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화산파 역대급 천재-160화 (160/288)

160화

누구의 잘못인가(8)

시작은 여느 때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포달랍궁은 과거 굴불신마에게 활불이 크게 당하고 달아난 이후에도 꾸준히 청해 대장군부를 도발해왔다.

“녀석들도 먹고살려는 거지.”

“아니, 형님. 그게 대체 무슨 소립니까? 걔들이 미친 놈들도 아니고, 먹고 살려고 우리랑 목숨 걸고 싸움박질을 벌인다니요.”

“적어도 싸우면 우리를 죽이고 제 놈들은 살 확률이라도 있지만, 그대로 있으면 굶어 죽을 테니까.”

오백인장 왕효의 이야기에 선임 백인장 장당이 입을 쩍 벌렸다.

“아니, 굶어 죽기 싫으면 농사를 짓든지, 아니면 사냥을 하든지 해야지, 노략질을 하러 온다고요?”

“그게 합리적이니까. 당이 너도 서장 땅 자주 밟아봤으니 알겠지. 대체 그 황무지 어디에서 농사를 짓고 사냥을 하겠느냐. 목축도 간신히 하는 판국에. 그러니 날이라도 조금 가물면 그대로 노략질 하러 나오는 거지. 당장 자기 자식들 목숨 살리려고 말이다.”

“하······, 하지만.”

왕효가 고개를 저었다.

“그래,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는 나도 안다. 아무리 그래도 사람을 죽이고 재물을 약탈하는 걸 정당화할 수는 없다는 거겠지. 나도 동의한다. 그리고 사실 해결 방법도 얼마든지 있다.”

“네? 해결 방법이 있다고요? 어떻게요? 걔들은 노략질 하러 안 오면 다 굶어 죽는다면서요.”

“그거야 장족들이 계속 서장에 살려고 하니까 그런 거지.”

“허면? 서장 사람이 서장에 살지 않으면? 설마 우리가 다 때려 죽이면 된다는 소리는 아니겠죠?”

“녀석도, 하여간 생각하는 것하고는. 그런 것 아니다. 그냥 장족들이 포기하고 제국에 귀순해서 청해성으로 들어오면 된다는 뜻이다. 청해성은 충분히 넓고 아직 사람 살만한 곳도 많아. 애당초 청해성에 사람들이 살기 힘든 것도 서장과의 전쟁 때문이니, 그들이 귀순하면 청해성도 어느 정도 차이는 있겠지만 중원의 다른 성들처럼 살기 좋은 곳이 되겠지.”

“허!! 그런 좋은 방법이. 헌데 그러면 저 치들은 대체 왜 그런 좋은 길을 놔두고 저런답니까? 역시 멍청하고 배운 게 없는 오랑캐들이라 다들 아무도 모르는 것이로군요.”

“쯧, 그럴 리 있겠느냐. 그저 사람이 살다 보면 때론 목숨보다 중요하다 여기는 것도 있는 법이니 그런 것이겠지.”

“흥, 세상에 목숨보다 중요한 것이 어딨다고 그럽니까. 그렇게 떠드는 놈들도 막상 목에 칼 들이밀면 다들 제 목숨 선택하기 바쁩디다.”

장당이 왕효의 말에 코웃음을 치며 답했다.

그리고 정확히 일주일 후.

피투성이가 된 왕효가 장당의 등 위에서 신음했다.

“당아······, 지금이라도······.”

“형님, 아무 말 하지 마쇼.”

“멍청한······. 이러다 너도 위험해진다.”

“위험이고 뭐고. 내가 콱 나가 뒤지더라도 형님은 살리고 죽을라니까 그냥 조용히 입 다물고 계쇼.”

* * *

“아직인가?”

운호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적과 가장 가까운 곳을 살피는 임무다. 수색대의 임무는 당연히 어렵고 위험하다. 하지만 그렇기에 수색대의 구성은 정예한 무사들로만 이뤄진다. 수색대의 백인대 하나면 절정고수도 피해 없이 상대할 만큼 강력하고 절정의 고수인 장당이 포함된 백인대라면 설사 초절정 고수가 상대라고 해도 평야에서 정면으로 싸운다면 상대의 팔 하나 정도는 노려볼 만하다. 하물며 오백인장 왕효까지 포함된 백인대 셋이라면? 최상의 경우 초절정 고수와의 공멸도 가능할 만한 전력이다.

“네, 벌써 사흘째입니다.”

“역시 단단히 문제가 생긴 게 분명하구나.”

만약의 사태에 대비하여 수색을 나간 부대는 여러 가지 방법으로 본대에 정기적으로 보고를 한다. 그리고 연락이 두절 됐다는 말은 모든 형태의 연락이 다 끊겼다는 뜻이다.

“청하라면······. 다음은 극랍마의쪽인가?”

운호가 잠시 생각을 더듬었다.

