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화산파 역대급 천재-150화 (150/288)

150화

신검(13)

청해 대장군부.

규모야 만 단위의 병력을 상시 운용하는 만큼 거대할 것이라 예상하긴 했다. 하지만 이건 예상하지 못했다.

“생각했던 것보다······.”

“좀 화려하지?”

“다른 대장군부도 다 이렇습니까?”

종자명이 웃으면서 고개를 저었다.

“아니, 그런 건 아니다. 여기가 조금 특별한 거지. 천년 전. 장족이 이 지역 전체를 다스릴 때의 왕성이었다고 하더군. 이후로는 이런저런 용도로 사용됐었고, 태조께서 달자들을 몰아낼 때 즈음에는 황제를 참칭하는 자가 이곳을 황성으로 삼았던 적도 있었다지? 뭐, 얼마 못 가 장족들에게 목이 매달려 죽었다고는 하지만. 어쨌거나 덕분에 여기 청해 대장군부가 다른 대장군부보다는 좀 화려한 편이다.”

“그렇군요.”

“일단 내 사저를 내줄 테니 잠시 기다리고 있어라. 이래 봬도 제법 높은 사람이라 접객원을 가는 것보다 내 사저 쪽이 더 좋을 테니까. 난 이번 일을 보고 하고 오도록 하겠다. 기대해도 좋다. 아무래도 마인 놈들보다는 라마 놈들이 보상이 더 크긴 하겠지만, 그래도 인급 여섯의 모가지라면 보상이 적진 않을 테니까.”

“보상이요?”

“어, 공을 세웠으면 상을 받아야지. 인급 마존 여섯의 모가지면 사병도 단번에 장교로 올라갈 만한 공로야. 물론 소신검 자네야 우리 대장군부 소속이 아니니 낭인들에 지급되는 종류의 포상을 받게 될거야.”

포상?

운호의 얼굴을 본 종자명이 말했다.

“뭐, 경우에 따라 조금씩 달라지지만, 은전이나 금자. 공로의 크기에 따라서는 무공이나 영단을 지급하는 경우도 있다. 지금의 경우라면······.”

“여덟.”

“뭐?”

“오는 길에 여덟을 더 잡았습니다.”

운호가 등짐에서 주섬주섬 조유가 챙겨준 것들을 꺼내 들었다.

-그 녀석도 참. 대장군부에 가면 쓸 일이 있을거라고 하더니 이런 용도였구나.

그리 대단한 것들은 아니었다. 마인이 남긴 자질구레한 유품들. 물론 마공이 기록된 서적도 있긴 했지만, 그 수준은 썩 대단치도 않았다. 인급의 마존은 상당한 고수이지만 그들이 익힌 마공 자체는 매우 조악했고, 그 나름의 깨달음이라고 해봐야 운호나 좌부원이 보기엔 틀린 것 투성이다.

하지만 종자명의 반응은 조금 달랐다.

“맙소사. 인급 마존의 심득이 담긴 비급까지? 그것도 두 개나? 보통 안전한 장소에 숨겨두는 놈들이 대부분인데 자네 운이 좋았군.”

그도 그럴 것이 정파의 무공은 오랜 시간 안전하게 점진적으로 나아간 무공들이 대부분이다. 하지만 마공은 다르다. 극단적이며 파괴적이다. 그리고 그 극단과 파괴는 외부에 그치지 않는다. 자기 자신에게도 마찬가지다.

그렇기에 인급의 마존이 남긴 비급이란 일종의 생체실험기록이 된다.

무론(武論)으로 보자면 말할 가치도 없이 크게 틀린 길이지만, 그 크게 틀린 길을 거기까지 걸으면 어떤 현상이 일어나는지를 아는 것은 분명 가치가 있는 일이다.

특히나 청해 대장군부는 다른 대장군부에 비해 마공을 익히는 것에 더 적극적인 곳이기도 했으니 더더욱 그 비급의 가치가 올라간다.

* * *

“흐음······. 그렇단 말이지.”

호안의 장년인이 자신의 턱을 쓰다듬었다.

천살을 완성하고 설사 상대가 초절정의 고수라고 해도 달려들만큼 담대한 종자명이었지만 이상하게 이 남자 앞에서 만큼은 쉽게 기를 펴기 힘들다.

청해대장군부의 이인자.

좌장군 영무결.

청해대장군 영보의 아들이자 십이지신의 일좌.

단순히 영가의 피를 이었다는 이유가 아닌, 본신의 실력으로 청해대장군부의 좌장군 자리를 차지한 위대한 무인.

말하기 좋아하는 사람 가운데 몇몇은 영무결의 무공이 이미 사상을 넘어섰다고 평가하기까지 했다. 그가 서장 포달랍궁과의 전투에서 보여줬던 모습들이 그만큼 인상적이었던 탓이다.

