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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산파 역대급 천재-168화 (168/2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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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의 잘못인가(16)

운호가 화산을 떠난 지도 어느새 햇수로 삼 년을 향해 가고 있었다. 그리고 그 기간 동안 강진은 꾸준히 운호의 보고서를 받아 가며 그에게 벽곡단을 공급해왔다. 그 덕분에 어쩌면 그는 전 중원을 통틀어 운호의 몸을 가장 잘 아는 사람일지도 몰랐다. 심지어 운호 자신까지 포함한다고 해도 말이다.

“네? 하지만······. 아버지 요즘 많이 바쁘신 거 아니었나요? 이렇게 자리를 비우셔도 괜찮아요?”

“하하하. 물론 내가 심하게 유능한지라 자리를 비우기 힘들기는 하다만 그래도 종 차석도 어지간한 곳에서는 수석 자리 너끈히 할만한 녀석이다. 잠깐 자리를 비우는 정도야 뭐······. 괜찮지 않을까?”

아버지의 이야기에 강아현은 입에서 불을 뿜는 어머니와 눈그늘이 턱 끝까지 내려올 때까지 야근하는 종묵 삼촌. 그리고 하늘을 봐야 별을 딴다고 매일 한숨만 푹푹 내쉬는 숙모의 얼굴이 눈앞을 스쳤다.

“그렇겠죠?”

지난 일년 반. 아현은 그 시간 동안 정말 침식도 잊은 채 수련에 몰두했다. 그리고 그에 합당한 성과도 있었다.

‘십칠 년이나 그걸 더 하겠다고 생각하다니······. 내가 잠깐 미쳤던 게지. 이제 내일모레 면 스물인데 여기서 십칠 년이나 더 그러면 이제 완전히 주름 자글자글한 아줌마잖아.’

사람의 의지란 본래 그러하다.

아니, 이 경우는 오히려 아현의 의지가 강력했다고 칭찬함이 옳았다. 세상 사람들의 구할은 작심삼일을 넘기지 못하는 법이니까. 무엇보다 그녀는 이제 방년 십구 세의 꽃다운 처녀다. 구르는 낙엽만 봐도 즐겁고 마음에 드는 남정네를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얼굴이 붉어진다.

“아버지, 그런데 왜 갑자기 운호한테는 가시려는 건가요? 혹시 운호에게 무슨 일이 생긴 건 아니죠?”

“아니다. 아니야. 그저 워낙 오랜 시간 서편으로만 연락을 주고 받아 직접 한 번 정도 확인을 해야 하지 않나 싶어서 그러는 게다.”

“참말이죠?”

“참말이고 말고. 만약 운호에게 무슨 일이 생겼더라면 장문인께서 나만 이렇게 보내셨을리 만무하지 않으냐.”

“그야 아버지가 엄마에게 그런 것처럼 서신만 몰래 남기고 나오셨을 수도 있죠.”

“어허. 나는 서신만 몰래 남긴 것이 아니라, 네 엄마가 워낙에 바빠 보여서 방해를 하지 않은 것뿐이다.”

“아무튼지 간에 장문인은 진짜로 만나고 나오신 거죠?”

“그래, 안 그래도 장문인께서 잘 다녀오라고 이렇게 노자도 두둑하게 주셨다. 어디 불편한 곳은 없는지 잘 살펴보라고 신신당부도 하셨고.”

“와, 우리 운호. 정말 많이 크긴 컸네요. 장문인까지 그렇게 말씀을 해주시다니.”

최근 운호의 소식은 전 중원을 휩쓸고 있었고 그것은 화산이라고하여 예외는 아니었다.

당연한 일이다.

무려 열여덟의 나이에 초절정의 고수를 홀로 참했다. 무림의 역사를 통틀어 유래를 찾기 힘든 일이다. 화산의 역사에서 가장 젊은 나이에 이름을 날렸던 고수는 증무진인 목운평. 그는 고작 마흔의 나이에 황산의 마존을 참하고 천하 십대 고수에 이름을 올렸었다.

그것과 비교했을 때 운호는 무려 이십 년이나 빠르다. 여든의 고수라고 해도 이십 년의 차이는 무시할만한 차이가 아닐 지인데, 하물며 운호는 이제 고작 열아홉. 무공을 익힌지 십 년도 채 되지 않았다.

미래의 천하제일인.

그리하여 화산의 새로운 삼대 제자들 사이에서는 검을 다루려는 제자들의 숫자가 큰 폭으로 늘었다. 그리고 그 제자들 가운데 가장 으뜸가는 재능이라고 볼 수 있었던 장호가 공야찬의 두 번째 제자로 들어가는 일까지 벌어졌다.

덕분에 화산의 일대 제자들 사이에서는 현재 운호에 관하여 정말 많은 이야기가 오가고 있었다.

“내가 뭐라고 그랬습니까. 애초에 뿌리를 뽑았어야 한다니까요.”

