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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산파 역대급 천재-161화 (161/288)

161화

누구의 잘못인가(9)

“추적은? 얼마나 남았지?”

살이 퉁퉁하게 오른 노인이 자신의 왼팔에 깊숙하게 난 자상을 바라보며 인상을 찌푸렸다. 가볍게 몸이나 풀어보자는 느낌으로 접근했던 놈들에게 예상하지 못했던 일격을 허용한 탓이다.

그가 마주친 적들이 통상적인 수색대의 규모를 아득하게 넘어선 전력이었다. 절정의 고수 하나 정도까지는 예상할 수 있었지만, 설마 그 정도까지 자신의 기도를 감출 수 있는 절정 고수가 하나 더 숨어있었을 줄은 미처 예상하지 못했다.

물론 아무리 자신의 기세를 잘 감췄다고 해도 일대일로 맞붙었었다면 금세 눈치를 챘을 것이다. 노인, 포달랍궁의 삼장로 텐진(丹增)은 경지를 넘어선 고수였으니까. 하지만 거의 백에 달하는 군기가 그의 기세를 완전히 감춰준 탓에 완벽하게 기습을 허용하고 말았다.

“네 무리 가운데 한 무리는 전멸시켰고, 나머지 한 무리는 뿔뿔이 흩어져 달아난 지라 그중 셋을 잡는데 그쳤습니다. 일단 그들의 말에 따르자면 거기에 장로님께 상처를 입힌 자들은 포함이 안 된 듯합니다. 그리고 나머지 두 무리는 대담하게도 국경 쪽이 아닌 그 반대편으로 이동하여 잠시 헤맸습니다만, 이제 그 종적을 찾았으니 추적하는 데는 그리 긴 시간이 걸리지 않을 겁니다.”

텐진이 부하의 말에 고개를 저었다.

“아니, 놈들의 수작일지도 모른다. 그만한 고수 하나의 목숨이라면 일류 수십 정도는 버릴 만하지. 그 뿔뿔히 흩어졌다는 녀석들도 놓치지 말고 계속 추적하도록 해라.”

“하지만······. 그렇게 되면 안쪽으로 도주한 자들을 쫓는데 시간이 더 걸릴 수 있습니다.”

“그래서? 어차피 그놈들이야 독 안에 든 쥐새끼들이다. 제 놈들이 날개가 달리지 않은 이상 어디로도 갈 수 없어. 그저 천천히 처리하면 그만이다.”

“네, 알겠습니다.”

덩치 큰 머저리는 별 상관없었다.

그 녀석이야 어차피 거기까지다. 하지만 그 덩치 작고 날래던 놈. 기묘할 정도로 침착한 표정으로 자신의 팔에 상처를 만들었던 그놈은 절대 아니다. 경지를 넘어선 고수의 감이 말하고 있었다. 그 녀석은 위험하다고. 그래, 벽안검귀 종자명. 영보 그 늙은이의 막내 제자인 종자명과 느낌이 흡사하다. 아직 절정에 불과하지만 묘하게 꺼림칙한 감각이다.

그리고 같은 시간.

왕효를 등에 업은 장당이 이를 악물었다.

‘젠장.’

왕효의 출혈은 이미 멎었다. 하지만 문제는 출혈이 아니었다.

내상.

과연 포달랍궁의 삼장로는 무서웠다. 거의 완벽한 기회에, 훈련한 그대로, 아니 어쩌면 훈련 때보다 훨씬 훌륭하게 공격을 성공시켰음에도 불구하고 포달랍궁의 삼장로 단증(丹增)에게 치명타를 먹이는 데는 실패했다.

그래도 다행히 팔에 제법 큰 상처를 만드는 데는 성공하여 그 자리는 어찌어찌 빠져나올 수 있었지만, 그 과정에서 왕효는 삼장로 단증에게 얻었던 내상이 크게 악화될 수밖에 없었다. 보급된 요상단으로는 도저히 회생이 불가능할 만큼 말이다.

남은 거리는 대략 백팔십 리.

만약 전력으로 경공을 달린다면 한 시진이면 충분하다. 등에 부상자를 업었고, 그 길이 산길임을 감안 해도 그렇다. 하지만 이미 이 근방에는 적들이 쫙 깔렸다. 그들을 상대하는 것은 사실 그리 어렵지 않다. 어려운 것은 그것으로 인해 위치가 알려졌을 때 찾아올 적들이다. 결국 최대한 기척을 숨기고 그들을 피해 다녀야 한다는 뜻이다.

‘차라리 다친 쪽이 나였더라면······’

그의 특기는 근접박투.