가장 최근 포달랍궁이 크게 패퇴하여 물러났던 파청 전투에서 영무결은 무려 그 활불을 패퇴시켰다. 그리하여 붙은 별호가 굴불신마(屈佛神魔).

“헌데 사형께서 왜 직접?”

“아, 마침 시간이 조금 남아서 말이다. 그보다 그 아이 이야기나 조금 더 해보거라.”

“그게······, 말씀 드린 게 전부입니다. 황성에서 만남이 있었고, 절강에서는 조금 좋지 않은 일로 만났지만 잘 해결됐고. 이번이 세 번째 만남입니다.”

“그 세 번의 만남. 그러니까 고작 1년 남짓한 시간 동안 무공이 그토록 눈부시게 발전했다 그 말이고?”

“네.”

“열여덟에 검강······. 검강이라······.”

“근데 그것이 워낙에 부식불간에 본 것이라. 아마 진짜 검강이 아니라 제 천살처럼 특수한 기공 아닐까요?”

“······.”

영무결이 침묵했다.

그 침묵이 종자명을 답답하게 만들었다. 마침내 영무결이 다시 입을 열었다.

“화산의 무공이라 했지? 그러면 마공은 아닐 테고······. 정파의 무공으로 그런 빠른 성취가 가능하다니. 조금 의아하군.”

“그래도 마공을 익힌 건 절대 아닐 겁니다. 화산파에서 그걸 좌시할리 만무하지요.”

“그거야 나도 아는 사실이다. 흐음······. 그리고 인급의 마존을 열넷이나 처치했다고?”

“네. 십만 대산쪽으로 우르르 내려갔던 놈들이 대체 뭐 쳐먹을게 있다고 여기까지 올라와서 난리인지. 안 그래도 피해가 심각했는데 덕분에 크게 한숨 돌렸습니다. 다만 지급의 마존도 올라왔다고 하니, 앞으로 수색조를 편성할 때 신경을 더 써야 할 듯합니다.”

영무결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건 번오에게 맡기거라. 그보다 수련은 제대로 하고 있는 거냐? 물론 천살은 위력적이지만 진짜 고수를 만나면 그리 큰 의미는 없어진다. 지난번에 아주 호되게 맛을 보고 와서는 조금 열심히 하는가 싶었는데 요즘 무공이 진척이 통 없는 것 같구나.”

“그러니까 그것이······. 열심히 한다고는 하는데.”

“쯧쯧쯧. 이제 아버지의 나이도 조금 있으면 팔순이다. 아버지의 자리야 내가 메운다고 하더라도 내 자리는 누가 메울 것이냐.”

“노력하겠습니다.”

종자명이 꾸벅 고개를 숙였다.

“그러면 앞장 서거라.”

“네?”

“그 아이. 한 번 만나봐야겠다. 지금 네 집에 머문다고 하지 않았더냐. 앞장 서거라.”

느낌이 영 좋지 않았다.

조삼모사가 되기는 하겠지만 그래도 일단은 지금 당장 매를 맞기보다는 이따 저녁에 맞는 것이 낫지 않을까? 운이 좋으면 더 먼 훗날이 될 수도 있고.

“아, 죄송합니다. 사형. 그게 제가 이제 막 귀환을 해서 여러 가지 처리할 일들이 많은지라.”

“그거야 번오에게 맡기면 되지 않느냐.”

“물론 그래도 되긴 합니다만 그래도 제가 장 아니겠습니까. 이런 일들을 모조리 부하에게만 떠맡겨서야 부대의 기율이 살지 않지요.”

영무결이 자신의 턱을 쓰다듬었다.

요리조리 빠져나가는 꼴이 영 마음에 들지 않지만 그래도 틀린 말은 아니다.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좋다. 그러면 넌 네 일을 보고 오도록 해라. 내 미리 가서 기다릴 테니.”

“네······, 네?”

영무결이 종자명의 곁을 지나 한 걸음을 내디뎠다.

그야말로 눈 깜짝할 순간.

종자명이 몸을 돌렸을 때, 영무결은 이미 보이지 않았다.

* * *

“정말 괜찮으십니까?”

“네······, 네. 괜찮습니다.”

이건 종자명이 자신의 사저를 내주겠노라 이야기 했을 때는 미처 예상하지 못했던 일들이었다. 운호는 너무 당연하게 그저 작은 방이나 혹은 모옥 정도를 생각했다. 하지만 대장군부의 천인장. 대장군의 막내제자라는 신분은 운호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높았다.