“어허, 사형 말씀이 조금 지나치십니다. 요즘 강호의 무부들이 뭐라고 하는지나 알고 계십니까? 차기 천하제일인. 천하제일인이랍니다. 백운 사조님 이후로 천하제일인 소리 들은 무인이 대체 누가 있었습니까. 심지어 몇몇은 십칠년 후 마교의 그 마종과 싸울 수 있는 유일한 인물이 운호 그 아이라고 합니다. 뭐, 그건 조금 과장일지 모르겠지만 어쨌거나 앞으로 그 아이의 시대가 되면 화산은 마침내 무당과 소림을 완전히 제치고 천하제일문이 되는 거라 이 말입니다.”

“흥, 그거야 화산의 성세가 계속 지금과 같다면 이겠지. 사제도 잘 알잖나. 우리 화산의 검공이 어떤지를. 지금 삼대 제자 아이들을 좀 살펴보게. 온통 검검검 검뿐이네. 이거야말로 사조님들께서 경계하시던 그대로 아닌가. 하나의 천재는 우뚝 설 수 있으나, 그에 현혹된 수많은 범재들이 스러진다. 명문정파는 그래선 안 되네. 기공이야말로 화산의 근간인 이유 아닌가.”

“그거야 어른들이 우리가 잘 제어하면 될 일 아닙니까.”

“아니, 어디 그맘때 아이들이 우리가 말한다고 다 듣기나 한다던가? 참으로 갑갑하구만.”

***

강진과 아현 부녀가 청해성까지 오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둘 다 고수라고 불릴만한 실력의 소유자였고, 노자 역시 충분했기 때문이다.

“아버지, 저기?”

“그래, 나도 느꼈다.”

청해성 깊숙한 곳.

대장군부까지 약 삼백리 정도 남긴 곳에서 두 부녀가 동시에 무언가를 감지했다.

땅울림.

희미한 비명성.

가까이 다가갈수록 진해지는 혈향까지.

싸움일까? 아니면 전쟁?

아현이 고개를 저었다.

틀리다.

이것은 싸움도 전쟁도 아니다. 그것은 준비된 사람들간에 벌어지는 일이다. 이것을 굳이 표현한다면 그것은 학살이라고 표현하는 것이 옳았다.

누가봐도 평생 검이라곤 한 번 쥐어본적도 없을 아낙네들이 도적떼에게 질질 끌려다니고, 그녀들의 남편, 혹은 아들로 보이는 사내의 목은 바닥을 구른다.

강진이 크게 분노했다.

“저런 잔혹한!!”

특히 그가 분노한 부분은 바닥에 널브러진 어린아이들의 시체였다.

“인두겁을 쓰고 어찌 이토록 잔혹할 수 있단 말인가!!”

얼추 헤아려봐도 마을을 헤집고 다니는 칼을 든 상대의 숫자는 마흔에 가까웠다. 이성적으로 따지자면 조용히 기습을 해야 옳다.

하지만 아현은 그런 아버지를 탓하지 않았다. 하나라도 더 많은 사람을 살리려면 적들의 이목에 띄는 편이 낫다. 무엇보다 상대는 제대로 된 무공을 익힌 자들로 보이지 않는다. 기껏해야 이류 언저리. 이제 막 정식 제자가 된 아직 어린 사제들만 하더라도 저들보다 훨씬 낫다.

말 등을 박차고 크게 뛰어오른 강진이 두 손을 휘저었다.

절정의 경지에는 이르지 못했으나 내공의 크기 만큼은 어지간한 절정 고수에게 뒤지지 않는 강진이다. 그의 일장이 가죽 갑옷을 입은 상대의 가슴팍을 함몰시켰다.

“대장군부?”

“아니, 무림인!! 무림인이다.”

약탈을 하던 도적떼가 강진과 강아현을 발견하고 크게 소리쳤다.

-서걱

어느새 홀연하게 나타난 아현의 검이 소리 지르던 도적의 목을 갈랐다. 순식간에 비산하는 붉은 핏물. 하지만 그 핏물들은 아현의 몸을 스치지도 못했다. 그녀의 몸이 표홀하게 움직였다. 운호가 사용했던 부운약표처럼 표홀함과 사나움을 겸비하지는 못했다. 하지만 적어도 표홀함 만큼은 크게 뒤지지 않는다.

“이······, 이놈들이!?”

강진의 손발이 어지러워지기 시작했다.

분명 상대의 수준은 괜찮은 자들이 이류 남짓. 무공을 제대로 익히지 않은 이들도 태반이었다. 딱 봐도 어중이떠중이 도적놈들이다.

하지만 묘하게 협공에 능했다. 적들이 여럿 모인 이후로 강진은 녀석들을 하나둘씩 상대할 때처럼 손쉽게 처리할 수 없었다. 녀석들의 협공은 오묘한 이치가 숨어있는 신묘한 진법과는 거리가 멀었다. 단순하며 효율적이다. 그리고 강진은 그런 이들이 누구인지를 잘 알고 있었다.

“군대?”

하지만 그렇다고 하기에는 복장과 무기도 너무 제각각이다. 또한, 군대가 이 정도 숫자로 민가를 약탈할 이유가 대체······.

“장족!! 장족이로구나!!”

대답하는 상대는 없었다.

