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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산파 역대급 천재-163화 (163/288)
  • 163화

    누구의 잘못인가(11)

    굴불신마 영무결은 지난 무한혈사에서 작고했던 무당의 분심양검 벽산진인이 펼쳤던 태극혜검에 관하여 이렇게 술회했다.

    “그것은 술(術)의 문제가 아니었다. 물론 그것을 펼치는 양검의 성취가 미흡하여 아쉬움은 있었으나, 그것은 뭐랄까. 무당산? 그래!! 무당산 그 자체였다.”

    “무당산이요?”

    “그래, 마치 천하의 모든 것을 포용하겠다는 기세였지. 삼봉진인이 말년에 창안한 검학이라고 하더니. 과연 명불허전이랄까? 그것은 명백하게 기술이 아닌 의념의 무학이었다.”

    무려 초절정의 고수였던 분심양검 벽산진인의 성취를 부족하다 말하는 것은 차치하고 운호가 집중했던 것은 태극혜검이 의념의 무학이며 그것은 무당산 그 자체였다는 말이었다.

    그래, 어찌 생각해보면 너무 당연한 일이다. 무당파의 무인들은 무당산의 정기를 품고 자랐다. 그들이 휘두르는 검은 응당 무당산을 닮을 수밖에 없다.

    광음을 넘어 난풍이라 했다.

    광음만 하더라도 이미 그 궁극에서는 검강을 논한다. 무당의 태극혜검이 의념의 무학이며 그것이 무당산을 닮았다면, 화산의 난풍검 역시 의념의 무학이고 그것은 응당 화산을 닮아야 했다.

    운호는 화산을 똑똑히 기억했다. 어찌 잊을 수 있을까? 열여덟 인생의 삼분지 일 이상을 살아온 땅일 진데. 화산(華山)이라는 이름에 어울리는 꽃나무 따윈 없다. 그저 험악하고 웅장한 바위들이 가득한 돌산. 오죽하면 화산을 가리켜 여립(如立). 마치 서 있는 것 같다고 했을까.

    그러니 난풍검 역시 그러해야 했다.

    무당의 태극검이 무당산을 닮은 우아한 태극으로 모든 것을 받아들여 중화하는 차력미기의 수법을 보여준다면 난풍검의 사량발천근은 그보다 더 직선적임이 마땅하다.

    -따다다다당!!

    쓸데없어 보이던 구절들이 쓸데없지 않았다.

    한 번의 부드러운 원으로 만들어낼 동작을 십수 번의 직선으로 만들어낸다. 이것은 낭비인가?

    아니다. 한 번의 부드럽고 완벽한 원을 만들어내기 위한 시간은 십수 번의 직선을 긋는 시간보다 짧지 않다. 만검이 어찌 쾌검보다 쉬울까.

    운호의 검 안에서 여러 차례 부딪힌 텐진의 월륜이 그 방향을 바꾼다. 파검이 말했다. 저 자유롭게 움직이는 월륜은 이기어검이 아니라고.

    그 말이 맞았다.

    만약 월륜에 저 뚱뚱한 라마승의 의념이 담겨있었다면 차력미기의 수법으로 튕겨낸 월륜이 그대로 다시 운호에게 돌아와야 옳았으니까. 하지만 그렇지 않았다. 하늘을 날던 월륜 가운데 두 개가 운호가 튕겨낸 월륜과 -따다당 맞부딪힌다.

    물론 운호라고 여유롭지는 않았다. 다섯 개의 월륜이 여전히 운호의 몸을 노렸다. 그 수법 하나하나는 절정고수의 그것에 준하지만, 어떤 의미에서는 그 이상이다. 절정고수는 결국 사람의 몸으로 검을 휘두른다. 사람의 몸이 움직일 수 있는 방향은 정말 특수한 외공을 익히지 않은 이상 관절을 역으로 꺾는 등의 동작은 불가능하다.

    하지만 허공을 날아다니는 저 월륜은 자유롭다. 마치 운호의 이기어검이 그러한 것처럼. 과연 한계를 벗어난 고수라고 해야 할까? 놀라운 기예다.

    텐진이 이를 악물었다.

    대체 저 꼬마는 무엇이지? 느껴지는 기세는 절대 벽을 넘어선 고수의 그것이 아니다. 절정 가운데서도 최고 수준. 그래, 어쩌면 경계 즈음까지 다다랐을지는 모르겠지만 절대 넘어서지는 못했다. 이기어검이 대단한 기예이기는 하지만 천살을 완성한 벽안검마 종자명이 검강에 가까운 기술을 사용하는 것처럼, 그저 그런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대체 이건 무엇인가?

    무려 일곱 개.

