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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산파 역대급 천재-153화 (153/288)

153화

누구의 잘못인가(1)

“옴마니 반메홈. 이 마구니들이 아주 지독하구나.”

“아니, 대체 이게 무슨 일입니까!! 아니, 분명 아수라는 이번에도 큰 부상을 입어 적어도 십오 년은 요양해야 한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허면 예전처럼 마구니들은 아수라를 지키기 위해 모여들어야 할 터인데, 대체 어찌하여 여기까지 기어 올라오는 것인지······.”

“그러게나 말이다. 하지만 그거야 우리가 신경 쓸 부분은 아니지. 마구니들도 언젠가 척결해야 하는 놈들이기는 하다만, 지금은 일단 저 버러지들을 쓸어버리는 것이 먼저일 테니까.”

노승의 시선이 동쪽을 향했다.

이 마구니들은 거짓된 신을 섬기는 그릇된 존재들이지만, 설사 그렇다 한들 어떠하리. 그에게 더 중요한 것은 저기 보이는 선조들의 땅이다.

이 황량한 고원과 다르게 강물이 흐르고, 곡식이 영그는 곳. 그리고 지금은 저 간악한 침략자들이 살아가는 곳.

그가 어렸던 시절.

그러니까 전대 제국이 융성하던 시절은 달랐다. 그들의 종교는 국교가 됐었고, 그 땅은 팔백 년 만에 그들의 품에 돌아왔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전조가 북방으로 쫓겨나던 시절. 그들 역시 다시 이 황무지로 밀려났다.

그 과정에서 죽어간 무수한 숫자의 사람과 사람과 사람들.

그 가운데는 그의 어린 동생도 있었고, 아직 어린 그에게 식량을 양보하고 죽어간 어미도 있었고, 쫓아오는 중원의 군세를 막아서다 죽어간 그의 아비도 있었으며 최후의 순간 진원을 폭발시켰던 당대의 활불도 있었다.

뼈에 사무친 원한.

포달랍궁의 노승.

활불을 대신하여 포달랍궁의 실질적인 업무를 이끌어가는 대장로 니마 주걸(尼瑪 珠杰)이 다시 한번 불호를 읊조렸다.

“옴마니 반메홈.”

* * *

“형님, 아니 아무리 그래도 이건 좀 너무한 거 아니요?”

“뭐가?”

“아무리 위에서 자기 마음대로 낙점해서 내리꽂는다고 해도 정도가 있어야죠. 이제 스무살도 안 된 새파란 애송이를 천인장으로 내려보내다뇨. 물론 그 애송이가 좀 고수, 아니 좀 많이 고수라고 해도. 이건 아니죠. 세상에 우리 일이 어디 힘만으로 다 된답니까? 그리고 경력을 만들어주고 싶었으면 다른 곳도 많은데 왜 하필 저희랍니까? 게다가 무슨 황족도 아니고 시작부터 천인장이라니요. 제가 알기로는 좌장군님도 백인장부터 시작했다고 알고 있는데요. 아닙니까?”

“당아······.”

“그리고 형님. 솔직히 저도 이제 무공도 제법 물이 올랐고 경력도 있는데. 슬슬 오백인장 오를 때도 됐잖습니까. 전 이번에 형님이 딱 승진하시고, 제가 그 자리에 올라갈 줄 알았습니다. 심지어 다른 애들도 다들 그럴거라고 생각해서 제가 축하주까지 먼저 샀는데. 대체 이게 뭡니까.”

형님이라 불린 사내.

청해 대장군부 수색단 제3 수색대의 부관. 왕효가 부드러운 표정으로 그를 달랬다.

“당아, 진정해라. 좌장군님이야 열세 살 어린 나이에 군문에 임관하지 않았더냐. 열세 살에 백인장이나 열여덟에 천인장이나 뭐가 그리 크게 다르다고······.”

“다르지요!! 암, 다르고 말고요. 형님. 게다가 우리가 누굽니까. 최전방에서 목숨을 걸고 돌아다녀야 하는 수색대입니다. 경력 많은 노련한 사람이 와도 애들 죄다 죽여대는 판국에, 이제 막 군문에 들어온 애송이라니요. 게다가 그런 애송이들 특기가 뭡니까. 경력 제대로 만들겠다고 애들 죽여대는 거 아닙니까. 전 그거 그대로 두고 못 봅니다. 혹시라도 그런 무리한 명령을 한다면 제가 나서서!!”

“선임 백인장 장당!!”

왕효가 소리쳤다.

딱딱하게 굳은 얼굴.

장당이라는 백인장의 얼굴에 ‘아차’ 하는 표정이 감돈다.