종자명의 사저는 북경 고관들의 으리으리한 대저택까지는 아니었지만, 부성에서도 제법 방귀 꽤나 뀌는 집안 정도는 돼야 머물 것 같은 칠십 칸짜리 저택이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놀랍게도 종자명은 유부남이었다. 사실 마흔에 가까운 사내가 장가를 갔다는 것은 생각해보면 이상한 일도 아니었지만, 이상하게 운호는 자연스럽게 종자명이 혼자 사는 홀아비일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종자명의 부인은 영씨로 대장군인 영보의 먼 조카뻘 되는 여인으로 무공을 익히지 않은 보통 사람이었다.

“이렇게 어린데 도사의 수행이라는 것은 참으로 혹독하군요.”

일반적으로 무림의 여협들은 사십줄에 이르렀다고 해도 그 젊음을 쉽게 놓치지 않는다. 내공심법과 무공수련의 효과다.

하지만 영씨 부인은 무림의 여협들과는 많이 달랐다. 곱게 나이 먹은 사십 대 중년 여성. 어쩌면 운호의 어머니가 역병으로 죽지 않았더라면 이런 모습이 아니었을까?

아니, 그럴 리가. 비록 무공을 익히지 않았다고는 하지만 규방에서 곱게 자란 대갓집의 마나님이 여염집 농가의 아낙과 어찌 같을까.

“혹시 화기가 닿은 음식이라 못 먹는 거라면 이 과일은 어떤가요?”

“부인, 저는 정말 괜찮습니다.”

운호가 재차 사양했다.

아쉬운 표정으로 음식을 내려놓는 그녀. 하지만 여전히 뭔가 먹일 수 있는 것이 없을까 고민하는 표정이다.

바로 그때였다.

“어험. 영화야.”

“오라버니?”

운호는 고수다.

고작 문 하나 정도. 그의 기감을 속이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것은 동급의 고수라고 해도 마찬가지다. 헌데 상대가 문 바로 앞에 올 때까지 눈치채지 못하다니.

-고수다.

파검의 말이 아니라도 알 수 있었다.

무엇보다 놀라웠던 점은 운호가 문 밖의 사내를 인지하는 바로 그 순간부터였다.

전신의 털이 -쭈뻣 솟구쳤다. 어마어마한 존재감. 대체 어째서 지금까지 이런 거대한 존재감을 눈치채지 못한 것일까?

그것은 마치 시야를 벗어날 만큼 거대한 존재를 코앞에서 목격한 것과 같았다. 그저 벽과 같던 무언가. 그것은 인지를 시작한 이후에야 그 존재감을 느낄 수 있다.

지금 문 밖의 사내 역시 그와 같았다.

“오라버니, 여기까지 어쩐 일이세요. 종랑을 찾아 오신 거라면 잘못 오셨답니다. 종랑은 집에 들르지 않고 바로 등청했어요.”

“알고 있다. 안 그래도 거기서 얼굴을 보고 오던 참이다.”

“그러면 무슨 일로?”

“저기 손님에게 볼 일이 좀 있어서 말이다.”

문이 열리고 모습을 드러낸 것은 거대한 한 마리의 맹수였다.

저만한 존재감이 처음은 아니었다. 존재감만으로 따지자면 본산의 권신 청무진인이나 이미 죽은 무신 모용경도 저보다 작지 않았다. 심지어 운호는 감히 헤아리기 힘든 마교의 대제사장과도 검을 나눠봤다.

하지만 저자에게서 느껴지는 존재감은 조금 달랐다. 제대로 정련되지 않은 날것 그대로의 느낌. 거칠고 흉폭하다.

그가 운호를 바라보며 입꼬리를 들어올렸다.

“아, 우리 도사님께 볼일이 있으셨군요.”

“도사님? 아, 그래. 그렇지. 도사였지.”

“네, 아직 어리지만 참으로 수행이 깊은 분 같더라고요.”

“뭐, 그래. 수행이 깊긴 하지. 아무튼간 영화야. 잠시 자리를 좀 비켜주지 않으련? 내가 이 어린 도사님과 긴히 나눌 이야기가 있어서 말이다.”

“어머, 그러면 잠시만요. 제가 다과와 차를 조금 준비해올게요.”

“아니다. 괜찮다. 이미 여기 차려진 것도 훌륭한데 뭘. 안 그렇소 백도사?”

등줄기를 타고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하지만

버틸만했다.

처음 천무십칠성을 목격했을 때는 그 거대함을 알지 못했다.

절정에 올라 사상과 십이신을 가까이했을 때는 그 강력함에 꼼짝도 하지 못했다.

그리고 지금.

영무결에게서 한 걸음 비껴 선 운호가 입을 열었다.

“네, 부인. 이 정도면 충분한 것 같습니다.”

-꿈틀

영무결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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