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7화
누구의 잘못인가(5)
“허어······. 부인, 이거 아무래도 큰일이 난 것 같소.”
“무슨 일인데요?”
“아버님이 이번에 데릴사위를 하나 새로 들일 생각인 것 같습니다.”
“또요? 근데 그게 뭐가 큰일이라고······. 어차피 매년 한 두 번씩 있는 일이잖아요. 안 그래도 휘현아가씨와 영현아가씨 혼기도 꽉 찼고, 예설 아가씨도 이제 슬슬 결혼상대를 알아봐야 할 시기고요.”
영무결의 장남. 영초벽이 고개를 저었다.
“지금까지와는 상대의 수준이 다르오.”
“네? 하지만 지금까지 데릴사위로 들여왔던 이들도 만만한 이들은 없었잖아요. 당장 둘째 서방님만 하더라도······.”
“그래, 그랬었지. 하지만 사정이 조금 다르다오. 잘 생각해보시오. 아버지가 우리에게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를.”
“아버님이 바라는 것이라면······. 설마?”
“그렇소.”
현 대장군인 영보의 은퇴가 몇 년 내로 이뤄질 것이 확실한 지금. 영무결의 후계 자리는 곧 대장군부의 후계자다.
당연히 그 자리를 노리는 수많은 자식들의 암투는 존재했다. 그리고 현재 거기서 가장 큰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 것은 장남인 영초벽, 넷째 아들인 영부용. 그리고 둘째 딸의 남편인 영유현이었다.
장남인 영초벽을 지지하는 것은 장자계승을 선호하는 대장군부의 관료들. 그리고 넷째를 지지하는 것은 일선의 무인들. 마지막으로 영유현을 지지하는 것은 청해성 여러 중소 문파들과 전향한 장족의 토착세력들이었다.
하지만 그들은 하나같이 모두 영무결이 원하는 것을 충족시키지 못하고 있었다.
“무공.”
초절정의 경지는 절대 쉽지 않다.
세상 다시 없는 지원을 받는다고 해도 결국 천고의 재능과 행운을 타고 나지 못한다면 도달할 수 없는 것이 그 경지다.
실제로 제국의 황족 역시 태조 이후 100년 동안 초절정에 오른 고수의 숫자는 고작 둘뿐이었다. 천하의 고수였던 태조의 피를 이었고, 천하에서 가장 귀한 약재들을 지원받았음에도 그러하다. 하물며 대장군부의 지원이 아무리 훌륭하다고 한들 어찌 제국 황실의 지원만 할까.
“그렇다면 이번에 아버님이 데릴사위로 맞으려는 사내는 새로 왔다는 그 화산의 도사겠군요.”
“부인도 그를 아시오?”
“어찌 모르겠습니까. 대장군부 어디를 가건 지금 그 이야기 뿐입니다. 열여덟에 절정의 고수. 홀로 열넷의 인급 마존을 쓸어버렸고, 북진 총관인 혹참가포 조충 대인의 부관 자리를 박차고 나온 인재라고요. 사실 열여덟에 금의위 교위. 그것도 조충 대인의 부관 자리라면 요직 중의 요직인데. 어째서 그것을 박차고 청해 대장군부에 왔는지 이해하기 어려웠는데, 이제야 이해가 되네요. 실로 대담한 사내로군요. 대장군 자리를 노리다니······.”
“그렇소. 아주 야심이 넘치는 녀석이지. 심지어 능력도 출중하다오. 이건 아직 알려진 사실은 아닌데, 현 금의위 대총관이 조만간 은퇴하고 조충 대인이 그 자리에 오를 예정이라고 하더이다.”
“그게 그자의 능력과 대체 무슨 상관이? 설마?”
“그렇소. 그 일 자체를 성사시킨 것이 그 백운호라는 녀석의 짓이라고 하더구려.”
“그게 사실이라면 실로 무서운 자로군요. 고강한 무공과 대담한 성정. 확실한 실적과 깊은 심계까지.”
영초벽이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그런 녀석이 데릴사위로 들어온다면······.”
“하지만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세력이 부족하지 않습니까.”
“지금이야 그렇지. 하지만 아직 아버님이 저리 정정하시지 않소. 적어도 15년, 길면 20년은 대장군 자리에 계실 터인데······.”
“그 기간이면 그 자가 초절정에 도전하기 충분한 시간이로군요······.”
“그렇소. 물론 그자의 나이 고작 열여덟. 삼십대에 초절정이라니. 보통이라면 코웃음을 치겠지만······. 모르는 일이지······.”
“초절정······. 결국 초절정이로군요······.”
그래.
초절정. 결국 초절정이다.
