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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산파 역대급 천재-147화 (147/288)
  • 147화

    신검(10)

    내열비당의 부당주 광비검 병조량.

    그는 올해 나이 42세의 젊은 마인으로 장차 존자를 가장 곁에서 모시는 아라한 자리, 그러니까 중원에서 말하는 제사장 자리가 확실시되는 천재 중의 천재다.

    기본적으로 마도에는 명가라고 할만한 가문이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들에게 대제사장은 진정한 부처. 일종의 현인신(現人神)이며 그의 가르침을 제외한 나머지 모든 것은 그저 헛된 것에 불과하다.

    하지만 지난 150년 전.

    십만 대산을 넘어 마침내 중원의 저 가증스러운 작자들을 처단하려던 그들의 계획은 산산히 부서졌고 그들의 현인신은 십만 대산은커녕 본당에서도 쉽게 움직이지 못하는 처지가 돼버렸다.

    세상의 종교라는 것이 그렇다. 신의 가르침을 따르지만, 한편으로는 인간의 본능을 억누르지 못한다. 물론 존자(尊者)라는 현인신이 모든 것을 지배할 때는 감히 그럴 수 없었다. 하지만 그의 행동반경이 제약된 이후 많은 것이 달라졌다.

    정이란 실로 무서워서 스스로 좋은 것을 입고 먹는 것을 참기는 어렵지 않았다. 하지만 사랑하는 사람들에게까지 그러기는 쉽지 않다. 특히나 그것이 자신을 닮았지만 완전히 같지 않은 조그마한 후손들이라면 더더욱.

    본래 병관일이라는 이름을 쓰던 재능 넘치던 마인은 오랜 고행 끝에 마침내 아라한의 경지에 올라 자신의 이름을 버리고 위대한 존자를 그 곁에서 모시는 중임을 맡게 됐다.

    마교의 두 번째 제사장인 프라타파나.

    중원의 사람들이 이르기를 편마(鞭魔).

    광비검 병조량은 천재 중의 천재였다.

    그의 할아버지 병관일이 그러했던 것처럼.

    칠흑 같은 마기가 그의 검에 선명하게 맺혔다.

    -강기(罡氣)?

    강기를 만들어내는 것은 단순히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진기가 아니다. 자연은 본래 한 곳에 한계이상의 무언가가 모이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다. 물이 모이면 호수가 커지는 것이 그 이치이고, 옷에 솜을 넘치게 넣으면 터지는 것이 그러한 이치다.

    그렇기에 강기(罡氣)는 인간의 한계를 벗어난 초절정 고수들의 전유물이며 그 강철과 같은 의념이 자연의 이치를 거스른 증거다.

    운호가 고개를 저었다.

    기운이 어느 정도 유형화되긴 했다. 하지만 아직이다. 저 칠흑 같은 마기의 경계점에 기운이 점점히 흩날린다. 기운의 소실이다. 마인의 의지가 저만한 기운을 온전히 잡아두지 못한다는 증거다.

    지마(地魔).

    인간의 한계를 넘어서 대지의 기운조차 굴복시키는 경지. 하지만 거기까지다. 천마가 초절정과 같이 완전한 탈인의 경지라면 지마는 그저 그것을 흉내낸 수준에 불과하다. 물론 그 흉내조차 범상한 사람이라면 감히 감당할 수 없는 위력이긴 했다.

    -쾅!!!

    일합.

    광비검의 칠흑과 같은 검강과 맞닿은 부분. 남궁철이 선물한 검의 날이 뭉개졌다.

    -쯧. 안되겠구나. 이 몸을 뽑아라!!

    ‘안되긴 뭘 안됩니까. 이 검이니까 이나마 버텼지. 다 낡은 골동품을 뽑았으면 그대로 반토막이었을겁니다.’

    -다 낡은 골동품이라니!!

    광비검이 인상을 찌푸렸다.

    쥐새끼처럼 요리조리 빠져나가는 녀석을 상대하기 가장 좋은 방법은 역시 감당할 수 없을 위력으로 단번에 후려치는 것이다. 싸움이 길어지는 것은 그의 입장에서도 썩 좋은 일이 아니었다.

    일단 저 뒤의 일곱 마리 늙은 쥐새끼들. 그리 썩 대단한 도움은 아니겠지만, 그래도 한 손보다는 두 손이 낫겠지 하는 마음으로 끌고 왔더니 이렇게 대놓고 반기를 들 줄은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그 주련노괴 라는 녀석을 잔인하게 처분하는 것으로 경고를 했음에도 저런 겁 없는 선택을 하다니. 역시 하류의 마공을 익힌 쓰레기들은 어쩔 수 없다.

    게다가 이곳의 위치 역시 썩 좋지 않았다.