반면 지금 부상으로 정신을 잃은 왕효의 특기는 색적과 은신이다. 게다가 머리를 쓰는 것 역시 비교도 할 수 없다. 그 나름대로 꾀를 써서 분산된 다른 무리 들을 오히려 국경 반대편으로 밀어 넣고, 단독 생존이 가능한 고참병들 가운데 몇몇을 선택하여 뿔뿔히 흩어져 국경 쪽으로 도주하게 하긴 했지만, 그게 옳은 선택이었는지는 사실 자신이 없었다. 만약 왕효가 제정신이었다면 조금 더 나은 선택을 하지 않았을까?

-부스럭

후읍. 장당이 숨을 삼켰다.

수색하는 녀석들이다. 삼인 일조. 하나하나의 실력은 이류 미만. 아마도 근처에서 대충 소집한 녀석들이겠지.

실제로 자기들끼리 뭐라 잡담이나 하면서 수색하는 꼴이 정예와는 참으로 거리가 멀다. 동시에 등에 업힌 왕효의 생명이 빠져나가는 것이 느껴졌다.

‘차라리······.’

적의 수준이 고작 저 정도라면······. 그리고 남은 거리를 생각한다면······.

그렇다면 이대로 다 무시하고 전력으로 달리는 것이 더 나은 선택이 아닐까? 국경 반대로 파고든 병력들도 오래 버티기는 힘들 것이다. 그들이 아직 생존했을 때 구원병을 보내야 한다.

가능할까?

장당이 자신의 몸을 점검했다. 초절정 고수처럼 초월했다는 표현을 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완성된 외공이다. 그 회복력은 범인을 아득하게 상회한다. 그런 만큼 지난 일주일의 시간은 그의 몸을 정상으로 돌려놓기 충분했다. 물론 떨어진 기력은 어쩔 수 없었지만 그래도 당장 불편한 곳이 없는 게 어디인가. 지금 저기서 낄낄거리며 대충 시간이나 때우는 놈들 따위 백 명도 너끈히 분질러 놓을 자신이 있다.

‘어쩔 수 없다. 이제 남은 것은 하늘에 맡기자.’

한 번의 호흡.

그리고 폭발적인 위력.

낄낄대던 녀석들 셋이 순식간에 박살 나는데 걸린 시간은 한 호흡에 불과했다. 서둘러 왕효를 들처 업은 그가 국경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목적지는 격합목. 곤륜의 가장 큰 속가문인 청량문이 위치한 도시였다.

* * *

운호는 수색 1대와 2대에서 각기 50씩의 지원을 받아 총 인원이 200에 달했지만, 사실 그것도 그리 여유 있는 인원은 아니었다. 물론 단순히 국경 지대를 순찰하는 정도라면 평소의 두 배에 달하는 인원인 만큼 절대 적지 않은 인원이다. 하지만 이미 세 개 백인대와 두 명의 절정 고수가 실종됐다.

“인원은 나누지 않겠다.”

“하지만 이대로라면 적에게 발각될 겁니다.”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국경이라고 하여 특별히 장벽 같은 것이 세워진 것은 아니었다. 애당초 그런 국경은 중원, 아니 세계를 통틀어도 저 북방의 만리장성이 유일하다. 서장과 청해성을 나누는 경계는 기련산맥의 지류. 그리고 거기서 이어지는 적포장착(赤布张错)이라는 이름의 거대한 호수다.

게다가 두 지역의 국경선 인근에는 빈번한 침략과 응징으로 인하여 변변한 마을조차 찾아보기 힘들었다. 그것이 대장군부의 수색대가 오십 인에서 백 인 단위로 꾸준히 수색을 이어갈 수 있는, 그리고 이어가야 하는 이유다.

“게다가 우리 수색대가 아직 살아있다면 적들도 그들을 잡기 위하여 포위망을 펼쳤을 터. 내부의 적을 훑어 내려다보면 외부를 향한 경계망도 허술해졌을 것이 분명하다. 우리 쪽에서 적들을 먼저 발견하고, 전력을 집중하여 쳐내려 간다.”

“하지만 만약 수색대가 전멸했다면······.”

“그럴 확률은 지극히 낮다. 장효와 왕당이 포함된 백인대 셋이라면 설사 좌장군이 직접 나선다고 해도 그 자리에서 완벽하게 전멸시키는 것은 무리다. 그걸 위해서는 적들도 상당한 정예 병력을 따로 움직였거나 경지를 넘어선 고수가 둘 이상 움직여야 했을 터인데 현재 포달랍궁에 파견된 간자에게서는 별다른 연락이 없다.”

“그래도 최악의 경우······.”

“상리를 넘어선 최악에 대비하는 것은 훌륭하지만, 일반적인 움직임까지 그걸 염두에 둔다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겠지.”

십 리 밖의 노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암, 그렇지. 맞는 말이야. 근데 말은 맞는 말인데 참 저 허술함이 아쉽군. 아무리 그래도 저런 이야기를 나눌 때는 기막 정도는 펼쳐줘야지. 누군가 엿듣기라도 하면 어쩌려고. 쯧쯧쯧. 아무래도 내공이 부족하니 아끼는 습관이 들어서 그런 건가? 하여간, 호족 놈들 쪼잔해서는. 저만한 인재라면 어? 대환단이라도 하나 퍼줘야지.”

