.

-쾅!!

바닥이 깊숙하게 패고 돌멩이가 파편처럼 흩날렸다. 어느새 뽑혀나온 강아현의 검이 그 돌멩이들을 모조리 쳐냈다.

“고맙다.”

“일단 중앙 쪽으로!! 그래도 거기가 가장 안전할 겁니다.”

“너도 같이 가자!!”

“박 태감님의 이야기처럼 우리가 살아남으려면 여길 뚫고 빠져나가야 합니다.”

한순간 아현이 영현의 시야를 벗어났다.

-푹

라마승 하나의 허벅지에서 핏물이 솟구친다. 영현이 그 모습을 바라보며 이를 악물었다. 어째서 나는 무공을 익히지 않았던가. 그녀의 몸에도 내공의 양만으로 따지자면 강아현에 뒤지지 않을 막대한 기운이 잠재되어 있었다. 하지만 그녀가 익힌 것은 그저 건강을 위한 도인법에 불과했다. 그 기운을 효과적으로 사용하는 발경은 제대로 익힌 적이 없다.

백여 명의 양떼. 그리고 그들을 필사적으로 보호하며 포위망을 뚫으려는 백여 명의 무인들. 아현과 영현의 방향이 나뉘었다.

박진문의 대검은 절세의 명검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제국 최고의 대장간에서만 가능하다는 통열 처리의 신기술이 적용된 도검 가운데서도 걸작이라고 할만한 완성도를 지닌 검으로 그 경도와 탄성의 균형이 절묘하다. 춘추전국시대 구야자가 만들었다는 신검들이라해도 이 검만 하지는 못할 것이다.

그러한 명검이 매우 크게 휘었다.

보통 도검의 세 배 두께에 달하는 거검임에도 불구하고 부러지지 않고 그렇게 크게 휘었다는 것만으로도 이 검이 얼마나 놀라운 탄성을 지닌 물건인지를 짐작케 했다.

-찌지직

물론 실제로 소리가 들린 것은 아니었다.

그저 박진문은 자신이 찔러낸 대검의 검극이 허공의 보이지 않는 막을 찢어낸 순간을 그렇게 느꼈을 뿐이다.

한순간 크게 구부러졌던 대검이 본래의 형상으로 돌아갔다.

-쾅!!!

검극에 어렸던 별의 기운은 호신강기를 찢어내는데 모두 소진되어버렸다. 하지만 박진문의 돌진이 만들어낸 막대한 경력. 마치 전차의 돌격과도 같은 힘 자체는 여전했다. 그 대검이 활불의 가슴팍을 강타했다.

마치 함몰된 것처럼 움푹 팬 활불의 가슴팍.

하지만 박진문은 멈추지 않았다. 손의 느낌이 그리고 그의 육감이 이 공격은 활불에게 그리 대단한 피해를 주지 못했다고 소리치고 있었다.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서장 라마들의 상당수가 유가밀공을 연성하고 있었고, 그 본류는 활불이다.

호흡을 들이킬 시간도 없었다.

전신의 진기가 빠르게 순환됐다. 검에서 느껴지는 감각은 그리 좋지 않았다. 조금 전의 공격에서 균형이 약간 틀어졌다. 하지만 그럼에도 명검은 명검이다. 여전히 검으로 기능하고 있다. 게다가 설사 그렇지 못하다고 해도 박진문의 검은 그 무게와 질량만으로도 충분한 흉기다.

단순한 절삭력만이 아닌, 그 움직임에 실린 경력은 마치 둔기와 같게.

-퍽퍽퍽

박진문의 대검이 활불의 몸을 연달아 후려쳤다.

유가밀공을 극성으로 연성하여 전신의 근육 인대와 힘줄. 심지어 뼈까지도 자유자재로 조절하는 활불이었지만 그 충격량 자체는 어떻게 할 도리가 없었다.

일방적인 구타. 하지만 그 일방적인 공격 속에서도 박진문은 초조함을 감추기 힘들었다.

기운이 줄어들지 않는다.

물론 싸움을 시작하던 시점과 비교한다면 기운의 크기는 줄어들었다. 하지만 여전히 활불에게서 느껴지는 기운의 크기는 여전히 어마어마하다. 정확하게 어느 정도인지 가늠할 수 없을 만큼 막대하다. 대체 왜 이렇게 일방적으로 두들겨 맞고 있는지도 이해할 수 없을 정도다.

‘이대로는 안 돼.’

일방적인 공격이 이어지고 있음에도 이런식으로 서로의 힘을 소진한다면 결국 먼저 지치는 것은 자신이 될 것이라는 강력한 예감. 게다가 한 박자 늦게 상황을 파악한 포달랍궁의 절정 가운데 몇몇이 이곳으로 달려오는 기색까지 느껴졌다.

위험을 감수해야 했다.

반의 반호흡.

박진문이 검신에 별의 기운을 끌어왔다.

투실투실하게 오른 살과 살 사이. 활불의 작은 눈이 번뜩였다.

그의 몸 깊숙한 곳에서 퍼져나오는 강력한 기운의 흐름.

하나의 겨자 씨만한 기운에서 시작된 흐름이 수미산처럼 거대하게 퍼져나오는 데는 박진문의 검신에 별빛이 내려오는 시간보다 훨씬 빨랐다.

공격은 아니었다.

한차례 박살 났던 호신강기. 완전한 방어의 상징이 다시 그의 피부 밖으로 표출됐다.

-쾅!!

이번에는 박진문의 검이 그 호신강기를 뚫어내지 못했다. 그의 뒤편으로 절정의 라마승 하나가 석장을 들이밀었다.

박진문이 신경의 팔 할을 활불에게 쏟은 채 감히 자신에게 석장을 들이민 라마를 응징했다. 한순간 민머리 하나가 몸과 분리된 채 허공으로 떠올랐다.

활불은 움직이지 않았다. 그저 거칠게 한 차례 호흡을 가다듬었을 뿐이다.

그리고 그 순간 그 모습에서 박진문은 모든 것을 깨달았다.

빌어먹을. 멍청했다.

영원을 살아간다는 활불이라는 이름.

그리고 상리를 벗어난 압도적인 힘이 그의 이성을 억눌렀다. 아니, 어쩌면 그것 역시도 저 영원을 살아가는 괴물이 부린 술수 중 하나일지도 모르겠다.

초절정의 고수는 인간의 한계를 벗어났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인간일 뿐이다. 인간을 넘어선 존재는 더이상 인세에 머물지 않는다. 완전한 깨달음을 얻는다면 부처처럼 입멸할 것이요. 완전한 도를 얻는다면 신선들처럼 등선할 것이다.

활불은 부처가 아니다.

그것에 한없이 가까울 수는 있어도 절대 그와 같지 않다. 그렇기에 저 막대한 기운 역시 인간의 범주에 속해야 했다.

‘가능할까?’

조금만 일찍 눈치를 챘더라면.

박진문이 스스로에게 던진 질문에 고개를 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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