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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산파 역대급 천재-178화 (178/288)
  • 178화

    누구의 잘못인가(26)

    그것은 지금까지 운호가 경험했던 싸움들과는 조금 달랐다. 운호가 경험했던 가장 거대한 충돌은 무한에서 있었던 마교 대주교의 습격이었다.

    하지만 그 싸움은 질적으로는 매우 높았지만 정작 그 내용을 살펴보면 수백에 달하던 절정의 고수는 그저 망부석처럼 서 있는 들러리였을 뿐이다.

    하지만 지금 이곳 녜룽 분지에서의 싸움은 달랐다. 당시 무한에서의 싸움에서 그저 학살당하는 역할에 불과했던 절정의 고수는, 어째서 절정의 고수가 인간의 한계에 다다른 사람인지를 마음껏 과시했다.

    -쾅!!

    진영과 진영의 싸움.

    그 사이에서 절정의 고수는 상대의 단단한 진영을 꿰뚫는 뾰족한 송곳처럼 나아갔다. 수십 명의 일류 고수가 그 뒤를 따른다. 정예하게 단련된 다수의 일류라면 그를 지체시킬 수 있다.

    하지만 양쪽 모두 인근의 호족들까지 모조리 소집하여 병력의 규모를 키웠다. 일류라고 해도 수십 단위로 몇 년씩 호흡을 맞춘 일류와, 한 문파에서 왕 노릇 하던 일류는 그 궤가 다르다. 그렇기에 이 전장에서 절정을 상대할 수 있는 것은 오직 같은 절정뿐이었다.

    운호는 아마 이 전장의 그 어떤 절정보다 강력할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운호가 이 전장에서 가장 위력적인 절정 고수인가를 묻는다면 그건 또 아니다.

    다수와 다수가 맞붙는 전장. 중요한 것은 파괴력과 지구력이다. 하지만 운호는 그 무공의 정교함에 비하여 내공이 미약하다. 그것은 최근 자소단을 하나 더 복용했음에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쿠과과과광!!

    어마어마한 기운의 소용돌이가 대장군부의 병사들을 휩쓸었다.

    이류와 삼류.

    그 사이의 어정쩡한 병사들 수십이 한 번에 쓸려나갔다. 그 공격을 발출한 절정의 고수, 라마승으로는 보이지 않으니 어딘가 장족 부족 하나의 우두머리쯤은 됨직한 노인이 제자리에 서서 가만히 호흡했다. 그리고 그의 주변을 십수 명의 병사들이 호위한다. 그의 기운이 다시 돌아올 때까지. 단순하지만 매우 효율적이다.

    게다가 그렇게 붕괴한 진영으로 또 다른 절정 고수가 치고 들어온다.

    -까가가가강!!

    순식간에 여덟 개의 창칼이 그가 휘두른 석장에 박살났다. 물론 그 가운데는 그의 몸에 닿은 녀석도 존재했다. 하지만 외공을 완성하여 도검의 침입을 불허하는 고수다. 일류고수라도 작정하고 휘두르지 않는 이상 피륙조차 뚫어내지 못한다.

    -퍼억

    그가 빠르게 몸을 회전시켰다. 하지만 그보다 날아든 검이 조금 빨랐다. 왼팔 상박이 반쯤 잘려 너덜거린다. 그가 빠르게 뒤로 물러나는 사이 그를 호위하는 병사들이 그의 주변으로 물려 들었다.

    하지만 소용 없었다.

    부운약표.

    마치 떠다는 구름처럼 표흘하게 병사들의 틈을 휘젓는다. 병사들로 빽빽하게 가득 찬 공간을 대체 어떻게 파고들 수 있을까? 의문이 들 지경이다. 하지만 그들이 바라보는 시야와 운호가 바라보는 시야는 명백히 다르다. 누군가에게는 빈틈없는 공간도 누군가에게는 허술하게 구멍이 숭숭 뚫린 공간일지니.

    운호가 크게 다섯 걸음 이동하는 동안 그것을 제대로 인지한 것은 저기서 크게 숨을 고르는 절정의 고수와 고통으로 일그러진 표정을 한 채 연신 뒤로 물러나는 절정의 고수. 오직 그 둘 뿐이다.

    가능할까?

    운호가 자신에게 되물었다. 답은 금방 돌아왔다. 가능하다.

    구름처럼 표흘하던 신법이 일순간 돌풍처럼 휘몰아친다. 사이사이를 파고들지 않았다. 꼭 필요한 지점과 지점. 높게 도약하여 크게 건너뛴 운호의 오른발이 병사의 머리통을 박살냈다. 하지만 그것은 목적이 아니다. 그저 멀리 건너뛰기 위한 수단이다. 하나, 둘. 그리고 세 걸음.

    순식간에 운호의 몸이 왼팔 상박이 반쯤 절단된 절정 고수의 앞에 섰다. 근육질에 강건해 보이는 체구. 그가 발악적으로 석장을 휘둘렀다.

    하지만 그 길이 너무 뻔했다.