녀석들 가운데 두 녀석이 행낭에서 그물을 꺼내들었다. 갈고리와 추가 달린 녀석으로 혼자는 사용하기 힘든 그물이다. 하지만 고수의 행동을 제약하는 데는 그만한 것도 없다.

허공에서 쫙 펼쳐진 거대한 그물. 그물 끝에 달린 갈고리들이 날카롭게 번쩍인다. 차라리 검이 있었더라면 저것을 갈기갈기 찢기라도 했을 터인데, 맨몸으로는 매우 어렵다. 그렇다면? 역지 장풍인가?

강진이 호흡을 가다듬었다. 가능할까? 몸 안을 떠도는 내기를 원거리로 발출하는 장풍은 내공이 충만한 것과는 별개로 매우 고급의 기예다. 강진으로서는 각을 잡고 제대로 한다고 해도 성공확률이 오 할도 채 되지 못한다. 하물며 이런 위급 상황에서?

“아버지!!”

적의 목젖을 베어내던 강아현이 이를 악물었다.

마음이 이는 순간 내부를 떠도는 기운이 순식간에 증폭된다. 이제는 너무나도 익숙한 옥녀진결의 이단공이다. 몸속을 흐르는 도도한 진기의 흐름. 단단하게 단련된 경맥이 그 흐름을 거뜬히 버텨낸다. 하지만 아직이다.

기해혈의 깊숙한 곳.

좁쌀보다 작은 크기로 뭉쳐있는 기운이 폭발했다. 도도하게 흐르던 진기가 순식간에 가속된다. 이전까지의 흐름이 폭우로 불어난 강물과 같았다면, 이제는 태풍으로 넘치기 직전의 강물과 같다. 이단공의 옥녀진결을 너끈히 버텨내던 경맥이 비명을 내질렀다.

표홀하기만 하던 강아현의 신형이 쭈우우욱 늘어졌다.

절대적인 속도로만 따진다면 여전히 운호의 부운약표에는 감히 비할 바가 아니다. 하지만 빠름이 어디 절대적인 빠름만이 의미 있다던가. 순식간에 두 배로. 그리고 거기서 다시 두 배로 빨라진 강아현의 움직임이, 그녀를 포위하고 있던 적들을 순식간에 닭쫒던 개로 둔갑시켰다.

자운검(紫雲劍)

운호가 복원해낸 기교의 극한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 괴물같은 재능을 누구보다 가까이서 지켜봤기에 그녀는 자신이 그와 같은 검술을 당장은, 아니 어쩌면 죽는 순간까지 할 수 없음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무공이라는 산의 정상은 하나일지 모르겠으나, 그 정상으로 오르는 길은 수도 없이 많은 법이다. 화산에 내려오는 자운검은 운호가 복원한 본래의 자운검을 우격다짐 힘으로 풀어내는 복제품이었으나, 그것 역시 백 년 넘게 화산에 내려온 검술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강아현은 운호가 펼치는 그 ‘본래의 자운검’을 익히 잘 알고 있었다.

아현식(娥賢式).

완전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것은 분명 강아현이라는 재능 넘치는 검객이 궁구하고 궁구하여 만들어낸 검술이었으니, 아현식이라 이름 붙임이 마땅했다.

단단한 명주실을 꼬아 만든 그물이 그 날카로운 검격 앞에 순식간에 수십 갈래로 갈라졌다. 끝이 아니었다. 아현이 휘두른 검의 끝. 그보다 조금 더 떨어진 곳까지. 강진을 위협하던 장족의 무사들 일곱이 피를 흘리며 쓰러졌다.

강진 역시 그것을 가만히 지켜보고 있지는 않았다.

순식간에 범처럼 뛰어들어 남은 장족의 무사들을 박살냈다. 분명 그들은 흉폭한 적이었지만 총 마흔의 병사 가운데 태반이 박살이 난 상황에서까지 전의를 불태울 만큼 정예 하지는 못했다.

슬금슬금 눈치를 보던 그들이 순식간에 등을 돌려 멀리 달아났다. 강진 부녀가 그것을 굳이 쫓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그들이 도망쳐준 것이 그들에게는 다행이라고 볼 수도 있었다.

옥녀진결 삼단공의 반작용일까? 강아현의 얼굴이 순식간에 새하얗게 질렸다.

“아현아 얼른 이것을.”

강진이 품에 넣고 다니던 단약을 하나 꺼내 아현에게 건넸다. 순식간에 공기중으로 청아한 약향이 퍼져나왔다.

화산금정.

중원제일을 다투는 연단사가 품에 넣고 다니는 요상단이다. 보통 귀한 것이 아니다. 하지만 그것을 먹었음에도 아현의 새하얗게 질린 얼굴은 쉽게 돌아오지 못했다.

그리고 바로 그 순간.

“이거 이거, 하여간에 이 놈의 중원땅은 방심을 할 수가 없다니까.”

질 좋은 가죽 갑옷. 그리고 외날 도끼를 쥔 거한이 도망쳤던 장족들을 이끌고 어슬렁어슬렁 걸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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