    청해대장군부는 무시할만한 세력이 아니다. 특히 그곳의 주인인 대장군 영보는 그의 할아버지도 단독으로는 승리를 자신할 수 없는 대단한 고수다. 다행히 서장의 고리타분한 머저리들이 움직인 덕분에 이쪽의 경계가 옅어졌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이 정도 거리면 마냥 안심할만한 위치가 아니다.

    짜증이 치밀었다.

    상승의 무공은 마음과 정신의 공부다. 그리하여 사람의 의념이 세계의 규칙을 바꾼다. 정파의 공부는 그렇기에 부동을 말한다. 흔들리지 않는 정신으로 자신의 길을 고수한다. 마공은 다르다. 사람의 본능이란 그런 것이 아니라고 이야기 한다.

    그것으로 광비검의 마기가 일순간 증폭됐다. 칠흑의 검이 순식간에 한치 더 길어졌다.

    그것은 운호도 미처 예상하지 못했던 움직임이었다.

    어렵다.

    운호가 판단했다.

    검을 쥔 손에 힘을 더했다. 동시에 그의 마음이 움직인다. 사람은 본래 동시에 두 가지를 생각할 수 없다. 운호 역시 마찬가지다.

    무당의 양검이 사용했던 양의심공이 그것을 가능케 한다고 하였는데, 그 말은 그렇게 두 가지를 동시에 하는 것만으로도 무당과 같은 문파를 대표하는 ‘신공’소리를 들을 만큼 대단한 공부라는 뜻이기도 하다.

    하지만 만약 누군가가 하나를 계산할 때. 다른 누군가는 그것을 이미 끝내고 또 다른 것 하나를 더 계산할 만큼 사고의 속도가 빠르다면 어떨까? 동시에 두 가지를 생각하는 것은 아니지만 거의 그것과 필적할만한 효율을 보여줄 수 있지 않을까?

    검을 움직이며 동시에 등에 멘 신검에 기운을 더했다.

    파검의 백이 운호의 마음에 감응했다. 신검합일의 극한은 이기어검과 통한다. 하지만 여전히 운호와 파검의 마음은 하나가 아니다. 그렇기에 이 움직임은 이기어검이 아닌 그저 귀신들린 검의 움직임에 불과했다.

    광비검이 그것을 읽었다.

    그 정도도 읽지 못하고 어찌 인간의 한계를 넘어섰다 자청할 수 있을까.

    “허튼 수작!!”

    하지만 운호가 한걸음 더 빠르다.

    그의 오른손이 펼쳐졌다. 손에 쥐고 있던 명검이 빠르게 쏘아졌다. 등의 검이 스스로 움직인다. 이기어검이다. 그렇다면 손에서 날아든 검은? 절정의 검객이 이기어검을 쓰는 것 자체가 기적과 같다. 그가 동시에 두 자루의 검을 부린다는 것은 상상하기 힘들다.

    그렇기에 광비검은 그것을 단순한 비검술이라 생각했다.

    착각이었다.

    -푸욱

    운호의 손을 떠난 검이 광비검의 몸을 베어냈다. 일순간 일렁이는 검강의 기세가 주춤했다. 어느새 운호의 빈손에 들어온 정답이 움직인다. 그것은 파검이 생각하는 가장 바른 답이다. 운호 역시 파검의 생각을 유추했다.

    -멍청한!!

    하지만 어긋났다.

    파검의 선택은 공격. 운호의 선택은 공격적인 방어였다.

    거의 흡사하지만 완전히 일치하지 않는다. 운호의 마음을 따라 광비검의 허벅지를 베어낸 검이 유려한 움직임을 선보였다.

    -콰과과과광!!

    흔들리는 검강이 운호의 마음이 담긴 명검을 박살 냈다. 그 한 자루가 어지간한 장원 값에 맞먹는 검의 최후. 하지만 장원 한 채 값이 아무리 중하다 한들 목숨만 할까. 천고의 장인이 심혈을 기울여 만들어낸 명검이 광비검의 박자를 찰나(刹那)동안 빼앗았다. 그것은 보통의 사람이라면 인지조차 할 수 없는 시간이었지만 운화와 같은 고수에게는 천금과도 같다.

    정답의 경로가 미세하게 수정됐다.

    그 검극이 광비검의 오른 어깨를 베어냈다.

    -얕다!!

    파검이 소리쳤다.

    하지만 무슨 일일까? 신검에 어깨를 베이는 순간, 광비검의 검에 맺힌 칠흑의 마기가 크게 흔들렸다.

    의구심은 갖지 않았다. 마공이란 본래 그러하다. 불같은 기세로 타오르지만 의아할 정도로 쉽게 꺼지기도 한다. 마치 사람의 마음이 그러한 것처럼.

