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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산파 역대급 천재-156화 (156/288)

156화

누구의 잘못인가(4)

영무결은 자식이 많았다.

당연한 일이다. 무릇 군왕의 의무는 후계를 단단히 하는 것이다. 다만 보통의 군왕이 후계를 단단히 하는 것이 그저 대를 잇는 것이라면 청해대장군부는 거기서 한 발 더 나아가야 했다.

청해대장군부는 포달랍궁을 막아내는 최전방이고 포달랍궁의 활불은 환생을 통하여 자신의 기억을 이어가는 규격 외의 괴물이다. 그 괴물을 막아내려면 보통 사람으로는 안된다. 그렇기에 대장군은 언제나 초인이어야만한다. 과거에도 지금도 그래왔던 것처럼 앞으로도 영원히.

그렇다면 후계자를 초인으로 만드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무엇일까?

“경우의 수를 늘리는 거지. 그것도 아주 많이.”

“경우의 수를 아주 많이 늘린다고요?”

“그래. 자네 우리 사형 애들이 몇인지 아는가?”

운호가 잠시 고민했다.

경우의 수를 아주 많이 늘린다고 했으니 서넛이나 너댓은 아닐 것이다. 그 정도는 보통의 다복한 가정이라면 갖는 숫자였으니까.

“글쎄요. 여덟아홉쯤 됩니까?”

“그 정도였으면 내가 ‘아주’같은 단어를 쓰지도 않았겠지. 듣고 놀라지 말게. 스물일곱이네. 아들이 열에. 딸이 열일곱. 아니, 아니다. 아들이 아홉에 딸이 열여덟이었나? 이게 숫자가 워낙 많으니 긴가민가하는군.”

“네? 스물일곱 명이요?”

스물일곱. 그야말로 터무니 없는 숫자다.

열여덟부터 일 년에 하나씩 낳아도 마흔다섯 살까지 낳아야 가능한 숫자다. 하지만 놀랄 일은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그것도 좀 줄어서 스물일곱이야.”

“줄다뇨? 그게 무슨 말입니까?”

“중간중간 전장에서 죽고, 몇 명은 병으로도 죽고. 아, 맞다. 일곱째 놈은 좀 특이했지. 정략결혼을 시키려고 했는데 장인될 사람 얼굴을 보고 바로 가출을 해버렸다네. 아주 똘똘한 놈이었지. 그 딸년 얼굴이 장인될 사람과 판박이였거든. 푸하하하하하.”

경우의 수를 아주 많이 늘린다는 말이 무슨 말인지 확 와닿았다.

아이들이 많이 죽는 시대다. 설사 대장군가와 같은 귀한 집안이라고 해도 그것을 피해갈 수는 없다. 심지어 듣자 하니 이 집안은 열서넛 만 되면 일단 전쟁터로 아이를 밀어 넣는다지 않는가. 아마 아들과 딸의 숫자가 저만큼 차이 나는 것도 그렇게 전쟁터에 밀어 넣은 아들들이 사망한 숫자 때문일 것이다.

“헌데 갑자기 찾아와서 그런 이야기를 왜 저에게······.”

“아니, 뭐 별 건 아니고. 참, 자네 우리 대사형이 어떻게 그렇게 많은 아이를 가졌는지는 혹시 궁금하지 않나?”

사실 별로 궁금하지는 않았다.

너무 뻔하기 때문이다. 사람이 한 번에 새끼를 몇씩 쑥쑥 낳는 동물도 아니고, 당연히 그만큼 많은 여인을 취했겠지. 영무결에게는 그만한 권력과 부. 그리고 힘이 있었으니까.

“중혼이겠지요.”

“그래, 뭐 어쩔 수 없었지. 사실 제국의 대장군부는 말이 대장군부지 왕부나 다름없지 않나. 실제로 태조께서 각자가 상대하는 대적들을 괘멸시킨다면 왕부. 그것도 이자왕이 아니라 평왕(平王)자리를 주겠노라고 서약하셨다지? 지금도 대장군부 심처에 가면 그 약조가 수결된 증서가 있다더군.”

전혀 모르던 사실이었다.

사실 백 년 가깝게 옛날 일이기도 했고, 운호는 딱히 관직에 관심을 갖던 사람이 아니었으니 아는 것이 이상한 일이다.

“그렇군요.”

“아무튼지간. 그러니 얼마나 여기저기서 정략혼이 들어오겠는가. 헌데 우리 대사형은 글쎄, 정략혼은 오직 딱 하나. 본부인인 곽 대부인과만 하셨다니까.”

“네? 하지만 아까 분명 중혼을 하셨다고······.”

“그래!! 중혼을 했지. 근데 그 기준이 참으로 일관적이었지. 좋은 후계를 위해서는 씨도 좋아야 하지만 밭도 풍요로워야 한다. 자질, 외모, 성정. 가문이 아닌 오직 사람 그 자체만을 꼼꼼하게 따지셨다네.”