    일곱 개의 월륜을 동원했음에도 불구하고 녀석의 검에는 흔들림이 없었다. 오히려 중간중간 날카로운 역공을 가해오는 것이 미세하게나마 텐진 본인이 밀리는 느낌이다.

    왼팔의 상처 때문일까?

    그래 그럴 것이다. 그의 독문무공인 파천법륜공(破天法輪功)은 본래 정교함이 생명인 공부다. 하지만 왼팔의 상처가 감각을 무디게 만들고, 그것이 무공의 위력에 영향을 미친 것이 분명했다. 그게 아니라면 고작 저런 어린 놈이 일곱 개의 월륜을 버텨낼 리가 만무하다.

    “쯧, 한참 어린아이를 천박하게 힘으로 밀어붙여 이기고 싶지는 않았다만 본 나한의 몸이 이러니 어쩔 수 없구나.”

    뚱뚱한 라마가 크게 호흡했다.

    그 몸의 크기만큼이나 폐도 거대한 것일까? 마치 주변의 공기를 모조리 끌어 마시기라도 할듯한 기세로 숨을 들이킨다.

    운호의 감각 역시 그것을 감지했다.

    단순한 공기의 흐름이 아니다.

    텐진은 숨을 들이키고 있지만, 그가 마시는 것은 단순한 공기가 아니다. 대기를 떠도는 기운 그 자체다. 한순간 텐진의 존재감이 더 선명하고 더 거대해졌다.

    ‘영감님!!’

    -그래, 바로 지금이다.

    뚱뚱한 라마승은 힘을 모으는 와중에도 두 손을 놀리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여전히 일곱 개의 월륜은 운호의 몸 주변을 떠돌며 그를 위협했다.

    운호가 가볍게 호흡했다.

    그 호흡에 맞춰 삼단공에 오른 포원공이 맹렬하게 약동한다. 비록 그 총량은 얼마 되지 않지만 불과 같은 기세다. 그렇기에 신중에 신중을 기해 절호의 기회를 노려야 했다.

    그리고 지금.

    운호와 파검의 마음이 일치했다.

    희미한 빛이 정답을 맴돌았다.

    육 개월 전. 일곱의 마인을 단번에 참하던 그때의 그 강렬한 빛은 아니었다. 당연하다. 그것은 정말 여러 가지가 맞물린 결과 만들어진 한 번의 기적이었으니까.

    그것은 보통의 무인이라면 평생동안 그 한 번의 기적을 등불 삼아 정진해야 하는 그런 것이다. 하지만 운호에게 한 번 있었던 것은 조만간 내가 걸어갈 길의 다른 말일 뿐이다.

    육 개월.

    굴불신마 영무결이 운호의 그 시간을 말하기를 다른 사람의 육 년과 같은 육 개월이라 했다. 그것은 비유적인 의미에서도, 그리고 실질적인 의미에서도 그러했다.

    이미 저 높은 차원으로 도약한 파검이 이 땅에 남기고 떠나간 허물이 신검의 옷을 입은 채 운호를 도왔다.

    육 개월 전에 그러했던 것처럼.

    그리하여 그 희미한 빛은 한층 더 선명하게 타올랐다.

    뚱뚱한 라마승. 포달랍궁의 삼장로 텐진이 그것을 감지했다.

    “검강?”

    사실 절정의 고수가 검강을 쓰는 경우는 생각보다 많다. 그도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절정에 도달한 고수가 초절정에 도달하기란 하늘의 별 따기고, 그들 대부분은 그 하늘의 별을 따기 위한 가장 좋은 과정으로 초절정의 고수를 모방하는 것을 택한다.

    그 가운데 가장 만만한 것이 바로 검강이다.

    물론 진짜배기 검강은 그야말로 현실에 존재할 수 없는 하늘의 별빛이 검에 머무르는 관념의 형상화다.

    하지만 도대체가 감도 안 오는 이기어검, 어검비행, 육지비행술등의 이적과 다르게 검강은 검을 다루는 무인들이 가장 잘하는 검기의 발전형. 혹은 기의 응집 정도로 ‘흉내’를 낼 수 있다.

    그렇기에 저 남궁가의 검뢰나 북병에서 내려오는 검강(劍强)과 같은 가짜 검강(劍罡)을 사용하는 절정의 고수는 많을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 가운데 발군은 천살을 완성한 종자명의 천살강기다. 그렇다면 지금 저 아이가 사용하는 것도 그런 것의 일종일까? 그럴지도 모른다. 애당초 천살강기를 그러한 형태로 빗어낸 것도 청해 대장군. 영보 그 늙은이다. 하나를 만들어낸 늙은이가 두 개는 또 못만들까?

    하지만 텐진은 본능적으로 저것은 그런 ‘가짜’들과는 다르다는 것을 직감했다.

