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9화
누구의 잘못인가(7)
그날은 여느 날들과 크게 다르지 않은 날이었다.
지휘관으로서의 일과를 빠르게 끝내고 무공을 수련했다.
지금까지 운호는 초절정 고수들과 몇 번이나 만남을 가져왔다.
증무진인 목운평이나 파검 좌부원의 경우 몽원경에서 수도 없이 검을 나눴다. 다만 몽원경은 그 특성상 그들의 진기와 무공이 크게 제한되니 그것을 진짜 초절정의 고수라고 하긴 힘들다.
그리고 권신 청무 진인. 운호는 그와의 대담을 통하여 초절정 고수라는 것이 얼마나 압도적인 존재인지를 실감했었고, 지금은 작고한 태을검선과 검을 나눔으로써 자운검의 오의를 깨달아 신검합일을 깨우칠 수 있었다.
이후 마교와의 싸움. 그리고 금의위 북진 총관 혹참가포 조충과의 만남. 남해 보타암의 숨겨진 고수 명현의 가르침과 곧바로 이어졌던 광서대장군 백기의 둘째 제자였던 궁익과의 싸움까지.
운호의 나이가 고작 열여덟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그리고 중원과 중원을 둘러싼 모든 세계의 초절정 고수를 다 합한다 해도 백 명 남짓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기이할 정도로 잦은 만남이었다.
하지만 그 모든 만남 가운데 운호가 제대로 초절정 고수에게 가르침을 받았던 것은 명현 사태의 가르침 정도뿐이었다. 심지어 그것도 운호의 진신 무공에 대한 가르침이 아닌 그저 반야검의 명현식의 전수에 치중된 가르침이었다. 하지만 당시 운호는 그 가르침만으로도 마치 마른 모래가 물을 빨아들이듯 빠르게 성장할 수 있었다.
그것이 의미하는 바는 명확했다. 지금 운호에게는 제대로 무공을 가르쳐줄 스승이 필요했다. 물론 운호에게는 공야찬이라는 스승이 존재했다. 실제로 그는 옹졸했지만 그래도 얼마전까지는 제법 훌륭한 스승이었다. 최소한 자신의 사부가 자신에게 전수했던 것을 잊지 않았고, 그것을 그대로 운호에게 전수할만한 깜냥은 존재했으니까.
하지만 이미 그것도 한계다. 이미 공야찬의 검술은 운호를 가르칠만한 수준이 아니었다. 청출어람 청어람이라 했던가? 고작 열여덟은 그것을 논하기에 너무 이른 나이였지만 현실이 그러하다. 공야찬만이 아니다. 절정이란 스스로 완성된 무인이다. 그런 무인을 가르칠만한 사람은 드물다. 물론 화산에는 절정을 넘어선 이가 존재한다.
권신 청무진인.
하지만 운호는 알 수 있었다. 그의 길과 운호의 길은 너무나도 다르다. 청무진인은 더 높은 곳에 오른 사람이었지만, 운호가 걸어야 할 길을 전혀 알지 못한다. 그렇기에 운호는 굳이 화산을 찾지 않았다. 그는 실전에서 스스로 무공을 연마하는 길을 선택했다.
그리고 그곳이 바로 여기 청해 대장군부였다.
하지만 지금까지 이어졌던 초절정 고수들과의 기이한 인연이 이곳에서도 이어졌기 때문일까?
굴불신마(屈佛神魔) 영무결은 운호에게 정식으로 청해 대장군부에 임관하는 것을 조건으로 그가 바라던 것을 이룰 수 있게 해주겠노라 약속했다.
천하에 오직 하나뿐인 천마(天魔)의 이름으로.
그리고 과연 천마라는 이름의 무게는 가볍지 않았다. 영무결은 무공의 상승을 도와주겠다던 약속을 철저하게 지켰다. 그는 일주일에 한 번씩 잠깐 시간을 내어 아무도 모르게 운호의 무공을 직접 점검해주었는데 이는 사실 매우 대단한 일이었다.
현재 영무결의 업무량은 상상을 초월했다. 본래 좌장군으로 해야 하는 업무 외에도 이제는 늙어 은퇴를 코앞에 둔 대장군의 업무까지 함께 보는 까닭이다. 그리고 그사이에 본인의 수련 역시 쉬지 않는다. 그야말로 초인이기에 가능한 업무량이다.
“언제봐도 참으로 특이하구나. 하긴, 그 나이에 그만한 경지인데 특이하지 않다면 더 이상한 일이겠지.”