한참을 투덜거리던 노인이 이내 고개를 저었다.

“아니지. 아니야. 그놈들이 쪼잔했으니 우리 대장군부까지 저런 인재가 온 거 아닌가. 이렇게 된 거 내가 나중에 손녀사위로 들어올 때 최가 놈 바짓가랑이를 잡아서라도 황룡단이라도 하나 구해다 줘야겠구먼.”

황실 비전. 황족 가운데서도 선택된 이들만이 먹을 수 있다는 황룡단을 아무렇지 않게 입에 담는 노인의 정체는 다름 아닌 청해 대장군 영보.

제국을 대표하는 사상의 일인으로 지난 수십 년간 포달랍궁을 완벽하게 억제해온 무관이었다.

본래라면 그가 대장군부를 떠나는 것은 말도 되지 않는 이야기였을 것이다. 비록 영무결에게 대부분의 실권을 넘겨줬다고는 하지만 아직까지 대장군의 자리 자체는 노인의 것이었으니까.

하지만 실권 대부분을 넘겨줬다는 것은 의무의 대부분 역시 넘겨줬다는 것과 동일한 말이다. 그렇기에 최근 노인은 매우 한가했고, 덕분에 대장군부에서 일어나는 잡다한 일들을 살피는 것은 그의 일과나 다름없었다.

그리고 그 가운데 가장 재밌는 것은 역시 운호였다. 그 놀라운 실력. 그리고 그 실력에 어울리는 품성과 무공을 향한 집념. 무엇보다 그의 아들인 영무결이 그에게 보이는 막대한 호감이 그의 관심을 자극했다. 물론 일주일에 한 번. 잠깐 무공을 살펴주는 것이 뭐 얼마나 막대한 호감이겠냐 싶겠지만, 그거야 일반인 기준이고 영무결 기준에서 그것은 너무나도 대단한 호의였다.

그의 아들 영무결은 무정한 사내다. 수십의 자식을 낳고 그들을 경쟁시켜 최고의 후계자를 만든다는 것은 자식들을 사랑하는 보통의 사람이라면 꿈꾸기 힘든 일이다. 헌데 그런 영무결이 그만한 호의를 보여준다?

덕분에 그는 운호의 일거수일투족을 상세하게 관찰했고, 최근 그가 수색단장에게 이상함을 보고했던 일. 그리고 이번에 그가 파견 보냈던 수색대의 전력이 통상적인 수준을 초월했었음을 잘 알고 있었다.

적어도 초절정 하나.

혹은 초절정에 준하는 대규모의 전력이 분명하다.

즉, 그가 지금 이렇게 나선 것은 운호를 향한 호기심도 호기심이었지만, 동시에 상대의 전력을 크게 깎아내릴 기회이기 때문이었다. 무엇보다 현재 포달랍궁의 활불은 폐관에 들어갔고, 그렇다면 이만한 전력과 함께라면 어찌 됐건 영보 자신의 목숨 정도는 충분히 챙길 자신도 있었다.

‘여차하면 손녀사위 목숨도 좀 챙겨주고 말이지.’

이왕이면 증손녀와 결합하는 것도 나쁘진 않겠지만, 증조 할아버지의 눈으로 봐도 그의 증손녀는 어미를 닮아 너무 박색이었다. 뭐, 그의 손자놈이야 얼굴 빼곤 딱히 봐줄 것 없는 워낙에 미욱한 놈이었으니 그런 결합도 어울렸지만, 이 녀석은 아니다. 역시 영웅에는 호색이 따라오는 것이 정석 아니겠는가.

대장군 영보가 느긋한 자세로 운호를 관찰했다.

* * *

-콰과광!!

양팔을 십자로 교차하여 적의 공격을 막아냈다. 왼팔이 시큰하다. 근육? 아니. 뼈가 상했다. 젠장, 정상적인 상황이었다면 등을 돌려 광배근으로 막아냈을 공격이었다. 하지만 등에 왕효를 업고 있었던 탓에 그런 선택은 할 수 없었다.

“후후후, 멍청한 멧돼지 같으니라고. 아무리 우리가 어설픈 놈들로 포위망을 펼쳐놨다지만 그래도 길목까지 그런 놈들에게 맡겨놨을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냐?”

건장한 체구의 라마승이 그를 비웃었다.

기껏해야 일류. 평소라면 저런 놈 열이 달라붙어도 상대할 자신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장당의 시선이 적들을 훑었다.

여섯.

쉽지 않다.

무엇보다 조만간 몰려올 적들의 정예를 생각한다면 단기간에 승부를 내야 했다.

가능할까?

장당이 이를 악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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