    물론 그의 이성은 저 초절정도 되지 못한 어린아이가 그런 것이 가능할 리 없다고 외쳤다. 그러나 사람이 육십년을 넘게 살아오다 보면 종종 이성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일을 경험하기 마련이다.

    텐진이 빠르게 결심했다.

    그가 자신의 폐로 차곡차곡 압축된 기운을 헤아렸다. 지금까지 모인 기운의 크기는 육 할 남짓. 아주 조금만 더 모으고 그대로 발출해버리겠다.

    하지만 그의 결심보다 운호의 움직임이 조금 더 빨랐다.

    -서걱

    월륜 하나가 그대로 반토막이 났다.

    동시에 운호가 크게 한 걸음을 내달렸다.

    그리고 또 한 번. 또 다른 월륜이 바닥을 나뒹군다. 그 당혹스러운 모습에 자신도 모르게 손끝이 흔들린 것일까? 세 번째 월륜이 운호의 몸을 그저 스쳤다. 유려한 움직임.

    화산의 보신경인 부운약표는 표홀하고 폭발적이다. 하지만 동시에 그 두 가지를 모두 보여주지 못한다는 약점이 있다. 하지만 진기의 수발이 빨라지고, 보신경이 완성의 경지에 접어들어서일까? 그 전환이 마치 동시인 것처럼 이뤄진다.

    세 걸음, 네 걸음.

    텐진의 월륜은 운호를 막아서지 못했다. 그 모든 것이 이뤄진 것은 그야말로 촌각을 다시 수십으로 나눈 시간.

    그 사이 운호의 검은 더 찬란한 빛을 발현하고 있었다. 의문의 여지가 없다. 저것은 별빛이다. 아직 경지를 넘어서지 못 한 꼬맹이가 초절정 고수만의 상징인 검강을 발현한 것이다.

    여전히 폐부에 압축된 기운은 만족스럽지 못했다. 하지만 망설일 여유 따윈 없었다. 그의 진신무공과는 조금 다른. 영생을 살아가는 큰 스승께서 전수한 하나의 무공.

    지금으로부터 천 년 전.

    북서쪽 쿠차왕국에서 태어났던 위대한 라마 쿠마라지바는 이렇게 말했다.

    -사자의 울음이 뭇 짐승들을 굴복시키는 것처럼, 부처의 설법은 만마를 굴복시킨다.

    그의 사부는 쿠마라지바의 제자에게 직접 이 무공을 전수하였다고 말했다.

    사자후(獅子吼).

    포달랍궁의 삼장로 텐진이 자신의 폐부 깊숙한 곳까지 모여있던 기운을 단번에 해방시켰다.

    “오-오-옴”

    그의 입에서 삼음절의 단어가 터져 나왔다. 그것은 자신의 스승과 비교하여 한참 부족한 성취였다. 게다가 제대로 다 기운을 모으지도 못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 위력은 압도적이다. 대기가 비명을 내지른다. 그야말로 천근의 화약이 한 번에 터지기라도 한 것 같은 압도적인 위력.

    그 한 번의 외침에 퉁퉁하던 삼 장로의 몸이 순식간에 일할 가량 쪼그라들었다.

    “끝난 건가?”

    ***

    대장군 영보가 탄식했다.

    “칠성의 사자후라니. 단증 저자가 대체 언제 저런 성취를······.”

    만약 다른 초절정 고수였다면 운호에게 기회조차 주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가 판단하기에 텐진의 무공과 운호의 검술은 제법 상성이 잘 맞아 떨어졌다.

    새장 안의 새는 나는 법을 잊는 법이고 사육장 안의 야수는 야성을 잃어버리는 법이다. 대장군부에 필요한 것은 한계를 넘어선 고수였고, 그런 의미에서 저만한 위험은 감수하는 것이 옳다고 여겼다.

    하지만 실수였다.

    설마 텐진의 사자후가 저만한 성취를 얻었다니. 아니, 사실 텐진의 사자후만이었더라면 얼마든지 손을 쓸 수 있었을 것이다.

    문제는 운호의 성취 역시 그의 예상을 뛰어넘었다는 데 있었다.

    적어도 스무 호흡 정도는 더 힘을 모아야 할 것 같았던 사자후였다. 하지만 예상을 벗어난 운호의 무공이 초절정 고수가 손해를 감수하게 했다.

    커다란 안타까움.

    이 자리에서 절정고수 하나의 목숨으로 초절정 고수 하나의 멱을 따겠지만, 그럼에도 이것이 이득이 아니라 손해라 느껴진다.

    “어쩔 수 없지.”

    영보가 굽어있던 등을 폈다.

    그리고 크게 당황한 표정으로 흙먼지 자욱한 전장을 내려다봤다.

    “응?”

    사자후가 만들어낸 자욱한 먼지 사이로 찬란한 별빛이 번뜩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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