그는 여러 차례 맞선을 밀어 넣고 운호가 그 모든 것을 거절했음에도 크게 개의치 않아 하는 얼굴이었다. 아니, 그보다는 적어도 무공 앞에서는 세상의 어떤 일도 뒷전으로 미룬다는 것이 더 맞는 말일 것이다. 무공이 업(業)이 아닌 직(職)을 위한 도구 취급을 받는 관가의 분위기 속에서 저만한 성취를 얻을 수 있었던 것은 저런 삶의 태도가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예전에도 말했듯이 네 무공은 흡사 마공과 같다. 물론 네가 익힌 심공은 도가의 비전으로 그 뿌리를 튼튼히 다지고 올라서는 정공 중의 정공이다. 하지만 네가 먹고 있는 그 단약. 그것은 옛날 보리 달마가 진기 도인법을 중원에 가져오기 전. 오직 토납으로 내공을 쌓아 올리던 시절에 연단사 일족이라고 불리던 미치광이들이 수백, 수천을 죽인, 심지어 당시의 제까지 죽였던 비방이다. 인간의 목숨을 연료로 사용하는 것이 마공이라면, 자신의 목숨을 연료로 쓰는 것을 어찌 마공이라 하지 않을 수 있을까.”
운호가 반박하지 않았다.
이미 저것과 관련해서는 수도 없이 반박을 해봤지만, 통하지 않는다. 어쩔 수 없다. 환갑을 넘긴 마공의 대종사다. 마공의 정의에 관한 그의 굳건한 생각을 바꿀 방법 따위 있을리 만무하다.
“하지만 우습게도 그 초식은 사파의 그것과 흡사하다. 아, 물론 사파의 무공이라 하면 그저 조잡하고 우스운 무언가를 떠올리기에 십상이겠지. 하지만 내가 정의한 사파는 조금 다르다. 그래, 너도 잘 아는 파검 좌부원. 우화등선을 했다고 전 중원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그 역시 엄밀히 따지자면 사파의 무인이다.”
“알고 있습니다. 파검 어르신은 구파나 칠대세가의 무공과는 아무런 연이 없지요.”
“단순히 그래서가 아니다. 정파의 무공은 모든 사람이 도전할 수 있고 천천히 쌓아 올리는 널찍한 탑과도 같다. 만 명이 도전을 한다면 그 탑에 가장 어울리는 이 하나 정도는 초절정에 이를 것이고 천 명 정도는 절정에 오를 것이며 나머지 구천 명 역시 나름대로 건강하게 오래 살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사파의 무공은 다르다. 그것은 그저 높이 쌓아 올리는데 급급한 탑이다. 항상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위태함이 있다. 하지만 그렇기에 만약 그 탑에 최적화된 인물이라면 정파의 무공보다 더 빠르게 경지에 다다른다. 십만 명이 도전한다면 하나는 경지에 이르고 천 명 정도는 절정이 될 테고 나머지는 이류를 전전하거나 폐인이 되겠지. 파검의 제자들이 아무도 경지에 이르지 못한 것처럼 말이다.”
운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기종에서 검종의 무공을 반대하는 논리 역시 저와 흡사했다. 하늘이 내린 재능이 있다면 성취할 수 있지만, 대부분은 그렇지 못한다. 하지만 그런 재능을 지닌 이가 있다면 누구보다 빠르게 무공을 성취함으로써 사람들은 현혹한다.
“이는 대부분의 사파들이 이대를 가기 힘들고, 결국 정파가 패권을 쥐게 되는 이유다. 하지만 뭐 그것도 경우에 따라서는 다른 경우도 있으니 사파의 무공이 마냥 나쁘다고 볼 수만도 없긴 하다. 실제로 제국의 태조 황제도 불길처럼 일어나 천하를 제패했으니까.”
“그 말씀은 설마 제국의 무공도 사파의 무공이라는 겁니까?”
“정확히는 태조의 무공이 사파의 무공이었던 것이지. 하지만 태조는 천하를 통일하고 본인의 무공을 더 높은 경지로 끌어올리는 대신 자신의 후손들도 익힐 수 있는 형태로 무공을 개량하는데, 남은 시간을 사용했다.”
“그게 가능합니까?”
“당연하지. 뭐 정파의 무공이라고 모두 처음부터 그랬겠느냐. 하나의 천재가 무공을 완성하고 수많은 범재가 그 무공을 익히는 과정에서 조금씩 개량했고, 언젠가 나온 또 다른 천재가 그 무공을 크게 발전시키는 일련의 과정에서 나온 것이 현 구파와 칠대세가의 무공들이다. 황제는 그 과정을 조금 더 빠르게 돌렸을 뿐이다. 제국 전체에서 나오는 어마어마한 물산을 활용해가면서 말이다.”