    부딪힘조차 없다. 석장의 궤도를 절묘하게 틀어내며 –후드득.

    신검 정답이 상대의 오른손가락 네 개를 한 번에 잘라냈다. 어지간히 수양을 쌓은 포달랍궁의 라마도 참기 힘든 막대한 고통이었을까? 그가 외마디 비명을 내질렀다. 하지만 그 비명 역시 오래가지 못했다.

    -서걱

    운호의 검이 그의 목을 베어냈다.

    그리고 그대로 등을 돌려 뒤도 보지 않은 채 검을 휘두른다. 저기서 호흡을 고르던 절정 고수의 기습이 무산됐다. 본래는 저 라마승을 살리고 합공을 하려 했을 것이다. 하지만 라마승과 운호의 승부가 너무 빠르게 끝났다. 그 노인이 화들짝 놀라 서너 걸음 뒤로 물러났다. 일류 너댓이 운호에게 달려들었다.

    좌상단에서 내려긋는 검을 상체를 움직여 피하고, 찔러오는 창을 왼손 수도로 틀어내며 비도 하나는 검병으로 튕겨낸다. 그리고 동시에 크게 한 걸음 도약하여 마지막 내려치는 대도를 피해내고 나니 어느새 운호의 눈앞에는 또 다른 절정 고수 하나가 들어온다.

    -서걱

    깔끔한 일검.

    커다란 공격으로 내기가 혼탁한 와중에 라마승을 구하기 위해 무리한 탓일까? 아니면, 일류 고수들이 잠시라도 운호의 발목을 잡아주리라 안심했던 탓일까. 노인은 운호의 일검에 제대로 저항조차 하지 못했다.

    수천 명에 하나.

    현재 절정 고수의 비율이다. 그 가운데 무려 둘이 한순간에 사망했다.

    “저 아이가 텐진 그 양반을 귀천시킨 아이로구나. 언제나 그렇듯 간악한 혀 놀림인 줄 알았건만······. 저 정도 솜씨라면 어쩌면 가능했을지도 모르겠구나. 쯧 어쨌거나 저대로 두면 큰일 나겠다.”

    포달랍궁의 사장로. 체텐(次旦)이 몸을 날렸다.

    조금 전, 절정의 고수 둘이 운호에게 쉽게 처단 당한 것은 결국 그들이 자신의 힘을 일류와 이류들에게 사용하는 사이 운호가 과감하게 기습을 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초절정 고수들 역시 마찬가지다.

    그렇기에 보통의 경우 초절정 고수는 오직 초절정 고수만을 주시한다. 하지만 저만한 무력을 보여주는 이가 저렇게 날뛰는 것을 지켜 볼 수만은 없었다.

    다행히 절정 고수 둘을 상대하느라 주변을 살필 여력이 없을 터.

    빠르게 치고 빠진다.

    그 움직임은 마치 그림자처럼 은밀했으며 바람처럼 신속했다.

    -조심!!

    하지만 검에 깃든 한 영혼의 시선은 피하지 못했다.

    -채앵!! 신검 정답이 스스로 움직여 체텐의 공격을 막아냈다. 운호의 가슴이 서늘해졌다. 혼잡한 전장, 방금 절정 고수 둘의 목을 딴 직후였다. 그렇기에 이건 전혀 감지하지 못했던 공격이다. 자칫 잘못했으면 방금전 자신의 검에 목이 달아난 저 두 명의 절정 고수 꼴이 날 뻔했다.

    하지만 어쨌거나 결과만 놓고 보자면 초절정 고수가 작정하고 시도한 기습이 무위로 돌아갔다. 운호의 시선이 그에게 고정됐다.

    흐릿하다. 살수무공인가?

    아무리 초절정 고수라고 해도 어째서 공격을 감지조차 하지 못했는지 납득이 된다. 운호의 검이 그를 압박했다.

    하지만 역시 초절정은 초절정이다.

    고작 삼 합.

    운호의 손아귀가 저릿하게 아파왔다. 일검, 일검에 실린 경력이 무시무시하다. 상대는 자신의 약점이 무엇인지를 완벽하게 파악하고 있다. 수 싸움이 아닌 오직 힘과 속도. 물론 운호의 기교는 그것을 받아낼 만큼 충분했다. 그러나 단지 그뿐이다. 거기서 더 나아가기 힘들다.

    하지만 그것으로 충분했다.

    “좋구나!!”

    막대한 기운이 느껴졌다. 마찬가지로 반대쪽에서도 그에 상응하는 거대한 기운이 솟구쳤다. 하지만 우리쪽이 조금 더 빠르다. 체텐이 이를 악물고 운호를 향하여 강렬한 참격을 날렸다. 손해를 감수하더라도 일단 운호를 떨어트리고 일단 여기서 한 걸음 물러나겠다는 의도다.

    운호의 마음이 움직였다.

    파검 역시 그것에 동의했다.

    그리하여 저 높은 하늘.

    별무리가 검에 내려앉았다.

