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2화
누구의 잘못인가(10)
여섯의 라마승들이 서로에게 눈짓을 보냈다.
그들 역시 장당이 자신들이 감당하기 힘든 고수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지쳤고, 또한 등에는 보호해야 할 동료를 업고 있다. 그야말로 지친 호랑이가 새끼를 보호하는 형국이다. 어떻게 해야 할지는 뻔하다.
적의 약점을 공략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 약점을 죽여서는 안 된다. 약점이 약점으로 존재하기 위해서는 살아있을 때만이 가치가 있는 법이니까.
장당 역시 이런 상황이 처음은 아니었다. 물론 지금까지 그의 역할은 쫓는 쪽이었지 이렇게 쫓기는 쪽은 아니었지만.
어쨌거나 그렇기에 장당 역시 머리로는 적들이 왕효를 쉽게 죽일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동시에 그것을 믿고 도박하는 것은 너무나도 어려운 일이다. 혹시라도 잘못 된다면? 적들이 실수를 한다면? 그 결과가 친형이나 다름없는 왕효의 죽음으로 이어진다면 그것은 감당하기 힘들다.
-부웅
적의 위협에 신경질적으로 대응했다. 그리고 그것이 적들의 이득으로 연결된다. 장당이 이를 악물었다. 오른팔 상박에 적의 공격을 허용했다. 피부가 얇게 잘려 나갔다. 모세혈관들에서 핏물이 몽글몽글 샘솟는다. 하지만 그 대가로 그의 통나무 같은 왼다리가 적의 복부를 -쾅!! 터트렸다. 순식간에 5:1. 적들이 다시 적당히 거리를 벌렸다.
시간을 끌고자 하는 속셈이 너무 빤히 보였다. 장당이 크게 한걸음 앞으로 나섰다. 피부가 얇게 벗겨진 오른팔 상박은 어느새 피가 멎어있었다. 완성의 단계에 다다른 외공의 위력이다. 그의 강맹한 주먹이 라마승들을 몰아쳤다. 선장을 든 라마승 하나가 화급히 그것을 내려쳤다.
-쿵!!
통짜 강철로 만들어진 선장이 사람의 팔뚝과 부딪혀 크게 휘어졌다. 장당의 몸에 남은 것은 벌건 자국뿐. 그의 손아귀가 라마승의 옷깃을 움켜쥐었다.
-투두둑. 쾅!!!
라마승이 입에서 핏물을 토해내며 바닥을 나뒹굴었다. 즉사는 아니겠지만 당분간 자리를 털고 일어나는 것은 무리다. 장당이 멈추지 않았다. 라마승 하나가 당황하지 않고 그 앞을 막아섰다. 전신에 근육이 불끈한 것이 외공의 고수다.
-투웅!!
마치 거대한 북을 친 것 같은 소리가 울려퍼졌다. 라마승이 입과 코에서 핏물을 뿜어냈다. 하지만 버텼다. 장당이 곧바로 두 번째 공격을 준비하는 찰나.
-서걱!!
라마승의 공격이 장당의 등을 노렸다. 왕효를 노린 것이다. 그가 등을 돌려 왕효를 노리던 검을 왼팔 상박으로 받아냈다. 일류고수가 작정하고 휘두른 검이다. 뼈가 보일만큼 커다란 자상이 그의 팔에 새겨졌다. 근섬유가 끊어져 약지부터 소지까지 주먹이 쥐어지지 않는다. 하지만 주먹이 아니라도 상관 없다. 외공을 완성한 절정의 고수는 전신이 흉기다. 그의 장심이 칼을 휘두른 라마승의 하악을 박살냈다.
남은 라마는 셋.
그 가운데 하나는 장당의 공격을 막아낸 댓가로 코와 입에서 핏물을 토하고 있다. 희망이 보인다. 부상이 적지는 않지만 그래도 다리는 무사하다. 이대로 하나 정도만 더 처리하고 빠르게 몸을 날린다면 충분히 따돌릴 수 있다.
남은 두 명의 라마가 신중하게 월도를 내밀었다. 토혈하던 라마 역시 힘겹게 그들 옆에 섰다. 장당이 크게 숨을 들이켰다. -쿵쿵쿵 심장이 박동하며 혈액이 전신의 근육에 빠르게 공급됐다. 부작용으로 피가 멎었던 상처들에서 핏물이 새어 나왔지만 크게 신경쓰지 않았다.
순식간에 3할은 커진 것 같은 근육들. 그만큼 더 폭발적인 힘으로 적들을 압박했다.
두 자루의 월도가 박살 나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 댓가로 장당의 몸에 자상이 몇 개 더 생기기는 했지만 그뿐이다. 여전히 왕효는 희미한 숨을 이어가고 있었고 장당의 두 다리는 무사했다.
“형님, 조금만 더 기다리쇼. 내 꼭 살려드릴테니.”