영무결이 무공을 바라보는 시선은 화산파의 그것과는 비슷하면서도 달랐다. 그는 정파의 무공을 무조건 옳은 것이라 보지 않았고 심지어 마공 역시 유일한 정답이라 보지 않았다. 그 자신을 천하에 유일한 천마라 자칭하면서도 말이다.
“잡설이 길어졌군. 어쨌거나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서 넌 가장 정직한 정파의 심법을 기초로 마공이라 부를만한 방식으로 생명을 태우고 있고, 거기에 익히는 무공은 사파의 그것이다. 하지만 다행스럽다고 해야 할까? 아니지. 다행이 아니지. 애당초, 네 오성이 이것을 수행할 만큼 대단하지 않았더라면 이런 방식 자체가 성립될 수 없었을 테니 이건 다행이 아니라 당연하다고 해야겠지. 하여간 당연하게도 네 오성은 이 모든 것을 감당할 만큼 훌륭하다. 그것이 열여덟에 절정. 그것도 심지어 일부는 초절정의 경지를 넘보는 이 불합리한 성장이 가능한 이유다.”
잠시 말을 멈춘 영무결이 다시 한번 운호의 몸을 살폈다.
“하지만 너도 알다시피 이대로는 썩 좋지 못하다. 물론 나는 고아한 산중의 도사들처럼 심기체를 합일하여 어쩌고 하는 말은 하지 않는다. 그것을 완벽하게 똑같게 가져가는 것은 불가능하다. 애당초 그것을 하나로 묶는 것 자체를 좋아하지 않는다. 본래 자연은 넘치는 것이 부족한 것을 메우고, 부족한 것은 넘치는 것을 따라가는 것이 이치다. 국지적인 불균형도 결국에는 균형으로 이어지는 법이다. 하지만 지금 네 경우는 그것이 너무 심각할 정도로 차이가 난다.”
“기(氣)로군요.”
“그래. 터무니없는 오성과 너에게 꼭 맞는 무공이 마공으로 끌어당긴 세월을 감당한다. 덕분에 네 검술은 정말 폭발적으로 성장했을 것이다. 절정의 고수가 이기어검에 검강까지 사용하는 것을 보면, 아마 넌 절정에 오르기도 전에 검기를 사용했을 것이다. 아니냐?”
“맞습니다.”
“물론 너의 내공도 발버둥 치고 있다. 하지만 정파의 심법에는 결국 한계가 있지. 게다가 사람의 몸으로 한 번에 받아들일 수 있는 자연지기 역시 한계가 존재하고.”
운호가 고개를 저었다.
“다시 한번 말씀드리지만, 마공을 익히는 것은 안 됩니다. 저의 수명을 연료로 쓰는 것과 타인의 목숨을 연료로 쓰는 것은 엄연히 다른 일입니다.”
“하여간. 편한 길을 놔두고 굳이 어려운 길로 돌아가려고 하는구나.”
“대도(大道)는 당장은 더 어려워 보이지만 결국 지나고 보면 가장 빠른 길인 법이지요.”
“쯧, 누가 도사 아니랄까 봐. 어쨌거나 그렇다면 결국 답은 하나다. 제때제때 가장 좋은 영약을 섭취하고, 지속적인 실전으로 진기를 자극해라. 너의 깨달음은 이미 초절정의 끝자락에 닿아 있다. 지금 부족한 것은 거기까지 뛰어오를 힘이다. 뭐, 그게 아니라면 아예 터무니 없는 것을 깨달아서 파검처럼 등선을 해버리는 것도 방법이겠구나. 아주 옛날에 불씨처럼 말이다.”
단순히 무공에 관한 강론만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운호는 아직 자신의 난풍검에 미진함이 있다고 느끼고 있었다.
“글쎄다······. 검술만 봐서는 제법 그럴싸한 검술 같구나. 무당의 검술과도 비슷해 보이고. 하지만 확실한 것은 태극혜검에 비해서는 한 수 쳐진다.”
“태극혜검을 경험해보셨습니까?”
“그래, 벽산 그 말코와 손을 나눠본 일이 있다. 둘 다 이제 막 초절정에 접어들었을 때의 일인데. 그 흐름이 참으로 기가 막히더구나. 분명 무공 실력이나 위력은 미세하게 내 쪽이 우위인데 초식의 오묘함이 그것을 상쇄했지. 아, 물론 결국 승리한 것은 내 쪽이었다.”
말을 끝낸 영무결은 손을 몇 번 휘휘 저어가며 그가 경험했던 태극혜검에 대하여 설명해주었다. 진기의 운용 등이 포함되지 않은 단순한 초식의 형태. 그리고 그 위력에 대한 설명뿐이었지만 그것은 운호에게 상당히 커다란 도움이 됐다.
시간이 흘렀다.
그리고 포달랍궁이 움직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