“그렇군요. 참으로 대단하십니다. 헌데 아까부터 왜 제게 자꾸 그런 말씀을 하시는지······.”

“아차차!! 이거 내 정신 좀 보게.”

종자명이 자신의 무릎을 탁 두들겼다.

어째 점점 사람이 가벼워지는 것이 북경이나 절강에서 본 모습보다 여기서 보여주는 이 모습이 본래의 성정에 가까운 것이 아닐까 싶었다. 임무에 얽매이지 않았을 때 나오는 모습이야 말로 더 본래의 모습에 가까울 테니까.

“대사형이 그렇게 여인들을 골라서 그런지, 그 딸들이 하나같이 재색을 겸비한 규수들이란 말이지.”

“그렇군요.”

“그래서 말인데······. 몇 명 만나 볼 생각 없나?”

“네, 없습니다.”

“아니? 왜? 아이들이 재색을 겸비했다니까? 용모가 아주 단정해요. 내가 내 조카라 딱 여기까지 밖에 말을 못 하는 게 참으로 안타까운데. 하여간 그렇다니까? 게다가 우리 형님 집안이 보통 집안인가? 아까도 말했지만 포달랍궁만 멸망시키면 그대로 서평왕이야. 게다가 전조야 워낙에 세계제국 급이었으니 평왕이 친왕과 번왕 사이였지만 지금 저기 동쪽의 조선을 좀 보게. 말이 번왕이지 사실 왕 중에서 거의 최고 수준의 대접을 받지 않나. 서평왕도 아마 마찬가지일 거란 말이지.”

파검이 고민했다.

-끄응, 어렵군. 어려워. 그러니까 포달랍궁만 멸망시키면 왕이라 이 말인데. 마교 교주 하나로도 머리가 아픈데 포달랍궁이라······. 하지만 그래도 왕작이라면······.

‘아니, 어르신이 그걸 대체 왜 고민을 하고 계신 겁니까.’

답이 없는 운호에게 종자명이 은근히 다가왔다.

“그뿐만이 아니네. 아까 말하지 않았던가. 우리 대사형은 대장군 자리에는 초인이 앉아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다고.”

“네, 그러셨었죠.”

“그렇게 시큰둥하게 말할 일이 아니네. 자네는 지금 이 중매가 어떤 의미인지 제대로 와닿지가 않는 모양인데······.”

“아뇨, 저도 압니다. 대장군부의 후계자 경쟁에 저를 끼워주겠다는 이야기인 거.”

남아를 강하게 키워 초인으로 만들어낸다.

그렇다면 재색을 겸비한 여아는 어찌 할 것인가.

쉽다. 싹이 보이는 인물과 혼인을 시켜 데릴사위로 데려온다. 저 사천의 당가(唐家)가 어찌하여 저렇게 성세를 더해가는가. 외부의 인재를 그런 식으로 유입하기 때문이다. 심지어 당가의 당대 가주는 본래 조씨 성을 쓰던 사고무친의 고아였다. 마치 운호가 그런 것처럼.

“그렇다면 거절할 이유가 대체 뭐가 있나. 아름다운 여인과 부귀영화가 함께 하는 것을.”

“글쎄요······.”

“그래, 물론 화산파의 장문인 자리도 훌륭하지. 천하제일의 대문파인데 말이야. 하지만 그거 아나? 현 화산파의 장문인도 우리 사부님, 그러니까 대장군을 만나면 고개를 숙여 인사하네. 게다가 사내가 이왕 태어났으면 왕 자리 정도는 노려봐야 하지 않겠나.”

“그렇죠. 그런 의미에서 종장군님이 노려보시는 건 어떻습니까?”

운호의 맞장구에 열심히 고개를 끄덕이려던 종자명이 곤란한 표정으로 머리를 긁적였다.

“하하하. 물론 나도 그러고 싶지. 하지만 어디 그게 마음만 먹는다고 다 되는 일이라던가.”

“왜요? 종장군님 정도면 아주 훌륭하지요.”

“그래, 나 정도면 훌륭하지. 나도 그렇게 생각하네. 하지만 기준이 대사형이니 훌륭 이상이 필요한 것이 문제랄까······.”

분명 벽안검귀 종자명은 천살(天殺)을 완성하여 일반적인 절정의 고수를 뛰어넘는 무력을 소유했다.

“사부님도 참으로 아쉬워 하시더군. 나의 성정이 조금만 더 진중했더라면 많은 것이 달라졌을 것이라고. 하늘이 나에게 천살의 재능은 주었지만, 아쉽게도 그 이상을 허락하지 않았다나? 나도 이 가벼운 성격을 고쳐보려고 이리저리 애를 써보고는 있네만, 그게 영 쉬운 일은 아니라 말이지. 하하하하하.”