사실 최근 서장 쪽 움직임에서 수상함을 감지하기는 했었다. 갑작스러운 도로의 정비와 성벽의 보수. 당시 운호는 직속상관이라고 할 수 있는 수색단장에게 그것을 분명하게 보고했었다.

“자네가 여기가 처음이라 잘 모르는 것 같군. 통상적으로 오랑캐들이 봄이 다가오면 하는 행동일 뿐이야. 아마 국지적인 약탈을 벌이겠지. 그건 각 마을의 방위를 맡은 문파들이 알아서 할 문제야. 우리의 최우선 감시대상은 무공도 제대로 익히지 못한 장족 나부랭이가 아니라 포달랍궁이라는 것을 명심하게.”

“저도 과거 자료들을 충분히 읽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의 움직임은 단순히 그 정도 행동으로 보기에 조금 과합니다. 수색 범위를 좁히고 백인대 단위의 수색이 아닌 천인대 단위의 수색이 필요합니다.”

“어허, 난 자네가 태어나기도 전부터 포달랍궁의 라마들과 칼을 맞댔어. 자네가 읽었다는 그 자료와 서류들. 그걸 작성한 게 나란 말일세. 이번에 장족들의 움직임이 조금 과한 것도 뻔한 것 아닌가. 마교의 마존들이 녀석들의 근거지 몇 개를 박살낸 탓이겠지.”

사람이 사람을 설득하기 위하여 가장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답은 간단하다. 바로 말을 알아듣는 상대방이다. 애당초 무슨 일이 있더라도 설득될 마음이 전혀 없는 사람이라면 설사 소하나 장의가 살아 돌아온다고 해도 설득은 불가능하다.

수색단장은 지금 논리의 영역이 아닌 경험의 영역을 말하고 있었다. 세상 일이라는 것이 지금까지 그래왔다고 앞으로도 그러리라는 법은 없다. 하지만 사람들은 종종 그것을 간과하고, 그 경험이 오래될수록 그것을 맹신한다.

-더 이야기 안 해볼 생각이냐?

‘저런 유형의 인간은 자기보다 아랫사람이라고 생각하면 더 이야기를 해봤자 오히려 더 크게 반발합니다. 차라리 지금은 여기서 순순히 물러나는 쪽이 더 나을 겁니다.’

-그래, 저 작자 생긴 것도 옹졸한 것이 딱 그럴 것 같긴 하다.

운호가 가타부타 이야기 없이 곧바로 물러났다.

저런 유형의 사람을 설득할 수 있는 것은 논리가 아니다. 더 큰 권위뿐이다.

다행히 운호는 그 더 큰 권위를 잘 알고 있었다.

굴불신마 영무결.

대장군부의 좌장군이자, 사실상 현재 대장군부의 모든 권력을 물려받고 있는 실세가 바로 그 주인공이었다.

물론 그런 비정상적인 경로로 보고를 하는 것을 좋아하는 상관은 존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어차피 운호는 군문에 뜻을 둔 것이 아니다. 굳이 상관에게 잘 보일 이유 따윈 없었다.

하지만 아쉽게도 시기가 잘 맞지 않았다.

기존의 파견나갔던 두 개 백인대가 돌아오고, 교대로 새로운 부대를 내보낼 때까지 영무결이 운호를 찾지 않았다.

그렇기에 운호는 현재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동원했다. 본래 오백인장은 부대의 가장 큰 예비전력이다. 그리고 운호가 판단할 때 지금이야말로 바로 그 가장 큰 예비전력을 동원할 순간이었다.

선임백인장 장당과 오백인장 왕효. 그리고 예비 병력까지.

두 명의 절정 고수와 세 개의 백인대. 그것은 현재 운호가 동원할 수 있는 최선의 대비였다.

하지만 그 최선의 대비조차 부족했음이 드러난 지금.

운호가 빠르게 단장실을 찾아갔다.

-쾅!!

“단장님. 지금 당장 증원 필요합니다.”

“아니!! 백 천인장? 갑자기 쳐들어와서 그게 무슨 소린가.”

“이해하십쇼. 단장님. 백 천인장이 아직 어리고 경험이 없어서 그렇습니다. 이보게 백 천인장. 무슨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군에는 엄연한 절차라는 것이 있는 법이네.”

단장의 집무실에는 운호를 제외한 두 명의 천인장들이 수색단장과 함께 다과를 나누고 있었다. 너무나도 공공연한 따돌림. 하지만 그리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어차피 운호가 이곳에 있는 이유는 이들과 친목을 다지기 위함이 아니었으니까.

“포달랍궁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습니다. 지금 극랍마의 쪽으로 수색을 나간 저희 부대의 연락이 두절 됐습니다.”

“연락 두절?”

“사흘째입니다.”