인간의 한계를 벗어난 초인이 존재하는 세상에서 어찌 모든 인간이 평등할 수 있을까. 절정만 하더라도 백 명, 아니 천 명의 몫을 한다. 하물며 초절정이라면? 저잣거리 설화가들이 떠드는 삼국지의 만인지적, 만부부당이 정말 가능해지는 것이다.
“그래서 말인데······. 내가 생각을 조금 해봤는데 혹시 그 예전에······.”
“안 됩니다.”
“아니, 대체 왜 그러는거요. 다섯째 때는 잘 써먹지 않았소.”
“그랬지요. 하지만 그때 쏟아부은 돈이 금으로 칠천 냥이었습니다.”
“그야 그렇지만······. 대장군부의 후계자 자리가 달린 일이요. 금자 칠천 냥이 아무리 큰 돈이라고는 해도······.”
“이번에는 금자 칠천 냥으로 끝나지 않을 겁니다. 보통의 절정 고수가 아니지 않습니까. 게다가······.”
“게다가?”
“아무래도 그때 아버님이 하셨던 말씀이 걸립니다. 당시에는 화초를 두고 말씀하셨었지만······. 다시 생각해보면 어쩌면 그게 저를 향한 경고가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끄응······.”
아무리 생각해도 방법이 보이지 않는다.
영초벽의 나이도 이제 마흔셋. 작년에 절정에 올랐으니 사실 시기상으로는 아직 초절정의 가능성은 열려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깜냥을 알았다. 가문의 장남으로 그야말로 어마무시한 지원을 받아왔다. 천고의 영약을 몸이 허락하는 만큼 섭취했고 최고의 선생에게 무공을 배워왔다. 그리고 마흔둘에 간신히 절정이다. 앞으로 이십년, 혹은 삼십년 정도 더 무공을 수련한다고 초절정에 오를 수 있다는 보장이 있을까? 글쎄······.
영초벽이 고개를 저었다. 차라리 자신과 마찬가지로 작년. 서른일곱의 나이에 절정에 오른 넷째 영부용이라면 또 모를까······.
“그렇다면 이를 어찌하면 좋겠소. 부인.”
“······.”
청해성 제일의 상단인 백가상단 상단주의 첫째 딸.
본인의 힘으로 상단 지분의 8푼을 쟁취한 세 번째 가는 대주주.
백가려가 잠시 고민했다.
그녀는 굴불신마 영무결이 인정한 여걸이었다.
영무결이 그녀에 대하여 평하기를 비록 그 미색은 조금 박하지만, 그 성품이 담대하여 승부사의 기질이 있다. 그러니 초벽이 너에게는 넘치는 여인이다라고 했었다. 그리고 또 한 마디. 만약 무가에서 태어났더라면······. 이라는 말을 덧붙일 만큼 무공에도 재능이 넘쳤다.
어쩌면 영초벽이 지금 가장 강력한 세력을 꾸릴 수 있었던 것은 첫째라는 정통성이 아닌 백가려의 존재 때문인지도 몰랐다.
그리고 지금.
영무결이 인정했던 그 승부사의 기질이 또 다시 발동됐다.
“선수를 치시지요.”
“선수? 무슨 선수? 조금 전에는 금자 칠천 냥으로 끝날 일도 아니고 아버지가 경고까지 했었다고 하지 않았소.”
“그 선수가 아닙니다.”
“그렇다면?”
“그자를 저희가 영입하는 겁니다. 아버님께서 데릴사위로 맞아들이기 전에요.”
“우리가 그자를? 아니, 하지만······.”
“우리 현아가 올해로 열넷 아닙니까.”
“그건 그렇지만······.”
“야심이 있는 자입니다. 감히 맨몸으로 대장군 자리를 노릴 만큼 말이죠. 계산이된다면 거절할 이유가 없을 겁니다. 그자의 장점은 나이입니다. 그걸 공략하는 것이죠. 어차피 20년 뒤라고 해도 고작 서른여덟에 불과합니다. 당신이 대장군 자리를 물려받아 십오 년 정도 대장군 자리에 있는다고 하더라도 쉰셋. 초절정의 고수에게는 아직 한창 때입니다. 괜히 지금 홀몸으로 세 개의 세력과 경쟁을 하느니 가장 강성한 우리에게 들어와 그것을 물려받아라. 그자로서는 거절할 이유가 없지요.”
“부인······. 물론 그야 그렇습니다만······.”