“내가 몇 번이나 누누이 말했던 걸로 기억하는데.”

“죄······, 죄송합니다. 형님.”

참으로 가진 무공에 비해 멍청하기 짝이 없는 녀석이었다.

조금만 더 생각이라는 것을 할 줄 알았더라면 진즉에 진급할 수 있었을 것을.

‘하긴, 그랬다면 지금 내 밑에서 이러고 있지도 않았겠지.’

왕효가 가볍게 -에휴, 한숨을 내쉬었다.

“다시 말하지만 너는 그 불뚝하는 성질머리와 가벼운 입을 고치지 않는다면 언젠가 아주 크게 혼쭐이 날 것이다.”

“흐흐흐, 명심하겠습니다.”

장당은 잘 알고 있었다. 왕효가 저 에휴라는 한숨을 내뱉었다는 것은 오늘은 크게 혼낼 계획이 없다는 뜻임을.

능글맞은 웃음을 보이는 장당을 바라보며 왕효는 어제 있었던 만남을 떠올렸다.

그 해사한 얼굴의 어린 소년.

그래, 소년이다. 물론 군대에 천인장 가운데 소년이 없지는 않다. 천인장이 무엇인가? 중앙으로 가면 장군 자리에 아직 고추에 털도 안 난 어린 놈들이 앉는 경우도 왕왕 있다. 하지만 그 대부분은 ‘귀한’ 신분이 그저 ‘명목상’으로 앉는 경우다.

하지만 그 소년은 그런 것과는 전혀 달랐다.

“그러니까 지금 천인장으로 임명을 받았다고요? 저희 수색 3대에?”

장당이 노골적으로 불신감 가득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봤다. 그 표정에 운호가 쓰게 웃으며 좌장군 영무결의 직인이 찍힌 명령서를 내밀었다.

백운호.

왕효가 생각했다.

어디서 많이 들어본 이름이라고.

기억을 더듬는다. 중앙에 백씨로 시작하는 명가부터 어디 지방에 힘 있는 가문까지. 하지만 도무지 떠오르는 이름이 없었다. 대체 어디서 들어본 이름일까? 아니, 그리고 그런 가문의 귀한 자식이라면 좀 안전한 곳에 박힐 일이지, 대체 왜 수색 3대란 말인가. 물론 항상 인상적인 공로를 세우기는 한다지만, 그만큼 많이 죽어나가고, 또한 흉흉한 소문이 도는 부대거늘. 여기는 자신의 실력에 어지간히 자신이 있는 고수도 쉽게 선택할 수 없는 곳이다.

그리고 거기까지 생각이 미쳤을 때 왕효는 마침내 백운호라는 이름을 떠올릴 수 있었다.

“화산파의 소신검?”

“아, 저를 아는 모양이군요.”

모를 리가.

물론 무림인이 강호에서 자기들끼리 싸움박질 하며 이름 좀 떨쳤다고 모두 알 수는 없었다. 하지만 소신검이라면 최근 단신으로 인급의 마인을 열넷이나 잡았다고 군내에 소문이 자자한 고수였다.

인급(人級)의 마인.

그래, 열넷이나 쳐 죽였다고 하니 별것 아닌 것처럼 느껴지지만, 왕효는 잘 알고 있었다. 어지간한 백인대도 단독으로는 인급의 마인을 참하라는 임무가 내려오지 않는다. 그것은 정예 중의 정예라고 볼 수 있는 수색 3대도 마찬가지다. 물론 정면에서 맞붙어 죽을 때까지 겨룬다면 백중 구십구 백인대가 승리한다. 하지만 지리와 지형을 제대로 파악한 인급의 마인이 유격전을 벌인다면? 운이 좋으면 양패구사. 운이 나쁘면 백인대의 전멸이다.

당장 그놈들과 단독으로 손속을 나눌 수 있는 고수는 수색 3대에서도 왕효 자신과 저기서 멍청한 표정으로 눈을 끔뻑이는 장당 녀석뿐이다.

왕효가 쓰게 웃었다.

“모를 수가 없지요. 군내에 그토록 소문이 자자한데요.”

“그렇군요. 자, 그러면 두 분은?”

“아, 죄송합니다. 소개가 늦었습니다. 저는 수색 3대의 부관. 오백인장인 왕효라고 합니다. 그리고 이쪽은 선임 백인장인 장당입니다.”

“장당입니다.”

운호가 고개를 갸웃했다.

“백인장이요? 설마 수색 3대는 백인장들이 전부 그만한 수준인 겁니까?”

자신의 기세를 숨길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

명백한 절정.