“아아, 난 또 뭐라고. 백 천인장이 아직 현장을 제대로 뛰어보지 못해 잘 모르는군. 원래 극랍마의쪽 지세가 험하여 종종 연락이 늦어지곤 한다네. 사흘이면 전서구 한 번 안 왔다는 건데, 그거 전서구 망실일 확률이 높아. 차분히 사흘만 더 기다려보게나. 아무 일 없다는 듯이 연락이 올 테니까.”

“하하, 이거이거, 역시 초임 지휘관이라 그런지 참으로 사소한 일에도 걱정이 많은 것 같군요.”

1수색대를 지휘하는 천인장의 말에 운호가 고개를 저었다.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다릅니다. 이전에 보고 드린 대로 적의 동태가 심상치 않아 전서구를 총 열다섯 마리를 딸려 보냈습니다. 국경을 넘어간 이후로는 매일 한 마리씩 보내기로 약속이 된 상태입니다.”

“뭐라고? 전서구를 매일? 열다섯 마리를 딸려 보냈다고? 자네 설마 미친 건가? 아니, 그 이전에 보급계가 그걸 다 내줬다고? 전서구 한 마리라도 망실되면 찾아와서 징징되는 그 짠돌이들이?”

“보급대장님께 부탁드렸더니 흔쾌히 내주셨습니다.”

보급대장?

운호를 타박하던 천인장 하나가 순간 멍한 표정으로 운호를 바라봤다. 보급대장이라면 지금 이 자리에 있는 수색단장과 같은 직위다. 하지만 직위가 동등하다고 그 힘의 크기가 어찌 같을까. 보급대장 영초벽은 좌장군 영무결의 장남으로 현재 차차기에 가장 가까운 인물이다. 무엇보다 고작 전서구를 보급받는데 보급대장에게 직접 이야기를 했다고?

순간적으로 운호에게 따라붙던 수많은 소문들이 그들의 머리를 스쳤다.

‘설마 진짜였나?’

어쩌면 운호가 영씨 가문에 데릴사위로 들어갈지도 모르고, 그리하여 후계자 구도에 이름을 올릴 수도 있다는 소문.

뭐라 말을 하려는 천인장의 입을 수색단장의 손짓이 가로막았다.

“전서구가 사흘 전부터 오늘까지 도착하지 않고 있다는 이야기인가?”

“네. 전서구만이 아닙니다. 밀마도 청하에서 끊겼습니다.”

전서구는 요긴하지만 비싼 연락수단이다. 게다가 안정성도 그리 높은 편은 아니다. 오는 길에 어떤 사고를 당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사흘. 세 마리나 연속으로 그런 일을 경험할 확률은 그리 높지 않다.

문제가 생겼다.

동시에 며칠 전 운호가 주장하던 이야기가 기억났다. 곤란하다. 그의 시선이 두 명의 천인장들에게 향했다.

“지금 당장 예비 병력들 전부 편성해서 3부대 지원해.”

“네? 하지만······.”

“이야기 못 들었나? 급한 상황 아닌가. 꾸물거리지 말고 당장 움직여.”

수색단장의 재촉에 천인장 둘이 자리에서 일어나 서둘러 자신의 막사로 달려갔다. 두 사람의 뒷모습을 확인한 수색단장이 운호에게 은근한 표정으로 말했다.

“자네의 이야기를 듣고 혹시나 하는 마음에 천인장들을 소집해 둔 것이 다행이었군. 안 그런가?”

-허, 이 망할 놈이?

그 뻔뻔한 이야기에 파검이 실소했다.

운호가 물었다.

“상부로 보고는 어떻게 할까요.”

“보고?”

“오백인장과 선임백인장. 절정 고수 둘. 그리고 일류 백칠 명이 실종된 상황입니다. 일단은 보고부터 하는 것이······.”

“크흠, 그건 뭐 신경 쓰지 말게. 자네의 상부가 나 아닌가. 이 위로는 내가 알아서 할 부분이지.”

“알겠습니다. 그러면 증원이 오는 대로 제가 직접 나가보도록 하겠습니다.”

“오!! 그래. 그런 중요한 문제는 역시 자기 손으로 직접 처리하는 것이 좋지. 내가 보급계에 이야기해서 충분한 지원을 지시해둘 테니 보급은 걱정하지 말고 사태 파악에 주력하도록 하게.”

“네, 알겠습니다.”

운호가 일단 고개를 숙였다.

* * *

청해대장군부의 깊숙한 곳.

그곳에는 현재 대장군부에서 가장 한가한 노인이 있었다.

세상의 온갖 부귀와 영화 향락과 사치 고난과 역경을 두루 경험했기에 어지간한 일에는 별다른 자극을 받을 수 없던 이 노인은, 최근 매우 흥미로운 소재를 하나 발견했다.

그것은 정말이지 특이하고 재밌는 소재였다. 그리고 그 소재가 지금 막 대장군부를 나섰다. 약 이백의 병력을 이끌고.

“저거 따라가면 재밌으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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