    훨씬 더 진하고.

    훨씬 더 강력했다.

    -쾅!!!

    검과 검의 교차. 그 절묘한 힘의 균형에 체텐은 결국 뒤로 물러나지 못했다.

    그리고 –뿌득

    어디선가 나타난 대장군 영보가 체텐의 오른쪽 다리를 박살 냈다.

    한순간의 휘청. 하지만 영보 역시 공격을 이어나갈 수는 없었다.

    “이 노옴!!!”

    걍팍한 인상의 노승.

    아주 오랜 시간.

    현재의 활불이 갓난쟁이 때부터 포달랍궁을 지탱해온 대장로 니마 주걸이 영보에게 쇄도했다.

    -콰아아앙!!

    힘과 힘의 충돌. 그 압도적인 충격파 사이로 대장군 영보가 만면에 미소를 띈 채 니마 주걸을 향해 주먹을 휘둘렀다.

    대체 그 늙은 몸 어디에서 그런 힘이 나오는 것일까.

    -퍼억!!

    니마 주걸이 그 주먹을 피하지 않았다. 순식간에 움푹 패인 가슴팍. 설마 고작 공격 한 번에 절명한 것일까?

    물론 그럴 리 없다. 니마 주걸의 몸이 부자연스러운 각도로 휘어져 영보의 팔을 휘감아왔다.

    -후읍!!

    단지 팔에 힘을 주는 것만으로 어마어마한 경력이 터져나와 니마 주걸의 팔을 튕겨냈다. 그 사이 움푹 패여있던 니마 주걸의 가슴은 언제 그랬었냐는 것처럼 원상태로 돌아왔다. 한계를 초월한 유가 밀공의 힘이다.

    “뱀 같은 놈이, 늙어도 음흉한 것은 여전하구나.”

    “누가 누구에게 늙었다는 것이냐. 영보 네 녀석이야말로 아주 얼굴이 팍삭 삭아서 당장 내일이라도 관짝에 들어가야 할 것 같은 모습이구나. 보아하니 살날도 얼마 남지 않은 것 같은데 뭣 하러 여기까지 기어 나와서 묫자리를 찾는게냐. 그냥 집에 가만히 누워있으면 어련히 알아서 멱을 따러 가줬을 텐데 말이다.”

    “클클클, 내가 그거 기다리다가 늙어 죽는 게 먼저일 것 같아 이렇게 왕림하셨다. 영광으로 여기거라.”

    영보의 강권이 니마 주걸을 두들길 때마다 그의 몸이 순간순간 움푹움푹 패여 들어갔다. 하지만 거기까지다. 마치 주먹으로 호수를 때리는 것처럼. 니마 주걸의 몸은 언제 그랬냐는 것처럼 본상태로 돌아왔다. 게다가 호시탐탐 영보의 관절을 노리는 니마 주걸의 공격 역시 매섭기 짝이 없다

    하지만 그렇다고 싸움이 영보에게 불리한 것인가 하면 또 그렇지 않다. 세상에 무한한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만약 무한이 있다면 그것은 인세를 벗어난 영역에 존재한다. 두드리고 또 두드리다 보면 언젠가는 박살이 날 것이다. 강맹한 권격이 연신 니마 주걸을 압박했다.

    그 흉험한 싸움의 바로 근처.

    운호의 검이 체텐을 압박했다.

    한쪽 다리가 박살 났음에도 불구하고 과연 초절정의 고수라는 것일까? 그 운신에 파탄을 찾아보기 힘들다.

    -후우

    운호가 한 번의 호흡으로 탁기를 내뱉었다.

    들숨에 딸려 오는 기운이 혼탁하기 짝이없다. 당연한 일이다. 이곳은 전장. 수십 만의 병력이 맞부딪히는 자리. 피와 살점이 튀고 가장 혼탁한 본능이 소용돌이치는 곳이다. 그 기운이 어찌 맑을 수 있을까.

    파검은 말이 없었다.

    스스로 움직여 적의 공격을 막아내고, 그 직후에 검강까지 끌어냈으니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덕분에 초절정 고수의 다리 하나를 뺏을 수 있었으니 결과적으로 볼 때 훌륭한 선택이었다.

    비록 운신에 파탄은 보이지 않았으나 순간순간의 검격에 흐트러짐이 생겨난다. 또한 검에 실린 경력 역시 이전에 비하자면 그 칠 할도 채 되지 않는다. 놀라운 기공으로 부러진 다리를 묶어두었다고 한들 쌩쌩한 다리와 같을 수는 없다.

    그 균형에, 그 움직임에 파탄이 생겨난다.

    운호의 시선이 그것을 쫓았다. 그리고 그의 두뇌가 그것을 해석했다.

    약간의 빈틈은 굳이 찌르지 않았다. 그렇게 착각하게 내버려 뒀다. 이 정도까지는 괜찮겠지. 어? 이 정도도 괜찮네?

    그렇게 부상입은 사냥감의 판단력이 흐려지기를.

    운호의 검이 번뜩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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