심지어 익힌 무공도 마공이 아니다. 장당을 대신하여 왕효가 운호의 질문에 답했다.

“아니요. 그건 아닙니다. 그저 당이의 상황이 조금 특별한 겁니다. 보통 절정쯤 되면 최소한 오백인장으로 불려가기 마련이지요. 하지만 아시다시피 수색단은 그 특색 상 마공이 아닌 정공을 익힌 무사들만이 소속되는데 현재 수색단에 오백인장 자리에 빈자리가 없습니다. 그렇다고 수색단의 무사를 다른 곳으로 옮기자니 그건 또 그것대로 낭비인지라 이렇게 선임 백인장이라는 이름으로 남아있습니다.”

확실히 적진에 깊숙하게 잠입하여 상황을 살피는 수색단에 마공을 익힌 마인이 포함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최근 마교의 마인들이 워낙에 마기를 숨기고 나타나는 일이 많아 퇴색된 감이 있긴 했지만, 본래 마인들이 자신의 마기를 감추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이 정설이었고, 그것은 청해 대장군부의 마인들 역시 마찬가지일 테니까.

“그렇군요. 알겠습니다. 그러면 오늘은 시간이 늦었으니 중요한 일에 관한 건 내일 보고를 받도록 하지요.”

“보고요?”

“네, 제가 급하게 오느라 부대 상황에 대해서 제대로 들은 것이 없어서요. 그러면 왕 부관. 앞으로 잘 부탁합니다.”

왕효가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 * *

“흐음, 현재 총원이 백팔십칠 명이라······. 이상하군요. 천인대라고 들었는데 아무리 그래도 인원이 부족해도 너무 부족한 거 아닙니까?”

서류를 받아든 운호의 질문에 왕효가 답했다.

“그게 수색단의 특성 때문에 그렇습니다.”

“수색단의 특성이라구요?”

“네, 아무래도 임무가 임무인 만큼 정파의 무공을 익힌 사람들 가운데 일정 이상의 경지에 오른 이들만을 선별하는데 아시다시피 정파의 무공이라는 것이 그 일정 경지에 오르는 것이 워낙에 어렵지 않습니까. 그래서······.”

“아니, 그렇다면 애초에 이렇게 부대를 셋으로 쪼갤 필요가 있었나요? 어차피 세 부대를 합쳐서 천 명 남짓 나온다면 단체의 규모 자체를 축소하는 것이 좋은 것 아닌가요?”

왕효가 쓰게 웃었다.

지금까지 화산파에서 수련을 했다고 했나? 확실히 이 소년. 조직의 생리 같은 것은 전혀 모르고 있다.

“그게 그러니까······, 단체의 급 때문입니다.”

“단체의 급? 아!!”

운호가 무릎을 두드렸다.

그 표정에 왕효가 조금 놀랐다. 설마 고작 그 한 마디로 그것을 다 파악했다고? 물론 조금만 생각해보면 알 수 있는 일이기는 하지만, 그것을 경험해보지 않은 사람은 그 조금의 생각 자체가 어렵기 마련이다.

“그러니까 자리가 필요한 거군요.”

“네, 맞습니다.”

고수는 귀하다.

하지만 그렇게 귀한 만큼 효용성이 존재한다. 그런 고수를 모셔오기 위해서는 금전도 금전이지만 명예 역시 당연히 따라와야 한다. 초절정의 고수에게 천인장 자리를 줄 수는 없는 것이고, 절정의 고수에게 백인장 자리를 주면 불만이 튀어나올 수밖에 없다. 그러니 실직은 백인장이라고 해도 이름은 천인장인 이런 일이 벌어지는 것이다.

“사실 저희가 특별히 적은 숫자인 것은 사실이지만, 대장군부의 다른 부대도 크게 다르지는 않습니다. 기본적으로 몇몇 부대를 제외하고는 모두 비완편 상태이고, 다른 부대 역시 총동원 상황이 발생하면 청해성과 감숙성의 문파들에서 병력들을 차출해서 완편하는 형태입니다. 다만 저희는 임무 특성상 그런 상황에서도 추가되는 인원이 배정되어 있지 않다는 차이 정도입니다.”

“그렇군요.”

운호가 다시 한번 서류를 살폈다.

백인장이 총 다섯. 각각의 백인장이 이끄는 병력이 서른에서 마흔 사이. 두 개의 부대가 순찰을 나가 있고, 그들이 돌아오면 다른 두 개의 부대가 다시 교대로 순찰을 나가는 형태다.

“좋습니다. 그러면 일단 현재 순찰을 나가 있는 백인대들을 제외하고 나머지 부대들 사열부터 시작하도록 하죠.”

“네. 준비하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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