이제 정말로 얼마 남지 않았다.
장당이 자신의 두 다리에 힘을 더했다. 그리고 바로 그 순간.
-쾅!!!
“옴마니반메홈. 참으로 잔혹한 손속이로다. 과연 계도의 여지가 없는 족속이로구나.”
텐진(丹增). 중원식으로 부르자면 단증. 포달랍궁의 삼장로가 모습을 드러냈다.
“망할······.”
장당의 시선이 빠르게 주변을 훑었다. 적들의 모습은 딱히 더 보이지 않는다. 혼자 온 것인가? 왜? 어째서?
“덩치는 산만한 놈이 눈동자를 뒤룩뒤룩 굴리는 꼴이 참으로 우습구나. 헛된 발악 하지 말고 얌전히 목이나 내밀어라. 혹시 아느냐? 마지막 가는 길. 본 나한을 귀찮게 하지 않은 공덕으로 축생으로라도 다시 태어날지?”
“그렇다면 네 놈은 전생에 얌전히 목을 내밀어서 그렇게 꿀꿀거리는 돼지로 태어났나보구나.”
“허허, 참으로 어리석은 중생이로다. 꼭 쉬운 길을 놔두고 어려운 길을 가려고 한단 말이지.”
상황은 절망적.
병력들을 모조리 이끌고 왕효와 함께 싸웠을 때도 감당할 수 없던 상대다. 물론 상대도 팔에 제법 큰 자상을 입었고, 그 상처가 아직 제대로 회복되지 않은 상태라지만 상처를 입은 것은 장당 본인 역시 마찬가지였다.
등에서 미약한 호흡이 느껴졌다. 그 호흡이 포기해버리고 싶은 마음을 단단하게 되잡아주었다. 힘줄이 아주 제대로 상했는지 제대로 쥐어지지 않는 주먹을 억지로 움켜쥔다.
그래, 어디 한 번 해보자. 왜, 세상에는 기적이라는 것도 종종 있지 않던가. 혹시 알까? 여기서 장당 본인이 놀라운 깨달음을 얻어 초절정의 경지에라도 들어설지?
텐진 장로가 쥐고 있던 월륜이 갑작스럽게 날아들었다. 투척 무기임에도 무기를 던지는 동작조차 존재하지 않았다. 마치 월륜 자체가 의지를 갖고 날아드는 듯한 움직임. 하지만 이미 한차례 그와 싸워봤던 덕분일까? 장당이 힘겹게 그 월륜을 피해냈다.
이전의 싸움에서 장당은 그 월륜을 피해내고 곧바로 접근전을 펼치려다가 크게 낭패를 봤었다. 기본적으로 월륜, 차크람은 수전이나 비도와 같은 투척병기다. 위력과 궤도는 특별하지만 투척하면 그것으로 끝이라는 의미다.
하지만 텐진의 차크람은 달랐다.
-부웅!!
장당의 뒤통수를 노린 월륜이 허공을 스쳤다. 거기서 끝나지 않는다. 어느새 텐진의 손에서 또 다른 월륜이 날아들었다. 흡사 곡마단의 곡예사들이 여러 개의 칼을 허공에 띄워놓는 것처럼 텐진의 손에서 발출한 월륜이 하나씩 숫자를 늘려갔다. 그리하여 마침내 허공을 움직이는 월륜의 숫자는 무려 여섯 개. 그나마도 텐진의 왼팔에 커다란 자상을 입은 덕분에 왼팔의 움직임이 자유롭지 않은 덕분이다.
장당의 몸에 하나둘씩 깊은 상처가 새겨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것은 그가 등에 업은 왕효의 몸 역시 마찬가지다. 월륜 하나하나가 마치 절정의 고수의 움직임처럼 느껴졌다. 잘 짜여진 여섯 절정 고수의 합공인 셈이다.
-쾅!!!
회피는 이어졌지만, 그 가운데는 도저히 피할 수 없는 공격 역시 존재했다. 크게 호흡한 장당이 월륜을 후려갈겼다. 전력을 다한 일격이 하나의 월륜을 박살냈다. 물론 그 대가로 그의 손 역시 피범벅이 됐다. 그렇다면 이제 월륜의 숫자가 다섯으로 줄었을까?
그럴 리가. 텐진은 그저 아무 일도 없었다는 것처럼 자신의 팔목에 감고 있던 월륜 하나를 더 발출했다. 결국, 장당이 손 하나를 희생하여 얻어낸 것은 아주 잠시. 반 호흡 정도의 시간뿐이었다.
“흐음······.”
무슨 이유인지 텐진이 이맛살을 찌푸렸다.
“목숨 걸고 이리저리 바둥거리는 꼴 보는 것도 나쁘진 않았다만 이제 슬슬 끝을 내야겠구나.”