하지만 기와 육이 완성됐다고 해도 단지 그뿐이다. 인간이 인간의 한계를 벗어나는 데는 인간의 한계를 벗어난 마음이 필요한 법이다. 천살을 완성한 종자명은 여전히 사람의 마음을 품고 있었다.

“어쨌거나 그러지 말고 한 번 만나보게. 혹시 아나? 보자마자 딱 마음에 드는 녀석이 있을지?”

운호가 곤란한 얼굴로 답을 하려는 찰나.

종자명이 빠르게 말을 이어갔다.

“생각을 좀 해보게. 지금 나는 상당히 온건한 방법이야. 우리 사형 성정에 포기를 할 것 같은가? 아예 얼굴도 안 보고 거절을 했다? 그러면 어떻게든 얼굴이라도 마주치게 해보자. 앞으로 자네 근처에 이해할 수 없을 만큼 ‘우연히’ 내 조카들을 만나는 일이 자주 발생할 수도 있다네.”

“그건······.”

상당히 곤란한 이야기였다.

운호의 표정을 본 종자명이 다시 물었다.

“혹시 마음에 둔 처자라도 있는 건가? 그때 그 화산의 여협인가? 확실히······. 보기 드문 미인은 미인이었지. 하지만 외모만 따지자면 내 조카도 그리 빠지지는 않는다네.”

“그런 거 아닙니다.”

“그렇다면 뭐 다른 사람?”

운호의 머릿속에 한 줌 핏물로 사라진 그녀가 스쳤다.

며칠 되지 않는 짧은 만남. 그리고 그 수십 배가 넘는 시간이 흘렀다. 하지만 여전히 머릿속에는 화인처럼 그녀의 마지막이 박혀 있다.

날아드는 채찍. 움직이지 않던 몸. 그 선명한 무기력함. 운호가 주먹을 움켜쥐었다.

-우우웅, 신검이 울었다.

-운호야 정신 차리고 진정해라.

파검의 목소리가 운호의 정신을 때렸다. 종자명이 조금 놀란 표정으로 운호를 바라봤다.

“이런······. 뭔가 아픈 사연을 내가 건드린 것 같군. 미안하네.”

“아닙니다. 제가 너무 쉽게 흔들린 모습을 보여드린 것 같습니다.”

“아니네, 아니야. 그 나이에는 그럴 수 있지. 원래 사랑이 가장 아플 나이 아니던가. 나만 하더라도 자네 나이에는 말이지 크, 참 대단했지.”

“그런 거 아닙니다. 그리고 방금 그 말씀 집에 계신 영부인께 말씀 드려도 됩니까?”

“어흠. 거, 사람이. 무슨 말을 그리 정 없게 하는 건가. 아무튼간 내가 살아보니 사랑을 잊는 건 사랑이더라. 뭐 그런 이야기일세.”

운호가 마침내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그렇게까지 말씀하시니 일단 찾아뵙도록 하겠습니다. 아무래도 거절을 하더라도 직접 찾아 뵙고 거절을 해야 할 것 같군요.”

“그래!! 잘 생각했네. 그러면 이번 돌아오는 휴무일 아침, 그러니까 진시 초에 우리 집에서 보는 거로 하지.”

“네? 곧바로 좌장군 댁으로 가면 되는 거 아닙니까?”

“아니지. 아니야. 그래도 명색의 맞선인데 상대에 대한 예의가 있지. 그 꼴로 갈 수는 없지 않은가.”

“네? 그 꼴이라니요?”

운호가 자신의 옷을 둘러봤다.

질 좋은 무복. 딱히 더러운 곳도 보이지 않았다.

“아니, 그러니까. 어······.음······. 하여간 꼭 우리 집부터 오게. 안사람도 자네를 한 번 꼭 보고 싶다고 그러고. 알겠나?”

“네, 뭐 알겠습니다. 그게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니고. 오래간만에 영부인도 한 번 뵙도록 하지요.”

“좋네. 그러면 나 먼저 일어나지. 아아, 굳이 마중 나올 필요는 없고. 일 보게.”

혹시라도 운호가 말을 무를까.

종자명이 후다닥 자리에서 일어났다.

* * *

“그러니까 뭔가 사연이 있어 보이더라?”

“네, 뭐 그 나이에 사연이 없는 사람이 어딨겠냐만은 그만한 고수가 감정을 크게 드러내는 것이 심상치는 않아 보였습니다. 검명까지 울리더군요.”

“흐음······. 수양이 깊어 보였는데. 검명까지 울릴 만큼 감정이 격동했다라. 확실히 심상치 않아 보이기는 하는구나. 하지만 그래도 다행이다.”

“다행이라구요?”

“그래, 다행이지. 그런 반응을 보였다는 것은 최소한 지금 정을 통한 이는 없다는 것 아니냐. 물론 그렇다고 해도 그 나름의 방법이야 있었겠지만, 그래도 현재 정을 통한 이가 없다면 더 좋은 일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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