    운호가 정답을, 혹은 정답에 머무는 파검이 운호를 휘둘렀다.

    흡사 도끼와 같은 기세. 신검이 광비검을 위협했다. 또한, 허벅지와 오른 어깨의 상처가 광비검을 압박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그는 명백히 운호보다 한 수 높은 고수였다. 비록 일련의 공방에서 큰 손해를 봤지만 그 역시 힘대 힘으로 부딪히는 정면의 승부에서는 조금도 물러날 생각을 하지 않는다.

    -쾅!! 콰과광!! 콰과과과광!!!

    어마어마한 충격이 기혈을 뒤흔들었다.

    하지만 기호지세다.

    정답은 그 시대의 기준으로는 명검일지 모르겠으나 이 시대의 기준으로 보자면 그저 무게중심이 검날에 치우친 기형검에 불과하다. 저 흩어진 검강이 다시 맺히기 전. 마인의 부상이 그의 행동에 제약을 가하는 지금. 더 큰 이득을 봐야 했다.

    진기가 빠르게 순환했다.

    여전히 절대량은 부족하다. 하지만 속도는 양을 보완할 수 있다. 다섯의 힘이 빠르게 두 번 순환한다면 그것이 열과 다를 것이 무엇일까.

    운호가 강진 특제의 벽곡단. 그러니까 기초적인 금단을 복용한지도 어느새 햇수로 다섯 해를 채워가고 있었다. 생명을 깎아 신선에 가까운 몸을 만들어준다는 금단(金丹). 강진의 말에 의하자면 운호는 그중에서도 금단의 반응이 특별히 더 좋은 체질이라고 했다.

    최근의 강행군을 거치는 동안 운호는 정말 많은 피를 잃어버렸다. 그리고 그 양은 그가 생각했던 것 이상이었다. 당시 강진은 운호에게 금단의 효능으로 그의 자연재생력이 크게 증가 했다고 이야기했다. 최근의 강행군. 그리고 섭취하는 것이라고는 벽곡단밖에 없던 운호가 지금까지 버틸 수 있었던 원동력이 바로 그것이었다.

    하지만 세상에 공짜가 어디 있을까.

    수차가 움직이기 위해서는 물이 흘러야 하는 법이고, 사람이 움직이기 위해서는 영양을 섭취해야 하는 법이다. 그간 운호의 재생은 분명 그가 섭취하는 영양을 초월하고 있었다.

    강진은 말했다.

    또한 증무진인 역시 말했다.

    “금단은 수명을 갉아먹는다.”

    금단은 운호의 몸에서 정말 많은 성분들을 끌어다 사용했다. 그것은 굳이 좋은 것과 나쁜 것을 구분하지 않았다. 그저 끌어다 쓸 수 있는 모든 것을 게걸스럽게 가져갔을 뿐이다.

    물론 그렇기에 그 대부분은 사람이 평생에 걸쳐 사용돼야 할 자원들. 그러니까 수명이나 생명이라는 단어로 표현될만한 자원들이었다. 하지만 동시에 일반적으로는 ‘탁기’라고 하여 무공을 익히는 데는 방해가 되는 성분 역시 일부지만 포함되어 있었다.

    조유가 느꼈던 운호의 섬뜩했던 안광은 단순한 착각이 아니었다. 실제로 운호의 몸은 요 며칠 동안 마치 십수 년 이상 깊은 산에서 고행을 한 사람과 같은 극한의 상태를 유지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검을 부딪힐 때마다 전해지는 위력이 더 강해진다.

    광비검이 이를 악물었다.

    강호에는 기이한 무공들이 많아 연환격이 이어질수록 경력이 배가되는 무공 역시 존재한다. 어쩌면 상대가 익힌 검술이 이와 같은 검술이 아닐까?

    광비검이 운호를 떨쳐내기 위하여 크게 검을 휘둘렀다.

    이것 역시 그 나름대로 제법 손해를 보는 움직임이었다. 하지만 이대로 공격을 이어나가는 것보다는 이쪽이 나을 것이라는 판단이었고 그것은 분명 현명한 판단이었다.

    파검의 몸이 움직였다.

    아니, 어쩌면 운호의 손이 움직인 걸지도 모른다.

    사실 그것은 그리 중요하지 않았다. 중요한 점은 그 움직임이 파검이 거하는 그 검의 이름 그대로 ‘정답’에 가까운 움직임이었다는 점이었다.

    광비검의 무리한 움직임을 피하여

    유려하게 움직인 ‘정답’이 광비검의 가슴팍을 파고들었다.

    -콰과과과광!!

    그야말로 산을 허물듯한 일격.

    그리고 그 순간. 운호의 몸을 빠르게 회전하던 진기가 마침내 임계점을 넘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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