백가려가 아랫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무슨 말씀을 하고 싶으신지는 잘 압니다. 우리 광군이가 문제라는 것이죠. 하지만 넷째 도련님이나 둘째 서방님이 대장군 자리를 물려받는 것보다는 훨씬 나을 겁니다. 적어도 목숨을 위협받을 일은 없을 테니까요. 안 그렇습니까? 물론 당신이 현아를 매우 아끼고, 그 아이가 아직 어린 것도 압니다. 마음에 걸리시겠지요. 하지만 데릴사위 아닙니까. 귀여운 딸을 시집 보내는 것이 아니라 듬직한 사내를 집안에 들인다고 생각하세요.”
그래, 물론 그렇다.
이미 그들 형제의 사이는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넜다. 기본적으로 어미가 달랐고, 그들의 어미끼리는 그 사이가 몹시 나빴으니, 애당초 좋을 수도 없는 관계다. 대장군 자리에 오른 이가 다른 이들을 쓸어버린다고 해도 이상할 것 하나 없다.
하지만······.
“아무 말 마시고, 그냥 저에게 다 맡겨 주세요. 제가 한 번 손을 써보도록 할테니까요.”
마침내 영초벽이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소. 그러면 이번 일은 부인 마음대로 한 번 해보시구려.”
결국 영초벽이 마음에 담아 둔 말을 입 밖으로 꺼내지 못했다.
그의 딸인 영현.
자기 어미를 닮아 성정이 담대하고 고작 열넷의 나이에 일류를 넘볼 만큼 무공에도 뛰어난 재능을 보였다.
하지만 아쉽게도 닮은 것은 성정과 재능만이 아니었다.
그랬다. 영현은 그 외모까지 어미를 쏙 빼닮았다. 굴불신마 영무결이 인정했던 그 ‘박색’을 말이다.
* * *
-나는 반대다.
운호는 강호에 소문난 신진 고수다. 어쩌면 먼 훗날 천하제일을 노릴지도 모르는 인재이기도 하다. 그리고 그 모든 일의 바탕에는 그날의 싸움이 있었다. 마교 대제사장과의 만남으로 운호는 절정으로 도약했다. 무인 백운호에게 그날의 싸움은 매우 중요한 변곡점이었다.
하지만 동시에 이 녀석은 너무 많은 것을 잃어버렸다. 그렇기에 파검은 항상 그날의 일을 안타깝게 생각해왔다. 무인 백운호에게는 커다란 성장의 기회였지만, 인간 백운호는 그날 너무 많은 것들을 잃어버렸다.
첫사랑. 그리고 유일하게 믿고 따르던 스승.
그나마 그 빈자리를 메워주던 것은 파검 자신이었다. 모두가 휴식하는 긴 밤. 그 시간에 함게 검을 나눴다. 그러나 이제는 그것도 사라져버렸다. 운호는 이야기했다. 이제는 편히 자고 있노라고.
하지만 파검은 그저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천중일검 증무진인 목운평도. 파검 좌부원 자신도 없는 그 세계. 몽원경이라 이름 붙은 그곳에서 운호는 홀로 검을 휘두르고 있노라고.
그렇다고 현실의 운호는 행복한가.
글쎄······.
마교 대제사장이라는 목표를 위하여 운호는 자신의 생명을 태우고 있었다. 단순히 삶의 모두를 거기에 바친다는 은유적인 의미가 아니다. 그가 매일 밥 대신 복용하는 저 단환. 파검이 보기에 저것은 자신의 삶을 갈아 바치는 마단(魔丹)이다.
물론 파검 자신도 한때 저와 비슷한 무의 구도자적인 삶을 살았다. 그 시절이 있었기에 천무십칠성의 일원이자 천하제일검 파검 좌부원이 탄생했다.
하지만 이제는 등선하여 생전의 사념만이 남은 파검에게 가장 행복했던 기억은 무공에 파묻혀 지냈던 그 시절이 아니었다.
문파를 만들고,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고, 자신을 닮았지만 같지 않은 아이가 자라난 세월들. 그리하여 꼬물거리던 아이가 어느새 듬직한 사내를 데리고 왔을 때 느꼈던 그 대견함. 그리고 마음 한구석이 텅 빈 것 같았던 씁쓸함.
파검은 운호도 그 모든 세월을 살아갈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랐다. 그것은 인간이라면 응당 누려 마땅한 권리였다. 그렇기에 그는 운호가 복수에 미친 복수귀, 무공에 모든 것을 바친 구도자가 아닌 무인 백운호로 살아가기를 바랐다.
부디 세월이, 새로운 사랑이 첫사랑의 상실을 잊게 해주기를. 그렇기에 그는 이렇게 억지로라도 운호가 새로운 여인을 만나는 것을 기꺼워했다.
-아니, 근데 아무리 그래도 이건 아니지.
그리고 그런 파검이 영초벽의 딸. 영현을 보자마자 내뱉은 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