순식간에 월륜의 속도가 삼 할 가량 빨라졌다. 지금까지 그저 피부가 벗겨지고 살점이 베어나가는 수준이었다면 이제는 근육이 쩍쩍 갈라지고 뼈가 바스라질 위력이다.
피할 수 없다.
“형님 미안하오.”
분명 장당은 세상에 자신의 목숨보다 중요한 것은 없다고 말했었다. 그렇다면 왕효를 버리려는 것일까?
아니었다. 그의 선택은 그 정 반대. 장당이 여전히 의식이 없는 왕효를 끌어안고 납작 업드렸다. 저 월륜이 자신을 박살 내더라도 잠깐이라도 왕효의 숨을 더 붙여두겠다는 희생이다.
-콰과과과과광!!!
어마어마한 굉음.
순식간에 여섯 개의 월륜이 그를 덮쳤다. 장당은 아무런 고통을 느끼지 못했다. 그러한 고통도 느끼기 전에 저승을 간 것이 아니었다.
“누구냐!!”
요요하게 허공에 선 한 자루의 검.
초절정 고수의 월륜 여섯 개를 받아냈음에도 검에는 흠집 하나 보이지 않았다.
신검 정답이었다.
“자······, 장군?”
“병력이 삼십 리 거리에서 적들을 제압하고 있다. 어서 왕부관을 데리고 물러나라.”
이마에 송글송글 맺힌 땀방울이 운호가 얼마나 힘들게 여기까지 달려왔는지를 짐작게 했다. 텐진이 이맛살을 찌푸렸던 순간이 아마 운호의 등장을 눈치챘던 순간이었겠지.
늙은 라마가 사납게 이를 드러냈다.
“어린 놈이 한 수 재간이 있다고는 하지만 참으로 건방지구나!! 감히 본 나한에게 홀로 덤비겠단 말이냐.”
“기껏해야 계집애들 팔찌 같은 걸로 장난이나 치는 영감이 나한은 무슨.”
“이놈이?”
어느새 날아온 정답이 운호의 손에 들어왔다.
빠른 호흡.
사실 아무렇지 않은 척했지만, 쉬운 일은 아니었다. 운호의 이기어검은 기껏해야 수어검과 목어검의 경계 즈음에 불과했다. 이렇게 멀리 떨어진 곳까지 자신의 의지대로 검을 놀리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리고 그것을 메워준 것이 바로 정답에 거하는 파검 좌부원의 백이었다. 좌부원은 정답이라는 검의 이름처럼 운호의 손을 떠난 곳에서 가장 올바른 검로를 그려냈다.
물론 이만한 일을 아무 대가 없이 만들어낼 수는 없었다.
-헉헉······. 죽겠구나.
‘수고하셨습니다. 이제 좀 쉬십쇼.’
-쉬기는 개뿔. 상대를 보아하니 젖먹던 힘까지 다 써야 할 놈 같은데. 앞으로 며칠 앓아눕더라도 젖먹던 힘까지 뽑아내 봐야지.
늙은 라마가, 아니 정확히는 늙은 라마의 팔에 채워져 있던 월륜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장당의 경우와는 달랐다. 훨씬 빠르고 강맹하다. 순식간에 사출되는 일곱 개의 월륜.
그 각도 역시 기이하기 짝이 없다. 직선으로 날아들던 월륜이 마치 누가 잡아당긴 것처럼 각도를 틀어가며 운호를 압박 한다.
-이기어검? 아, 아니군.
정답은 기형검이다.
이천 년 전 구라파에서야 이것이 가장 일반적인 검이었을지 모르겠지만 운호의 기준에서 그렇다. 그렇기에 본래는 이 검을 제대로 사용하는 것 자체에 어려움을 겪었었다. 하지만 운호가 누구인가. 검종지보(劍宗至寶)라는 것 자체가 그의 재능을 의미하는 것일 만큼 놀라운 재능의 소유자다.
정답을 사용하며 경험했던 몇 차례의 실전.
그리고 대장군부에서 머물렀던 반년이 조금 넘는 적응 기간.
그것은 운호가 무게중심이 검날에 치우쳐진. 검날의 두께가 끝으로 가도 별로 얇아지지 않는 베기를 위한 ‘정답’에 적응하기에 충분한 시간이었다.
난풍검(亂風劍).
-따다당!!
과거 운호의 난풍검은 무당의 태극검을 닮아 있었다. 하지만 지난 반년. 영무결의 가르침 속에서 운호의 난풍검은 조금 변화했다.
그것은 마냥 부드럽기보다는 그 부드러움 사이사이에 날카롭고 뾰족한 각이 존재했다.
“이놈이?”
경지에 이른 태극검을 본 이들은 그것을 마치 부드러운 춤과 같다고 표현 한다. 그리고 만약 그 사람들이 지금 운호의 난풍검을 봤다면 아마 이렇게 말했을 것이다.
화류 공자들이 기방에서 보여줄 법한 화려한 춤을 닮았노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